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 번은 한 여성 작가의 수필집에서 이 책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보았고, 그 길지 않은 설명 속에 이 소설을 시작하는 첫번째, 두번째 문장이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기억.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트와 헤어지는 순간부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기억.

 

무엇보다 어.두.운.상.점.들.의.거.리. 라는 이 책 제목이 자꾸 마음을 흔들었고,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파트릭 모디아노가 201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본 수필집과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사이에 그 일이 있었고, 아마도 그 후에 우리나라에서도 관심히 급격히 높아져서 이 곳 저 곳에 언급되다 보니 내가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했나 보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평생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하며 글을 썼다고 스스로 밝혔다고 한다. 내가 읽은 모디아노의 책은 이게 유일하지만, 이 책은 모디아노가 평생을 파고든 단 하나의 테마를 설명한 책 중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다고 하니, 아마도 이 책만 제대로 보아도 모디아노에 대해 어느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제는 이 책만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것.

 

이 책의 주인공은 기 롤랑이라는 탐정. 어떤 특정한 사건 이후로 기억을 상실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파리의 흥신소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일을 하게 된다. 흥신소 주인이 일을 정리하고 니스로 낙향하면서 기 롤랑은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한 추적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일 것이라고 확신하다가, 추적하는 과정에서 가정은 틀렸음을 알게 되고, 추적 과정에서 만난 이 사람은 내 인생에서 이런 의미를 가진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그 추정은 틀렸음을 확인한다. 결국 가장 가까웠던 세 명,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만나지 못한다. 그저 주변 사람들만 만나서 계속 탐문하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조각조각을 모아 기우는 과정을 해야 하고, 결국 그 기억의 총합은 마치 듬성듬성 빠진 퍼즐처럼 미완성 상태에 계속 머무른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기억조차도 불확실한 것이 아닌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영화 '메멘토'가 떠오른다. 물론 주인공의 기억 상실의 방향이 전향성과 후향성으로 다르며, 한 쪽은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저런 쪼개진 기억들의 파편을 붙들어서 자기 자신을 정의하려 애쓰는 과정은 많이 닮아 보이며, 결국에 진짜 나에 대해서는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런데 다 보고 나면 과연 나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적도 없는 나의 기억은 얼마나 완전한 것이며, 과연 나는 누구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나를 처음 본 사람이 나에 대해 소개해 달라고 한다면 여태까지 이러저러하게 살아온 과정을 설명할 텐데, 그 과정은 나의 기억에 의한 지극히 주관적인 단서들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면 진짜 나라는 것은 나의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진실한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주인공은 자신을 프레디라고 생각하고, 프레디 입장에서 마치 기억이 돌아온 것처럼 과거를 서술하지만, 결국 자신은 프레디가 아니고 페드로라는 것이 밝혀지고, 다시 페드로 입장에서 과거의 중요한 사건을 길게 서술한다. 그런데, 만약 이 소설이 좀 더 길어진다면, 주인공은 프레디도 아니고 페드로도 아니고 또다른 제 3자로 결정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주인공은 또 다시 그 사람 입장에서 자신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고... 즉, 주인공이 페드로라는 것도 사실 불확실한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페드로라고 생각했기 떄문에 구체적으로 페드로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고, 만들어진 이야기가 진짜라고 믿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의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이전에 프레디라고 믿고 마치 기억이 돌아온 것처럼 프레디 입장에서 기억을 서술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나를 만난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는 내가 상대를 기억하지만 상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나는 상대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상대는 나를 잘 기억하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설령, 둘 다 서로를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내 생애 전체로 보았을 때 아주 일부에 불과한 시간만을 공유한 타인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사소한 부분들이며, 그 부분 조차도 시간이 흐르면서 색이 변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나와 상대가 서로에게 가지는 의미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 즉, 나의 인생에서 상대의 가치와 상대의 인생에서 나의 가치가 늘 같을 수는 없다는 것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주인공이 여행하며 만난 이런 저런 사람들이 주인공에게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을지 몰라도 그 사람들 중 일부는 어쩌면 주인공을 한때 만났던 사실조차도 희미해지고 종국에는 기억에서 지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 중 주인공의 자아 찾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매우 세밀해서 혹시 나중에 이 사람이 중요한 인물로 다시 등장하려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배신당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것 또한 작가의 계산이라면, 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에 대해 이렇게까지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일까, 생각하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는 것 또한 독자들의 관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면서, 누군가의 인생에는 비중있는 조연일 것이고, 누군가의 인생에는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들 나름대로의 스토리는 얼마든지 쓰여질 수 있으며, 그 이야기에서 그들은 주인공이고, 이 책의 주인공은 또 거기에서 스쳐지나가는 인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총 마흔 일곱 장으로 되어 있다. 노력해서 일부러 장을 마흔 일곱 장으로 맞추었다는 느낌이 있다. 어떤 장은 단 한줄의 주소로만 이루어진 장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책이 시작되기 전, '루디를 위하여 아버지를 위하여'의 그 루디가 태어난 해가 1947년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 뒤쪽에 나오는 연보에서 태어난지 10년만에 세상을 떠난 남동생 루디를 무척 아꼈던 작가는 1967년에서 1982년 사이에 발표한 초기 작품들을 루디에게 헌정했다고 나와 있다. 태어나 단 10년을 살다간 남동생이 적어도 서른 일곱살까지는 작가를 강하게 지배했다는 뜻이다. 동생의 죽음은 작가의 어린 시절의 종말을 의미했고 작가는 이 시절에 대한 간절한 향수를 지닌다고 연보에도 설명되어 있는데, 과연 그 둘의 관계는 어떤 사이였을까, 어떤 의미였을까, 하고 자꾸 생각하게 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의미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 10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길래, 혹은 그 10년 뒤에 어떤 일들이 있었길래 작가는 계속 그 시절을 그리워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