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시대의 사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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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이라 술술 읽었다. 책 읽는 동안 다른 짓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노벨상을 받은 작가, 세계적인 소설이라는 명성에 겁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소설의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의 삶에 맞추어서 이 소설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검색하면 동명의 영화가 뜨는데 좀 더 대중적인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 소설의 이야기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이야기이며, 또 인기를 끌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무려, 그 유명한 하비에르 바르뎀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다니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2의 표지는 처음에는 혹시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사진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아닌 것 같다. 특별히 인상적이지도 않고 출처도 잘 모르는 사진을 표지로 쓰는 것보다 차라리 영화의 스틸 컷을 표지에 넣었으면 어떨까 싶었다. 아니면 작가의 얼굴 사진을 표지로 쓰든가.

콜레라 시대의 사랑보다 더 유명한 작가의 책은 백년의 고독인데, 백년의 고독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라는 작가도 접하게 된 계기가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서였다. 한때 열렬한 애청자였다가 듣기를 중단하게 된 계기는 첫째로는 그 무렵 내가 많이 바빠졌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 무렵 들었던 방송에서 진행자가 한 말 중 전혀 공감이 가지 않으면서도 화가 났던 부분이 있어서였다. 그 멘트만 생각하면 화가 나는지라 안 그래도 부족했던 시간을 쪼개가며 방송에서 소개되는 책을 읽고 방송을 들을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이 내키지가 않았다. 한 번씩 들어가서 방송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또 요즘은 어떤 책을 소개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까지는 했지만 방송을 본격적으로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방송에 큰 변화가 여러 차례 있었고, 최근 이 방송이 막을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늦지 않게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나의 한 시대가 나도 모르는 어느 순간에 마무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지치고 정신은 빈곤했던 시절에 방송을 통해 접한 책들을 읽는 시간과 방송을 듣는 시간은 나에게 한편으로는 치유가 되는 시간이었고,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는 시간이었다. 방송의 멘트가 마음에 걸려 방송을 듣지 않게 된 시점을 생각해보면, 방아쇠를 당긴 것이 그 멘트일 뿐 그 전부터 서서히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이 쌓여왔던 것 같다. 몇 년 동안 누군가의 안내를 받았으나 이제는 나 혼자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고 생각했고 혼자 사유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그때만큼은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잡고 싶고 매달리고 싶었던 시기에는 전적으로 의존하고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이제는 나의 삶을 바탕으로 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의 평에 수긍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은 필연적으로 오게 된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영원했듯이 나의 한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지속될 것이다. 아직도 나에게는 그 시대가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워낙 평범한 집에서 검소하게 살았는지라 그는 구두쇠라는 부당한 명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부리는 유일한 사치는 그보다도 훨씬 검소했다. 그것은 사무실에서 2레구아 떨어져 있는 바닷가 별장에서, 가구라곤 여섯 개의 허름한 수공예 간이 의자와 항아리 받침대밖에 없는 이 집의 테라스에 해먹을 걸어놓고 일요일마다 누워 사색에 잠기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부자가 뭐 하러 그러고 사느냐고 조롱했을 때 그가 한 말보다 그를 더 잘 정의하는 말은 없었다.
“부자라니. 난 그저 돈 많은 가난한 사람일 뿐이오. 그건 다른 것이오.”

그러면서 그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 사랑에 대해 배워야 할 유일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인생이란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이었다.

사실 플로렌티노 아리사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별로 사랑하지 않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그를 거의 알지 못했으며, 그의 편지에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같은 열정이 담겨 있지 않았고, 그의 결심을 보여줄 그 어떤 감동적인 증거도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베날 우르비노의 구혼은 결코 사랑의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제안했다고 하기엔 이상한 세속적인 재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즉 사회적 경제적 안정과 질서, 행복, 눈앞의 숫자 등 모두 더하면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거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만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랑이 아니었고, 이런 의문은 그녀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녀 역시 사랑이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의 문제가 집안의 질식할 듯한 기류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결혼 생할 자체의 속성으로만 이해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에 의해서만 결혼 생활이 존재할 수 있다는 황당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는 서로 혈연관계도 없고 거의 알지도 못하며, 성격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다 심지어는 성기도 다른 두 사람이 갑자기 함께 살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며 어쩌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결정지어졌을지도 모르는 두 개의 운명을 공유하기로 약속하는 것은 모든 과학적 법칙에 위배된다는 입장이었다.

한편 우르비노 박사는 신혼여행 때처럼 아내를 완벽하게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원하던 사랑의 일부를 아내는 아이들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 최고의 시기를 아이들에게 모두 바쳐버렸기 떄문이다. 그러나 그는 나머지 사랑으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웠다. 그토록 염원하던 가정의 화목은 페르미나 다사가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한 맛있는 음식이 나왔던 어느 축하 만찬 석상이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상당한 양의 음식을 먹고 난 그녀는 너무나 맛이 있어서 다시 그만큼을 더 먹었고, 예의를 차리느라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가지 퓌레를 전혀 의심도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두 접시나 비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통해 똑같이 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즉 다른 방식으로는 함께 살 수도 서로 사랑할 수도 없으며, 이 세상에 사랑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너무나 서로를 잘 알게 되었고, 결혼 삼십주년이 될 즈음에는 둘로 나뉜 한 몸처럼 되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을 짐작하는 경우가 무수히 일어났다. 공개 석상에서 한쪽이 말하려 했던 것을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하는 우스꽝스러운 사건도 발생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같은 공감을 불편하게 느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일상적인 몰이해와 순간적인 증오, 상호간의 거친 말과 부부 사이의 찬란한 영광의 번갯불들을 함께 극복해 왔다. 그 무렵은 두 사람이 서두르지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사랑했던 시기였다. 두 사람은 역경을 이겨내고 형언할 수 없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또렷이 의식하고 있었고 그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인생은 그들에게 또 다른 치명적인 시련을 가할 것이 분명했지만, 그런 것은 더 이상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반대편 기슭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정말 황당한 죽음이었어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죽음이란 없소.”
그러고는 괴로운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특히 우리 나이에는 말이오.”

과부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데는 그 첫해만으로도 충분했다. 남편에 대한 기억은 정화되어 더 이상 그녀의 일상생활이나 은밀한 생각, 혹은 아주 단순한 의도에도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으며, 그녀의 삶을 괴롭히지 않고 그녀를 인도하는 보호자가 되었다. 종종 그녀가 진심으로 필요로 할 때면 환영이 아닌 살과 뼈를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남자의 변덕을 부리지도 않았고, 가장으로서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그가 그녀를 사랑했던 것처럼 다정한 말과 적절치 않은 키스로 사랑의 의식을 치르며 자기를 사랑하라면서 힘들고 귀찮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그가 아직도 살아서 집 안에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그녀는 그런 확신에 기운을 얻곤 했다. 그것은 당시의 그녀가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그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그토록 사랑을 갈망했던 이유를, 그의 공적인 삶의 지주로 보이던 안정을, 실제로는 한 번도 찾지 못했지만 그녀에게서 찾으려 안달을 떨었던 이유를 이해했다. 어느 날 절망의 절정에서 그녀는 이렇게 소리친 적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모르겠어요?” 그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은 채 특유의 몸짓으로 안경을 벗고는 어린애 같은 눈에서 흘러나오는 투명한 눈물로 그녀를 적시면서 “훌륭한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안정이오.”라는 한마디의 말로 그의 참을 수 없는 지혜의 무게를 그녀에게 느끼게 했다. 과부의 고독을 처음 느끼던 시절, 그녀는 그 말이 당시에 생각했던 것처럼 치졸한 위협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 수많은 행복한 시간을 안겨준 천연 자석임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꼼짝도 할 수 없는 처지였고, 날이 갈수록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으며,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에 미칠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정확하고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그는 이성적인 방식으로 죽음이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아니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까닭에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또한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깔깔대며 웃으면서 모든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향내 나는 평온한 선실에서 그런 감정을 억제할 수 있게 되자, 두 사람은 경험 많은 노인들처럼 조용하고 건전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것은 그 미친 여행의 가장 멋진 추억으로 그녀의 기억에 영원히 남게 될 사랑이었다. 선장과 세나이다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두 사람은 이미 얼마 안 된 애인처럼 느끼지 않았고, 때늦은 연인으로도 느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치 부부 생활의 지난한 고통의 언덕을 뛰어넘은 듯했고,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직접 사랑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 같았다. 열정의 함정과 환상의 잔인한 조롱, 그리고 환멸의 신기루를 극복하고, 인생을 달관한 것 같은 늙은 부부처럼 조용히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사랑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사랑이지만,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그 사랑의 농도는 진해진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대답했다.
“태어난 이래, 나는 진심으로 하지 않은 말이 단 한마디도 없소.”
선장은 페르미나 다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속눈썹에서 겨울의 서리가 처음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그의 꺾을 수 없는 힘, 그리고 용감무쌍한 사랑을 보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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