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여자가 서른 살 여자에게 - 여자의 인생을 위로하는 47가지 조언
데버러 콜린스 스티븐슨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웅진윙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책 속의 몇 몇 인상깊은 구절을 적어둔다. 마흔 살 여자가 서른 살 여자에게, 라는 제목은 분명히 매혹적인 제목이지만, 솔직히 제목만큼 책이 임팩트 있지는 않다. 4명의 여자들은 워킹맘으로, 각자의 인생에서 힘든 일을 겪고 있고, 그 것을 나름대로 헤쳐나왔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4명의 이야기가 섞여 있어서 정신이 없고, 전체적으로 뚜렷한 줄기가 없어서 그 가지도 명확하지 않다. 또한 중간중간 나오는 조언들은 사실 다른 자기 계발서에서도 나왔던 내용이며, 마흔 살 여자, 서른 살 여자, 라는 키워드도 미국 사회와는 분위기가 다른 한국 사회에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 정말 힘들다면, 읽으면서 기분 전환이 될 수는 있겠다.

 

그 마지막 며칠 동안 나는 내가 그 학대당하던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소름끼칠 만큼 분명하게 깨달았다. 오래던에 나를 숨기기로 작정하고 어른이 된 뒤에도 숨바꼭질을 고집하면서 '내가 나를' 학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병마와 싸우는 아버지를 목격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이제는 그런 행동들로 인해 내가 좌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제는 그 사건이 내 정체성이나 내가 살아가면서 어떤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지를 규정할 수 없었다. 그 분명한 꺠달음의 숰간, 나는 과거와의 사슬을 끊고 아무 두려움 없이 내 인생 속으로 풍덩 뛰어들 수 있었다.

 

우리가 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몫은, 나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과 정확히 비례한다. 그 근원이 당신 자신이건 다른 사람이건, 불신 때문에 비틀거리지는 말자.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다.

 

보니다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우울해하며 남은 인생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살아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고 한 걸음씩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자신과 가족들이 그 고통을 겪은 데에도 깊은 뜻이 있을 거라고 믿는 쪽을 택했다.

 

'장애물'을 주제로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세 가지가 두려움, 현실부정, 자기파괴다. 두려움은 손에서 땀이 나는 증상에서부터 엄청난 불안과 발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형태로 표출된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경우에는 버팀목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사람 떄문에 무서워.""우리 아이는 내가 없으면 안 돼." "내가 더 돈을 많이 벌면 그이가 날 떠날 거야." "다들 나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아." 이런 생각과 감정들이 두려움으로 표출되고, 그런 두려움을 방패 삼아 그 뒤로 숨는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면 버림받은 느낌이나 상실감을 피할 수 있다. 오래 입다 보니 내 몸에 꼭 맞게 된 목욕가운처럼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 편안함에 속아넘어가면 거짓인생을 살게 된다. 많은 여자가 보이는 또 한 가지 패턴이 자기파괴다. 이는 여자들이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동원하는 비열한 짓이다. 간단하게는 칭찬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자기파괴고, 복잡하게는 '안 뽑힐 게 뻔해서' 회사 면접을 펑크내는 것도 자기파괴다.

 

당신의 시련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으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을 때는 어떤 단어를 쓸 것인지 좀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미친 듯이 연못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물고기가 된 심정이라면, 그 불편한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질문을 할지 미리 생각해보고 준비를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우아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답변을 생각해놓아야 한다. 이런 과도기 때 헤매지 않으려면 집 밖으로 나가서 우리를 새로운 미래로 인도할 만한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그러려면 불안한 마음을 감추는 동시에, 원하는 목적과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적절하게 표현할 말을 찾아야 했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낸 여러 기회와 관심사를 탐색하는 중이에요.

쉬면서 재충전하려고요. 3개월이나 6개월쯤 다른 일을 해본 다음 다시 일을 시작할까 해요.

지금은 과도기라 다음 행보를 신중하게 선택하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당신도 지금 과도기를 겪고 있는가? 그래서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묻는 말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할 말을 잃거나 헤매지 않고,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더 이상 끔찍하지 않도록 대답을 미리 준비하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거울을 보고 연습하자.

 

어느 쌀쌀한 겨울날 아침, 눈을 뜬 재키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손을 내민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항상 강한 모습을 보이는 데 익숙했고, 늘 도움을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이었던 그녀였기에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죽으면서 생긴 엄청난 문제들을 적절하게 처리할 방법이 필요했다. 도움은 '치료'라는 이름으로 찾아올 때도 있다. 우리를 아끼는 사람들을 통해 찾아올 때도 있다. 뜻밖의 방식으로 우리 인생에 뛰어든 전혀 낯선 사람의 이름을 찾아올 떄도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건 우리가 도움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된다. 어떤 사람이 '뭐, 도울 일 없냐?'고 뻔한 질문을 하거든 '있다'고 대답하고, 그게 무엇인지 말하면 된다. 앞으로는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뿌듯함이라는 선물을 주기로 약속하자. 

 

이 책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 잰은 여성진행자가 거의 없던 시절에 라디오와 TV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비서로 출발했지만 결국 자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스스로 과연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의심했던 재키는 변호사인 동시에 상원의원이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미셸린은 미국 재계에서 성공을 거둔 뒤, 정장 대신 청바지를 입고 대본 쓰는 법을 배워 대본, 제작, 감독을 맡은 첫 다큐멘터리로 데뷔했다. 데버러는 예전부터 리더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현재 컨설턴트로 여러 리더와 일을 하고 있다. 네 명은 말한다. 인생에서 확신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성공이 미꾸라지처럼 느껴지고, 실패하는 일이 생기고, 앞에 놓인 길이 끝이 없어 보이더라도, 똑똑한 여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꿈으로 향하는 길에는 꼭 비관론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러는 사람도 있고, 일부러 그러는 사람도 있다. 심술이 나서 우리의 꿈을 짓밟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비관론자가 모두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막강한 비관론자가 자기 자신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행스러운 이야기지만, 자기 자신을 구박하는 습관은 버릴 수 있다. 미국 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마틴 셀리그먼의 말에 따르면, 요즘은 프로그램의 방향을 바꾸는 심리치료사가 많다고 한다. 의뢰인의 과거 속으로 파고들어가 어렸을 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따지기보다 현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가리켜 "인간에게 어떤 것이 상처가 되는지에 집중하다가 무엇이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지 이해하는 쪽으로 바뀐, 심리학계의 조류 변화"라고 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나온다. 그 중에는 내가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아마 미국민들에게는 알려진 여성들이 아닐까 한다. 참 인상깊은 것은, 오로지 '여자'에 방점을 찍은 자기계발서는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도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서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20대, 혹은 30대 여성들에 그쳐 있다. 이 책에서처럼 국회의원, 기업의 CEO, 방송인, 고위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의 40대~50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10여년 정도 세월이 흐른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많은 예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한 때 시련을 겪어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고 활발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을 돕는 것도 인상적이다. 컨설턴트인 데버러는 지구촌 곳곳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바람이 있고, 미셸린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사 '위민스 인디펜던트 시네마'의 대변인이라고 한다. 잰은 이사회와 여러 기업에 여성들을 앉히는 헤드 헌터가 꿈이다. 변화와 재창조의 연속인 여성의 삶을 살면서, 후배 여성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일,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예전에 본 기사에서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늘었으나, 정작 그 여성 국회의원들은 남성 보좌관을 선호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은 늘어가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끼리의 연대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외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은데, 아마도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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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한 인생 10강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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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고 하는 것은 참 놀라운 것이어서, 금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생이 다 끝난 것 같고 막막하다가도 그래,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 해, 하고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신달자라는 이름을 처음 안 것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에 최근의 모 광고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찾아보니 다른 작가와 착각한 것 같다. 검색해보니 유명 시인이자 소설가이고, tv나 광고 같은 대중문화 활동도 예전부터 있었고, 대학교수로 강단에도 섰던 분이다.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아마도 이런 전방위적 활동으로 내가 어디선가 이름을 들었고,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름이라 더 각인이 되었을지도.

 

에세이에서도 얼핏얼핏 힘들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인터넷 검색 후 한 인터뷰를 보고 나서 아, 입이 딱 벌어져 나온다. 집안이 반대하는 결혼, 생활고, 긴 가족의 투병과 간병, 자녀의 출산과 양육, 그 와중에 대학원 진학과 등단, 그리고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들... 최근 연이은 불합격으로 내가 이것밖에 되지 않나, 하고 좌절하고 있던 차였다. 열 번의 실패도 인생에선 작은 숫자라고 신달자 선생님은 말하고 있지만, 막상 그 열 번의 실패를 겪으니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가고 자신감도 자존감도 바닥인 채로 연말 연시를 맞이하려던 차였다. 그런데 정작 40대, 50대에 대학원 진학과 교수 임용, 그리고 그 대학원 진학도 영어 실력 부족으로 몇 번이나 떨어졌다는 인터뷰를 보니 함부로 징징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작가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 인생만으로도 힘을 주고 있다. 나 또한 지금의 좌절이 언젠가는 나 자신의 발전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으리라고 힘을 내 본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을 그린 영화를 보고 인생의 종착역을 생각하는 작가의 나이는 70대이다. 그녀의 딸보다도 더 어린 나이의 나는 가늠이 되지 않지만, 아직 나에게는 남아 있는 날들이 훨씬 많고, 또 나도 모르는 능력이 분명히 잠재되어 있을 것이라고, 끝까지 놓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는 발현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 책은 목차만 훑어보아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역시 시인이라서 그런지,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없고 강한 임팩트는 없을지라도 잔잔한 향기가 난다.

 

통증은 본인이 느끼는 주관적 아픔이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에게 이해받기를 바라는 질환이라는 것. "아픈 여성에게 관심의 모르핀을 놓자."라는 기사(2008년 <조선일보> 김철중의 의학 속의 WHY 참조)를 읽고 아픈 여성인 나는 관심의 모르핀을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35세 우민영 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소기업 홍보과에 근무하는 기혼 여성으로 아직 아이는 없다. 시댁에서는 아이를 가지라고 닥달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희망한다. 당연히 시댁, 친정, 남편, 직장 상사 모두가 반대하고 나선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는 나 또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장이 바뀌면, 신달자 선생님은 다르게 해석한다.

 

우선 결혼을 했고(이것이 해결 안 된 여성도 많다.) 직장이 있고(이것도 행운이다.) 남편이 건강하다.(이것도 행운이다.) 이 세 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안하서 고민 중인 30대 여성도 부지기수다. 우민영 씨는 이 세 가지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지금 행복한가. 아니지 않는가. 이 고민은 삶을 좀 더 윤택하게 살고 싶은 의욕에서 나온 고민이므로 불행한 고민은 아니다. 30대는 이렇게 고민하는 시기이지 않는가. 30대에 이런 고민도 없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그것은 아주 소수의 여성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물어보라. 행복하다고, 만족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이란 모두 이런 불만족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남편의 이기주의를 고민하지 마라. 남편 입장에서는 바로 당신도 이기주의로 보일 것이다. 약점까지 사랑해 주는 남편이 누구나 되는 것은 아니다. 왜 우리에겐 없냐고 투덜댈 필요는 없다. 차라리 "나는 강수진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강수진이 그런 사랑을 받을 때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는 남다른 자상함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의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나는 살아오면서 통감했다. 그러므로 우민영 씨는 자신의 목표가 서 있다면 남편에게도 시부모님에게도 직장 상사에게도 긍정적인 태도로 우선 점수를 따내어야 한다.

 

이제 내 인생에서 공부도, 도전도 끝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무렵, 이 구절도 가슴을 친다.

 

30대는 무엇이 올지 모르는 인생에 대한 거룩한 준비 기간이라고 해야 한다. 불안해하지 말고 외국어든 컴퓨터든 인테리어든 뭐든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일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당장에 아무런 필요도 없어 보여서 기운을 빼지만 '나는 언젠가 있을 중요한 일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결국 뭐든 손에 잡는 실력 있는 여성이 된다.

 

우리나라 속담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이다. 오르지 못하는 나무도 쳐다보고 다시 쳐다본다면 오를 수 있고, 뱁새도 황새를 따라가노라면 황새에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싹을 자르는 이런 속담이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확 그어 놓는 것이다.

 

누구나 잘하는 것은 있는 법이고, 스스로 무덤을 만든 그 '잘함'을 찾아내어 숨통을 터 주면 '그걸 해서 뭐해!'가 아니라 '그걸 하면 되겠구나.'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30대 후반에 어느 문화센터에서 주부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내 인생이 아무것도 결론지어져 있지 않은 대학강사 시절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글 가르치기는 결국 내 인생의 직업이 되었다. 그때 학생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3년 반을 배웠던 30~40대 주부 다섯 명이 지금은 수필계의 중진으로 활동 중이다. 그들은 순수했고 글에 몸을 낮추었으나, 머리는 높았고 명징했다. 그들도 수필가로 산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다 보니 수필가가 되었고 지금은 하나하나가 성공한 인생들을 살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근심 같은 건 녹아 버린다. 좋아하는 일을 하루 한 시간만 해도 인생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자기가 가는 인생길이 눈으로 마음으로 머리로 그려져야 한다. 그러나 잘 그려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지금부터 윤곽을 잡으면 된다. 그 윤곽에 따라 그 길로 가는 정보를 얻고 그 길고 가는 풍문을 듣고 그 길의 총체적인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된다. 갑자기 성공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하면 그냥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일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있다. 돈이 되지 않아도 된다. 처음부터 돈 벌 생각은 하지 마라. 오히려 돈을 써야 한다. 돈이 없으면 무료 도서관부터 찾아라. 반드시 길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돈을 벌 수 있는 길도 보이는 법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아버지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키고 흑백 화해를 이루었던 링컨은 뜻밖에 아버지와의 화해는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양갈래에서 자신을 구축한 인물이다. 40대에 문단에 나와 40년 글을 쓰고 80세에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도 이미 친구들이 명성을 떨치고 있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문단 속에서 자기만의 확실한 목소리로 세상 바로 읽기를 함으로써 우리에게 잊지 못하는 작가로 남았다. 이처럼 뭐뭐 때문이 아니라 뭐뭐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길을 갔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당신이 어떤 처지에 있더라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그 어떤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한때 넘쳐나던 '힐링'에 피로해졌고 이제는 '독설'에 마음이 사나운데 이 책은 그 중간 지점에서 안은 단단하지만 겉은 부드러운 충고를 건넨다.

 

꽉 막혀서 도무지 앞이 안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지나가고 보면 그 막힘마저도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내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풀리지도 않고 꼬이기만 하던 그 어려운 시간도 결국 이루어지는 그 시간 속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막혔을 때는 그것만 보인다. 그러나  그때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나도 그 막막한 현실에서는 이루어지는 시간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누군가 아니라고 곧 빛이 올 거라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 "그딴 소리 집어치워!"하고 화를 냈다. 어떤 현실에서도 이것이 지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참고 견디면 반드시 행운은 온다. 그 꿈이 오는 시간을 어떤 자세로 기다리는가에 따라 시간이 줄기도 하고 더 길어지기도 한다. 괴롭지만 할 일을 순조롭게 하면서 고통을 견디며 얼음 위를 걷고 있다면 반드시 꿈은 조금 일찍 올 것이다. 지금 견디기가 너무 어렵다면 다리 건너기라고 생각하라. 그 다리를 건너야 행운을 만나는 것이라고.

 

책은 구원자다. 마음이 허약한 사람, 병든 사람,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은 길이 되고 위안이 된다. 책은 실제 자신보다 몇 천 배 힘 있는 사람으로 비약시킨다. 정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도 나폴레옹도 독서광이었고 베토벤 같은 예술가도 독서광이었다. 무엇인가 스스로 만든 사람들 곁에는 반드시 책이 있었다. 정신이 허약한 사람들은 반드시 책을 만나라. 정신의 빈곤은 인간을 쉽게 넘어지게 하고 고통 앞에 형편없이 무너지게 만든다.

 

1강 열 번의 실패도 인생에선 작은 숫자다
아득하다고 하지 마라, 가득하다ㅣ 부족은 만족으로 가는 간이역
인생의 종착역을 그려 보라ㅣ 시작은 누구에게나 눈부신 일

2강 척박한 땅에서 핀 꽃이 더 향기가 짙다
인생 여행의 지독한 멀미, 외로움ㅣ 여성의 역사는 통증의 역사다
남자와 여자, 달라도 너무 다르다ㅣ 자신이 가진 것 그 이상을 즐기라

3강 물은 1도만 모자라도 끓지 않는다
불소통의 벽을 허물라ㅣ 고통을 훈련하라
청춘, 가장 아름다운 오늘

4강 늙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다
제2의 유전자를 가동하라ㅣ 어머니, 맨몸으로 세상을 변화사키는 성자
'어머니'라는 이름, 그보다 더 높은 자리는 없다
가족은 상처이면서 자존심이다ㅣ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5강 행복은 여자가 창조하는 신화다
핸드백은 여자들의 은밀한 방ㅣ 친구를 얻는 데는 할인 쿠폰이 없다
여자의 눈빛이 세상을 밝힌다ㅣ 당신은 클레오파트라보다 섹시하다
행복은 움직이는 나룻배

6강 여자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
인생의 가장 큰 프로젝트, 결혼ㅣ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우리의 또 다른 가족들

7강 마음속 자궁으로 남자를 품으라
말을 참아서 담쌓지 말자ㅣ 남자는 70세가 넘어도 어린아이다
멋있는 아들을 만들려면 남편부터 멋있게 만들라

8강 하루에 한 시간, 인생이 달라진다
매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라ㅣ 하루에 한 시간, 인생이 달라진다
어설픈 달관이 절망보다 나쁘다ㅣ 돈보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9강 일어나라, 하고 싶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맨발의 아베베ㅣ 일어나라, 하고 싶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자기 인생에게 미안하지 말 것ㅣ 나도 잘 살게,너도 잘 살아

10강 그대의 꿈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인생에는 면제가 없다ㅣ 오천 개의 눈송이도 저마다 다르다
책은 정신적 항생제다ㅣ 걱정하지 말라,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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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여자의 365일 1일 1폐 프로젝트
선현경 지음 / 예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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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무작정 사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작가만 보고 무조건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선현경 작가의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는 그런 이유로 나에게는 꼭 읽어야 할 책이었다.

 

작가가 책 앞에 밝혔듯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질 만큼, 나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는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버리지 못 하는 것이 어디 물건뿐일까. 지나간 시간, 과거에만 존재하는 공간, 돌아오지 않는 추억들을 꽁꽁 다 묶고 살아간다. 꼭 이런 사람들이 물건도 쉽게 버리지 못 한다.

 

물건 하나하나에 과거의 추억이 있어서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와 같은 성격이었구나, 작가는. 그래서 더 반갑고 정겹다. 좋든 싫든 이런 습성 때문에 내 방은 채워져만 가고 내 머리는 과거의 기억으로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물건을 버리면서 차마, 그 물건에 얽힌 추억은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는 방법,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이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재주가 있었더라면, 물건을 버리면서 하나하나 그에 얽힌 추억을 그려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든다.

 

365일 동안 날마다 하나씩 버리는 프로젝트, 처음에는 양말로 시작해서 팬티, 구두, 악세서리, 그릇 등등 범위가 확대된다. 저거 하나씩 버리면 과연 정리가 될까? 싶기도 하고, 뭔가 획기적인 방법(?)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 하나 버리기 힘들어하는 마음, 미치도록 공감이 가기도 하고.

 

스스로 책 중독자 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나는, 여전히 책을 많이 읽고 또 책을 많이 산다. 당시에 충동적으로 샀던 책이 지나면서 나에게 필요 없는 책이 되기도 하고, 살 당시에는 별 느낌 없었다가 두고두고 아껴가며 읽는 책이 있기도 하고, 참 훌륭한 책이지만 내가 자라면서(?) 과거의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였지만 현재와 미래의 나에게는 거추장스러운 마음의 짐이 되는 책도 있다. 요즘 이런 책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갖다 주고 있는데, 생각보다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책 한 권 한 권마다 그것을 살 때의 나의 상황과, 심정과, 읽으면서 떠올랐던 온갖 감정과, 그 책으로 위로받았던 내 이십대가 자꾸 떠올라서.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책을 중고 서점에 갖다 주기 전에 마지막으로 알라딘 블로그에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고 정리하는 이 과정은 슬프기도 하고 또 매혹적이기도 하다.

 

책 중간 중간에 선현경의 딸과 어머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버리는 물건을 선물했던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하고, 어릴 때 이 물건을 유용하게 썼던 딸을 생각하기도 하면서, 어머니-작가-딸로 이어지는 그 관계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한다. 그러고보니 선현경의 그 신혼여행기도 내가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딸이 고등학생이라고 하니 세월 참 무상하다. 어쩌면 그 무상한 세월을 기록으로 만들 수 있는 작가라는 직업은 참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나도 더 늦기 전에 나와 우리 가족의 역사가 담긴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꼭 책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매체라도 좋을 것 같다. 요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방송도, 출연하는 가족들에게는 귀중한 기록물이 될 것이 아닌가.

 

좀 재미있었던 것은, 나는 선현경이라는 사람은 왠지 세상에 초연하고 물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 한 때는 명품백에 홀릭한 적도 있었고, 또 필요 없는 것을 알면서도 예쁜 디자인 때문에 사들인 물건도 있다고 하니 살짝 의외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식의 대학 문제에도 비록 고민할지언정, 자신의 생각을 꿋꿋이 지켜내는 걸 보니 사람은 참 여러 번 변하나 보다.

 

다음은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내 방식대로 요약~!

 

10.2. 발리서 산 선글라스

결핍은 늘 새로운 시도를 돕는 법이다.

 

10.4.-10.5. 부산국제영화제

모든 인간은 좋은 면, 나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상대방의 나쁜 면을 끌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의 악한 모습을 내보이게 유도하는 사람들, 나쁜 면은 보지도, 보이지도 않겠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상대방이 악해지게 만드는 것은 피하자. 아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은 없다. 나를 배려하지 않을 뿐.

 

12.29. 완두콩 수저받침 여섯 개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지금 잘 되지 않는 건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다는 증거"

그때가 오면 다 잘 될 거야.

 

3.10. 빈 상자들

요가 지도자 과정이라? 그런 게 있었구나.

 

4.10. 나탈리 레테의 배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저자 마루야마 겐지의 인터뷰 中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양이자 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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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두근거리는 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참, 귀엽고 예쁜 책.

 

이 책은 마스다 미리가 한 잡지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마스다 미리. 읽다보면 이른바 '소녀 감성'이라는 것은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없어지지도 않고 여자의 평생동안 지속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이만한 나이 때에는 어떨까, 어쩌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감수성이 보통 사람보다는 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목차만 훑어 보아도 '내 청춘에 보태고 싶은 사랑의 에피소드'라는 소개가 실감이 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데이트하기
그의 교복을 빌려 입기
하트 은목걸이 선물 받기
방과 후의 고백
커플룩 입기
그의 타진 옷을 꿰매주기
자전거 둘이서 함께 타기
수제 초콜릿 선물하기
졸업식 날 고백하기
하굣길에 선 채로 계속 대화하기
데이트 도시락 싸기
여름방학, 수영장에서 만나기
가사 실습 음식 챙겨주기
공주님처럼 안기기
관람차 안에서의 첫 키스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기
헝겊 가방 만들어주기
여행 가서 공중전화로 전화하기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남학생!

이 모든 에피소드를 보태지 못했기 때문에 마스다 미리는 후기에 ' 나의 청춘은 항상 때를 놓쳤지만!'이라고 적고 있다.

 

나는 마스다 미리보다 한참은 어리지만 저 목록의 모든 것들을 다 해 본 것도 아니고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냉정에 가까워서인지, 감성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다 보면 이제 40대에 접어든 작가가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내가 그 나이가 되면 어떻게 생각하게 되고 말하게 될 지는 절대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저 목록에서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은 빨리빨리 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나이가 들었을 때, 정말 당시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이 느껴졌지만 지나고 나면 그 때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라서 아쉽게 마음에 남을 수도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청춘에게 쫒겨났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노화라는 것이 무서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십 대, 삼십 대의 순수함에는 누런 얼룩이 묻어 있다'라고까지 자학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머리에 다는 작은 액세서리조차, '이 디자인 나이 제한 넘는 거 아냐?' 자문한다는 에피소드에서는 우리나라 지상파 모 아나운서가 떠올랐다. 5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진한 화장과 염색한 긴 머리, 미니스커트, 분홍색 악세사리를 단 그녀가. 현재 그녀의 모습을 보기 전에 미리 젊은 시절 그녀의 모습과 책을 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이에 굴하지 않고 본인의 개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아름다웠다. 일본이 지나치게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을 쓰고, 튀는 사람을 경계하는 문화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보니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오는구나. 잊고 있었다. '수제 초콜릿 선물하기'가 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한이 될 정도라면 돌아오는 그 날에는 꼭 치르고 넘어가야겠구나.

 

<데이트 도시락 싸기>에서,

십 대 여자아이가 머잖은 장래에 헤어질 남자를 위해 순정을 바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엄마의 가슴이 찡하지 않을까.

이런 문장, 미혼인 작가가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신기하다.

 

'중년 남녀가 한참을 서서 얘기하는 모습 따위, 멋이고 뭐고 없다. 보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진다'라는 대목에서는 조금 놀랐다. 아직 내가 젊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중년 남녀가 얘기하는 모습'에서 나는 프랑스 영화 '남과 여'나 조지 클루니와 미셸 파이퍼의 '어느 멋진 날'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딸린 중년 남녀인데도 지금의 나보다 몇 년이나 더 어린 내가 떨릴 정도였는데 보는 사람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않는다니? 잘생기고 예뻐서, 라고 반문한다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반례로 들 수 있겠다. 그 영화 속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메릴 스트립은 전형적인 미남미녀도 아닐 뿐더러 그 영화에서 깔끔하고 단정하며 화려하게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나는 감동적이었는데. 어쩌면 가진 자의 여유라고 아직 젊은 나의 치기어린 만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한 나이를 먹었을 때 과연 나는 어떻게 생각하게 될 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스다 미리의 이 책에서 등장하는 문장들은 자학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분야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워킹우먼이라도, 남편과 자식이 없다면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비하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부족한 것이 많았던, 그 '결핍'이 지금의 마스다 미리의 감성을 키웠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관점이 넓어진다고 할까? 예를 들면 <여행 가서 공중전화로 전화하기>에서,

학교 밖에 남자 친구가 있다.

그건 다른 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세계는 언제나 두 가지였다. 집에 있을 때의 나와 친구와 있을 때의 나.

지금은 더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작은 세계를 여러 개 갖는 것이라는 걸, 나는 언제쯤 깨달을까?

그리고 지금의 내게는 대체 몇 개의 세계가 있을까?

그 세계를 일일히 공표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어른이라는 것을, 나는 어떻게 학습했을까?

이런 대목이 그렇다. 이런 감수성을 만약 내가 가지고 있다면? 여러가지 감정을 겪을 수 있어서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웠을까? 아니면 그 감정들 때문에 오히려 힘겨웠을까?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남학생!>을 보고 문득 생각난 몇 년 전의 일이다. 다른 대학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과 모 여대 주변을 갈 일이 있었는데 역시 고등학교 동창 남자아이를 그 여대 교문 앞에서 만났다. 나와는 얼굴만 아는 사이지만 내 동창과는 친한 사이라 인사를 했는데, 동행했던 친구 왈, "여자 친구 기다리나봐~" 그러고 보니 역시 우리 셋 모두의 고등학교 한 해 후배와 그 남자아이가 고등학교 때부터 교제 중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 후배가 그 여대에 진학했다는 사실도 기억이 났다. 굉장히 부러워하는 말투 때문에 나는 친구를 돌아보았고, 말로는 표현 못 할 정도의 부러움이 얼굴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다시 원래 내 시선이 있던 곳으로 눈을 돌리고 나서 그 남자 동창 말고도 수많은 남자들이 그 여대 교문 앞에서 여자 친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데도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쩌면 그 친구는 '누군가의 소유물처럼 다뤄지고 싶었다. 십 대의 나는 그러면 미래의 불안이 조금 옅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그가 정해주길 바랐다. 집에 가자, 해서 집에 가는 카나가 되고 싶었다.' 이 문장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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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꽃은 우연히 피지 않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꽃이 피고 지는 것 같지만, 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의 그 배후에는 인고의 세월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참고 견딘 세월이 받쳐 줍니다. 모진 추위와 더위, 혹심한 가뭄과 장마, 이런 악조건에서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벼텨 온 나무와 풀들만이 시절인연을 만나서 참고 견뎌 온 그 세월을 꽃으로 혹은 잎으로 펼쳐 내는 것입니다.

 준비된 나무와 풀만이 때를 만나 꽃과 잎을 열어 보입니다. 준비가 없으면 계절을 만나도 변신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계절을 만나서, 시절인연을 만나서 변신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얻고 잃는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얻었다고 해서 좋을 것도없고, 잃었다고 해서 기죽을 것도 없습니다. 다 한때입니다. 그 당시에는 괴롭고 참기 어려웠던 일들도 지나고 보면 그때 그곳에 나름의 의미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일도 세월이 지나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잠들기 전에 자기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수행을 했는가? 오늘 하루, 타인에게 무엇을 베풀었는가? 내 인생의 금고에 어떤 것을 축적했는가?

 

 "마음, 마음이여, 알 수가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구나."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온 세상을 다 용납하다가도 마음이 한번 뒤틀려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삶에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든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겪는 것입니다. 어떤 외부 상황 탓에, 세상이 잘못되고 누군가가 나빠서 내 삶이 이렇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나답게 삶을 자주적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늘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맺힌 마음을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삽니까? 각자의 인생을 위해서 사는데, 누구 탓을 하지 마십시오. 원망하면 내 마음이 구겨집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어려운 일도 잘 풀립니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이 어두워지고 뒤틀리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때를 아무렇게나 보내서는 안 됩니다. 그 한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번 겨울철 안거 기간에는 먼저 무의미한 걱정 근심에서 벗어나십시오. 현재를 충만하게 살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가지고 불행해하거나 오지도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가지고 미리 걱정 근심을 앞당기니까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야 합니다. 순간순간의 연장이 한 생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즐거움만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기에 나 자신만이라도 즐거움을 만들며 살아야 합니다. 즐겁게 살되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각자 자기 삶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이 자리에서 헤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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