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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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생각에 왜 나는 동의도 긍정도 하지 못할까.
불안한 마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집어 들었는데 역시 못 읽겠다. 말투가 문체가 문장이 거슬리고 내용이 나에게 스며 들어오지않고 왠지 튕겨나가는 듯 했다.

이 수필집은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라고 한다.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는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는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라고.

 

첫번째 세번째는 잘 모르겠지만 이 수필집은 괜찮다. 그의 취향의 섬세함, 작품에서나 일상에서나 군더더기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의지와 노력이 뚝뚝 묻어난다. 사인회도 결혼식 참석도 하지 않는다는 까칠함에서는 유별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의 삶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앙앙'이라는 패션잡지에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짧은 글들을 묶은 것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 것 말고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은 많고, 또 내가 알기로는 이미 출판된 수필집 중 두 권을 합쳐서 다시 이름을 바꾸어 낸다거나... 이런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뭐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첫머리에 밝힌 것처럼, 그의 본업은 소설가다. 스스로 자신이 쓰는 에세이는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이겠지만, 일단 우롱차를 만들려면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우롱차를 목표로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고. 고등학교 시절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고 스무 살에 읽었던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둠의 저편', 그리고 딱 작년 이맘 때쯤 '1Q84'를 읽었다. 그의 소설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라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회사의 맥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롱차는 앞으로 즐겨마실 것 같다고.

 

<햄버거>

호놀룰루에서 저자는 노숙자로 보이는 중년의 백인 남자를 만났다고 한다."미안하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햄버거를 먹고 싶은데 1달러만 주지 않겠습니까?" 라고 물어왔다고. 저자는 좀 놀랐다고 한다. 목적과 금액을 그렇게 분명히 정해서 원조를 요청하는 상대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국 1달러를 주었는데, 근처 '버거킹'에서 햄버거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에 배가 고픈 저 사내가 고기 굽는 냄새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공감이 갔고, 또 다른 때문이라고. 저자 스스로도 이 얘기의 교훈은 나도 잘 모르겠다고 썼지만, 이 글을 읽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고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길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분들이 계시는데 보통 전단지를 받지 않고 지나치게 되기 마련이다. 한번은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어떤 분이 나눠주시면서 지나치지 말고 한번만 읽어봐 달라고 명랑하게 말씀하셨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일일히 말씀을 건네시면서. 무심코 평소와는 다르게 받아들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횡단보도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손에 전단지를 쥐고 있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조금 흘러서 그 전단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그 때 아주머니가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순간적으로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의사없는 국경회>

'국경없는 의사회'를 보고 '의사없는 국경회'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 얘기를 글로 써 본다면? 이런 장난같은 발상을 종종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실제로 <중국행 슬로보트>와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라는 단편소설은 제목을 먼저 붙이고 나서 이런 제목으로 단편소설을 쓴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고. 그러고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은 유독 제목이 시선을 잡아끄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없는 남자들'도 그렇고 '양을 쫒는 모험'도 그렇고.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제목은 또 어떻고. 그 중에서도 압권은 바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아닐까. 정말 제목만 보고 책이 읽고 싶어 안달나게 만드는 부분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따라올 작가가 없다. 어쩌면 독자를 끌어당기게 하는 상술, 내지는 일종의 트릭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그 이유였다. 소설은 쓰고 싶은데 쓸 만한 것이 생각나지는 않았고, 인생 경험도 부족했고, 그래서 제목부터 지어놓고 그 제목에 맞는 얘기를 끌어오게 되었다고.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동안 저절로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이 서서히 형태를 띠어가며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비단 소설뿐만 아니라, 모든 일의 시작은 어쩌면 그렇게 사소한 장난 같은 것이 아닐까, 장난처럼 가볍고 부담없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 뿐 아니라 어떤 다른 직업에서도 사명감은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런 자연스러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시저스 샐러드>

공복감은 그리 없지만 뭔가 가볍게 배를 채우고 싶을 때, 메밀국수를 떠올린다는 작가. 외국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음식이 시저스 샐러드라고. 가벼운 메인요리이면서도 메밀국수와 비슷한 '섭취감'을 준다고. 참치나 닭고기를 더한 메뉴는 아마도 튀김을 얹은 메밀국수같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비교는 늘 즐겁다. 우리나라 음식으로는 어떤 것이 있으려나.

 

<책을 좋아했다>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서 고등학생들이 초청하는 행사에 갔는데 바다 건너 작가의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고 초대까지 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있는 친구들이 정작 대학에 진학할때는 의학이나공학을 전공으로 택한다고. 이유는 갈리시아에서는 주요산업이 없어서 밖에나가 일을 찾아야만하기때문에 그러기위해 실제적이고 전문적인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런 젊은이들이 이렇게나 미친 듯이 자기소설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뻤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고등학생시절을 떠올릴수 있었다고.
나도 고등학교 야자시간마다 공부는 안하고 책만 엄청 읽어제꼈던 기억이 났다. 어릴때 꿈이 작가였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꿈에서 한참 멀어졌지만 원래 인생이라는 게 또 그런거라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위로가 됐다. 그리고 저자도 서술하고 있지 않나. 고교시절에 본인은 소설가는커녕 제대로된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저 책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고.
대단한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행복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죽을때까지 이런 책 한권은 쓸수있을까하고 생각하며 낙담하게 되는데 그러고보면 크게 불행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 인생은 모르는 것이니까.

<이쪽 문으로 들어와서>

나의 이십대는 상당히 정신없고 바빴다. 보통 사람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고 그리고 결혼을 하지만, 내 경우는 완전히 반대여서 결혼 한 뒤에 일을 시작하고, 그 뒤에 대학을 졸업했다. 엉뚱하다고 하면 엉뚱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순서가 돼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피아노 발표회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틀렸습니다”하고 처음부터 새로 할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에 내 이십대는 후다닥 지나가버렸다. 이쪽 문으로 들어와서 그대로 저쪽 문으로 나가버렸다. 그 십년간 느낀 것이라면 매일 열심히 일한 것, 항상 빚에 시달린 것, 많은 고양이를 기른 것, 그 정도다. 그 외에는 거의 기억에 없다. 가만히 서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내가 행복한지 아닌지 그런 의문조차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세대와는 관계없이 세간 사람들에게 이십대가 어떤 것인지 나는 그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즐거운 청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사회에 적응시켜가는 괴로운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세간’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당신의 이십대는 어떤 것인가? 혹은 어떤 것이었나? 사실 이건 내가 상당히 진지하게 알고 싶은 문제다.
-본문 중에서-

 

 

나는 이런 세계적인 작가는 이십대도 남다르게 보냈을 것이 틀림없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특별한 경험을 아주 많이 하거나 아니면 심한 고생을 하거나 다시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큰 실패를 맛보고 겨우겨우 재기했거나. 그런데 한쪽 문으로 들어와서 그대로 나가버린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기억에 남지 않는 이십대를 보냈다고 고백하는 것은 조금 충격이다.
내 이십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나의 이십대도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에 후다닥 지나 버릴 것 같아 불안하다. 정말 뭔가를 곰곰히 생각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아니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피곤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에 의도적으로 생각을 차단하려고 노력하는 때도 있다. 정말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내 이십대는 대졸이라는 학력하고 ☆☆ ☆☆☆☆ 두 가지만 가지고도 그대로 설명이 가능한 시기로 남지 않을까.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삶이 제일 좋다고 늘 생각했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만 몸을 맡기면 어느새 내가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곳에 멈춰 서 있게 될지나 않을지, 생각하니까 또 아찔해진다.
내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켜 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나에게는 벅찬 일인데 이 이상의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진짜 내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아 더 욕심을 부리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작년 초에 내가 썼던 글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뚜렷하게 다가왔던 부분이었는데 아마도 나의 이십대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 당시 내 인생에 큰 전환점도 있었고. 2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고, 이제 정말, 정말, 정말로 나의 20대는 얼마 남지 않았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이십대는 그래도 저 위의 두 가지만으로는 남지 않았다. 좀 더 풍성했다. 그리고... 아마도 조금 더 여유를 허락하여, 내년 1, 2월까지 포함한다면, 나에게는 좀 더 많은 것들이 허락되지 않을까.

 

<결투와 버찌>

푸슈킨의 소설 '발사'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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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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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이런 친구 한 명 쯤 있었으면!

현실적으로 내가 숲에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으니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연에서 살고 있는 가까운 친구가 있다면,

주말마다 방문해 좋은 공기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고 돌아올 텐데.

 

30~40대 워킹우먼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마스다 미리의 작품답다.

마스다 미리하면 당연히 수짱 시리즈인데, 그 외에 작품도 많이 쓴 것 같다.

여기에는 잠깐 수짱이 등장하는데, 그 장면이 수짱 시리즈에 이미 한 번 등장했던 장면이다.

미리 계획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끼워맞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흐뭇하다.

 

정신없이 도시에서 일하다 보면, 간절히 자연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훌쩍 떠날 용기도, 의지도, 여건도 되지 않아 아쉬울 뿐...

어쩌면 그 판타지를 채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야카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그래, 시골에서 살자.'

확고한 의지로

결심했던 것이 아니라

되는 대로 해보자,

한번 해보지, 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책의 맨 첫 장의 내용이다. 정말 좋았던 게,

요즘은 마치 힐링하는 것도 의무로 되어 있는 게 아닐까 느껴질 정도로

온갖 마음의 평안, 힐링... 이런 키워드들이 넘쳐나고

모든 것을 탁 놓아두고 홀가분해져야 하는데

그 과정이 오히려 더 이것 저것 준비를 수반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

번거로울 때가 있었다.

뒤에 나오지만, 하야카와가 시골에 살기로 마음 먹은 것도 좀 황당하다면 황당할 수 있다.

잡지 독자 응모에 당첨되어 하이브리드 카가 생겼는데 도쿄의 주차장이 너무 비싸

과감하게 시골로 이사를 했던 것.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차를 팔고 그 돈을 가졌을 텐데.

무모한 것일까, 아니면 대단한 것일까.

 

저 장에서의 그림은 주인공 하야카와가 해먹을 쳐서 눕는 장면인데

열심히 치고 나서는 그다지 편하지는 않구나, 하고 느끼는 장면이다.

이런 것도 마음에 들었다.

 

숲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밭을 일굴 것이라고 친구들은 생각하지만,

주인공은 그저 이사만 왔을 뿐, 택배를 통해 훗카이도의 감자와 가네자와의 고등어 초밥을 주문한다.

 

숲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을 방문할 때마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도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를 선물한다.

'스바메 그릴'의 햄버거 도시락

'사이공'의 짜조

'센비키야'의 과일샌드위치

'오가와켄'의 레이즌위치

'데멜'의 초콜릿(오스트리아 황실 전용 베이커리가 도쿄에 지점이 있다니!)

'치모토'의 야쿠모모찌

니혼바시 '히야마'의 소고기

'우사기야'의 도라야키

 

숲에서 살면 도시와는 아예 담을 쌓고 시골의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고

아직 도시를 그리워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안하다.

 

주말엔 숲으로가 숲에서의 주말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숲에서 주말을 보내고 난 친구들이 됴쿄로 돌아가고 난 후이다.

 

나무의 싹이 돋는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는 하야카와의 말을 떠올리며 신입에게 친절하게 한 번 더 가르쳐주는 마유미.

또, 여행사에서 일하는 세스코는 진상 손님 때문에 일을 그만둘까 하다가도

너도밤나무는 건축재로 사용하지 못할 만큼 부드러운 나무지만, 눈이 쌓여도 휘어질 뿐 부러지지 않아 추위에 강하다고,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 조금 더 멀리 헤드라이트를 비춰서 보며 가는 거라고 하는 하야카와의 말을 떠올리고 다시 기운을 낸다.

똑바로 나갈 것인지 작게 회전하며 빠져나갈 것인지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한다는 카약은

마유미가 직장에서 떠올릴 때, 회사는 커다란 바다가 아닌 좁고 작은 곳이며, 바위도 굴곡도 있는, 똑바로 나갈 수 없는 곳이니 작게 회전하며 빠져나가자, 하는 생각으로 전환된다.

 

마지막 장의 눈토끼 사진. 싹이 돋는 계절로 시작해 책이 다 끝날 무렵 신년회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데, 어김없이 주말을 이용하여 숲을 찾은 하야카와의 친구들은 하야카와와 함께 눈토끼를 만든다. 마지막 장에 눈밭을 배경으로 등장한 눈토끼 세마리. 눈토끼는 우리나라의 눈사람 같은 것일까? 이 책에만 등장한 것은 아니고 나츠메 우인장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주인공이 눈토끼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큰 눈덩이 위로 작은 눈덩이 올리는 정형화된 눈사람처럼, 이런 방식의 눈토끼가 일본에서는 관습인듯?

 

한 번 읽으면 싱그럽고, 두 번 세 번 읽으면 마치 점점 짙어지는 것 같은 느낌. 꼭 숲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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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기까지만, - 혼자 여행하기 누군가와 여행하기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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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여행기.

 

이 전에 읽었던 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보다 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작은 여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당일치기 혹은 1박 여행이 대부분이었고,

혼자 가거나, 네코야마라는 별명의 편집자가 동행인이었던 경우가 거의 전부라서

스스로를 자꾸 들여다보는 저자의 생각은 잘 알겠지만 이야기는 좀 단조로웠는데,

이 책은 혼자, 친구들과, 남자친구와, 엄마와 다양하게 동행인이 바뀌고

심지어 북유럽까지 여행 경로가 확대되어서 좀 더 여행기스럽다고 할까.

여행을 다녀온 시간을 보니 2009년부터 2013년에 걸쳐져 있는 것 같은데

책 두 권의 여행 다녀온 시간들이 살짝 겹친다. 아마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녀오고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성격을 분리해서 두 개의 책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에서는 각 챕터의 시작에 지도가 있었고, 짧게 만화도 등장해 그것을 또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 책은 그림도 거의 없고, 사진도 나오고, 각 여행마다 여비가 얼마가 들었는지, 식비에 교통비에 기념품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 쪽이 더 좋았다. 일단 지도가 없으니 작가가 간 곳이 어디인지 위치상으로 잘 가늠이 안 되어서 상상하는 맛이 떨어지고, 여비를 쓴 것도 딱히 와닿지가 않았다. 물가야 금방금방 바뀌는 거니까.

 

나는 아마 앞으로의 인생에도 자식을 낳지 않을 것이다. 자식이 없다는 것은 먼 미래, 아이와 둘이 여행하는 일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아이와 여행을 하는 부모의 기분을 지금의 엄마를 보면 상상할 수 있다.

'부모란 이런 식으로 기뻐하는구나.'

나를 여행에 데려가 줄 자식은 없지만, 엄마오 여행을 함으로써 '부모' 유사 체험을 한다. 내가 내 자식과 여행을 한다면 분명 지금의 우리 엄마와 비슷한 느낌으로 기뻐할 것이다. 다른 인생을 상상하는 것도 은근히 재미있다.

 

이 부분은 어렴풋이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갸우뚱하기도 하고 마음이 좀 저려오기도 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저자는 살면서 어떤 일들을 겪어왔고 이런 결심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미야기 현, 2박 3일의 가을 여행.

여행에서 돌아오자 바로 언제나의 일상이다. 어제는 미야기 현에 있었지,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에 곧잘 일어난 그 감각과 비슷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의 내 자리로 돌아와서 조금 있다 보면,

'어? 나 방금 화장실에 갔었는데, 화장실 갔을 때의 나와 멀어진 기분이 들어.'

 

이런 느낌, 나도 잊고 있었는데 어릴 때 강하게 느끼던 그 느낌이다. 대학에 입학해 한 달간 유럽 베낭 여행을 다녀온 뒤, 적어도 1년 까지는 작년 이맘 때, 한 달 전만 해도,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신기해지던 그 기분. 아마 '성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더 어릴 때는 잠깐의 외출로도 그 전의 나와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는 바로 그 기분, 충분히 느꼈고, 또 많이 느끼면서 살았는데 어른이 되면서 잊고 있었다. 아마도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는 게 아닐까. 점점 나이 먹었다는 것을 의식해가며 살고 있으니까. 다음 구절도 그렇다.

 

인간의 몸을 만드는 물질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피부도, 심당도, 뼈도 모든 세포는 날마다 새롭게 바뀌고 있으므로, 실은 줄곧 변하지 않는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말이 된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새로운 물질로 만들어진 '새로운 나'다. 그런데 나는 옛날의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뇌세포도 계속 바뀌고 있는데, 무엇이 옛날의 나를 기억하는 것일까?

 

핀란드 여행의 키워드를 카모메 식당으로 잡고, 귀국 후 그 영화를 다시 보면서 여행 추억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는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부러웠다. 무민의 고향에서 무민 박물관을 찾았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백야 시즌에 본 '짙은 오렌지색 하늘과 터키블루가 선명한 하늘'은 어떤 느낌일까. 스웨덴 스톡홀른 시청사 레스토랑에서 노벨상 수상자의 축하 만찬과 똑같은 메뉴를 먹어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 투어 요금은 총 35만엔이었다고 한다. 카모메 식당의 인기로 북유럽을 찾는 일본 여성들이 늘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걸 마스다 미리의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다음에도 같은 여행이 될 리는 없다. 기분, 날씨, 몸 컨디션. 각각의 균형으로 여행의 온도는 결정된다. 같은 여행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다. 그걸 알기 떄문에 언제나 헤어지기 섭섭한 것이다.

 

이 문장도. 마음에 든다.

 

친구들과의 북유럽 여행 후, 저자는 다시 혼자서 한번 더 헬싱키를 다녀온다. 또다시 혼자 나라로 향하는데 교토 역 신칸센 개찰구 안에 있는 '호우센'이라는 다실, 늘 지나쳐 버리던 그 곳에서 빨려들 듯이 들어가 밤 팥죽과 밤 킨톤을 주문해 먹으며 흐뭇해하는 대목을 읽고 나에게도 있는 비슷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공주 버스 터미널 안의 카페. 아무 생각없이 그냥 들어갔다가 밤과자와 밤라떼에 반했던 기억. 그리고 서비스로 받았던 아이스크림도.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쌀쌀했던 날인데 순식간에 따스해지며 기분이 풀리던 기억. 아, 나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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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걷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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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연히 수짱 시리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4권의 만화를 연속으로 보면서 마스다 미리에게 꽃혀 그녀의 저작들을 전부 섭렵하는 중이다. 일본이나 우리나 사는 것은 대동소이한지라, 30대 싱글 여성의 삶을 그려 일본에서 열렬한 반응을 얻었던 것처럼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그녀의 책은 인기를 끌고 있다.

 

수짱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나오지는 않고, 마스다 미리의 개인적인 에세이인데, 기대를 많이 하고 보면 오히려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만화에서 몇 개의 선 만으로도 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함축미가 없기 때문이다. 일하는 싱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평소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잡아내는 세심함, 그리고 글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따스하게 느껴지던 편안함이 마스다 미리의 매력이었는데 글줄에서는 아무래도 드러나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마스다 미리의 팬이 아니라면, 이 책은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또 지나치게 개인적이어서 마치 일기장에 끄적인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고 있다면 모를까, 우리 같은 독자들에게는 좀 그림의 떡인 것이, 이 책에 나온 지역 축제 중 현재는 없어져 버린 것도 있고, 1년 중 한시적으로만 하는 행사들도 많아서 그저 글을 읽고, 간혹 등장하는 만화만 보면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마저도 소소한 재미는 있다.

 

여행이란, 평소의 일상과는 다른 환경에 나 자신을 놓아두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인생의 작은 비밀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는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면서도, 곳곳에 즐거운 깨달음이 등장한다.

 

나는 일본을 총 세 번 가보았다. 온천으로 유명한 큐슈, 세계적인 도시인 도쿄, 그리고 저자의 고향이기도 한 오사카. 상하로 긴 나라여서 그런지 한 나라이면서도 각각의 특색이 다 살아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매번 갈 때마다 감탄하고,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리 읽고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여기도 가 보는 건데, 하는 곳들이 많았다.

 

도쿄인데도 숲 속의 호텔 같은 포시즌스 호텔. 경치 좋은 곳에서 느긋하게 우아한 아침식사를 하는 휴일을 꿈꾸면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휴일은 내 마음대로야, 하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것은 영원히 가지 않을 가능성과 종이 한 장 차이라며 초여름 어느 일요일에 저자가 친구들과 함께 간 곳이다. 수북한 빵과 몇 번이나 우려달라고 부탁했다는 홍차, 그리고 애피타이저 느낌의 가벼운 플레이트 요리. 요리 자체보다 '호화로운 시간'을 산 느낌이라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경치 좋은 창가 쇼파에서 즐기는 '선데이 레이트 브랙퍼스트'. 더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1년에 한 번은 친구와 호텔에 브런치를 먹으러 다니고 싶다는 저자의 말에 나도 마음이 설렌다.

 

신에노시마 수족관의 '해파리 나이트'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 수족관에서 마음껏 해파리를 관람하고 사육사의 도움을 받아 만져보기도 하고 저녁을 먹은 후 수족관 안에서 다 함께 자는 행사다. 처음에는 뭐 이런 특이한 행사가 있나? 하는 느낌이었는데 죽 읽다보니 나도 하고 싶어진다! 마음대로 관내를 산책하며 물고기도 펭귄도 돌고래도 구경하다 좋아하는 수조 앞에서 담요를 펴고 자면 된다. 누군가는 그 앞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누군가는 문자를 하면서 깨어 있다. 생각만 해도 편안해진다. 물론 바닥이 딱딱해서 잠자리가 불편하기는 해도 인생에 딱 한 번이라면 평생 추억이 될 것 같았다.

 

훗카이도의 구시로 습원 국립공원도. 영화에서만 보았던 훗카이도의 모습은 러브레터의 눈 쌓인 모습뿐인데, 10월에 간 저자는 카누를 타면서 야생 사슴도, 밍크도 구경하며 노을이 질 때까지 호수에서 뱃놀이를 했다는 이야기는 언젠가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다짐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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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대니 보일 감독, 데브 파텔 외 출연 / CJ엔터테인먼트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마지막 단체 군무는 전형적인 볼리우드 영화스타일이다.

주인공 남자가 잘생겼다. 데브 파텔, 이름을 외울 정도였다.

불안한 듯한 눈빛이 참 매력적이었는데, 그러면서도 당돌한 느낌이 섹시하게 느껴졌다.

여주인공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별로 안 예뻣서 놀랐다. 실제 6살 정도 차이가 나는 둘은 영화를 통해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7~80년의 우리나라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친숙했다.

소설도 감명깊었지만, 영화도 잘 만들엇다.

세트가 아닌 실제 현지에서 찍었기 떄문에 현대 인도를 잘 그려낸 것 같다.

아카데미에서 8개를 수상했다는데, 소설은 그렇게 감명깊에 읽었어도 기억이 나는 구절이나 장면이 좀 적은 편인데 영화는 한번을 보고도 잔상이 길게 남았다. 소설과는 조금씩 다른 부분도 있지만 훨씬 더 극적이다. 하지만 명작일수록 별다른 감상이 필요없다는 생각도 든다.

스토리는 원작의 힘과 함꼐 영화하로 잘 각색한 감독의 힘일 것이다. 확실히 소설보다 재미있다.

자말의 형이 살림 or 라티카가 더 나이 많은 변호사 or 게이 영화배우들의 에피소드는 바뀌었다.

영화 개봉 후 일부 인도의 영화계 사람들은 불만을 표시했다고도 한다.

인도라는 나라에 꼭 가고 싶었다. 여러 껍질을 벗겨보는 매력이 느껴지는 나라 같다.

수많은 관강객들이 오는 거대하고화려한 타지마할... 아마 미리 갔더라면 관광지만 보고 감탄만하고 왔을 것이다. 지금 가서 보면 다르지 않을까.

인도라는 나라가 영어와 힌두어를 혼용하기 떄문일까? 영화상의 빈민가 소년도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애들이 너무 안쓰럽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어서 더 슬프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인도의 비참한 현실이 대비되어 서로를 부각시킨다.

비침한 현실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희망을 갖게 한다.

아마도 대사 떄문인 듯 하다. "이게 인도다" "그럼 우리가 미국을 보여줄게"

그리고 나서 고층빌딩과 빈민가의 대조... 영화의 내용을 한번에 알게 한다. 만약 이 영화가 미국 자본이 아니라 인도인들 스스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반발이 나왔을까....

 

결말은 소설보다 훨씬 극적이었다. 설마 그렇게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마지막에 찍어서 맞추는 것보다 틀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기적이어도 동생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형이 그렇게 죽어버리는 것도 허무했다.

너무 할리우드 적인 결말 같아서.

 

오프닝 문제의 마지막 답변이었던 'D. It is written'은 중의적인 표현으로 오프닝과 엔딩에서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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