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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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눈물이 났다.
가혹한 환경 탓에 조숙해진 소녀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법도 표현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러 몸만 커버린, 그러니까 작가의 표현대로 그냥 늙어버린 소녀는 노인이 되어서야 그때 그 감정을 더듬어 볼 수 있게 된다. 이 자전적 소설에서 3인칭으로 작가 자신을 지칭하는 것은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이제 와서야 거슬러 올라가 더듬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어떤 부분에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부분이 하나 둘 등장한다. 이미 희미해져가고 있는 그 감정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음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인생을 통틀어 한 번 밖에 오지 않을 그 반짝거리는 시간이 정작 당사자는 얼마나 귀한 지도 모르는 상태로 이미 오래 전에 지나버렸다는 슬픔에 찔끔찔끔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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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피게니에·스텔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주연 외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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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5개의 희곡이 실려있는데 그 중 두 개의 제목을 따서 이피게니에. 스텔라 라고 제목을 붙였다.
제목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실려 있는 5개의 희곡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 2개가 이 작품들이다.
괴테는 독일의 시인·극작가·정치가·과학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괴테는 세계적인 작가이지만 실제로 괴테는 자연 연구가이자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작가로서의 괴테가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괴테의 목소리가 크게 느껴졌다.
모든 작품은 작가 개인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기는 하지만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창작자가 아니라 향유하는 자의 몫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문학을 읽는 의의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그런 재미는 확실히 제한되는 것 같다. 쓴 사람의 목적이 명확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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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9
너대니얼 호손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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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 그림 설명을 보니 위그 메를이라는 프랑스 화가가 1861년에 그린 주홍 글자라는 그림이라고 한다. 내가 여태 본 민음사 전집의 표지 그림 중 작품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그림은 없었다. 그러니까 출판사에서 편집을 할 때 작품의 분위기와 어울리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작품과 연관이 있는 사진이나 그림을 선정하여 표지로 삼았지 작품을 그대로 본 딴 그림을 표지로 삼았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화가는 분명히 언어로 된 창작물에서도 영감을 얻을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소설 속 내용을 그대로 옮긴 후 소설과 동일한 제목을 붙이는 경우는 그 책의 삽화가 아니고서야 처음 본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앞을 응시하는 여인의 가슴에 주홍색으로 A글자가 달린 것이 보이며, 이 글자는 여인이 안고 있는 아이 때문에 다소 가려져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은 것은 오래 전인데, 아마도 중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하필 간통이라는 글자가 알파벳 중 가장 첫 글자인 A로 시작한다는 것과, 간통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를 앞에서부터 한자 한자 읽어나가다가 끊으면 성인, 어른을 뜻하는 말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하나하나 다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 당시에도 헤스터와 아서가 안 되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결말에서 펄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암시되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당시의 사회에 대한 은근한 비판과 작가 스스로 지향하는 점을 살짝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시대와 현재와는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시대와 현재와는 얼마나 많은 것이 여전히 같은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옷가슴이든 이마빼기든 징표와 낙인이 다 무슨 쓸데없는 소린가?” 스스로 재판관이라고 생각하는 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매정하고 못생긴 또 다른 아낙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계집은 우리 모두를 망신시켰으니까 죽여 버려야 마땅하다니까. 이 세상에는 이런 경우에 적용할 법도 없는가? 암, 있고말고. 성경이나 법령집 속에 분명히 들어 있지. 그런데도 그 법을 우습게 생각했으니 치안판사 나리들은 자기 마누라들이나 딸자식들이 길을 잘못 든다 해도 자업자득이라니까!”

당시 감옥 문에서 시장터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죄인의 마음에는 그 거리가 꽤 먼 것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비록 그녀의 태도는 도도했지만 아마 자신을 구경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심장이 한길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구경꾼의 발길에 걷어채고 짓밟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천성에는 놀랍고도 자비로운 섭리가 있어 고통 받는 자는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 당장에는 헤아릴 수가 없고 주로 뒤에 저려 오는 아픔으로 짐작하는 법이다.

이런 외모의 변화무쌍함은 펄의 내면적 삶의 여러 특징을 보여 주었고 또한 그런 특징을 그런대로 반영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이 아이의 천성은 다양함과 더불어 깊이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천성은 그녀가 태어난 이 세계와 관련되지도, 이 세계에 적응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헤스터의 공포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 아이에게 규칙을 순순히 따르게 할 수도 없었다. 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커다란 법칙이 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아이를 이루는 구성 성분은 어쩌면 아름답고 찬란할지 모르지만 질서가 모두 없어져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비록 질서가 있다고 해도 그 성분은 그것만의 고유한 질서였기 때문에 그 속에서 변화와 배합의 중심점을 찾기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헤스터는 펄이 정신세계로부터는 영혼을 흡수하고 지상의 물질로부터는 육체적 요소를 흡수하고 있던 결정적인 시기에 자신이 어떠했는지를 회상함으로써 이 아이의 성격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비록 설명한다고 해도 지극히 막연하고 불완전할 테지만 말이다. 어미의 정열적인 심적 상태가 매체가 되어 그 매체를 통해 정신생활의 빛이 뱃속의 아이한테로 전달되었다. 그 빛이 처음에는 아무리 희고 해맑았다고 해도 중간 매개물 때문에 짙은 주홍빛과 금빛, 불길 같은 광채, 검은 그림자, 그리고 강렬한 빛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즈음 헤스터의 정신적 갈등이 펄에게 영구적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헤스터는 광적이고 절망적이고 반항적인 감정, 변덕스러운 기질, 심지어 자기 가슴 속에 깃든 우수와 절망의 그림자까지도 펄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지금은 어린아이의 아침 햇살 같은 기질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만 뒷날 세상에 나가 살게 되면 폭풍우와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될지도 모른다.

괴롭고 수심에 잠긴 헤스터의 헌신적인 삶이 이어지면서 주홍 글자는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멸시를 받는 낙인이 아니라, 함께 슬퍼하고 두렵지만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 어떤 상징이 되었다. 더구나 헤스터 프린은 이기적인 목적도 없었을뿐더러 조금도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슬프고 어려운 일을 모두 가져와 몸소 크나큰 시련을 겪은 그녀에게 조언을 청했다. 특히 여성들이, 상처 받은 사랑이니 버림받은 사랑이니 불륜의 사랑이니 잘못 택한 사랑이니 실수하여 죄를 범한 사랑 때문에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시련을 받고 있는 여성들이, 남들이 돌아보지도 찾지도 않았기 때문에 벗어 놓을 길 없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부둥켜안은 채 헤스터의 오두막집을 찾아와 그들이 불행한 까닭과 그 속에서 헤어날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닌가! 헤스터는 힘닿는 데까지 그들을 위로하고 상담해 주었다. 또한 그녀는 때가 되어 이 세상이 성숙하여 좀 더 밝은 시대가 오면 새로운 진리가 나타나 남녀 간의 모든 관계가 상호 행복이라는 좀 더 굳건한 토대 위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굳은 신념으로 그들을 납득시켰다. 젊었을 적에 헤스터는 자신이 하나님이 정하신 예언자일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상상도 해 보았지만, 꽤 오래전부터 성스럽고 신비로운 어떤 진리의 사명도 죄로 얼룩지고 수치로 고개도 들지 못하며 평생 슬픔의 멍에를 짊어져야 할 여성에게는 맡겨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할 천사요 사도는 모름지기 여자일 것이로되, 고귀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암담한 슬픔을 겪어서 슬기로워진 것이 아니라 환희의 영적인 매체를 통해 슬기로워진 여성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런 목적을 이룩한 삶이라는 가장 참다운 시험으로써 거룩한 사랑이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그런 여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뒤, 뒷날 그 옆에 킹스채플이 세워질, 오래되어 움푹 가라앉은 헌 무덤 옆에 새 무덤 하나가 생겼다. 그 무덤은 움푹 가라앉은 헌 무덤에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고이 잠든 두 사람의 유해가 서로 합쳐질 권리가 없다는 듯 두 무덤이 서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비석 하나가 두 무덤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주위 사방에는 가문(家紋)이 새겨진 기념비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초라한 석판 한 장으로 된 이 비석 위에는, 지금도 호기심 많은 연구자들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그 뜻을 몰라서 어리둥절하지만, 조각한 방패 꼴의 가문 비슷한 것이 보였다. 그곳에는 한 도안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에 붙인 문장관(紋章官)의 글귀는 제명(題銘)이면서 우리가 지금 막 끝낸 전설을 짤막하게 기술하는 구실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 제명은 너무 어두침침했고, 오직 그늘보다도 더 어두운 끊임없이 불타는 한 점 빛 때문에 조금 부드럽게 보일 따름이었다.

“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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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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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는 과연 누구일까?
매번 온다고 하면서 오지 않는 고도는 과연 누구일까?
하루 종일 고도를 기다리다가 밤이 되면 아이가 와서 고도가 오늘은 못 오지만 내일은 꼭 온다고 이야기한다.
고고도 디디도 지쳐서 포기하려고 하지만 끝끝내 고도가 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이 포기했으면 하면서도 함께 고도를 기단리는 관객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같다.
이 연극은 왠지 모르게 극본과 실제 무대에 올려진 연극과의 간극이 제일 큰 연극의 무리에 속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 꼭 연극 무대에 올려진 고도른 보러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내 포기하지 못한 희망에 대해 생각하다가, 벌써 10여년전이 되어버린 드리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미실: 안다는 것, 지혜를 갖는 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에게 안다는 것은 피로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덕만: 희망은, 그런 피곤과 고통을 감수하게 합니다. 희망과 꿈을 가진 백성은 신국을 부강하게 할 것입니다. 저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 신라를 만들 것입니다.

미실: 공주님, 미실은 백성들의 환상을 이야기하고 있고, 공주께선 백성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 희망이라는 것이, 그 꿈이라는 것이 사실 가장 잔인한 환상입니다! 공주께서는 이 미실보다 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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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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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이라 술술 읽었다. 책 읽는 동안 다른 짓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노벨상을 받은 작가, 세계적인 소설이라는 명성에 겁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소설의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의 삶에 맞추어서 이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검색하면 동명의 영화가 뜨는데 좀 더 대중적인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 소설의 이야기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이야기이며, 또 인기를 끌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무려, 그 유명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다니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2의 표지는 처음에는 혹시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사진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아닌 것 같다. 특별히 인상적이지도 않고 출처도 잘 모르는 사진을 표지로 쓰는 것보다 차라리 영화의 스틸 컷을 표지에 넣었으면 어떨까 싶었다. 아니면 작가의 얼굴 사진을 표지로 쓰든가.

콜레라 시대의 사랑보다 더 유명한 작가의 책은 백년의 고독인데, 백년의 고독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라는 작가도 접하게 된 계기가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서였다. 한때 열렬한 애청자였다가 듣기를 중단하게 된 계기는 첫째로는 그 무렵 내가 많이 바빠졌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 무렵 들었던 방송에서 진행자가 한 말 중 전혀 공감이 가지 않으면서도 화가 났던 부분이 있어서였다. 그 멘트만 생각하면 화가 나는지라 안 그래도 부족했던 시간을 쪼개가며 방송에서 소개되는 책을 읽고 방송을 들을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이 내키지가 않았다. 한 번씩 들어가서 방송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또 요즘은 어떤 책을 소개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까지는 했지만 방송을 본격적으로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방송에 큰 변화가 여러 차례 있었고, 최근 이 방송이 막을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늦지 않게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나의 한 시대가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에 마무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지치고 정신은 빈곤했던 시절에 방송을 통해 접한 책들을 읽는 시간과 방송을 듣는 시간은 나에게 한편으로는 치유가 되는 시간이었고,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는 시간이었다. 방송의 멘트가 마음에 걸려 방송을 듣지 않게 된 시점을 생각해보면, 방아쇠를 당긴 것이 그 멘트일 뿐 그 전부터 서서히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이 쌓여왔던 것 같다. 몇 년 동안 누군가의 안내를 받았으나 이제는 나 혼자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고 생각했고 혼자 사유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그때만큼은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잡고 싶고 매달리고 싶었던 시기에는 전적으로 의존하고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이제는 나의 삶을 바탕으로 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의 평에 수긍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오게 된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영원했듯이 나의 한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지속될 것이다. 아직도 나에게는 그 시대가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워낙 평범한 집에서 검소하게 살았는지라 그는 구두쇠라는 부당한 명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부리는 유일한 사치는 그보다도 훨씬 검소했다. 그것은 사무실에서 2레구아 떨어져 있는 바닷가 별장에서, 가구라곤 여섯 개의 허름한 수공예 간이 의자와 항아리 받침대밖에 없는 이 집의 테라스에 해먹을 걸어놓고 일요일마다 누워 사색에 잠기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부자가 뭐 하러 그러고 사느냐고 조롱했을 때 그가 한 말보다 그를 더 잘 정의하는 말은 없었다.
“부자라니. 난 그저 돈 많은 가난한 사람일 뿐이오. 그건 다른 것이오.”

그러면서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사랑에 대해 배워야 할 유일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인생이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이었다.

사실 플로렌티노 아리사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별로 사랑하지 않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그를 거의 알지 못했으며, 그의 편지에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같은 열정이 담겨 있지 않았고, 그의 결심을 보여줄 그 어떤 감동적인 증거도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베날 우르비노의 구혼은 결코 사랑의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제안했다고 하기엔 이상한 세속적인 재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즉 사회적 경제적 안정과 질서, 행복, 눈앞의 숫자 등 모두 더하면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거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만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랑이 아니었고, 이런 의문은 그녀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녀 역시 사랑이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의 문제가 집안의 질식할 듯한 기류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결혼 생할 자체의 속성으로만 이해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에 의해서만 결혼 생활이 존재할 수 있다는 황당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는 서로 혈연관계도 없고 거의 알지도 못하며, 성격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다 심지어는 성기도 다른 두 사람이 갑자기 함께 살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며 어쩌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결정지어졌을지도 모르는 두 개의 운명을 공유하기로 약속하는 것은 모든 과학적 법칙에 위배된다는 입장이었다.

한편 우르비노 박사는 신혼여행 때처럼 아내를 완벽하게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원하던 사랑의 일부를 아내는 아이들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 최고의 시기를 아이들에게 모두 바쳐버렸기 떄문이다. 그러나 그는 나머지 사랑으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웠다. 그토록 염원하던 가정의 화목은 페르미나 다사가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한 맛있는 음식이 나왔던 어느 축하 만찬 석상이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상당한 양의 음식을 먹고 난 그녀는 너무나 맛이 있어서 다시 그만큼을 더 먹었고, 예의를 차리느라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가지 퓌레를 전혀 의심도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두 접시나 비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통해 똑같이 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즉 다른 방식으로는 함께 살 수도 서로 사랑할 수도 없으며, 이 세상에 사랑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너무나 서로를 잘 알게 되었고, 결혼 삼십주년이 될 즈음에는 둘로 나뉜 한 몸처럼 되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을 짐작하는 경우가 무수히 일어났다. 공개 석상에서 한쪽이 말하려 했던 것을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하는 우스꽝스러운 사건도 발생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같은 공감을 불편하게 느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일상적인 몰이해와 순간적인 증오, 상호간의 거친 말과 부부 사이의 찬란한 영광의 번갯불들을 함께 극복해 왔다. 그 무렵은 두 사람이 서두르지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사랑했던 시기였다. 두 사람은 역경을 이겨내고 형언할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또렷이 의식하고 있었고 그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인생은 그들에게 또 다른 치명적인 시련을 가할 것이 분명했지만, 그런 것은 더 이상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반대편 기슭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정말 황당한 죽음이었어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죽음이란 없소.”
그러고는 괴로운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특히 우리 나이에는 말이오.”

과부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데는 그 첫해만으로도 충분했다. 남편에 대한 기억은 정화되어 더 이상 그녀의 일상생활이나 은밀한 생각, 혹은 아주 단순한 의도에도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으며, 그녀의 삶을 괴롭히지 않고 그녀를 인도하는 보호자가 되었다. 종종 그녀가 진심으로 필요로 할 때면 환영이 아닌 살과 뼈를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남자의 변덕을 부리지도 않았고, 가장으로서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그가 그녀를 사랑했던 것처럼 다정한 말과 적절치 않은 키스로 사랑의 의식을 치르며 자기를 사랑하라면서 힘들고 귀찮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그가 아직도 살아서 집 안에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그녀는 그런 확신에 기운을 얻곤 했다. 그것은 당시의 그녀가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그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그토록 사랑을 갈망했던 이유를, 그의 공적인 삶의 지주로 보이던 안정을, 실제로는 한 번도 찾지 못했지만 그녀에게서 찾으려 안달을 떨었던 이유를 이해했다. 어느 날 절망의 절정에서 그녀는 이렇게 소리친 적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모르겠어요?” 그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은 채 특유의 몸짓으로 안경을 벗고는 어린애 같은 눈에서 흘러나오는 투명한 눈물로 그녀를 적시면서 “훌륭한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안정이오.”라는 한마디의 말로 그의 참을 수 없는 지혜의 무게를 그녀에게 느끼게 했다. 과부의 고독을 처음 느끼던 시절, 그녀는 그 말이 당시에 생각했던 것처럼 치졸한 위협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 수많은 행복한 시간을 안겨준 천연 자석임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였고, 날이 갈수록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으며,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미칠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정확하고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그는 이성적인 방식으로 죽음이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아니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까닭에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또한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깔깔대며 웃으면서 모든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향내 나는 평온한 선실에서 그런 감정을 억제할 수 있게 되자, 두 사람은 경험 많은 노인들처럼 조용하고 건전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것은 그 미친 여행의 가장 멋진 추억으로 그녀의 기억에 영원히 남게 될 사랑이었다. 선장과 세나이다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두 사람은 이미 얼마 안 된 애인처럼 느끼지 않았고, 때늦은 연인으로도 느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부부 생활의 지난한 고통의 언덕을 뛰어넘은 듯했고,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직접 사랑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 같았다. 열정의 함정과 환상의 잔인한 조롱, 그리고 환멸의 신기루를 극복하고, 인생을 달관한 것 같은 늙은 부부처럼 조용히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사랑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사랑이지만,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그 사랑의 농도는 진해진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대답했다.
“태어난 이래, 나는 진심으로 하지 않은 말이 단 한마디도 없소.”
선장은 페르미나 다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속눈썹에서 겨울의 서리가 처음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그의 꺾을 수 없는 힘, 그리고 용감무쌍한 사랑을 보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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