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날들 -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시간
김신회 지음 / 웅진윙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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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은이에게 여행이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저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가장 보통의 날들’일뿐이다. 여행이 축제가 아니라 여행을 다녀옴으로써 일상이 축제가 된단다. 지은이의 여행의 하루하루는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보통의 날인 것이다.

 

여행 책은 차고 넘친다. 그것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이 쓴 여행기, 특히 책을 후루룩 넘겨보니 분위기 있는 유럽 국가들의 사진이 들어온다. 짤막짤막한 글들과 함께. 이쯤 되면 편견이 생길 만하다. 꼭 금방 여행 다녀 온 여자들의 미니홈피를 보는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의 편견 또한 깨졌고, 어느새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지은이는 알고 보니 내가 알만한 유명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방송작가였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짧으면서도 핵심을 찌르고 공감을 자아냈나 보다. 그녀의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는 그림은 글과 함께 이중의 찌릿함을 주고 나의 추억 또한 생각나게 한다.

 

나보다 몇 살 많은 여자인 그녀. 사회에 발을 디딘지 몇 년이 되었을 그녀. 가장 화려해 보이지만 또한 가장 경쟁이 치열할 곳에서 일하는 여성인 그녀가 일상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또 어떤 마음으로 매번 여행 가방을 쌌을 지는 대강은 짐작이 간다. 일상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그녀의 글은 공허하지 않고 사진은 겉멋이 들지 않았다.

 

생소한 나라로의 여행을 앞두고 있는 지금, 벌써 그 나라를 다녀온 후 적은 그녀의 소감 덕분에 걱정했던 마음이 줄어들고 힘이 난다. 그 곳의 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재미있단다. 나도 두려움은 떨치고 며칠 동안을 그녀처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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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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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엔 형제가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찾아보았다. 2분짜리의 예고편만 보아도 영화가 짐작이 간다. 황량한 분위기, 건조한 문체, 냉정할 정도의 결말. 책 이상으로 영화화해낸 것을 보고 감탄이 나왔다. 캐틀 건이라는 것은 책으로 읽을 때는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영화 예고편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이 들고 다니는 것을 보니 온몸이 오싹하다. 역시 난 영상 세대이구나 라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노인은 누구일까. 아마도 코맥 맥카시 자신이 아닐까? 33년생인 그는 정말 노인이다. 베트남전, 걸프전, 911, 이라크전, 수많은 유명 인사들에 대한 공개 저격 사건들, 고등학생들의 총격전, 대학생들의 총격전, 시시때때로 터지는 크고 작은 테러, 범죄... 간혹 미국 범죄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우리나라도 끔찍한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만 저 나라는 대체 어떤 뇌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까, 하는 황당한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총기 규제에 대한 정책이 지지부진하며 범죄는 날이 갈수록 극악해진다. (미국이 수사물이 발전한 이유가 범죄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란다.) 나라는 어지럽고, 젊은 시절 희망을 가졌을 그도 이제는 나아질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모국을 바라보며 될 대로 되어버리라는 심정을 갖지 않았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과연 모스의 운명은, 시거의 말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읽어나가다가 결국 맥이 탁 풀렸다. 내가 이 결말 때문에 여기까지 왔던가. 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미국에서 과학수사가 발전한 이유가 미결된 사건, 잡지 못한 범인이 유독 많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처음부터 코맥 매카시가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그가 10년만 젊었어도 이 소설은 이렇게 결말을 맺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말 미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닌 것 같다.  

그의 또 다른 소설이자 역시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 '더 로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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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기욤 아레토스 그림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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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지 원수의 화를 돋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은 오히려 자국인 프랑스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인기가 있다고 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 제목이 흥미를 끌어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게으름 때문에 이제야 읽게 되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구판은 절판되고 개정판이 나왔단다. 생각보다 꽤 오래된 책이구나 하며 읽었는데도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구식이 아니다. 아마도 상대적이면서 동시에 절대적이기 때문에 10년이 넘어서도 고루한 책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쯤 접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예전에 읽었더라면 이 책의 내용을 좇아가는데 급급했을 것 같은데 지식과 경험이 쌓인 지금은 여유 있게 이 백과사전의 ‘상대적’인 부분에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검열은 여전히 존재하는가?’ 항목에서는 과거에는 검열 때문에 정보가 소수에게만 집중되고 대중에게 차단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검열이 사라진 요즘은 오히려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범람하는 정보 중 일부만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진보나 도전은 나타날 수 없고 기성에 묻혀 버린다. 검열을 없앰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검열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잘 알고 있던 상식(절대적)을 뒤집어서 그 이면(상대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뼈대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 뼈대가 안쪽에 있으면 살은 수없이 상처를 입고 회복되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을 통해 근육이 단단해지고 섬유의 저항력이 증가한다. 살이 진화하는 것이다. 반면에 뼈대가 겉에 있으면 외부의 위험에 쉽사리 다치지는 않는다. 대신 일단 외부 위험에 노출되면 피해는 치명적이다. 안쪽에 있는 살이 그동안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물렁물렁해졌기 때문이다. <출중한 지력>이라는 갑각을 뒤집어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견고해보이지만 일단 상반된 견해가 그들의 껍질을 뚫었을 때, 그 타격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 아주 사소한 이견, 사소한 부조화에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비록 모든 것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더라도 정신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어떤 공격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독창적이면서도 많은 예민한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부분이다.




광기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미쳐가고 있으며 그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란다. 특히 작가는 편집증과 정신분열에 사로잡혀 있음을 느끼는데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삶을 끌어올리려고 한다는 말. 멋지다.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도에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작가의 관점도 놀랍도록 새롭다. 이 말이 요즘이 아니라 10년도 더 전에 나왔다고 생각하니 작가의 역량일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모기의 숨은 곳을 점점 알아내기가 어려워진다는 관찰을 통해 단 몇 년 만에 모기의 변이가 일어났다고 추론하는 것이나 박테리아에 관한 이야기, 가장 평범한 것이 오히려 비범한 것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렘수면의 경우, 방해받을 때마다 꿈의 내용은 전부 달라졌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며 아마도 방해받은 뇌가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 하는 것 같다는 연구내용도 재미있다. 멕시코 원주민을 위해 끝까지 싸운 스페인 사람 구에레로의 이야기나 십자군 전쟁의 이면도 흥미 있었다. TV 프로인 '서프라이즈'를 보는 느낌?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처음 엄마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생후 8개월쯤이 최초로 사람이 겪는 불안이라는 것. 이방인에 대한 공포, 소중한 존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 고독에 대한 두려움 등이 전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재미있다. 자연은 다윈의 말처럼 좋은 것이 지배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도.(좋고 나쁜 것의 기준도 애매할뿐더러 자연의 힘은 다양성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잉크가 물에 번지는 현상으로 파동을 설명하면서, 사물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다양한 모습이 고정되지 않고 곧 섞여 버리지만, 생명의 세계에서는 그 만남이 고착화될 수도 기억 속에 머물 수도 있다는 대목은 작가의 과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통해 설명한 여러 개의 현실은 얼마 전에 읽은 ‘다시 한번 리플레이’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호르몬과 페로몬에 대한 비교, 페로몬을 통해 개미는 인간과 다르게 동일한 감정을 똑같은 정도로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인간의 공감이라는 것은 결국 이성에서 나올 뿐 이라는 부분도 곰곰이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끝없는 상상력으로 독자를 늘 감탄시키는 그의 원천이 여기서 나오나보다. 잡식성으로 여러 정보를 얻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뒤집어보는 그의 창조적 습관. 군데군데 다소 황당하거나 개미에 대한 그의 지나칠 정도로 넘치는 애정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책 구절구절 마음에 드는 모든 구절을 옮기려면 거의 책의 절반을 써야 할 것 같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




수피즘 철학에서 함께 있기란,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행위도 없이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서로를 바라보아도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마음 쓰거나 떠벌릴 필요 없이 그저 함께 있음을 말없이 즐기는 것이 행복을 얻는 방법 중 으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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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dts] - 할인행사
소피아 코폴라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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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는 게 힘들어요.

나이가 들면 나아지나요?




불확실한 미래만큼 두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지가 보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하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도 정해진 양을 조금 조금씩 채워나가는 모습을 확인하면 느리고 서툴러도 결국엔 다하게 된다. 문제는, 정해지지 않았을 때이다. 대체 어느 정도를 해야 할 지 전혀 감조차 안 잡힐 때, 그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은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20대 기혼 여성 샬롯은 세 가지 고민으로 힘들다. 겉도는 결혼 생활, 확신이 서지 않는 장래, 타국에서의 부적응. 50대 기혼 남성 밥 해리스는 자녀를 둔 왕년의 영화 스타이다. 30여년을 더 살면서 샬롯의 고민을 이미 겪었을 것이다. 그 또한 그 나름대로의 답답함을 해소하지 못해 더 답답해하던 차에 샬롯을 만나고 묘하게 위로받는다.




원제인 “Lost in Translation”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고 번역한 것에 아쉬움을 드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한국 제목만 보아서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느껴지는데 제목만 보고 영화관에 왔다가 실망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대체 “Lost in Translation”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를 이 제목의 의미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잔잔하게 물결처럼 와 닿는다.




인간관계에서 길을 잃는 것이 어디 서로 다른 언어 사이의 간격 때문만일까. 한때는 열렬한 사랑의 말을 다양하게 쏟아냈을 샬롯과 남편의 모국어도 결혼 2년차인 지금에 와서는 같은 말로 대화하는 것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공허하게 뜬다.




일본사람이라면 분명히 이 영화를 보고 불쾌하게 여길 장면이 존재한다. 만약 도쿄가 아닌 서울을 배경으로 이 영화가 촬영되었다면? 아마도 한국 관객들의 평가는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서구로 여행을 해본 사람으로서, 혹시나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하거나 범죄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가면서, 또 그런 티를 안 내려고 무진장 노력하며 부러 당당하게 서양인들 사이를 활보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관광객 주제(?)에 너무도 당당하게 도쿄 대로를 자기네 뉴욕처럼 활보하는 미국 남녀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고작 그 정도(?)의 어려움 때문에 타국 생활에서 힘들다고 징징대는 모습은 얄밉기도 하다. 원래 여행은 내가 떠나온 곳과 다른 것을 때론 놀랍고, 때론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기본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둘은 자발적으로 도쿄를 찾은 여행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또 걸린다.




Translation은 생화학 용어이기도 하다. 핵산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큰 과정 중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수많은 오류가 생기고, 다양한 변이가 나타나지만 그걸 바로잡아가며 최종 산물을 만들어낸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실수로, 오해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다가도 다양한 변주로 인해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귀에 속삭이는 말을 들으며 마침내 미소를 짓는 샬롯의 얼굴은 그래서인지 훨씬 발랄해 보인다.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었던 말을 충분히 쏟아낸 밥의 얼굴이 한층 후련해진 것도.




처음에는 둘 사이의 뭔가 썸씽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중간에 샬롯이 잠깐 질투한 것 말고는 담백하게 끝난 것도 인상적이었다. 꼭 아버지와 딸 같았다. 빌 머레이는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는 탄탄한 중견 배우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한 표정 연기와 절제된 감성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섹시함의 대명사로만 인식되기에는 타고난 재능이 너무 많은 여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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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
카르멘 포사다스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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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일단 제목이 독특해서였고, 또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 장르였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아도 안다. 이미 네스터는 죽었으며, 그를 죽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 중 과연 살인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것은.) 이런 설정은 지겹도록 반복되어 온 설정이고, 정말 평범하다 못해 지루해질 이 이야기 속에서 흔해 빠진 결말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작가들은 여러 가지 장치를 사용하게 된다. 여기서는 아마도 '요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것도 별 것 없다는 것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열차 살인사건은 이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여러모로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리게 된다. 아가사의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마지막 결말을 읽기까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고, 끝에 다다라서는 완벽한 구성과 세세함에 감탄했고 작가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겼던 기억이 난다.(어떻게 이런 작품을 생각해 내었으며, 더 대단한 것은 이 정도의 작품을 수십 편을 더 써낼 수 있었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후대에 이 작품은 많이도 리메이크되고 오마주가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영화 중 '8명의 여인들'이라는 작품과 우리나라 영화 중 '친절한 금자씨'도 이 추리소설 대가의 영향을 받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책 소개만 놓고 보면 아가사 크리스티를 뛰어넘고, 스페인 최고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뭐 아가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는 것이야 책을 팔아야하는 출판사 소개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스페인의 최고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대체 그 상이 진짜 스페인의 대단한 상이기는 한지, 아니면 원래 이쪽 문학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어떻게 된 게 추리 소설(혹은 추리 소설 비스무레한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면 최소한 책의 절반 넘게 읽을 때까지는 결말에 대해 일정 부분은 몰라야 되는 것 아닌가? 초반부터 모든 것이 공개되고, 남은 분량의 책읽기는 이미 예정된 흐름을 확인하는 것뿐이라니... 만약 이게 추리 소설이 아니라고 쳐도, (그럼 독자가 이미 예측한 부분도 크게 중요하지 않을 테니)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이 소설에 남는 부분이 대체 뭐가 있는지 싶다. 예술, 자기의 완성, 삶에의 의지, 권태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살인을 미화하는 것은 이미 프랑스 소설에서 수없이 본 장면인데다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고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그 프랑스 소설들에서조차도 그렇다.) 더군다나 등장인물의 소개를 장황하게 하면서 할리우드 무비 스타(영화배우가 아니라 무비 스타라는 말이 절대적으로 어울린다)에 대입하는 공식은 어이가 없다. 나는 그 무비 스타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세대도 아닌데다가 이미 알려진 사람의 이미지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작가의 표현력이 부족하단 말인가?

가장 살인의 이유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결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진부할뿐더러 끝부분이 소설의 첫 부분과 이어지는 이른바 '수미쌍관'(;;)의 구조조차도 덜 진부하다 뿐이지 식상하기는 똑같다. 거기에 캐릭터에 대한 심리묘사는 우리도 모르고 있었던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는 정도는 절대 아니고, 누구나 알 만한, 그 상황이라면 작가가 아니라 독자 수준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에서 그친다.

한국, 미국, 일본, 영국(여기에 간혹 중국과 프랑스)에만 치우친 독서 편식을 조금이라도 고쳐보고자 생소한 남미 책을 골랐는데 이래저래 실망이다. 그냥 스페인 소설을 읽었다는 것에서만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이 책을 읽고 나니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동인 문학상이나 황순원 문학상이 얼마나 격조 있는 정통한 문학상인지 알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을 보는 편이 어쩔 수 없이 안전하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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