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싸이월드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42
박선희 지음 / 제철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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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한 친구는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내적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올리고 싶은 사진이 많은데, 인스타그램에는 가장 좋은 이미지를 최소한으로 선별해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글도 짧을수록 좋았다. 댓글도 구구절절 쓰는 대신, 작고 깜찍한 이모티콘으로 대신했다. 새로운 시대가 원하는 콘셉트였다. 간결함, 명료함, 분명함. 하지만 '싸이 감성'인 그녀에겐 하고 싶은 말과 나누고 싶은 사진이 너무 많았다. 여전히 우리는 멈춰야 할 때, 그만 둬야 할 때를 잘 몰랐다. 

싸이월드는 그 시절의 분위기와 많이 닮은 매체였다. 절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닌데 업로드를 멈추거나 분량을 줄일 이유가 없었다. 여행을 하거나 행사가 있었던 날이면 하루에 백 장 넘는 사진도 올렸다. 게시판 글은 길수록 좋았다. 싸이월드에서 가장 부족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절제미였다.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취약점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나는 직장에서도, 관계에서도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한 곡 더"라고 앵콜을 외치는 사람이었고, 떠난 버스를 괴력으로 쫓아가 마침내 얻어 타고 마는 '집념과 진상 사이'의 승객이었다. 때로는 굴욕적으로, 때로는 자기합리화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세상과 혼연일체가 돼 살아왔다. 그게 좋았다거나 나빴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그땐 그랬고, 그렇게 버텨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시절' 싸이월드의 몰락은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었던 어떤 노래의 진짜 끝처럼 느껴진다.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저 멀리로 사라지는 느낌, 이제는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온 것처럼 말이다.


작가분 내 나이 또래 맞다. 그리고 내 나이 또래라면 이 작가분 글 읽으면서 공감 많이 할 테지. 싸이월드는 이제 우리 세대에는 추억이 된 걸까. 


철 지난 싸이월드에 유독 오늘따라 꽂힌 이유는 뭘까.


아마도 특별히 힘들고 지친 날 내 감정을 토로하고 싶을 때 인스타그램으로는 부족해서일 것이다.

그 밝고 화사한 세계에는 이런 감정 자체가 걸리적거리게 느껴진다. 인스타에 감정 토로 안 해봐서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렇다.

조용한 밤의 세계. 침묵과 고독의 세계. 혼자만의 생각으로 일기를 쓰는 시간과 싸이월드는 어울린다.


힘든 감정을 한 두개의 단어로 축약해버리면 그 감정이 너무 가벼워지고, 또 그만큼 내가 가벼워지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아닌다.

이러한 감정을 토로하기에는 싸이월드가 딱이다.

그 매체가 없어졌다는 것은 이러한 감정을 토로할 곳이 없어졌다는 것 뿐 아니라, 시대가 그만큼 바뀌었고 이 감정을 수용해 줄 수 있는지, 눈치를 봐야 하는지까지 생각이 가는 것이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진지충이라는 말을 왜 쓰나 했는데 이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요즘 시대에는 동떨어진 걸까?


어쩌면 싸이월드가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설레면서도 싸이월드 백업은 죽어라하지 않는 우리 세대의 모순이 여기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한 때 존재했던 추억이 아름답게 박제되어 있기를 바라면서도, 싸이월드에 매달리는 철 지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싫다고, 아직 우리 나이에 옛날을 그리워하는 어른으로 규정되는 것은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양면의 마음이 다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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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양말 - 양말이 88켤레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무튼 시리즈 18
구달 지음 / 제철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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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속담에 이런 표현이 있다.

'천성은 문으로 내쫓으면 창문으로 들어온다'는.


22쪽에 나온 말이다.


그래, 천성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천성은 본래 타고난 성품이나 성격을 의미한다. 앞에 있는 천은 하늘 천. 그러니까 하늘이 내려준 것이다. 영어로는 nature. 자연 그 자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양말은 사실 나에게는 실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예쁜 양말을 보면, 특히 여행지에서 보면 사오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사온 기억은 없다. 왜냐하면 양말이니까. 내 발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니까. 그렇지만 알베르 카뮈처럼 흰 양말을 깔끔하게 신은 사람, 아니면 캐나다 총리처럼 양말에 메세지를 담아 신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디테일에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사실 누구나 호감을 갖는 것은 쉬운 일 아닌가. 그렇지만, 내 천성으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양말은 결국 막 신는 사람이고, 양말을 신지 않는 상태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게 편하니까... 


아무튼 시리즈를 띄엄띄엄 읽고 있는데, 나의 천성으로는 상상을 하기 어려웠던 삶을 한 자락씩 엿보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편협한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사소한 것에서부터 내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편협한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양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양말이 아닌 다른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이들은 상관없이 내가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을 하나씩 늘려가는 것도 삶의 재미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재미있는 삶이 결국 삶의 본질이 아닌가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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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리커버 에디션)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김인순 옮김 / 필로소픽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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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를 틈틈이 읽고 있던 중 아무튼 양말 을 읽다가 거기에 등장한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는 책을 소개한 부분을 읽게 되었다. 제목도 독특하고, 내용도 궁금해서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읽는 동안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 '여우와 신포도'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있어서 다소 민망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부분을 읽다 보면 겉으로는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추구하지만 속으로는 우아하게 사치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없기에, 어떻게든 우리는 만족하며 사는 법을 알아야 하기에, 작가의 생각이 억지라도 매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몇 구절은 분명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 부는 악하고 빈은 선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드러나는 부분이 그랬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특히 그랬다.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비행기 맨 앞의 퍼스트 클래스에는 진하게 화장을 하고 붉게 립스틱을 바른, 머리에서 발끝까지 베르사체로 친친 감은 부인들이 앉아 있다. 그 뒤에는 비행기 단골 고객으로서 마일리지 회원권을 지닌 콤비 차림의 신사들이 자리하고서, 여승무원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고 느낀다. 어느 정도나마 교양 있게 처신하는 사람들은 오직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그곳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을 고풍적인 의미에서 '우아하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적어도 그들은 비행기 앞부분의 승객들처럼 상스럽지는 않다.(p212~213)



이런 몇가지 부분을 제외하면 그래도 재미있는 부분은 많다. 개인적으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고 하면 모 연예프로에 나오는 한 연예인이 생각나는데, 한때 최고의 부와 명성이 있었던 그가 지금은 빚을 열심히 갚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치하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도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가장 대표적인 부분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연어 머리로 스테이크를 만들어 대접하는 장면이었는데, 그야말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현실적으로 잘 응용한 예가 아닌가 싶다. 


영국 사회 형태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신분제도가 존재하지만 누구나 신분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고 또 오로지 돈에 의해 신분이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차이는 행동과 언어인데 이 두 가지는 배워 익힐 수 있다. 마거릿 대처의 젊은 시절 언동은 훗날 보수당에서 정권을 잡았을 때와 사뭇 달랐다. 이를테면 노동계급 출신이라도 누구나 성인 오락실에 가는 대신 속보 경마장을 관람하는 등의 시민적인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서 중산층에 합류할 수 있다. 그리고 중산층에 기반을 둔 사람들은 어느 날 상류층의 생활 방식과 언어, 행동을 받아들여서 속보 경마 대신 갤럽 경마를 관람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국인들은 지배자의 민족이다. '지배자라는 것'이 항상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의미를 내포하는 독일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헝가리인들과 영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자기 극기', 비록 상상의 세계라 할지라도 '자기 세계의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지배자이다.(p 50)


'복권 로타르'는 복권에 당첨되고 나서 불과 5년만에 세상을 하직했다. 이처럼 우리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이 정반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것을 아주 적절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했다. "신은 인간들을 벌하려는 경우에, 그들의 기도를 들어준다."

역설적인 소리로 들리겠지만, 여기에서 한 걸은 더 나아가 실패를 성공의 비결로 볼 수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가난한 망명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부유한 나비 채집가와 2류 서정 시인으로 인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어쩌면 본인을 위해서도 다행히 나보코프는 모든 것을 잃었다. 웅장한 승리와 처참한 실패는 종종 놀라울 정도로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상실과 실패, 심지어는 이른바 불행이라는 것도 훗날 역경을 뚫고 모습을 나타내는 승리의 참된 전제 조건을 이룬다.

듣기 좋은 말로 행복을 이야기하는 진부한 감언이설을 뒤쫓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진정한 가난은 물질적인 것의 결핍이 아니라 건강이나 아름다움, 부유함, 무엇을 좇든지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삶의 기복을 평가할 줄 알고 위기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p 59)



책을 읽다가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 이 생각나는 부분도 있었다.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도가 지나쳐서, 베르사유의 정원에 작은 마을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농부의 아낙처럼 옷을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서, 젖소의 신선한 우유를 마시고 손수 빵을 굽고 버터와 치즈를 만들었다. 바스티유가 폭풍에 휩쓸린 날에도 세브르의 우유통과 자신의 가슴 모양을 본따 만든 우유 컵을 들고서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다녔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컵에 '왕비의 가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 지나친 태도는, 대부분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잠시나마 부의 저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망적인 소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런 소원을 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p 185)


그와 반대로 상대적인 빈곤에서 벗어나 이따금 넘치는 풍요의 세계에 탐닉하는 경험은 아주 자극적일 수 있다. 다만 상반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복권 사는 사람처럼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삶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삶은 설사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불행만을 가져올 뿐이다.(p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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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장이 너무 많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24
렉스 스타우트 지음, 김우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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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대량 생산된 물건이 아니라, 구석구석까지 손수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척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갈색 케이프를 걸치고 역시 갈색 천으로 된 모자를 비스듬히 쓴 키가 크고 뚱뚱한 사나이와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그 손을 놓더니 짐꾼의 뒤를 따라 남자보다 앞서 우리가 탄 뒤칸에 올라탔다.

'내 재산이라고는 이 마음뿐인데, 그 마음을 이토록 빼앗길 줄 알았더라면 아예 눈을 가려버릴걸.'


"이것으로 세 번 죽게 되는 셈이군요. 래스지오는 아직도 더 죽어야 합니까?"


여기까지만 읽어도 알 수 있다. 죽을 사람은 래스지오. 이 사람을 죽일 이유를 가질 사람이 너무나 많은 상황.


제목은 요리장이 너무 많다 인데 원제는  Too Many Cooks 라고 한다. chef 라고 해야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리장은 영어로 first cook이라고 한다.

요즘 쿡방이 많아서 쉐프라는 단어가 익숙해서 둘 차이가 뭐지 하고 찾아봤는데

cook은 요리를 하는 모든 사람을 뜻하고, 쉐프는 원래 프랑스어로 영어 단어 chief 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ceo 할 때의 그 chief 이다. 

그러니까 요리에만 국한되어 있는지, 매니지먼트를 하는 수장의 역할까지 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요리사들은 chief 가 아니라 cook이 맞겠다. 그리고 그 요리사들 중 최고인 장이 맞는 것이고. 다만 그것은 주방에서만 가능하고. 

실제 경영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chef 와는 달리 권한이 제한적일테고, 어떤 상황에서는 눈뜨고 당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래스지오라는 악인에게 다들 무력하게 당하고 있는 것일 테지.


우리나라 쿡방에 나오는 쉐프들은 직접 레스토랑을 경영하기 때문에 chef 가 맞을 것이다.



15명의 명요리장


헬로메 벨린-상 레모의 코리도나

레옹 블랑-보스턴의 윌로 클럽

램지 키스-캘커타의 헤이스팅즈 호텔

필립 래스지오-뉴욕의 처칠 호텔

도메니코 롯시-런던의 엠파이어 카페

피에르 몽도르-파리의 몽도르

마르코 뷰크식-뉴욕의 라스터맨

세르게이 발렌코-퀘벡의 샤토 몽칼므

로레느 코인-샌프란시스코의 래턴

루이 세르반-웨스트 버지니아의 카노와 수퍼


펠리드 칼터-이스탄불의 카페 드 유럽

앙리 터슨-카이로의 셰퍼드 호텔


고인

아르망 플루리-파리의 플루리

바스컬레 도노플리오-마드리드의 엘도라도

잭 발랜-더블린의 에메랄드 호텔


사망한 래스지오는 뷰크식의 아내를 가로챘고, 블랑의 지위를 빼앗았으며, 벨린이 가장 아끼는 제자를 훔쳐갔다. 그 외에도 비열한 짓은 많이 한 것 같은데 이 남자가 죽은 것이다.


이 경우 세 명에게 혐의가 일차적으로 돌아가고,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며, 범인이 밝혀지는 구조이다.


보통 이런 추리 소설의 경우 중간에 지루하기 마련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첫째는 탐정 울프에 못지 않게 그의 조수인 굿윈이 매력적인 캐릭터이었기 떄문이고(고용주에게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그 연장선에서 고용주를 은근히 아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초대받은 것처럼 요리를 비록 입으로 맛을 볼 수는 없을 지언정 글로 읽으면서 이게 어떤 요리이고 어떤 맛일까 하고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잘 모르는 내용이 훨씬 많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거웠다. 잔인한 살인 사건과 그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고급 요리가 등장하는 다소 흥청망청한 파티의 느낌. 아마 소설을 읽은 지금이 연말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렉스 스타우트는 여러 탐정을 소개했지만, 가장 인기있는 것은 역시 네로 울프라고 한다. 약 70여편 정도의 작품이 나왔지만, 우리 나라에 소개된 것은 3개 정도라고 하니 안타깝고 궁금하다.


렉스 스타우트의 네로 울프 시리즈는 70권을 넘어가지만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은 세 권 뿐. 그리고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 중 두 권이 집밖에 거의 안나가는 명실공히 안락의자 탐정인 네로 울프가 부득이하게 저택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라고. 


그 작품 세 개는 독사, 요리장이 너무 많다, 챔피언 시저의 죽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적어 놓아야 언젠가 이 리뷰를 들쳐볼 때 읽어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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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경관 동서 미스터리 북스 23
펠 바르.마이 슈발 지음, 양원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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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북유럽의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의가 없지만 대체로 노르웨이, 스웨덴,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를 합한 5개국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읽은 서유럽 작가의 책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처음으로 읽은 북유럽 작가의 책은 기억이 난다.
서유럽이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이른바 수많은 세계문학과 고전이 대부분 서유럽 작가의 책이니 가장 처음 읽은 서유럽 작가의 책은 알 리가 없다.
물론 어릴 때부터 접했던 수많은 동화들부터 거슬러 올라간다면 안데르센 동화도 있으니 뭐가 처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화를 제껴놓고 머리가 굵어진 청소년기부터 한정을 한다면 확실히 북유럽 작가의 책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읽은 것 같다. 부끄럽지만.

북유럽 작가의 책이라고 인식을 하면서 읽은 첫 책은 소피의 세계이다.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떄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고, 여기에 나온 철학의 세세한 내용을 전부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치 끌려들어가듯이 매혹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기억난다. 한편으로는 슬펐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난 작가의 책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아마 고등학교 때 아니면 대학교 때 읽은 것 같은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작가가 역시 덴마크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쓴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다.
이 책은 제목부터 감각적이다. 스밀라는 소설가 김연수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자다.
그 다음으로 읽은 책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스웨덴에서 태어난 작가가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살아온 백 년의 세월을 한 편의 코미디로 풀어낸 소설이다. 앞의 두 소설보다는 유쾌하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다.

아, 그리고 무민 시리즈도 있구나.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대해 읽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데.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난 작가다.

그러고 보니 의도한 것은 아닌데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작품을 차례로 열거하였다. 빠진 것은 아이슬란드인데. 몇 년 전 북유럽 여행을 갔을 때 공교롭게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네 나라를 갔었다.
모든 여행지는 유일무이하지만, 그 특유의 서늘하고도 고아한 느낌이 북유럽에 머무는 동안 빠져들듯 좋았고, 귀국한 후에도 그리워 주기적으로 북유럽 작가의 책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앞으로 언제나 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의 추억은 힘들 때마다 꺼내보게 된다.
아이슬란드 작가의 책을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마 내가 그곳을 가보지를 않았기 때문이겠지.

이 책은 생소한 스웨덴식 이름이나 지명에만 익숙해지면 금세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사건의 시작에서 결말에 이르는 부분까지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야무진 느낌이다.
작가 부부가 마르틴 베크가 나오는 10권의 추리 소설을 처음에 기획하고 북유럽 복지 국가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의 사회문제를 고발하려고 계획을 세웠다는데, 도중에 남편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10권이 전부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알라딘에서 검색하면 타 출판사에서 나온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7권까지 나오는데, 이게 전부인지 아니면 번역이 안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리뷰들로 짐작하기로는 남편이 사망한 후에도 아내가 10권까지는 전부 출판한 것 같기는 하다.
참고로 이 소설에는 당시 스웨덴의 풍경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사회비판적 요소가 많이 강하지는 않다는 개인적인 판단이다.

아,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여기다.
"결국 모두들 경찰을 필요악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세. 어떤 인간이라도 언제 어느 때, 의지할 곳은 경찰뿐이라는 상황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걸 모두 알고는 있어. 그야 상습적인 범죄자들도 예외는 아니지. 강도 역시 그렇겠지. 밤중에 자기 집의 지하실에서 수상한 소리가 나서 눈을 뜨게 되었다면 그는 어떻게 할까? 물론 경찰에 전화하겠지. 그러나 그런 상황과는 인연이 없는 때 경찰이 덮치거나 마음의 평화가 어지럽혀지면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나 경멸로서 대응해 오거든."
나만 여기를 뽑은 것 같지는 않고 이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이 이 부분을 인상깊게 읽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 분들이 이 부분을 고른 이유는 나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고?
하필 이 부분을 읽을 무렵 대한민국이 모두 알고 있는 파렴치한 범죄자의 집에 들어가 그 범죄자를 공격한 20대가 있었고, 그의 아내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뉴스가 나왔거든.
그야말로 이 내용 그대로 아닌가.
반복해서 이 부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범죄자를 잡았고, 그 범죄자를 공격한 20대를 잡았던 수많은 경찰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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