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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은 식탁 - 세계 뒷골목의 소울푸드 견문록
우에하라 요시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어크로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차별받은 식탁.
이 제목만 보아도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간다.
여기에 한번 더 부제.
세계 뒷골목의 소울푸드 견문록.
음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하루 하루 생존하기 위해 입으로 구겨넣어야 하는 것일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제대로 된 맛을 느끼기 위해 단 몇 번만 집어 먹고는 더 이상 그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비싸려면 한없이 비싸질 수 있고, 저렴하려면 한없이 저렴해질 수 있는 음식.
저자는 오사카의 한 부락 출신이라고 한다. 부락? 이게 뭘까?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전근대 일본의 신분 제도에서 최하층 천민들이 살던 곳을 부락, 그곳에 살던 이들을 부락민이라고 부른다며 신분제 철폐 이후의 근현대 일본에서도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천민의 후예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태어났던 곳은 오사카 나부의 '사라이케'라는 부락이었고, 현재 이 지명은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주민이나 관계자들에게는 불리는 지명이며 부락민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사는 곳을 부락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곳 주민의 80퍼센트가 식육업에 종사했으며 저자의 아버지도 지금까지 식육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 나라의 백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일반 지역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죽은 소와 말의 고기를 먹기 쉽고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한 음식들이 생겨났으며, 그 중 하나가 소 창자를 바싹 튀긴 아부라카스라는 요리라고 한다. 저자는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자신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이 음식이 일반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어른이 된 지금은 오히려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에 긍지를 갖게 되었다는 저자는, 어느 날 '각국의 차별받은 사람들이 서로 엇비슷한 소울푸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세계 곳곳의 차별받은 이들의 독자적인 식문화를 취재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기가 범람하는 요즘이다. 음식에 대한 서적도 마찬가지. 그 수많은 시류에 영합하는 책들 속에 이 책이 유독 가슴을 울렸던 것은, 우리가 열광하던 부분 이면, 잘 모르고 있던 부분에 대해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도달하기까지 저자 개인의 삶을 생각하면 뭉클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 음식에 포커스를 맞춘 책이 아니다. 음식은 삶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매개체인 것이다. 여기 나오는 음식들의 공통점은, 지배층이 먹지 않는 식재료를 가지고 가공하여 피지배층의 배고픔을 채워주었다는 것이다. 세계 뒷골목의 음식을 맛보면서, 저자는 음식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탄생시켰던 차별하는 문화가 공식적으로만 사라졌을 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다.
"당시 우리와 대립했던 KKK멤버나 백인들을 지금도 거리에서 마주치고 있어요. 모두 침묵을 지키고는 있지만, 상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요. KKK의 창설자 중 한 병이었던 포레스트 장군의 동상이 그 증거입니다. 셀마에 흑인 시장이 나오자, 백인들은 이에 대항해서 마을 공동묘지에 그의 동상을 세웠지요."(중략) 이 흑인 청년의 말에 따르면, 이 동상이 세워진 것은 불과 4~5년 전이라고 한다. 그는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이런 시대착오적인 일이 어딨어요"하며 중얼거린다.
저자가 2004년 가을에 미국을 방문했을 테니 "이런 시대착오적인 일"은 2000년 쯤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2008년 말이고 임기를 시작한 것이 2009년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발전이 빠른 나라라고 긍정적인 해석을 해야 할까, 아니면 공식적인 평등 이면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크다는 쪽으로 해석해야 할까? 출신에 상관없이 개인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환상에 균열이 갈 때 쯤, 브라질의 상황이 등장한다.
"지금은 백인들에게서 받는 직접적인 차별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신문에는 흑인 범죄만 보도되고 있습니다. 브라질 정부는 교육이나 환경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우는 데는 태만하고요. TV에 출연하는 아이들도 전부 백인입니다. 나도 어렸을 떄 TV에 나간 적이 있는데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매우 분한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도 피부가 하얗지 않으면 TV에 나가는 건 꿈도 꾸기 어렵죠. 백인을 동경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회사 중역을 비롯해 정부 요직 인사, 모델 등의 직업은 대부분 백인이 차지하고 있고, 그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보이지 않는 차별을 운운하는 것도 브라질의 상황에 대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 중역, 정부 요직 인사, 모델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검은 피부의 미국인들을 생각하면 TV에 출연조차 힘들다는 브라질의 현실은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런 현실들에 주목했던 여행기들이 많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사람의 특성이라면, 유독 이 작가의 시선을 붙든 이유는 아마도 그 자신이 미국과 브라질의 흑인 노예, 불가리아와 이라크의 로마, 네팔의 불가촉민에게 강한 공감을 보일 수 밖에 없는 배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부자 나라, 선진국의 국민이었기 때문에 뒷골목 출신이더라도 자국에서 인정 받는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그 또한 타고난 환경을 벗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전쟁 등의 인재를 포함한 대재해가 일어나면 피차별민에 대한 박해가 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일본에서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을 학살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제 2차 대전 말기에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었을 때, 그날 밤 히로시마의 부락을 군대가 포위했던 사건도 있었다. 이는 천재지변을 이용해서 차별받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한 일반 주민이나 정부가 벌이는 히스테리적인 행동이며, 근본적으로는 주민들이 그들을 일상적으로 차별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부분을 보면 '그들의 식탁에 앉다'라는 프롤로그가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음식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음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강하게 기억으로 남는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여행은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분명히 작가는 밝히고 있고, 실제로도 유럽의 로마를 취재하면서 스스로를 '일본의 로마'라고 소개했다는 점에서 취재 대상인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도 저자가 소개한, 이라크의 알피다 지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텐트촌과 똥오줌 방을 보고 나서 돌아가려는데 생긴 일이다. 몇 사람이 사례를 요구해왔고, 나는 리더에게 이라크 돈 몇 장을 건네주고 이 정도면 됐는지 물었다. 그들이 고개를 그덕이기에 우리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차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이들이 차까지 따라와서 돈을 요구했다. 매일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은 끈질기게 돈을 달라고 매달렸다. 며칠이나 씻지 않은 그들의 새까만 얼굴과 이곳저곳 찢어진 옷을 걸친 모습에 나는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중략)
"잘 들어, 나는 일본의 가잘이야. 넌 지금 이라크인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가잘에게도 돈을 구걸하는 거란 말이야. 그 먼 일본에서 너희를 만나러 온 가난한 가잘에게도 그렇게 돈을 뜯어내고 싶니!" 그러자 험악한 나의 기세에 놀란 소년은 그때까지 내밀고 있던 손을 쏙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너덜너덜한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50디나르를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려고 했다. 나는 아차 싶고 가슴이 뭉클해져서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초콜릿을 꺼내 나에게 먹으라고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지금 난 배가 부르단다. 건강하게 지내."
이렇게 말하자 소년은 빙그레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순간이다. 비슷한 일화는 네팔의 불가촉민 가족과의 만남에서도 있다.
"저희 집에 와주어서 기뻤어요. 지금까지 일부러 저희 집을 찾아와준 사람도 없었고, 함께 소고기를 먹어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중략)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고빈다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이제 그곳에 지테는 없었다. 가족의 얘기에 따르면, 포카라의 마을로 나간 뒤 벌써 반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뒤 다시 들은 얘기에 따르면, 그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인도에 돈을 벌러 갔다고 한다.
미국의 프라이드 치킨이 흑인들만 먹던 음식에서 전세계에 확산된 미국의 대표적인 국민 음식이 되었고, 브라질의 하층민의 음식이던 페이조아다가 지금은 고급 음식이 되어 오히려 돈이 없는 사람들은 못 먹는 음식이 된 반면, 네팔에서 불가촉민만 먹던 소고기는 이제 불가촉민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차별받는 가장 큰 이유가 소고기를 먹기 때문이라고. 종교적 신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네팔 불가촉민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차별받으니 소고기를 먹지 말라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외친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먹던 그 맛을 잊을 수 있을까. 외국에 나갈 때마다 소고기를 먹는다는 그는 특히 한국의 소고기 맛이 기가 막히다고 이야기한다. 국외로 나갈 기회가 많은 네팔의 지식인들 중에는 최고 계층인 브라만이라도 소고기를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음식이 주는 힘은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