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드보일드 라이프 스토리
임경선 지음 / 뜨인돌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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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은 가게라도 좋으니까, 나 혼자 일해도 상관없으니까 제대로 확실히 일다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내 손으로 직접 재료를 고르고,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내 손으로 그것을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일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봤자 재즈카페 정도더라구요. 어쨌든 재즈를 참 좋아했고 재즈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을 정말 하고 싶었으니까요."

 '피터 캣'은 시내 외곽인 데다가 지하에 있었지만 인테리어 하나만은 철저하게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설계뿐만 아니라 마루 시공까지도 도맡아 했다. 가구도 앤티크 숍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골라 모았다. 그래서 테이블마다 가구가 달랐다. 가게의 한쪽 모서리는 피아노와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 소품들로 장식했다. 구석의 벽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마음이 내키면 마르크스 형제의 영화를 비밀리에 상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느낌이 좋은 바 카운터를 놓았다. 당시의 자료사진을 보면 깔끔하고 모던하다기보다는 손때가 묻은 듯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단골 바'의 인상이 강하다.

 

설명만 보아도 가고 싶은 곳, 주인장이 궁금해지는 곳이다. 바로 이 곳은 한때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바이다. 하루키가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바를 운영했던 것, 그리고 그 상태에서 썼던 글로 군조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명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않고 직접 재즈바를 운영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서 문학상을 받고 데뷔했다는 사실은 마치 신화처럼 낭만적이다.

 

 한편, '재즈카페 주인장'으로 산다는 것은 언뜻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블루칼라 노동자에 버금가는 고된 노동이 요구되었다. 그는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체노동에 시달렸고, 은행이나 장인에게 진 빚을 하루빨리 갚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여유롭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을 뿐만 아니라 담배연기와 위스키에 절어 지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다. 술주정뱅이들이 남긴 오물을 치워야 했으며, 취객들을 쫓아 보내고 아침부터 식재료 등을 사러 다녀야 했다. 창문도 없는 어두컴컴한 지하의 작은 공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음반을 틀고, 피터 캣의 특식인 롤캐비지와 음료를 만들고, 그릇을 닦았다.

 저녁 늦게까지 나쁜 공기 속에서 일하다 보면 뭔가를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생길 수 없었다. 곁에서 보이는 것처럼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직업도 아니었다. 7년간 재즈카페를 운영하면서 깊이 깨달은 것은 역시 '밥을 벌어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오픈 초기에는 계속 가난에 허덕여야 했고, 갚아야 할 빚도 태산이었다. 한번은 매달 정해진 빚을 꼬박꼬박 갚아야 할 날짜가 다가왔는데 아무리 세어 봐도 3만 엔이 비었다. 상심한 채 길바닥에 멍하니 서 있던 무라카미 부부에게 정말 농담처럼 어디선가 바람에 밀려 만 엔짜리 지폐 3장이 날아왔다. 그 돈으로 겨우 그 달의 빚을 갚았다. 정말 거짓말 같은 실화다.

 

그래,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지.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의 호주머니 속의 돈을 내 호주머니 속으로 옮기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지루하고, 때로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지 느끼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하다 못해 월급 받는 직장인이 아니라 스스로 경영자이자 오너라면, 그 스트레스는 말로 못 할 것이다.

 

이 시기를 보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적으로 단단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문인들이 하루키의 재즈바를 종종 방문하였는데, 세 명이 있다가 한 명이 자리를 뜨면 반드시 남은 두 사람이 먼저 일어난 그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문단에 데뷔한 후, 기존의 작가들과는 달리 문단과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았던 것은 이때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타고난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오는 손님 모두에게 신경을 써 가면서 잘 보일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다시 오게 된다면 그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이 재즈카페를 운영하는 올바른 길일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적용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일치감치 만인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것을 지양했기에, 데뷔 후 숱한 비판이나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임경선은 자타 공인 하루키 매니아이다.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냈고, 도쿄 대학에서 수학하기도 했다고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현재 소설과 수필 등 다양한 글을 쓰고 있는 그녀의 롤모델이 하루키인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한국, 일본, 유럽, 남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을 한 그녀는 남보다 일찍 고독을 깨쳤을 것이며, 인간의 고독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하루키에게 끌렸던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작가와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하다가 전업 작가가 된 것 또한 하루키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 곳곳에서 하루키에 대한 애정은 뚝뚝 넘쳐난다.

 

첫째, 익숙하지 않은 것을 처음 시도하는 것이므로 그리 어렵게 고민하지 않는다.

둘째, 글은 1인칭으로 쓰고 주인공은 '나'로 정한다.

셋째, 되도록이면 허구를 쓴다.

넷째, 문장은 최소한 세 번 이상 고쳐 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자기 변명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하루키가 가게 문을 닫고 새벽의 어두운 바 카운터에서 매일 조금씩 짬을 내어 글을 쓸 때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어쩌면 이 원칙을 보고 저자는 힘을 얻었을 수도, 위로를 받았을 수도, 실질적인 조언에 반가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저자는 곳곳에서 하루키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자신과 하루키의 가상 대담까지 구성한다. 그 덕에 이 책을 읽으면 하루키의 책을 읽고 싶어진다. 특히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두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은 재즈바와 병행하면서 썼기에 글의 호흡이 짧지만, 이후에 나온 <양을 쫓는 모험>부터는 호흡이 길고 힘이 느껴진다는 부분을 보면 당장 하루키의 책을 집어 읽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종종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문학에 대한 진지한 해석까지는 이 책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몇 몇 문장들이 실제로 인용을 한다거나, 하루키에 영향을 받았다는 소설가들의 애정 고백을 일부 싣는다거나 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이 책에 나온 내용 정도는 하루키의 팬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을 내용이고, 하루키의 책 전부가 아닌 일부만 읽어 본 나도 한 두 사실만 제외하고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좀 세게 표현하면, 아이돌 그룹을 바라보는 소녀 팬의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까. 농담삼아서 '하루키빠'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정말 농담에 그치려면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들 정도의 내용이 나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얼마 전에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를 읽었는데, 역설적으로 빌 브라이슨의 책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겠다. 하루키가 오래 전에 살았던 작가도 아니고, 알려질 만큼 알려진 작가인데 이 책에 실린 정도의 내용은 웹서핑으로 충분히 수집 가능한 정도의 지식이다. 저작권 때문이었을까? 이 책에는 하루키에 관련한 사진 자료가 없는 것도 이상하다. 돈이 문제였다면 저자가 직접 찍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본이 멀지도 않은데, 그가 운영했던 재즈바가 있던 장소나,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다면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직접 사진을 찍어서 넣었더라면 책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하루키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죠. '피터 캣'에서 지낸 긴 시간들이 그에게 차분히 관찰할 시간을, 그리고 그곳에서의 힘든 육체노동이 도덕적인 기반moral backbone을 가져다 주었다구요."

 

저자에게 충분한 시간과 발로 뛰는 노동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더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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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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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은, 대부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다. 고통스러웠거나 민망했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지워버린다. 기억이 희미하면, 상처를 받아도 쉽게 잊는다. 상처를 쉽게 잊으니 상처를 받는 일도 점점 드물어진다. 사람으로선 놀라운 강점이지만 작가로선 치명적인 약점이다. 상처받지 않는 작가라니,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말이다. 대부분의 예술작품은 인간의 상처와 기억과 용서와 화해를 다루고 있으니, 이런 식으로 평범하게 살아선 <죄와 벌>이나 <위대한 개츠비> 같은 명작을 남기긴 애당초 글러먹었다. Y의 소설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시, 오, 이, 엔, 철자로 입은) 상처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결국에는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을 지나왔기 떄문일 것이다. 나도 더 늦기 전에 많이 상처 입고 (이거 원 기억이 나야지) 더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기억이 안 나) 더 많이 화해해서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에 도전해봐야겠다.

 

이 책은 김중혁과 김연수, 두 절친 소설가가 씨네 21에 연재한 영화 관련 칼럼을 엮은 책이다. 분명히 저자 이름에는 김연수가 먼저 올라와 있지만,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최근 읽은 김중혁의 몇몇 책들이 좋아서였기 때문에 나는 김중혁의 글이 더 궁금했다.

 

대중적으로는 김연수 작가가 좀 더 알려져 있고, 데뷔도 더 빨리 했으며, 더 많은 소설을 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중혁 작가의 글이 내 취향에 맞는다. 두 소설가가 번갈아가면서 쓰는 이 책에서도 나는 김중혁의 글이 더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향이니까, 김연수 작가의 글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해 쓴 글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일단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글 쓰는 이나 글 읽는 이나 어느 정도 긴장을 풀고 접근할 수 있으며, 그러다가 문득, 아, 하면서 순식간에 깨달음을 얻게 되는, 돈오돈수의 순간이 종종 오기도 한다. 독자는 때로 작가에 대해 우월감을 가질 때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분명히 두 작가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두 작가도 책의 맨 앞에서 특별히 둘 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밝히고 있다. 전문가라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하고 몇 번이고 마음 속에서 검열을 거치겠지만, 작가나 독자나 비전문가인 것은 마찬가지기에, 작가는 마음껏 영화를 주물러가며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왕창 늘어놓고, 독자는 또 즐겁게 깔깔대면서 읽으면 그만이다.

 

랜디와 잭 블랙 캐릭터의 차이는 뭘까. 랜디는 레슬링에 자신의 모든 것, 100퍼센트를 걸었다. 레슬링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죽어도 좋아, 라는 심정으로 레슬링을 한다. 하지만 잭 블랙은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건다(완전 '자뻑'이다). 믿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어떤 대상이나 어떤 일에 100퍼센트를 거는 건 위험한 짓이다. 일이 망가지거나 실패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까. 레슬링에 모든 것을 건 랜디는 "링이 나의 진짜 세계"라고 말한다. 멋있어 보이려고 한 얘기인지 몰라도 나는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링도 나의 세계"라거나 "링은 나의 직장"이라거나 했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링이 나의 진짜 세계라니. 레이가 랜디의 대사를 들었다면 이렇게 빈정거리지 않았을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염병할 링에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말이나 돼? 내가 브리주를 도망쳤듯 어서 빨리 그 빌어먹을 링에서 벗어나라고.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난 정말 살고 싶다고."레이의 말이 백번 옳다.

 

이 부분도, 글의 맨 앞에 인용한 부분도 전부 김중혁의 글 일부이다. 어떤 대상에 전부를 걸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100퍼센트 믿는 잭 블랙의 캐릭터는 김중혁과도 닮았다. 그러기에 당당히 소설가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인 자신의 기억력 부족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나. 그의 글은 멋있어 보이지 않으려고 하기에 매력적이다. 김중혁 작가의 글이 명태를 얼렸다 말렸다를 되풀이하여 노르스름한 겉은 꾸덕꾸덕하고 안은 포슬포슬한 황태와 같다면, 김연수 작가의 글은 명태의 알집을 소금에 절이고 발효하여 고소하고 짭짤해진 연분홍빛 명란젓 같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남녀상열지사를 다루는 소설은 김연수의 소설이 재미있는 것 같다.

 

나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참 좋다. 그분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라는 건 소리와 빛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 일부분도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다. 낭만주의자가 될 때, 나는 일상의 소리와 빛에 민감해진다. 비행기 소리라거나 바람 소리, 혹은 도로로 흘러내리는 빗줄기에 되비치는 거리의 불빛들에 나는 끌린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자는 일상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 내리는 청두 거리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센티멘탈해진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도 그처럼 센티멘탈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바라보는 일상은 너무 큰 소리와 아름다운 빛으로 왜곡돼 있다. 그리고 이 왜곡은 의도적이다.

"연수 씨 작품에는 신파가 있어요"라는 말을 지난주에 들었다.(물론 그 문학평론가는 아니다.) 항변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통속을 좋아하고, 신파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통속과 신파는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감추는 데 실패한 자의 것이다. <호우시절>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면은 물론 판다들이 등장하는 부분이었겠지만(기다려라, 청두의 판다들이여, 반드시 찾아가서 말을 걸어보고야 말겠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메이가 남편의 영정 앞에 돼지내장탕면(너도 기다려!)을 바치고 구슬프게 울 때였다. 메이처럼 예쁜 여자가 그렇게 울면 그게 어떤 장면이든 나는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앉아서, 그 장면에서 메이가 운 건 아무래도 죽은 남편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그 남편의 영정이 웬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하니 더 가슴이 아팠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을지 모르지만,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여행은 사후에 낭만적으로 변형된다고 믿는 나는 동하가 한국으로 떠난 뒤, 다시는 연락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났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햇다. 그러고 보면 정말 동하는 모든 여자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 결혼하기 쉽지 않겠다.

 

<호우시절>에 대한 김연우의 글 중 일부이다.  나 또한 이 영화를 참 좋아했다. 낭만, 신파, 통속... 그런 부분이 때로는 김연우의 글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때로는 내가 소화하기에 과하다고 느끼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에게 영화보기란 귀를 후비는 것과 비슷하다. 더 잘 듣기 위해 귀에 상처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귀지를 긁어내듯,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오동통한 생선살을 다치지 않고 가시만 깔끔하게 발라내듯, 나는 내 심장이 잘 뛰게 하기 위해 영화를 보며 핏속의 불순물을 제거해왔다. 내게 영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매년 1월이 되면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더 많은 상상을 하기 위해, 영화를 열심히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김중혁이 쓴 글이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 나 또한 그랬다. 특정 장르, 특정 감독, 특정 배우에 심하다싶을 정도로 좌우되는, 영화에 대한 내 호감도는 대체 내게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할 정도로 의문이 들 때도 있었고, 때로는 다양한 스토리를 넘나들며 영화를 좋아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는 나는 영화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이야, 하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김중혁의 이 글을 보는 순간, 옳다구나 했다. 나는 영화를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특별할 이벤트가 있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우울할 때,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생각하고 싶을 때, 머리가 텅 빈 것 같을 때, 내 자신이 지나치게 냉정하게 느껴질 때, 감성을 채우기 위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영화를 열심히 보려고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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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육아를 회사에서 배웠다 - 글로벌 기업 16년 경력 워킹맘들이 전하는 육아 경영 노하우
김연정.정인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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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은 죄인이지."

작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미생,  그 화제의 드라마 속에서 선차장이 한 대사다. 남자사원들이 선호하는 직장상사이자 여자사원들의 롤모델로 능력과 인성을 동시에 겸비한 그야말로 슈퍼우먼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완벽한 그녀도,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은 수많은 워킹맘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원작을 그린 윤태호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사실 가볍게 가려고 했던 선차장 캐릭터가 예상 외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서, 애초에 작가가 생각했던 결말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선차장이 하는 것으로 수정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선차장은 일을 포기하고 아이에 전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작가가 생각했던 선차장의 선택은 퇴사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원작자가 애초에 생각한 줄거리마저 수정할 정도로 선차장의 캐릭터는 미생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인물 중 하나였고, 그것은 현재의 워킹맘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설문 조사 결과 젊은 사람들일수록 반드시 결혼할 필요도, 아이를 가질 필요도 없다는 답변이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특히 여자의 경우 남자보다 그런 답변의 퍼센트가 훨씬 높다. 사회 생활을 하는 이라면 그게 왜인지는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결혼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면 엄마로서 일과 육아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을 약간이나마 덜어주는 책이다. 전적으로 덜어주지는 않는다. 이 책으로 상당수가 해소될 정도의 고민이었다면 애초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이 책을 가지고도, 이 책의 지시대로 따라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워킹맘들에게 육아는 힘들다. 그러나 조금은 덜 방황할 것이고, 약간은 더 마음이 놓이리라.   

 

 

Part 1. 엄마 CEO의 스마트한 가정조직관리 비법!

01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 미안한 얘기지만, 워킹맘의 육아는 원래 불완전하다 | 죄책감도 병이다! | 말도 안 돼! ‘육아’를 회사에서 배웠다고?

02 당신은 리더인가 보스인가
나부터 파악하자 -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쉬워진다 | 리더와 보스의 차이 | 보스엄마 vs 리더엄마 | 엄마가 먼저 하라!

03 가정의 CEO가 조직문화와 비전을 만든다
왜 마이크로소프트는 1:1 미팅을 이토록 강조하는가 | 쪽지 대화가 ‘글 쓰는 문화’를 만든다 | 엄마의 ‘일터’에 데려가라 | 페이스북코리아 주간보고서에는 감사리스트가 있다? | 감사하는 조직문화, 밥상머리에서 해결하자! | 밥상에서 놀자! | 자, 회의합시다! | 정리정돈은 온 가족이 함께!

04 ‘50:50 윈윈 육아’의 비밀
공동창업자가 제 역할을 하게 하라 | 50:50 윈윈 육아, 가정 내 생태계를 구축하자 | 남편과 손잡아라!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스마트한 역할분담법 | 아빠와의 대화가 더 큰 임팩트를 가지는 이유 | 온몸으로 배우는 아이, 아빠와 함께라면 효과 두 배


Part 2. 리더엄마의 ‘通하는 인재’로 키우는 법

05 [목표설정] ‘작은 성공’의 벽돌 쌓기
회사에서 목표설정은 ‘일의 시작’, 아이에겐 ‘꿈의 시작’ | 장기목표 - 꿈과 비전은 최상위의 목표다 | 중기목표 - 새해목표를 아이와 함께 세워라 | 단기목표 - 때로는 단원평가를 위해서도 목표는 필요하다 | ‘작은 성공’의 벽돌을 쌓아라 | 왜 ‘작은 성공’이 중요한가

06 [리더십] 리더의 조건: 솔선수범, 인간관계, 경청
베이징올림픽 이승엽 TV광고는 ‘제가 하겠습니다’로 만들어졌다 | 아이 리더십,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먼저 말하게 하라 |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그를 인턴으로 뽑았던 이유는 ‘리더십’이었다 | 리더십은 반장 타이틀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 “안녕?”, “미안해”의 힘은 의외로 세다 | 놀이는 리더십의 씨앗이다 | 잘 들어라, 리더십의 기본은 경청이다

07 [도전정신] 시도의 마법
아디다스-SKT의 2010년 월드컵 마케팅은 전화 한통에서 시작됐다 | 스티브잡스가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면… | “엄마가 해줄게”가 가장 위험하다 | ‘시도’하지 않은 성공은 없다

08 [창의력] 백지의 기적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이 밥 먹여준다 | 백지의 공포 vs 백지의 기적 | 물리적 백지 - 왜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가는가? | 시간적 백지 - “엄마! 난 달리처럼 그리고 싶어” | 관념적 백지 - 고정관념이 없을 때 아이디어가 생산된다 | 일기쓰기는 ‘생각상자’를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질문이 답이다 | 구글의 무인자동차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어야 적절한가? | 창의적 문제해결력은 연습으로 길러진다

09 [프레젠테이션] 남 앞에 서는 것을 즐기게 하라
나이키, 10번의 프레젠테이션으로 김연아를 얻다 | 프레젠테이션이 ‘성패’를 가른다 | 내 아이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 “여기 불고기 4인분 주세요!” 주문은 아이가 하게 한다 | 따로 연습시키지 마라! 일상을 포착하라!

10 [영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자신감이 전부다!
아디다스 2주 출장이 남긴 것은 ‘피’와 ‘자신감’이었다 | 아이의 영어도, 결국 자신감이다 | 영어, 길게 봐야 즐길 수 있다 | 디지털 기술의 순기능을 활용하자 | 영어, 천천히 해도 글로벌무대에서 일하기에 충분하다

11 [시간관리] 시간의 주인이 될 것인가, 노예가 될 것인가
시간을 주도하는 사람이 인생을 주도한다 | 훈계하지 않고 시간개념 가르치는 방법 | 아직도 동그라미 생활계획표를 사용하는가 | 아이에게 ‘시간 주권’을 돌려줘라 |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을 리드하라

12 [독서관리] 책은 ‘생각의 재료’다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 “책 좀 읽어라” 하지 말고, 책 읽을 시간을 줘라 | 독서기록장을 질문기록장으로 바꾼다면 | 하브루타로 독서의 질 높이기 | 학습만화도 생각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 | 책과 친해지는 법, 스티커의 마력


TIP. 육아동지들께

01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기본에 충실하라! 학교가 기본이다 | 정리정돈 안 되는 아이는 남의 시간을 도둑질한다

02 취학통지서를 받은 워킹맘에게
학부모 총회는 반차를 내고서라도 꼭 참석하자 | 학급 내 학부모 모임에도 체계와 규칙이 있다 | 일상에 침투하라

03 도우미가 필요한 워킹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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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의 멍청이들 - 일이 힘든가? 사람이 힘들지! 꼴통들 때문에 회사 가기 싫은 당신에게!
켄 로이드 지음, 임지은 옮김 / 길벗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이렇게나 짜증나는 인간을 직장에서 본다면 홧병이 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간 유형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낯이 익다. 이 모든 이들이 전부 우리들의 사무실에 있지는 않겠지만, 이 모든 이들이 단 한 명도 없는 사무실은 단연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의 신경을 긁는 이들, 어쩌다 마주친 그대라면 가볍게 '쌩까면' 그만이지만, 좋으나 싫으나 이들과 늘 동고동락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학생 때가 좋았다. 아무리 싫은 친구라도, 그 친구가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서로 소 닭 보듯 생활할 수 있었는데,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상대가 아무리 싫어도 없는 듯 취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실 이런 책들은 꽤 많은 편이다. 그 많은 책들 중 단연 이 책만의 장점을 꼽자면, 구체적이라는 것. 이른바 사무실의 멍청이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묘사하였는데 너무 자세한 나머지 마치 실체를 가지고 내 앞에서 근무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가상의 상대로 인해 열이 받을 정도이다. 해결 또한 두리뭉실하지 않고, 정확하게 그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말을 제시한다.

 

한 때 출판계를 흔들었던 힐링, "괜찮아, 잘 될거야. 너의 진심을 알아줄거야. 너는 그저 묵묵히 열심히 너의 일을 하면 돼"와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도 아니고, 그 뒤를 이어 출판계를 휩쓸고 있는 독설,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났니? 너 자신을 돌아보지? 누군가 너를 만만하게 대할 여지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니?"라고 일갈하는, 상황도 짜증나 죽겠는데 돈과 시간을 들여서 왜 내가 훈계를 들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류의 책도 아니여서 마음에 든다.

 

다만, 별 한 개를 아쉽게 깎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눈이 금방 피로해진다는 것. 사무실의 온갖 진상들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기에 읽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읽는 독자를 위해서 편집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 표지는 시선을 집중시키기는 하지만, 계속 보고 싶은 표지는 아니다. 표지를 넘겨 본문으로 들어가면, 왜 이렇게 노란색이 많은지. 하이라이트를 주고 싶은 의미는 알겠는데, 오히려 본문 내용에 집중하기는 힘들게 만들었다.

 

 

1부 오! 나의 미친 상사!
멀티태스킹을 가장한 주의력결핍장애 “어디서 불이 났다고?”

▶"지금 바쁘신가 본데, 나중에 다시 올까요?"

★그리고 이 주의력결핍장애자들이 당신의 보고를 제대로 접수했다는 증거를 메일 등으로 확실하게 받아둬라.
침묵애호증 “……”

▶"어떠셨어요?"
보고서난독증 “보고서는 됐고, 말로 설명해봐요”

▶지피지기 백전백승! 일대일 맞춤형 보고서를 작성하라

★물론 상사가 업무상 얼마나 저능한지에 따라 그가 이해할 때까지 보고서 풀이를 도와줘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어설픈 편집자 지망생 “내가 수정한 문서만이 진리!”

▶"당신의 귀중한 시간을 줄여드리겠습니다"

★단, 중요한 문서는 상사가 꼭 체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멍청이들이 슬픈 이유는 중요한 보고에는 침묵하고, 사소한 보고에는 목숨을 건다는 것임을 잊지 말자. 
프락치 양성형 “나의 스파이가 돼주게”

▶"소규모 점심 회식 어떨까요?"
어설픈 궁예질 “옴마니반메홈, 니 속마음이 보인다네!”

▶"그런 제안은 관심도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한 번도 이직을 제안받은 바 없다는 상사의 발언은 상사의 리더십, 대인관계, 업무능력 등에 진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바로 상사가 그런 전화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까닭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상사가 그날 이후 당신을 탐탁지 않게 대한다면 헤드헌터들과 새로운 대화를 가져보는 것도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아주 가끔 지킬이 되는 하이드 “내가 언제 변하는지 나도 몰라”

▶이럴 때는 그냥 닥치고 감사하자
모욕과 돌직구 혼동형 “그런 바보 같은 제안을 왜 하는 겁니까?”

▶때로는 그냥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쩌면 당신이 회의에서 제안한, 상사가 '바보 같다'고 한 그 제안을 활용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특히 그 제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거나, 해결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말이다. 상사가 생각을 바꿔서 당신의 '바보 같은 제안'을 시도해보기로 결정하고 그 아이디어가 효력을 보인다면 최후의 승자는 당신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넘겨짚지는 마라. 아, 또 하나 고민해봐야 할 점! 혹시 당신, 진짜 바보 같은 제안을 한 것은 아닌가?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하는 고성방가형 “나보다 목소리 큰 놈 나와!”

▶상사를 진정시키려고 하지 마라
업무폭탄 투하자 “업무가 많아야 성장하는 거라네!”

▶"업무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주세요" 
무식한 업무방관자 “알아서 하세요”

▶'예스'라고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연속해서 던져라
약점사냥꾼 “약점이 드러날 때까지 후벼판다”

▶멍청이일수록 예측 가능한 법, 머릿속에서 예상 플레이를!
적반하장형 “내 잘못은 다 당신 탓이야!”

▶분노는 감추고, 눈을 똑바로 보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타인에 대한 불만이 자신의 미심쩍은 행동을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다. 상사가 당신의 책상 앞에 나타나면 그가 화를 냈던 이유를 염두에 두고 처신하라. 상사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서류를 훔쳐보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당신도 그랬으리라 짐작하면서 화를 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상사가 당신의 책상으로 다가온다면 당신의 서류를 훔쳐보려 할지도 모른다.
특정인 무시형 “내 눈에는 네가 안 보여”

▶"이번 주 안에 회의를 한 번 더 할까요?"
회의와 자기자랑 혼동 “내 얘기만 들어도 여러분은 영광”

▶이럴 때일수록 칭찬을 아끼지 마라 
잘 듣고 있어도 트집 “회의에서 왜 한마디도 안 하죠?”

▶모욕인지 장난인지, 속뜻이 뭔지부터 파악하자

★대부분 사람들은 회의에서 자기 이야기만 내뱉는 사람보다는 조용히 듣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멍청한 관리자가 회의가 끝난 후 내뱉는 비정상적인 모욕적인 말도 마찬가지다.
전임자 험담형 “이건 모두 전임자의 잘못입니다”

▶자질 없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계속 뿌리게 냅둬라
독배를 남기고 떠난 상사 “떠나면서 저격의 화살을!”

▶우는소리 대신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라 
공개재판애호증 “네 실수를 모두에게 알려주마!”

▶역지사지해보세요, 좀! 
키보드워리어들 “이메일은 나의 전투장”

▶드디어 그 위 상사나 인사부장을 찾아가야 할 때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앉아 있을 때 분노나 폭발, 적대감을 덜 느낀다. 그렇지만 상사가 그저 앉아만 있거나 사과가 아니라 다른 말을 한다면, 더이상 욕설이 적힌 이메일은 받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하라.
상습 불쾌감 유발자 “그렇게 예민해서 무슨 일을 하겠어?”

▶메일을 출력해서 직접 찾아가라 
난독증 유발자 “괴발개발도 이 정도면 예술이야”

▶계속 보면 상사의 옹알이를 알아들을 수 있다 
1순위집착증 “왜 내가 제일 먼저가 아니야?”

[CASE1]수신인 목록 상위에 내 이름이 없다고?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줘라

[CASE2]좋은 건 내가 먼저! 

▶사소한 일로 상사에게 덤비지는 말자
팀워크 신봉자 “팀플레이면 못할 일이 없다니깐!”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다각도로 제안을 한다 

★상사가 제안한 팀은 세 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룹 역동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팀원이 세 명인 경우 팀원 간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크다. 기본적으로 세 명의 그룹은 2대1 시나리오로 변형될 가능성이 높다. 당신의 상사가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경우 이 사실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팀이 조직에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팀은 반사작용(reflex)이 아니라 현실(reality)에 기반을 두고 결정해야 한다.
죄책감 유발자 “당신을 믿었는데, 이게 당신의 최선인가요?”

▶동료들과 함께 상사를 만나라
자동비판기계 “어떤 보고서든, 내 대답은 무조건 ‘노’예요”

▶"감명을 준 사례를 알려주세요!" 
마음냉증 환자 “당신이 뭘 해도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

▶증거로 뒷받침된 문서를 지참하라 
냅둬 신봉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놔둬요”

▶시험기간, 혹은 브레인스토밍 시간을 제안하라 
귀 얇은 찌질이 “누가 그러던데?”

▶자료를 준비해 재미팅을 요구한다
그놈의 마무리 “제발, 마무리는 내 꺼야”

▶상사가 신뢰하는 이의 주장으로 마무리한다 
시간약속 파괴자 “내 회의의 시간은 내가 정한다”

▶시계를 10분 당겨두자 
낭독애호증 “글자란 글자는 다 읽어버릴 거야”

▶"교육 자료를 미리 보내주세요"
막무가내 인정집착증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니 그렇게 합시다”

▶상사에게 인정(認定)을 베푸는 인정(人情)을 발휘하라!

★직원을 인정해줄 수 있는 가장 쉽고 합리적인 타이밍 중 하나는 직원의 입사일이다. 입사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크다. 사람들은 다른 장소에서보다 직장에서 더 오랜 시간 활동하기 떄문이다. 수면시간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물론 수면과 직장생활을 병합하는 능력 있는 멍청이도 있지만, 여기서 다루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쩄건 직원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의 덩어리를 생각해본다면, 직원의 입사 기념일을 알아주는 작은 노력은 큰 동기부여 요소가 될 수 있다.
선별적 기억상실증 “내가 그런 약속을 했다고요?”

▶향후 기회를 보장받고, 그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둬라

★동시에, 이 멍청이의 행동을 좀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상사가 승진에 관해 어떤 식으로든 약속을 하고는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오늘날 관리자들이 직원의 향후 고용상 처우에 관해 직원에게 극도의 행복감을 선사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일종의 계약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는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우기겠지만, 계속해서 이런 행동을 보일 경우 상사는 다른 종류의 주장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적 주장 말이다.
실수 떠넘기기 “내 잘못이지만, 공식적으로는 당신 잘못이에요”

[CASE1]마감이 늦어진 원인을 제공한 상사

▶프로젝트를 함께 복기하라! 상사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CASE2]잘못을 덮어씌우는 것도 모자라 징계까지

▶시말서는 함부로 작성하면 안된다
부자과시증 “니네들은 이런 거 없지?”

▶쇼가 시작되면 업무를 핑계 대고 도망친다

2부 저 웬수 같은 동료
척척박사증후군 “내가 다 아는데, 내가 다 해봤는데…”

▶이 구역의 리더에게 척척박사로 인한 손실을 알려라!

★그런데 만약 상사 본인이 저런 척척박사라면? 최악이다. 부디 상사가 상사들끼리 하는 회의에서도 척척박사 짓을 지속해서 조직의 눈 밖에 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떄로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도 있는 법이다.
사무실의 고성방가도 처벌되나요? “와글와글 @#$!()#)K$)JDN<WWO#($HK!!!”

▶진정 이 회사에 계속 머물고 싶은가?
회사에 놀러오는 불청객들 “바쁘세요?”

▶해답1: "무슨 일이시죠?"

▶해답2: "이따가 제가 당신 자리로 갈게요" 
가십집착증 “내가 누구 얘길 들었는데 말이죠”

▶'반응'이라는 보상을 주지 마라 
뉴비를 저격하는 올드보이 “새로 온 친구, 여긴 끔찍한 곳이야”

▶정말 끔찍한 존재가 직원인지 회사인지, 좀더 기다려보자 
악명이 무성한 이직자 “전 직장에서 이랬다더라”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
상습 회의 지각생 “회의는 늦게 가야 제맛이지”

▶시간이 됐으면 회의를 시작하라, 그리고 멈추지 마라 
언어폭력자 “당신의 실수는 나의 즐거움!”

[CASE1]회의에서 인신공격

▶'진실'이라는 덫을 놓아라

[CASE2]꼬투리 하나 잡으면 죽도록 놀려대는 멍청이

▶"이젠 지겨울 때도 됐는데요, 안 그래요?"
상사인 줄 착각하는 돌아이 “이 구역의 상사가 나인가 하노라”

▶"제안 감사요! 그런데 저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애정표현을 가장한 성희롱 “자기, 오늘 왜 이렇게 예뻐?”

▶문제를 공론화하기 전에 불쾌감 표시와 증인을 확보하라 
뒤통수치기 달인 “당신의 실수는 널리널리 알려드릴게요”

▶"실수를 지적해붜서 고마워요!"
뇌물요구자 “맨입으로 그 일을 해달라고요?”

▶"사실 난 조금 걱정되는걸요"
퇴직자 짓밟기 “난 책임 없어, 모든 잘못은 퇴직자의 몫”

▶중견간부를 만나 상의한다

★이전 직원을 모욕하는 멍텅구리는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 자신 역시 똑같은 경멸의 표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멍청이에 대한 경멸이 부정확하거나 부당하다고는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업무처리 공유형 “내가 지름길을 알려줄게요”

▶먼저 동료의 의중을 파악하고, 상사와 의논한다

내 책상의 비품 강탈자들 “비품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에요”

▶이럴 때는 상사에게 알리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3부 혈압 올리는 부하직원
질문성애자 “이것도 저것도 다 대답해주세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정보를 줄 수 없어요"

★사실 부하직원은 상사와 동료에 비해 처리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 하고 싶은 말과 개선방안에 대해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멍청한 부하직원들의 멍청한 짓거리는 직접적인 피드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타들어가는 당신 속에 위로를!
네버엔딩 답변 중독자 “그것에 대한 답은 이러이러하고요, 또…”

▶진짜 물어볼 직원이 그 사람밖에 없나?
정보은폐형 “걱정 마세요”

▶부하직원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은 상사가 정하는 것!

★그렇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자동으로 빨간 경고깃발을 들어올릴 필요는 없다. 수년간 함께 일한 직원과 상사의 관계라면, 지금껏 그랬듯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함께 지낸 시간을 반추해보았을 때, 믿을 수 있는 직원이라면 이런 말로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코스프레 “기준이 높은 부장님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직원을 만나서 엄중한 경고 조치를 취한다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직원이 당신과 당신의 업무를 비하하게 내버려둔다면, 다른 직원들에게 그런 말을 허용하고 심지어 격려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그 직원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이런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 직원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당신에게 등을 돌리고 일하는 직원은 당신의 부하직원으로서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꼭 짚어주어야 한다.
칭찬구걸형 “제가 잘했죠, 네? 칭찬해주세요, 네?”

▶칭찬을 구걸하지 않을 때 긍정적인 피드백을 준다 
비판을 가장한 불복종 “에이, 과장님, 그게 아니죠”

▶묵과할 수 없는 행동이 발생한 바로 그 순간 피드백을!
등에 비수를 꽂는 배신자 “권력만 얻을 수 있다면 그쯤이야”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면 공식적인 제재가 있을 겁니다" 
권력게임을 노린 업무 강탈자 “팀장님 일을 돕고 싶었을 뿐이에요”

▶"추가 업무에 관심이 있다면 내 승인을 받아요" 
염불보다 잿밥 관심형 뉴비 “이것도 불만이고, 저것도 별로고, 그것도 싫고”

▶"회사에서 신뢰를 얻고 좋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가요?" 
혜안을 가졌다 착각하는 오지라퍼 “이 문제는 말이죠”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은 상사가 지시하는 것이다
구구절절한 이메일러 “나는 메일을 끝도 없이 길게, 자주 보낼 수 있어요”

▶"메일을 소리내서 읽어보세요" 
오리발 장착형 “이건 제가 한 거 아니고, 그건 제 탓 아니고…”

▶'예스'나 '노'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은 피하라

★무개념의 굴레에서 직원을 구출하려는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가 실수와 남 탓으로 직장을 진흙탕으로 만든다면, 마지막 제안만이 남았다. 아마도 진정한 실수는 직원을 이곳에서 계속 근무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종결론을 이렇게 내렸다면 이제 직원이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가족기업의 어리광쟁이 “여기 사장님이 우리 삼촌이에요”

▶"학교가 징계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인턴이 아니라 직원으로 입사한 후에도 이런 식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업무를 떠넘기려고 한다면? 대응방식은 똑같다. "다른 직원들이 사장님 조카 분의 업무방식을 사장님이 용인한 것으로 오해할까 걱정됩니다. 스스로 해낸다면 조카 분의 성장에 큰 경험이 될 텐데 말이죠."

4부 면접장의 머저리들
네버엔딩 면접관 “5차 면접이 잡혔습니다”

[CASE1]다섯 번째 인터뷰가 과연 끝일까?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CASE2]세 번이나 인터뷰하고 '다른 대책 간구 중'?

▶차라리 운이 좋았다, 다른 회사를 찾아보라
번갯불에 콩 볶거나, 아예 안 볶는 면접관 “인터뷰는 10분도 길죠”

[CASE1]인사 몇 마디 나누고 인터뷰 끝?

▶인사부장, 혹은 사장에게 메일을 보내라

[CASE2]기다리라고만 하고 안 나타난 면접관

▶이걸 SNS에서 확 까발려?
선입견 맹신형 “자주 이직했다면 문제 있는 사람이야”

▶팩트로만 말하자고 설득하라 
추천서 맹신형 “추천서가 이렇게 완벽한데, 뭘 더 보나?”

▶"평판조회는 필수과정인데요"
함량미달 지인 들이밀기 “내 친구가 그 자리에 딱이에요”

▶상사에게 이력서를 직접 살펴봐달라고 부탁한다 
도를 넘은 사전조사 “개인적인 걸 묻는 게 왜 문제야?”

▶입사 전 질문은 직무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면접관 스토커 “저는 면접관님의 모든 것을 압니다”

▶"뒤로 돌아 나가세요" 
과도한 눈싸움 집착형 “내가 적임자예요, 내 눈을 보시라니까요!”

▶다중면접을 한 번 더 진행해보자 
분노조절장애자 “저도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분노를 유발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거짓말쟁이 지원자 “속이긴 했지만, 진심은 알아주세요”

[CASE1]유령 직업 기재하기

▶이력서에 쓰고 싶은 그 사람이 되어라

[CASE2]대학 졸업장이 있다는 거짓말

▶속임수를 쓴 직원과 같이 일하기는 힘들다
★학력을 속여서 회사 문턱을 넘으려는 이들이 있다면 탈락보다 더 쓴 결과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라. 졸업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해서 이미 학위를 받은 듯 착각하는 지원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우선 졸업부터 하라는 것이다. 거짓말로 얻어낸 직장은 결코 천국이 될 수 없다.
심난한 못난이 지원자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도 몰라요”

[CASE1]구구절절 길디긴 커버레터

▶커버레터가 이력서보다 길어서는 안된다

[CASE2]과다한 정보 제공자

▶무조건 던져버리지는 말고, 핵심만 훑어보자

[CASE3]정보를 너무 제공 안 하는 지원자

▶이력서는 반드시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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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미국 소도시 여행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난 저자가 영국으로 건너간 뒤, 중년이 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일주한 후에 쓴 글이다.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책일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보다도 2년 전에 먼저 나온 책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보다 1년 늦게 출판되었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우리 나라에 8종이 번역되었다.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미국의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넘어간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태어난 미국이라는 나라를 전부 돌아다니며 쓴 책이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횡단기>이며, 이후에 20년 전 고교 동장 가츠와 다녀온 유럽을 20년만에 혼자 다녀오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이다. 그리고 20년간의 영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영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한 후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을 썼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 바로 그 카츠와 함께 애팔래치아 일주를 하고 나서 <나를 부르는 숲>을 썼다. 그 후 20년만에 돌아온 미국이 자신이 떠날 때와 너무나 달라져 있는 것으로 인해 당황해하며, 미국 특유의 문화에 대해 날카롭게 묘사한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을 썼고, 이후 호주를 여행하며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국제구호단체 CARE의 제안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를 썼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책을 썼고, 그 책은 우리 나라에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으로 출판되었다가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산책>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여행책 중 가장 먼저 나온 책이며, 내가 읽는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저렇게 죽 늘어놓고 보니, 빌 브라이슨도 나이가 먹는 탓인지, 젊었을 때의 책의 경우에는 때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글감을 비틀어대는 반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고 나서 쓴 책들에서는 비틀기보다는 간질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떤 여행책을 읽든 이 책이 빌 브라이슨의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빌 브라이슨의 글 특유의 촌철살인과 유머는 여전하다.

 

I. 동부로 가다

 

1. 나는 아이오와 주 디모인 출신이다. 누군가는 그래야 했으니까. 디모인 출신이라면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름이 대충 바비쯤 되는 디모인 아가씨와 같이 디모인에 자리를 잡고 파이어스톤 타이어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평생을 죽을 때까지 디모인에서 살든지, 아니면 청소년기 내내 무슨 이런 쓰레기 하치장 같은 촌이 다 있냐고 동네를 뜨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노라 투덜댄 다음에 바비라는 디모인 아가씨와 같이 디모인에 자리를 잡고 파이서스톤 타이어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평생을 죽을 때까지 디모인에서 살든지.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땅으로 돌아가 과장하기 좋아하는 작가들이 '재발견 여행'이라고 부르길 좋아하는 그런 걸 하고 싶었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 데는 이런 괴롭고 별난 배경이 작용했다. 거의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다른 대륙에서 중년을 맞이했고, 아버지가 최근에 돌아가시면서 나의 한 부분까지 같이 가져가셨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에, 나는 조용히 나를 압도하는 향수에 사로잡혔다. 나는 어린 시절의 마술 같은 곳에, 매키낙 섬, 로키 산맥, 게티즈버그 등지에 다시 가 보고 싶었고, 이들이 내 기억처럼 지금도 근사하게 남아 있는지 보고 싶었다. 반딧불이도 보고, 강렬한 매미 소리도 듣고 싶었다. 저 뜨겁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더위 속에 몰입하고 싶었다. 줄줄 흐르는 땀은 당신의 속옷을 온몸의 구멍과 틈 속으로(이를테면 엉덩이랄지) 쑤셔 넣은 다음 쫙 달라붙은 쫄쫄이로 만들어 버리고, 온화한 성품의 사내들마저도 술집에서 권총을 꺼내 총성으로 밤을 밝히게 만드는 8월의 날씨 속에 대책 없이 몰입하고 싶었다. 니하이 콜라와 버마 셰이브 면도 크림이 그려진 광고 표지판을 찾아보고, 야구 경기장에 가고, 대리석 상판을 깐 탄산 음료수대에 앉아보고, 영화 속에서 디애나 더빈과 미키 루니(각각 북미의 유명 여자배우와 남자배우)가 살았을 것 같은 작은 마을들을 차로 다녀보고 싶었다. 여행하고 싶었다. 미국을 보고 싶었다. 집에 오고 싶었다.

 

2. 나는 오스카루사, 프레몬트, 헤드릭, 마틴스버그를 지나 동쪽으로 계속 갔다. 이름들은 친숙했지만 그 타운들에 얽힌 어린 추억은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엔 여기까지 오면 나는 대개 너무 지루해서 거의 기절 상태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선 15초 간격으로 소릴 질러댔다.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언제 도착해요? 심심해요. 토할 거 같아요. 얼마나 더 가야 돼요? 언제 도착해요?" 캐폭 부근 도로의 커브가 희미하게 기억났다. 우리는 거기서 폭설을 만나 네 시간 동안 발이 묶인 채 제설차량이 오기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누나가 토하고 싶다고 해서 차를 세웠던 곳들도 눈에 들어왔다. 누나는 마틴스버그의 주유소에서는 그야말로 차에서 굴러 떨어져서 주유원의 발목을 향해 아낌없이 먹은 걸 확인해주었다.(갑작스러운 토사물 세례에 화들짝 놀란 그 주유소 직원이 어찌나 춤을 추던지!)

 

3. 그리고 이제 나는 벌써 일리노이에 들어섰다. 어딜 봐도 옥수수뿐이며 지루한 광경이다. 머릿속에서 어린애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도착해? 심심해. 집에 가자. 언제 도착한다고?"

 

4. 나는 아침에 퀸시에서 미시시피 강을 건넜다. 강은 내 기억만큼 크거나 장엄하지는 않았다. 다소 웅장하고 위압적이긴 했다. 강을 건너는 데는 몇 분이 걸렸다. 그런데 어쩐지 무미건조하고 밋밋했다. 날씨도 구질구질했으니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주리는 일리노이와 똑같았고, 일리노이는 아이오와하고 똑같았다. 유일한 차이라면 차량 번호판의 색깔뿐.

 

5. 켄터키는 남부 일리노이와 비슷했다. 산이 많고 햇살이 좋고 매혹적이었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집들은 북부만큼 단정하거나 풍요로워 보이지 않았다. 숲이 우거진 계곡들과 굽이치는 개울을 가로지른 철교들, 그리고 노면에 붙어 떡이 된 짐승들이 많았다. 계곡마다 작고 하얀 침례교회가 있고 도로변에는 이제 '예수쟁이' 지대에 들어섰다는 걸 알리는 표지판이 즐비했다. "예수가 구원이다. 주를 찬양하라. 그리스도는 왕이시니."

켄터키 주를 빠져나오면서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켄터키 주는 서쪽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져, 주 경계 쪽은 폭이 고작 60여 킬로미터에 불과했다. 미국식 여행 시간을 기준으로 보자면 진정 눈 깜짝할 새에 나는 테네시 주에 들어와 있었다.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주를 하나 떨어내는 일은 흔치 않은데, 그나마 테네시 주마저 머지않아 작별이다. 테네시는 모양이 묘하게 생겨서, 가로로 길쭉한 콘크리트 블록 같다고나 할까. 동서로는 길이가 800킬로미터나 되는데 남북으로는 160킬로미터가 고작이다. 경치는 켄터키나 일리노이와 거의 비슷해서 강과 산, 종교적인 열성이 찬란한 부정형(不定形)의 농장지대였는데, 잭슨에서 버거킹에 들렀을 때는 날이 너무 더워서 놀랐다. 길 건너편에 있는 드라이브인 은행의 간판에 따르면 기온이 28도가 넘었다. 그날 아침 카본데일의 기온과 거의 10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나는 여전히 '예수쟁이' 지대의 심장부에 있었다. 옆에 있는 교회 마당의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나님(아무래도 뒤에 '맙소사'가 빠진 게 분명하다)이 답이다."(답이라, 그렇다면 질문은 물론 이거겠다. '망치질 하다가 엄지를 찧었을 때 하는 말은?') 버거킹에 들어갔다. 여종업원이 물었다. "어뜨케 돠 드리까이?" 나는 다른 나라에 와 있었다.

 

6. 나는 테네시 주 그랜드 교차로 바로 남쪽에서 미시시피와 이어지는 주경계선을 넘었다. 고속도로변의 표지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시시피에 오신 것을 환영하빈다. 우리는 아무나 쏴죽입니다."아, 당연히 내가 지어낸 거짓말이다. 최남부지방(Deep South, 조지아, 앨러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주 등)에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들어설 때부터 예감이 불길했다. <이지 라이더><밤의 열기 속으로><폭력 탈옥><도전><서바이벌 게임>등 남부를 배경으로 한 그 모든 영화들이 그들을 살인자에 근친상간을 일삼는 촌무지렁이 극우 보수로 묘사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이곳은 진정 다른 나라다.

 

7. 콜럼버스는 주 경계선 바로 안쪽에 있어 그곳을 떠난 지 20분 만에 앨라배마 주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이설스빌과 코랄파이어와 리폼을 거쳐 더스컬루사로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곁의 표지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앨라배마를 아름답게 가꿉디다." 나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좋았어, 그럽디다."

 

8. 사바나는 매혹적인 도시여서 나도 모르게 몇 시간이나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유서 깊은 건축물이 천여 개나 되고, 그중 상당수가 아직도 가옥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내가 가본 도시 중에 뉴욕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도시에서 실제로 '사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길에서 공놀이를 하고 제 집 현관에서 줄넘기를 하는 광경은 도시에 얼마나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가. 나는 오글소프 애비뉴의 조약돌이 깔린 인도를 따라 콜로니얼 공원묘지까지 산보를 나갔다. 묘지에는 허물어져가는 기념비들과 조지아 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유명인사들의 묘비가 가득이었다. 조지아 주 최초의 주 의회 의장 아치벌드 블록, '선도적 사업가' 제임스 하버섐, 독립선언문의 서명자 중 한 사람으로 미국에서 유명한 버튼 귀네트 등. 버튼 귀네트는 또한 식민 역사에서 가장 우스운 이름을 가진 인물로도 유명하다. 사바나 주민들은 잠시 부주의하던 순간에 옛 버튼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설명에 따르면 그는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묻혀 있을 수도 있고, 모퉁이 어딘가에 있거나, 아니면 완전히 엉뚱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까 종일 돌아다니면서 버튼을 밟더라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9.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지루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26번 주간고속도로를 탔다. 이 도로는 나른한 담배밭과 연어색 토양뿐인 단조로운 풍경을 사이로 300킬로미터가 넘는 긴 대각선으로 주를 가로지른다. 《자동차 여행 가이드》에 따르면 이제부터는 최남부가 아니라 중부 대서양 지역의 주들이란다. 그런데 더위와 눈부신 햇살은 남부의 것이며 주유소며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억양도 남부 말씨였다. 라디오의 아나운서들조차 억양은 물론 태도까지 남부인의 색채가 완연했다. 한 뉴스에 따르면 스파르탄버그의 경찰이 '백인 여자'를 강간한 두 흑인 남자를 찾고 있었다. 남부가 아닌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노스캐롤라이나와의 경계선에 가까워지자 마치 무슨 포고령이라도 내린 듯이 밋밋한 경치가 갑자기 끝났다. 갑자기 시골 풍경이 나타나더니 장엄한 곡선을 그리며 월계수와 철쭉과 종려나무 따위 낮은 덤불이 잔뜩 펼쳐졌다. 산등성마루마다 블루리지(애팔래치아 산맥의 일부이다)로 이어지는 아스라한 풍경이 펼쳐졌다. 애팔래치아는 앨라배마에서 캐나다까지 3360여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데, 히말라야보다 더 높았던 적이 있었다가(이 말은 언젠가 성냥갑 껍데기에서 읽었는데 언제고 써먹으리라, 몇 년 동안 벼르던 참이다) 지금은 작고 둥글둥글해졌다. 극적이라기보다는 어딘지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그 기나긴 능선을 지나는 동안 애팔래치아는 애더론대크스, 포코노스, 캣스킬스, 앨러게이니즈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바뀐다.

 

10. 미국에서 백인들이 가난하기란 진짜 힘든 일이다. 물론 여기서 가난이란 미국인의 가난이며 백인들의 가난이니 다른 곳의 가난과는 다르다. 터스키지의 가난과는 비슷하지도 않다. 린든 존슨(미국의 36대 대통령)이 1964년에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그 초점이 애팔래치아였던 것도 이곳이 너무 가난해서가 아니라 너무 백인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냉소 섞인 지적도 있엇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당시의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 중 40퍼센트는 차가 있고, 그 가운데 3분의 1은 새 차였다. 1964년이면 잉글랜드에 살던 내 미래의 장인에겐 그곳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아직도 첫 차 장만이 요원한 일이었고, 장인은 지금까지도 새 차는 한번도 사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가난하다고 하거나 크리스마스에 뜨개실이나 공짜 밀가루를 보내준 일은 없다. 그렇다 해도 미국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 내 주변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판잣집들이 단연코 허름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당에 위성 안테나도 웨버 바비큐 그릴도 없고, 진입로에 스테이션왜건도 없었다. 감히 말하자면 가련한 그들의 부엌에는 전자레인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미국인 기준으로는 대단히 가난한 것이다.

 

11. 기다란 젤리 모양의 언덕들과 구불구불한 도로, 단정한 농가의 풍경을 가르며 운전을 했다. 하늘엔 바다 그림에서 늘 볼 수 있는 복슬복슬한 큰 구름이 가득이었고, 스노플레이크, 팬시갭, 호스패스춰, 메도우스오브댄, 채리티 등 여러 타운의 이름도 흥미로웠다(각각 눈송이, 화려한 계곡, 말 방목장, 댄의 초원, 자선의 뜻). 버지니아 주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버지니아는 폭이 640킬로미터쯤 되는데, 도로가 하도 구불구불해서 체감 거리는 거기에 적어도 150여 킬로미터는 더해야 했다. 어쨌든 지도를 볼 때마다 티도 안 나는 거리밖에는 오지 못했다.

 

12. 워싱턴은 작은 도시처럼 느껴진다. 광역도시로 치면 워싱턴은 인구 300만 명의 미국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고 바로 곁에 있는 볼티모어를 합하면 인구는 500만이 되지만, 워싱턴 시 자체는 인구가 63만 7000명에 불과하니 인디애나폴리스나 샌안토니오보다 더 적다. 워싱턴은 쾌적한 지방도시 느낌이 나다가도, 모퉁이만 돌면 FBI나 세계은행, IMF(국제금융기구) 등의 본부가 떡하니 눈에 들어오니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깨닫게 된다. 그중에서도 제일 놀라운 것은 백악관이다.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백화점 쇼윈도의 고급 넥타이나 속옷 따위를 구경하다가 모퉁이를 돌면 바로 그 자리에, 시내 한복판에 백악관이 있는 것이다. 쇼핑하기엔 정말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워싱턴은 예상보다 훨씬 작다.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

 

워싱턴에서 301번 고속도로를 타고 애나폴리스와 해군사관학교를 지나친 다음, 체사피크 만과 동부 메릴랜드 주를 잇는 길고 낮은 다리 위로 지나갔다. 다리가 건설된 1952년 전에만 해도 만의 동부는 수백 년 동안 고립을 즐겼다. 그 후로 사람들을 외지인들이 물밀 듯이 흘러들어와 반도를 망쳐 놓을 거라고 말해왔지만, 내 눈에 이 일대는 별로 망가지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렇게 유지해준 것도 외지인들인 것 같다. 지역 주민들이 단순하고 순진무구한 믿음으로 편리할 거라 생각하는 쇼핑몰과 볼링장을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것도 언제나 외지인들이다.

 

나는 체사피크 만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높은 하늘, 점점이 흩어진 농장과 이름 모를 작은 타운들에 매료된 채 낮고 습지가 많은 평지를 통과했다. 늦은 아침에는 필라델피아로 가는 길에 있던 델라웨어 주에 들어섰는데, 델라웨어는 미국의 여러 주 가운데 제일 애매한 곳이다. 한번은 델라웨어 출신의 아가씨를 만났는데 할 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궁색하게 물었다. "음, 그러니까 델라웨어에서 왔다고요? 오, 대단하네요. 와우." 그러자 그녀는 얼른 언변이 더 뛰어난(그리고 얼굴도 잘생긴) 다른 남자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국에서 이십 년이나 살고 비싼 교육까지 받았으면서 당시 48개 주 중 하나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에서 델라웨어가 언급되는 걸 보거나 신문에서 그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델라웨어가 배경이 된 소설을 읽어봤는지 물었고, 사람들은 대답하곤 했다. "글쎄, 한번도 없는 거 같아." 그렇게 대답하는 그들도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진 듯 보였다.

나는 델라웨어에 관해 독서를 좀 하기로 작정했다. 다음번에 델라웨어 출신 아가씨를 다시 만나며 재미있고 적절한 말을 할 수 있겠지. 혹시 알아, 그럼 그녀가 나랑 자줄지. 하지만 델라웨어에 관한 글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찾아봐도 고작 두 문단이 전부였는데 그나마도 문장 중간에 끝났던 거 같다. 델라웨어를 지나쳐 운전하는 지금, 차가 지나가면서 우습게도 델라웨어가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투명한 비닐을 걷을수록 그림이 지워지는 아이들의 그림판에서처럼. 내 차가 지나가면서 내 뒤쪽의 거대한 투명 비닐이 걷히듯이 서서히 지워지는 것만 같았다. 풍경이 펼쳐질수록 지나쳐온 경험을 지워버리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반(半) 공업지대였던 풍경과 월밍턴 표지판 몇 개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러자 이미 실베스터 스탤론과 레지오넬라 병(레지오넬라균에 의한 악성 폐렴의 일종)을 배출한 필라델피아 외곽이었고, 그것이 유발한 불편한 생각 때문에 델라웨어에 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었다.

 

13.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 공공 미술에 더 많은 예산(시 정부 총 예산의 1퍼센트)을 쓴다. 그런 반면 문맹률은 40퍼센트나 된다. 그는 페어마운트 공원 한가운데 있는 호화로운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가리켰다. 이곳은 도시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유는 50만 점의 소장 회화 때문이 아니라 미술관 계단이 영화 <록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전력 질주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계단만 한번 쓱 보고, 미술관 안에 들어가 그림 구경은 하지도 않고 가버린다고 한다.

 

14. 미국에서 장거리 버스란 비행기를 탈 돈이 없거나, 미국 기준으로는 바닥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을 핥을 만큼 차를 쓸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만 타는 것이다. 미국에서 차를 쓸 수 없을 정도란 플라스틱 헛간살이 바로 직전의 가난함이다. 그러므로 장거리 버스를 타는 이들은 다음 중 하나다. 정신적 결함이 있거나 정신분열이 고속으로 진행 중이거나 마약에 취한 채 무기를 소지한 위험인물이거나 갓 출소했거나 수녀인 것이다.

 

나는 아직도 뉴욕이 무서웟다. 타임스퀘어로 걸어가는데 이런 위협이 느껴졌다. 뉴욕이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살인사건과 거리의 범죄에 대해 너무 많이 읽어서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나를 죽이지 않아줘서 고마워요"라고 쓴 카드라도 돌리고 싶었다.

 

타임스퀘어는 대단한 곳이다. 그렇게 많은 불빛과 번잡함은 독자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건물의 벽면들이 모조리 광고로 번쩍이며 물결치고 흔들린다. 전자의 바다에 폭풍이 이는 것만 같다. 돈 좀 쓰라고 유인하는 이런 거대한 전광판이 40개쯤 되는 것 같은데, 그중 둘만 빼고는 다 마이타 복사기, 캐논, 파나소닉, 소니와 같은 일본 기업이었다. 강대한 나의 고국을 대표하는 건 코닥과 펩시콜라뿐이었다. 이봐 양키들, 전쟁은 끝났어. 처량한 마음으로 나는 생각했다.

 

세계에서 가장 신나고 자극적인 도시 뉴욕에서의 하루도 그렇게 끝났다. 나는 20층 아래 스트립쇼 클럽의 외로운 인생들보다 더 나을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만큼이나 외로웠다. 아니, 이 거대하고 비정한 도시에는 나만큼이나 친구도 없고 외로운 이들이 수만 명은 될 것이었다. 얼마나 감상적인 생각인가.

"하지만 이거 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 나는 두 손과 두 발을 쫙 뻗어 사방의 벽을 한꺼번에 빡 때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15. 콜럼버스의 날 연휴가 낀 주말이어서 도로가 번잡했다. 나는 미국만큼 성공을 높이 사는 나라에서 콜럼버스를 공휴일로 경축하는 걸 늘 좀 의아하게 여겼다. 한번 생각해 보라. 그는 아메리카 대륙까지 네 번이나 긴 여행을 하면서도, 단 한번도 그곳이 아시아가 아니라는 걸 꺠닫지도 못하고 값어치 있는 것도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탐험가들은 모두 감자랄지 담배, 나일론 스타킹처럼 흥미진진한 새 특산물을 가져왔는데 콜럼버스가 데려온 건 어리둥절해 보이는 인디언 몇 명이 전부였고, 게다가 그는 이들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이봐 친구들. 스모 한번만 해보라니까.")

하지만 콜럼버스의 최대 약점은 나중에 미국이 될 땅을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플로리다 땅을 밟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오호라, 여기는 리조트에 딱이야." 하지만 그의 여행은 전부 카리브 해와 벌레가 드글드글한 중앙아메리카 해안에서 그쳤다. 내게 묻는다면 차라리 바이킹이 미국에 훨씬 어울리는 영웅이 되었을 것 같다. 우선, 그들은 미국 땅을 진짜로 발견했다. 게다가 바이킹은 남성답고 해골바가지를 잔 삼아 술을 마시며 그 누구의 헛소리도 용납하지 않는다. 미국에 딱 어울린다.

 

나는 단풍 구경을 하고 싶어 뉴잉글랜드 지역에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게다가 뉴잉글랜드의 주들은 작고 다양해서, 아름다운 주들을 포함해 다른 주들을 지날 때처럼 그렇게 지겨워 죽을 맛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뉴잉글랜드의 주들이 너무 작은 것은 맞지만(코네티컷은 횡단해봐야 128킬로미터가 고작이었고 로드아일랜드 주는 런던보다도 더 작다) 이 주들은 자동차와 사람들, 도시들로 붐볐다. 코네티컷은 그냥 작은 교외 지역 같았다. US 202번 도로를 타고 리치필드까지 갔는데, 이 길은 지도에 "절경 코스"라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교외보다 조금 더 경치가 낫다뿐이지 절경은 아니었다.

 

케이프코드는 매사추세츠 주 아래쪽에 튀어나온 길고 가느다란 반도로, 바다로 30여 킬로미터를 뻗어나갔다가 다시 말려들어온다. 반도는 알통을 만들려고 뻗은 팔처럼 생겼다.(정확히 말하면 근육이 없어서 알통이 안 만들어지는 내 팔처럼 생겼다.)

 

16. 하늘 전체에 분홍빛 새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얼른 옷을 주워 입고 리틀턴이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차를 타고 달아났다. 타운 밖으로 몇 킬로미터를 가서 주 경계선을 건넜다. 버몬트에서는 뉴햄프셔보다 훨씬 더 푸르고 정갈한 풍광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산들은 잠자는 짐승처럼 통통하고 폭신했다. 흩어져 있는 농장들은 풍요로워 보였고, 초원이 구불구불한 산허리까지 올라가 있어 계곡들은 고산지대 같은 느낌이 났다. 태양이 곧 높이 떠오르고 햇살이 따스하게 퍼졌다.

 

서쪽으로 버몬트를 횡단했다. 산들은 짙고 둥글고 계곡들은 풍요로웠다. 이곳에서는 빛이 더 부드럽고 더 나른하고 더 가을빛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가을빛이 완연했다. 겨자 색과 불그스름한 녹 색깔의 나무들, 황금색과 녹색의 초원, 거대한 하얀 축사들, 푸른 호수들. 고속도로 여기저기에 서 있는 농산물 가판대에는 둥글고 길쭉한 호박과 다른 가을 과일들이 넘쳤다. 천국으로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샛길들을 돌아다녔다. 오두막을 간신히 면한 집들이 놀랍도록 많았다. 버몬트 같은 곳에는 일자리가 별로 없겠지 싶었다. 이 주에는 타운도 산업도 거의 없다. 제일 큰 도시 벌링턴도 인구가 고작 3만 7000명이다.

 

17. 위층에서는 낯익은 야구 카드들을 발견하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우리 형과 내가 그토록 정성들여 모으고 분류했던(그러나 우리 부모님이 때아닌 노망이 들어 1981년 봄 대청소 때 다락에서 찾아내 내다 버린!) 바로 그 카드들이었다. 우리는 1959년 야구 카드 세트를 한 장도 빠지지 않은 완벽한 상태로 구비하고 있었는데 그 세트의 현 시가는 1500달러나 된다는 슬픈 얘기다. 미키 맨틀, 요기 베라의 신인 시절, 테드 윌리엄스가 400호를 쳤던 마지막 해의 카드,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매년 뉴욕 양키스 팀 선수 전원의 카드를 보유했건만! 전체 컬렉션은 시가가 모르긴 해도 8000달러는 될 테니 우리 엄마 아버지를 치매 클리닉 단기 치료 과정에는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뭐 그래도 괜찮다. 인간은 다 실수를 하고 살지 않는가. 이런 것들을 내다 버리는 부모들이 있으니 은퇴 후 여생을 일하던 시절에 쌓인 것들을 내다버리는 데 보내지 않는 부모를 둔 행운아들의 컬렉션이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가. 어쨌든 옛날 카드들을 다시 보니 기분이 좋았다. 입원한 옛 친구를 문병 온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찍 깨자 가라앉는 늒미이 들었다. 눈을 뜬 순간, 이따금씩 보람을 느끼는 정상적인 하루 대신에 최소한의 기쁨도 없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느낌 말이다. 오늘은 오하이오 주를 가로질러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18. 나는 헨리 포드와 수집가로서 그의 안목에 대해 불현듯 깊은 존경심을 느끼며 박물관 안을 걸어 다녔다. 그는 깡패 기질이 다분하고 반유대주의자였지만 분명 매력적인 박물관을 만드는 안목이 있었다. 지난 시대의 기념물들만 살펴보며 몇 시간이고 보낼 수도 있었지만 격납고는 박물관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밖에는 유명 미국인 80인의 집들을 모아놓은 온전한 촌락, 아니 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집들은 모형이 아니라 실제 그들이 살았던 집이다. 포드가 전국을 누비며, 토머스 에디슨, 하비 파이어스톤, 루터 버뱅크, 라이트 형제, 그리고 물론 그 자신을 포함하여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들의 주택과 작업장을 직접 조달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포장해서 디어본으로 가져와 250에이커에 달하는 환상의 땅을 건설한 것이다. 이곳은 미국의 전형적인 스몰 타운으로, 그림처럼 아름답고 시간을 초월한 곳이며, 가구마다 천재성이 빛나는 남성(거의 예외 없이 중서부 출신의 천재적인 백인이자 기독교인 남자)들을 모셔다 놓았다. 녹지가 광활하고, 깜찍한 상점들과 교회가 완벽한 이 마을 주민들을 참 복도 많지. 자전거 바퀴가 고장 나면 라이트 형제를 찾아가고, 우유와 계란이 궁하면 파이어스톤 농장에 가며(하지만 타이어는 아직 아니다. 하비 파이어스톤(파이어스톤 타이어의 창업주)이 아직 업계에 진출을 안 했거든!), 웹스터 사전의 노아 웹스터에게 책을 빌리고,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링컨이 찰스 스타인메츠(독일 태생 미국의 전기공학자로 에디슨에 버금가는 발명가)의 특허 출원을 신청하거나, 길 건너 조그만 오두막에 사는 조지 워싱턴 카버(흑인 노예 출신의 유명 과학자)를 해방시키느라 너무 바쁘지 않을 때 얘기지만.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에디슨의 작업실이나 그의 직원들이 묵었던 기숙사도 세심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집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니 그 편리함은 사실 부정할 수가 없다. 누가 하비 파이어스톤의 생가를 보러 오하이오 주 컬럼비아나까지 갈 것이며, 라이트 형제가 살았던 데이튼까지 갈 것 인가? 나라면 거기까지 안 간다. 무엇보다도, 이런 집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니 당시 미국에 발명의 정신이 얼마나 충천했는지, 실용적인 상업적 혁신을 그리고 엄청난 풍요를 가져다 줄 천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현대 생활의 얼마나 많은 편리와 기쁨이 미국 중서부 소도시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절로 깨닫게 된다. 자랑스러웠다.

 

포드 박물관에서 느낀 기쁨의 따스한 여파를 간직한 채 미시건 주를 가로질러 북쪽, 그리고 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랜싱, 그랜드래피즈를 지나자 어느새 160여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매니스티 국유림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시건 주는 오븐 장갑처럼 생겼는데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한 적이 많다. 매니스티 삼림은 울창하고 지루했고(천편일률적인 소나무 숲이 끝도 없다) 주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는 똑바르고 평평했다. 가끔 숲 속 통나무집이나 작은 호수가 보이기도 했는데 나무들 틈으로 언뜻 보이는 정도였고 대개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19. "북 위스콘신 종합병원에서는 여러분의 순조로운 출산을 돕겠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이런, 세상에. 이것은 내가 미국을 떠난 뒤로 새로 생긴 또 하나의 현상이었다. 병원 광고 시대의 도래랄까. 가는 곳마다 병원 광고다. 누구를 위한 광고란 말인가? 한 남자가 버스에 치인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빨리요, 미시건 종합병원으로 데려다 주세요. 거기 MRI가 있던가요?"라고 말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미국 보건의료체계 전체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외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에서 무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은 사실 상당히 쉽다. 카운티 병원에 가면 된다. 별로 유쾌한 곳은 아니지만, 아니, 실은 상당히 우울한 곳이지만 NHS(영국 보건의료체계) 병원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 무상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미국에는 종합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는 보험이 없는 인구가 4000만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에 돈이 있는데도 공짜로 치료를 받으려고 카운티 병원에 가겠다면? 글쎄, 나는 다만 행운을 빌 뿐이다. 디모인의 카운티 병원에서 1년 동안 일해본 적이 있어서 아는데, 병원 이용자들이 주장하듯이 진짜로 궁핍한지 뒷조사만 담당하는 변호사와 수금 전문가들이 일개 중대나 되니 말이다.

 

미국 민영 보건의료가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치료의 질이 세계 최고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촌은 최고의 치료를 무제한으로 받으셨다.(삼촌의 건강이 회복된 것도 우연은 아니란 말씀.) 독립된 욕실이 딸린 삼촌의 1인실에는 리모콘 작동되는 텔레비전에 비디오와 전화기까지 따로 있고, 병원 전체에 카펫도 깔려 있으며 이국적인 종려나무와 흥겨운 그림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영국에서는 정부 병원에 가면 유일한 카펫이나 컬러텔레비전은 간호사 대기실에 있었다. 그 전 해에 영국 NHS 병원에서 일을 했는데, 한번은 야심한 밤을 틈타 간호사 라운지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나 몰래 들어가 보았다. 과연 어땠는가 하면 여왕의 응접실 같았다. 반질반질한 가구들에 반쯤 먹다 남은 밀크 트레이 초콜릿이 한 박스나 잇었다.

반면, 환자들은 전등갓도 없는 벌거벗은 전구 밑에서 추위에 떨며 소리가 웡웡 울리는 군대 막사 같은 병실에서 잠을 자고, 잰 발걸음으로 2주에 한 번씩 찾아와주시는 고귀하신 의사와 수련의들의 20초짜리 회진을 기다리며 낮이면 피스가 한 50개쯤 모자라는 퍼즐을 맞추며 시간을 보냈다. 아, 물론 NHS가 왕년에 그랬다는 거다. 요즘의 NHS는 그렇게까지 찬란하지 못하거든.

 

엷은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알려지지 않은 샛길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위스콘신을 건너는 건 끝도 없는 것만 같았지만 너무나 매혹적이고 평온하게 만드는 정경이어서 그래도 좋았다. 연중 그맘때에는, 특히 그날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묘하게 마음을 끄는 흔치 않은 기분이었다. 네시가 되자 벌써 일광이 사라져갔다. 다섯 시가 되자 해는 이미 구름 밖으로 떨어져 돼지저금통에 동전이 쏙 들어가듯 아득한 산 너머로 들어갔다. 페리빌이라는 곳에 닿자 갑자기 미시시피 강이 나를 맞았다. 그 광경에 숨이 멎는 듯했다. 강은 너무도 넓고 아름답고 우아하게, 평평하고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지는 해 속의 미시시피 강은 액상 스테인리스 스틸 같았다.

 

어머니를 알아본 것은 직진을 하는데 우회전 신호가 계속 깜박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대개 차고에서 차를 꺼내자마자 깜빡이를 켠 다음 거의 하루 종일 켜놓고 다니신다. 이런 점을 예전에는 지적했지만 어느 순간 어쩌면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운전자들에게 나는 운전에 완전히 자신 없는 운전자요, 알아서 피해 가쇼 하고 알려주는 셈이니까.

 

아침 10시 38분이었고 34일 전 집을 나선 후부터 1만 1011킬로미터를 달렸다. 나는 이 숫자에 동그라미를 친 다음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곤 집으로 활기차게 걸어 들어갔다. 어머니는 이미 안에 계셨다. 뒤쪽 창문을 통해 어머니가 부엌에서 흥얼거리며 장 본 물건을 정리하시는 게 보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나는 뒷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곤 저 가장 미국적인 네 단어를 말했다. "하이 맘, 아임 홈!(엄마! 저 왔어요!)"

 

II. 서부로 가다

 

20. 나는 네브래스카로 가는 길이었다. 이것은 할 수만 있다면 가급적 말하고 싶지 않은 문장이다. 네브래스카는 미국 여러 주 중에서도 제일 재미없는 주이기 때문이다. 네브래스카에 비하면 아이오와는 천국이다. 아이오와는 적어도 비옥하고 푸르며 산이 있지 않은가. 네브래스카는 약 19만 4250평방킬로미터에 걸친 메마른 황야와 같다. 주 한가운데는 플라트라는 강이 있는데 이 강은 1년에 몇 번은 폭이 3~5킬로미터 정도로 넓어진다. 사람들은 이 강이 상당히 장엄하다고 생각하지만, 깊이가 고작 6.5센티미터 정도다. 그러니까 휠체어를 타고도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얘기다 솟아오른 곳이나 내려앉은 곳이 없는 땅이다 보니 플라트 강은 식탁 위에 흐른 음료처럼 그냥 그 자리에 놓여 있다. 그리고 네브래스카 주에서 제일 흥미진진한 것은 이것뿐이다.

 

날씨에 관한 한 중서부는 두 극단을 한 몸에 간직한 곳이다. 겨울에는 바람이 면도날처럼 매섭다. 북극에서부터 훑어 내려온 바람은 살을 에는 추위가 된다. 바람은 울부짖는 소리로 회오리치며 집을 강타한다. 눈 더미와 뼈가 시릴 정도의 추위를 불러온다. 11월에서 3월까지는 심지어 실내에서도 20도 각도로 몸을 숙이고 다녀야 하며, 외출 전이면 차가 좀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눈 더미에서 차를 파내거나 마치 초강력 본드로 차 유리창에 붙여놓은 듯 떨어지지도 않은 얼음을 긁어내는 게 평생 일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봄이 온다. 눈은 녹고 외투를 안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고개가 해를 따라다니게 된다. 얼마쯤 그러다 보면 예고도 없이 봄은 가고 어느새 여름이다. 여름날은 또 신이 하늘의 거대한 발전소에서 레버를 당긴 것만 같다. 날씨는 이제 반대쪽 극단인 저 아래쪽에서 온 열대의 기운이 맹렬하게 돌진해 들어온다. 마치 뜨거운 담벼락 같다. 여섯 달 동안 숨 막히는 더위가 퍼붓는다. 얼굴에 흐르는 것은 땀이 아니라 기름이다. 온몸의 땀구멍이 쩍 갈라진다. 풀은 갈색으로 시든다. 개들은 곧 죽을 것처럼 헐떡인다. 시내를 걷다 보면 신발 바닥을 통해 아스팔트의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돌기 직전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가을이 오고, 그러면 2~4주 정도는 공기가 온화하고 자연은 다정하다. 그러면 또 겨울이 와서 같은 주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결심한다. "어른이 되면 바로 뜰 거야. 여기서 아주 머나먼 곳으로."

 

21. 이럴 줄 알았어야 했다. 나는 콜로라도는 산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캔자스를 떠나는 순간 눈 덮인 로키 산맥과 노란 미나리아재비가 한들거리는 고지대의 초원들 한가운데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신선한 셀러리처럼 파삭한.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평평하고 색도 우중충하니 갈색이고, 스윙크, 오드웨이, 맨자놀라 등 이름부터 후줄근한 작은 시골 마을들만 잔뜩 이어졌다.  

 

22. 아침에 TV 일기예보를 보니 "헐랭 전선" 때문에 로키 산맥에 눈이 많이 오겠다고 했다. 기상예보관은 이 소식이 반가운 듯했다.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기상도에는 서부 거의 전역에 걸쳐 불쾌함이 저주처럼 걸쳐 있는데도 말이다. 도로가 폐쇄될 것이며 폭설주의보가 발효될 거라 말하는 그의 입 꼬리가 고소하다는 듯 살짝 올라갔다. 텔레비전 기상예보관들은 왜 늘 그렇게 악의가 가득해 보일까? 이들은 진정성을 보이려고 노력해도 가면일 뿐이다. 그 표면 아래 어린 시절 곤충들의 날개를 잡아 뜯고, 지나가는 차에 깔리는 다른 아이를 보고 낄낄대던 사람이 숨어 있다는 걸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갑자기 나는 남쪽으로, 별다른 기상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뉴멕시코 주의 메마른 산지를 찾아 가기로 결심했다. 산타페의 작고 배타적인 칼리지에 다니는 조카딸이 있는데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했다. 이 지저분한 뚱보 삼촌이 먼지 낀 싸구려 똥차를 대고 튀어나와 조카딸을 덥석 포옹하는 꼴을 캠퍼스의 모든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아이는 좋아할게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곧장 그리로 갔다.

 

이른 오후에 뉴멕시코로 들어선 게 이날의 절정이었지만, 콜로라도와 똑같이 별로 자극이 없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라디오를 켰다. 어디를 기점으로 해도 너무 먼 곳이라 주파수가 잡히지 않아 지직거리기만 했는데, 그나마 잡히는 방송은 몽땅 스페인어로 된 채널이었다. 축 늘어진 콧수염에 커다란 솜브레로(챙이 넓은 멕시코 전통 모자)를 쓰고 "아이 아이 아이" 어쩌고 하며 어슬렁거리며 노래하는 가수들이 부르는 그런 노래 말이다. 왜 고등학교 선생들이 결혼 30주년 기념일에 마누라를 데려가는 좀 있어 보이려고 불 위에 음식을 내오는 그런 종류의 식당에서 늘 만나는 멕시코 밴드들 있잖은가. 서른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멕시코 음악을 즐기려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여남은 개나 되는 방송국에서 바로 그 음악을 빵빵 틀어대고 있었다. 각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디제이가 나와 스페인어로 1, 2분 동안 지껄이는데, 그 소스라친 말투는 암만 들어도 어쩌다가 불알이 서랍에 낀 사내의 목소리다. 그 다음에는 잠시 광고가 나오는데, 이 광고남의 목소리는 디제이보다도 훨씬 더 다급하고 흥분되어 있다.(불알이 서랍에 끼는 사고를 그 순간에도 연속해서 겪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다음엔 다른 노래가 이어진다. 아니, 내가 듣기론 같은 노래를 다시 트는 게 분명하다. 그게 바로 멕시코 음악가들의 불운이다. 그들은 아는 곡조가 단 하나뿐인 것 같다. 필시 그 떄문에 B급 레스토랑 말고 다른 곳에선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성 프랜시스 성당(대단히 아름다웠다)과 총독 관저(아주 지루했다. 총독들에 대한 문서만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로레토 채플의 계단까지. 이 계단은 위층 성가대 좌석까지 이중 나선으로 된, 그러니까 두 번 꼬인 6.5미터 높이의 계단이다. 놀라운 것은 계단이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서 있다는 점이다. 꼭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인즉, 이 채플의 수녀들이 계단을 만들어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더니 이름 모를 목수가 나타나 여섯 달 동안 계단을 만든 다음, 돈도 받지 않고 처음 왔을 때 그랬듯이 어느 날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홀연히 사라졌더라는 것이다. 수녀들은 100년 동안이나 이 이야기를 있는 대로 우려먹더니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민간 회사에 이 채플을 팔아버렸다고 한다. 이 회사는 이제 영리 목적으로 이 채플을 운영하며 입장료를 50센트씩 받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를 씁쓸하게 했을 뿐 아니라, 수녀들에 대한 나의 존경심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말해서(물론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언제나 위험한 말이다) 미국인들은 어딘가 돈이 숨어 있을 때만 과거를 숭상하며, 그렇다 해도 에어컨이라든가 무료 주차라든가 다른 필수적인 편의가 없는 생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를 그 자체로서 보존하는 일은 그다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서적 가치 따위를 고려할 여지는 없다. 누군가 수녀들에게 다가와 상당한 돈을 제시하며 계단을 팔라고 하면 그들은 "절대 안됩니다. 저 계단은 신성한 성소입니다. 예수님이 보낸 살짝 건장한 수수께끼의 특사가 지었지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묻는다. "얼마 줄 건데요?" 그리고 제안 받은 돈이 충분하면 그 돈으로 더 큰 부지에 에어컨과 주차 공간, 게임 룸이 있는 새 수도원을 짓는다. 수녀들이 이런 면에서 다른 미국인들보다 더 심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전형적인 미국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나는 그게 슬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뭐든 한 세대를 넘겨 살아남기 어려운 것도 무리가 아니다.

 

23. 그랜드캐니언을 무덤덤하게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랜드캐니언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들어보았든, 사진을 보았든, 막상 가보면 숨이 턱 막힌다. 이런 규모의 어떤 것도 다룰 능력이 없는 당신의 정신은 그냥 닫혀 버리고, 세상에서 저토록 광대하고 저토록 아름다우며 고요한 것이 있다는 데 깊고 형용할 수 없는 경이만을 느끼며, 당신은 오랫동안 말도 숨도 잇지 못한 채 진공 상태가 된다.

 

글렌캐년 댐의 고장인 애리조나 주 페이지에서 나는 유타 주로 들어섰고, 풍경은 곧바로 개선되었다. 산들이 보랏빛 내지 붉은빛으로 바뀌로 사막에 홍조가 돌았다. 몇 킬로미터 더 가자, 산쑥이 뺵뺵해지고 산은 초록도 짙어지고 더 뾰족해졌다. 이상하게도 친숙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자동차 여행 가이드》을 찾아보니 할리우드 서부 영화들을 모두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100여개 이상의 영화와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모두 도로 저편의 케이냅 타운을 현지 촬영을 위한 본부로 썼다고 한다.

 

24. 네바다는 범죄 및 성범죄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은 주이며, 폭력범죄율이 두 번째(간발의 차이로 뉴욕에 밀렸다), 고속도로 사고 치사율 1위, 임질 발생률 2위(영과으이 트로피는 알래스카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외지 인구 유입 비율이 1위인(네바다 주 거주자의 80퍼센트가 다른 곳 태생이다) 주이다. 부패의 역사가 길고 조직범죄와 강력히 연계된 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네바다 주에서 제일 유명한 연예인은 웨인 뉴턴(라스베거스에서 주로 활동한 인기 가수)이다. 그러니 유타 경계선을 넘어 네바다로 들어설 때 내가 느낀 불안감을 독자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도박장이 몇 개인지는 모르지만 무지하게 많은 건 분명했다. 지금 이 도박장이 내가 새로 들어온 곳인지, 아니면 같은 도박장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는 건지 확실치 않을 떄가 많았다. 홀마다 같은 풍경이었다. 줄지어 앉은 사람들이 지루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돈을 잃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최면에 걸린 듯했다. 실로 엄청난 사기였다. 어떤 카지노는 연각 1억 달러의 이익을 낸다는데(이 정도면 규모가 꽤 큰 법인에 맞먹는 액수다) 문만 열어놓으면 그 돈이 벌리는 것이다. 카지노 경영에는 기술도, 지능도, 품위도 거의 필요가 없다. <뉴스위크>에서 읽자니 시내의 호스슈 카지노 사장은 글을 읽는 법도 쓰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단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걸 보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성공에 필요한 지적 수준이 어떤 건지 대충 알 수가 있다. 갑자기 이곳이 싫어졌다. 거기에 넘어가서 소음과 번쩍임에 혹해서 그토록 쉽게 생각 없이 30달러를 잃은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25. 캘리포니아로 가는 가족 여행은 10년 후의 미래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비까번쩍하고 현대적이었다. 쇼핑센터, 차를 탄 채 일을 볼 수 있는 은행, 맥도널드, 미니 골프장,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 등 아이오와에서는 아직 새로운 것들이 캘리포니아에선 이미 오래 전에 자리 잡았다. 지금 이곳에서 그런 것들은 그냥 더 오래되어 보였다. 미국의 타 지역들이 따라잡은 것이다. 1988년의 캘리포니아에는 아이오와에 없는 건 없었다. 스모그만 뺴고. 해변도 뺴고. 그리고 앞마당에서 자라는 오렌지만 뺴고. 차를 타고 통과할 수 있는 나무들만 빼고.

 

26. 아이다호 역시 거대한 주여서(남북으로 885킬로미터이고, 하단의 폭만 483킬로미터이다) 와이오밍과의 주 경계선 부근 아이다호폴스까지 운전하는 데 그날 남은 시간이 전부 소요되었다. 가는 길에 아르코라는 작은타운을 지나갔는데, 이곳은 1951년 12월 20일에 세계 최초로 원자력으로 전깃불을 밝힌 마을이다.

 

당시에는 나도 몰랐는데, 이곳의 저장 시설 한 곳에서 플루토늄이 누출되어, 땅속을 통해(아이다호 남부 주민 수천 명의 식수원인) 지하수로 흘러든 사실을 미국 정부가 최근에 인정했다. 플루토늄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치명적인 물질이다. 한 숟가락 분량의 플루토늄이 일개 도시를 초토화할 수 있다. 일단 만들어진 플루토늄은 25만 년 동안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미 정부가 플루토늄을 안전하게 보관한 시간은 채 36년이 못 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은 당신의 정부가 플루토늄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게 해야 할 설득력 있는 논거다. 

 

아침에는 서부 이야기를 담은 근사한 동화책의 삽화처럼 그림 같은 경치를 지나 와이오밍으로 차를 달렸다. 눈 덮인 산봉우리, 소나무 숲, 아늑한 농장들, 굽이치는 강물, 잘 어울리는 이름(백조 계곡이었다)의 산골짜기가 그림 같았다.

 

와이오밍은 미국에서 가장 맹렬하게 서부다운 주이다. 지금도 카우보이와 말, 드넓은 황야의 땅이며, '싸나이는 싸나이답게 살아야 하는'(내가 보기에는 픽업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눈치는 좀 형광등에 행동은 굼뜬) 곳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있고, 거의 모두가 총을 소지한 광경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바로 두어 주 전에, 샤이엔에 있는 주 의회에서는 모든 의원들이 의사당에 들어설 때 입구에 자신의 총을 맡기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와이오밍은 그런 곳이다.

 

27. 몬태나는 거대하고 텅 빈 주다. 네바다보다도 더 크고,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고 할 만한 곳이 없어 더 텅 비어 있다. 주도 헬레나의 인구라고 해야 고작 2만 4000이다. 몬태나 주 총 면적은 38만 평방킬로미터가 넘는데 주 전체 인구는 80만이 안 된다. 그러나 끝없고, 텅 빈 대초원과 드높은 하늘 덕분에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몬태나는 빅 스카이 지방이라고 불리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언제나 하늘이란 고정되고 어디서나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곳의 하늘은 열 배나 더 큰 것 같다. 이 웅대한 흰 반구 아래 내 차 슈베트는 아주 작은 입자에 불과하다. 이 거대한 하늘 아래서는 모든 것이 작아 보인다.

 

28. 사우스다코타를 가로질러 계속 달렸다. 얼마나 단조롭고 텅 빈 주인지, 누런 풀만이 끝업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면 얼마나 외딴곳 같은지, 얼마나 외톨이처럼 느껴지는지 독자는 아마 모를 것이다.

 

수폴스를 지나자마자 오후도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떄에야 사우스다코타를 마침내 벗어나 미네소타로 들어갔다. 이곳은 이번 여행에서 내가 서른 여덟 번째 만나는 주이며 내가 갈 마지막 주이지만 잠시 남단을 훑었을 뿐이므로 별로 큰 의미는 없다. 3킬로미터만 가며 오른쪽으로 펼쳐진 들판 너머에 아이오와가 있다. 넘실대는 들판과 비옥한 검은 토양의 중서부에 다시 돌아오니 정말 좋았다. 텅 빈 서부에서 몇 주를 보내고 나니, 시골의 갑작스러운 노음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미네소타 주 워딩턴을 지나자 곧바로 아이오와에 들어섰다. 때마침 해사 기다렸다는 듯이 구름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황금빛이 금세 들판 위로 퍼지며 모든 것이 즉시 따스해지면서 봄 같아졌다. 농장들은 모두 정갈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타운들도 모두 깨끗하고 친절했다. 나는 풍광에 매혹되어 홀린 듯 계속 차를 몰았다. 별다른 것도 없이 넘실대는 들판이 전부였지만 모든 색채가 진하고 생생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붉은 축사들, 초콜릿 색 흙. 마치 모두 처음 보는 풍경 같았다. 아이오와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망연히 어제 경기의 박스 스코어에 눈길이 갔는데, 아는 팀 이름이 하나도 없어 은근히 놀랐다. 그때 이 선수들은 전부 내가 미국을 떠날 때 중학생이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야구 경기의 본질은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며, 어느 선수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 지 아는데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이제 외국인이었다.

여종업원이 와서 종이 매트를 깔고 나이프와 포크를 놓아주었다. "하이!" 그녀는 인사라기보다는 외침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그녀는 정말 마음을 쓰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 생각에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 중서부 사람들은 얼마나 근사한지. 그녀는 나비테 안경에 벌집 머리를 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대꾸했다.

여종업원은 의심스러운 듯한, 하지만 친절한 눈길로 나를 옆으로 쳐다보았다. "여기 사람 아니죠, 그렇죠?"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닙니다, 아쉽게도." 나는 살짝 생각에 잠긴 채 대답했다. "그런데 이곳이 너무 좋아서 가끔은 여기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대략 이것이 나의 여행이었다. 48개 주 가운데 남부 10개주를 제외하고 모두를 방문했고, 2만 2495킬로미터를 뛰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을 거의 다 보고, 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많이 보았다. 감사한 일이 많았다. 총을 맞지도, 강도를 만나지도 않았다. 차가 고장 나지도 않았고, 여호와의 증인이 다가온 적도 없었다. 아직 68달러와 깨끗한 속옷도 한 벌 남았다. 이 정도면 여행에서 더 바랄 게 없다.

디모인으로 들어갔더니 디모인이 오후 햇살에 거대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주 의사당의 황금빛 돔 지붕이 반짝였다. 집집마다 마당엔 나무 그늘이 짙었다. 사람들은 잔디를 깎거나 자전거를 탔다. 햄버거와 휘발유를 찾아 주간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이방인들이 왜 아예 눌러앉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친절하고 점잖고 상냥한 뭔가가 있었다. 여기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아주 야릇한 기분이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나는 거의 평온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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