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가지 수수께끼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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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는 크게 두 명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작가이다.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며 뜨개질과 수다로 소일하는 미혼의 할머니인 마플 양, 벨기에라는 국적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세계적인 탐정 푸아로, 두 명 다 놀라운 기억력과 날카로운 두뇌 회전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 책은 열 세 가지 수수께끼, 즉, 열 세 가지의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해결하는 주인공은 마플 양이다.

 

이 마플 양이 매력적인 것은 그의 손자가 직접 쓴 해설에 나와 있다.

 

마플 양은 죄를 지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를 엄격히 따르는 인물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이론은 복잡할지 몰라도 정의 실현의 중요성을 강조할 떄는 단호하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언제든지 죄인을 단죄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녀의 판단은 냉정하고, '말랑말랑한' 인도주의나 현대식 감상주의에 젖지 않는다. '세상이 얼마나 사악한지' 알기 떄문이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의 낭만적인 발상을 대하면 인자하게 미소 짓지만, 우리 할머니처럼 항상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며 행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에 가서 그녀의 예상이 항상 들어맞는 것을 볼 수 있다. 단호하고 정의로운 마플 양의 모습은 우리 할머니의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 같다. 우리 할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평소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범들은 사회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계셨다. '중요한 건 범인이 아니라 결백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마플 양의 대사는 바로 할머니의 생각을 대변하는 셈이다.

 

화요일 밤 모임

매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문제를 내는 모임이 만들어진다. 멤버는 총 6명, 제인 마플, 그녀의 조카인 작가 레이먼드 웨스트, 화가 조이스 랑프리에르, 은퇴한 런던 경시청장 헨리 클리서링, 교구 목사인 펜더 박사, 변호사 페서릭.

첫번째 차례는 경시청장이었던 헨리 경. 저녁으로 바닷가재 통조림을 먹은 세 사람이 한밤중에 모조리 복통을 일으켰고, 두 사람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한 명은 목숨을 잃은 사건. 목숨을 잃은 사람의 남편이 범인으로 의심되었고 부검 결과 많은 양의 비소가 검출되었다. 그러나 정황상 아내에게 비소를 먹이기란 불가능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동기가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아스타르테의 신당

펜더 박사의 젊은 시절 이야기. 다트무어 변두리의 한 저택. 펜더 박사의 친구이며 저택 주인인 리처드 헤이든과 사촌인 엘리엇 헤이든, 매너링 부인과 그 딸 바이올렛, 로저스 대령 부부와 젊은 의사 사이먼스, 그리고 헤이든이 푹 빠진 아름다운 다이애나 애슐리. 저택 안 침묵의 숲에는 고대 셈 족의 여신의 신당처럼 보이는 유적들이 있고 감상적인 다이애나의 제안으로 그날 밤 바로 그 장소에서 파티가 열린다. 그리고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다치게 된다.

 

금괴

젊은 작가 웨스트의 이야기. 새롭게 알게 된 존 뉴먼이라는 사람과 함께 콘월로 향하게 된다. 뉴먼은 엘리자베스 시절 스페인의 함선이 어마어마한 금을 싣고 떠나가다 콘월에서 난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양 작업을 위해 그곳으로 향하고 당시 쓰고 있던 소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웨스트가 동행하게 된다. 그 곳의 캘빈이라는 남자는 외지인에 적대감을 드러내고, 얼마 후 존 뉴먼은 실종되었다가 사지가 결박되고 재갈을 물린 상태에서 발견된다.

 

피로 물든 보도

조이스의 이야기도 콘월 지방을 배경으로 한다. 우연히 만난 한 쌍의 부부와 여인. 이틀 뒤 신문에 아내가 머리를 세게 엊어맞은 상처가 있는 채로 발견된다.

 

동기vs기회

거대한 유산을 가지고 있는 사이먼 클로드는 말년에 심령술에 빠져 엉뚱한 사람에게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을 변호사 앞에서 쓰게 된다. 여러 번 봉투가 바뀔 기회가 있었는데, 정작 기회가 있는 사람은 동기가 없고, 동기가 있는 사람은 기회가 없었다. 두 달 후 클로드의 사망 후 변호사는 금고를 열어 유언장을 확인하지만 봉투 안에는 백지만 들어 있다.

 

성 베드로의 엄지손가락

제인 마플이 사건을 해결했던 이야기. 조카 메이벨이 남편과 크게 다툰 후, 남편이 사망한다. 자살하려고 당일에 비소를 구입했던 메이벨이 의심을 받고, 부검에서는 정확한 사인을 밝히지 못했다. 식중독과 아트로핀 중독, 필로카르핀의 의미.

 

파란색 제라늄

1년이 지나고, 멤버가 바뀌었다. 전직 런던 경시청장인 헨리 경, 그의 친구인 벤트리 대령과 그 부인, 나이 지긋한 의사 로이드 박사, 아름다운 유명 배우 제인 헬리어, 그리고 마플 양. 벤트리 대령의 친구인 조지의 아내는 심령술에 몰두해 있다. 파란색 제비꽃을 이상한 신념 때문에 싫어하는 조지의 아내. 결국 이상한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가 배달된 후 아내의 침실 벽지에 파란색 달맞이꽃이 나타난다. 한 달 후, 벽지를 샅샅이 살핀 아내는 파란색 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데 이번에는 파란색 접시꽃이 등장한다. 한 달 후, 사망한 아내의 침실에서 파란색 제라늄이 나타난다. 부검을 했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동행

로이드 박사의 오래 전 이야기. 라스팔마스라는 섬에서 만난 두 여자. 메리 바턴과 그녀에게 고용된 에이미 듀란트. 수영하다가 에이미는 사망하고 메리만 살아남는다. 메리는 단순히 사고라고 했지만, 모든 정황은 마치 메리가 의도적으로 죽이려고 한 것 처럼 보이고, 결국 메리는 에이미에 대한 사죄의 글을 남기고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네 명의 용의자

헨리 경의 이야기. 한때 슈바르체 핸드라는 독일의 비밀 결사를 와해하는 데 공을 세운 로젠 박사. 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그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시신이 되어 발견된다. 용의자는 총 4명. 조카인 그레타, 비서, 40년 동안 일한 가정부, 잡역부 겸 정원사. 아무도 살인 의도가 없어보이지만 알리바이가 있는 사람도 없다. 갈수록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들.

 

크리스마스의 비극

살인자는 잡았으나 결국 살인을 막지 못한 샌더스 부부에 대한 마플 양의 이야기.

 

독초

말주변없는 밴트리부인의 스무고개식 사건 풀이. 깍듯하고 멋진 노신사 암브로스 경, 그가 돌보던 아름다운 아가씨 실비어 킨, 실비어의 친구 모드, 이웃사촌 제리 로리머, 실비어를 돌보던 카펜터부인, 그리고 밴트리부부. 디지털리스가 섞인 샐비어를 먹고 사망한 실비어. 그러나 그날 식사를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이 먹었고 탈이 났다. 거기다 심장질환이 있었던 건 암브로스뿐. 마플 양의 놀라운 추리.

 

방갈로에서 생긴 일

아름다운 여배우 제인 헬리어의 이야기. 아귀가 안 맞는 이야기의 사정을 알고 나면 마플의 예지력뿐 아니라 인품에도 감탄하게 된다.

 

익사

세인트메리미드의 밴트리 부부의 집에 머무르고 있는 전직 런던 경시청장인 헨리 클리서링 경을 마플 양이 찾아온다. 순진한 시골 아가씩 로즈 에못, 런던에서 온 환영받지 못한 손님 샌드퍼드, 엄한 아버지, 배신, 이 아가씨를 죽도록 사랑한 마을 청년 조 엘리스. 최근 일어난 익사사건의 진범을 알고 있다는 마플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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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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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물론 책 중반에 작가를 소설 속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독서 태도에 경고를 보내는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소설 속에 착 붙어 있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소년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실제로 아버지의 부재가 있었던 어린 시절, 10대에 서울로 이주했던 기억, 서울로 이사했을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는 점, 신학대학에 입학했다는 점이 작가와 소설 속 박부길이 일치하는 부분이며, 그 과정의 모든 희노애락이 아마도 그대로 이 소설에 녹아있을 것이다. 외로움의 정서, 결핍의 정서, 낯선 것과의 조우 등은 그때부터 작가 이승우를 계속 지배했을 것이다.

 

읽다 보면 술술 읽힌다. 어쩌면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묻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그 시대를 지나왔으면 누구나 공감할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느끼는 감정, 첫사랑 앞에서 의욕만 넘치고 요령은 몰랐고, 감정에만 매몰되고 배려를 할 줄 몰라서 겪었던 실연 등이 있어서 어떤 독자라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고, 재미가 느껴진다.

 

특유의 기독교적 세계관은, 크게 상관은 없는데 왠지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가 생각나기도 했다. 내용의 연관은 전혀 없는데도. 이래 저래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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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운드 - 차우진 산문집
차우진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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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쩌다 보니 음악 비평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할 자신은 없다. '지잡대'를 나온 주제에다 학위도 없고 4대 보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계속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아직도 하루치의 마감을 하고 그저 다음 달을 걱정하는 삶을 살지만, 어쨌든 내 몫을 해내려 애쓰고 있다. (중략) 어쩄든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그저 지금을 응시하면서 좋았던 혹은 나빴던 과거는 서랍 안에 고이 처박아두고, 향수 따위에 발목 잡히거나 강박 같은 것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나도 '21세기의 위대한 음악 비평집'을 쓰겠다는 강박을 버리겠다. 무엇보다, 음악이란 그저 인생의 사소한 엔터테인먼트이고 삶에는 음악보다 좋은 게 100만 개쯤은 더 있다. 그러니 어쨌든 살아남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자.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또한 우리 모두에게 럭키를.

 

서문 '청춘의 사운드, 혹은 당신에게 럭키를' 중에서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대중가요는 물론이고, 팝이나 재즈,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음악이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무지한 편인 나에게는 그렇다. 왠만한 영화에서는 어떻게든 그 영화만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편이지만, 음악은 그게 잘 안 된다. 공부하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는 가운데에서도 음악 때문에 거슬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규칙을 유일하게 피해가는 것이 영화 OST. 그 영화의 내용과, 분위기와, 느낌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추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그래서 상당수 이 책에 나오는 노래 중 아예 모르거나, 제목만 알거나, 들어 봤어도 크게 임팩트가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제로였던 특정 노래에 대한 내 관심도가 이 책으로 인해 조금은 올라갔다는 것. 책을 읽는 동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져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대로 싫었던 행동을 무심코 할 수 있게 된 것. 특정 대상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은 줄고, 호의가 늘었다는 것.

 

이 책은 음악 평론가가,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적은 수필집에 가깝다. 주관화의 객관화, 혹은 그냥 주관화에 머물렀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특정 가수는 절대 노래를 잘하지는 않지만, 매력이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가수의 프로필이 노래의 성공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소감에 영향을 주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래서 나같은 사람들이 더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편안하게.

 

한 번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그 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노래를 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컴퓨터를 틀어 검색어 창에 누르고 클릭해서 음악을 들어보았는데, 역시, 얼마 안 되어 끄고 말았다. 꿈보다 해몽. 꼭 꿈을 꾸어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해설이 훨씬 더 재미있을 때도 있으니까.

 

학교가 있는 안산에서 몇 해를 보내는 동안, 나는 막연히 뭔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엇다. 이 학벌론 안 될 거야, 이 학점으론 안 될 거야, 이 집안으론 안 될 거야, 등등.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서 세상이 어떻고 글이 어떻고 문학이 어쩌고 했던 얘기들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부끄러웠다. 그냥 토익이나 공부하고 말지.(중략) 한국의 중심이 서울이라는 건 영화 개봉일만 봐도 알 수 있던 떄였다. 하지만 서울은 늘 가깝고도 멀었다. 거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고, 그럼에도 너무나 절실하게 그 안에 있고 싶었다. 그 점에서 <송시>의 '전과자'가 웃으라는 말에 웃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와 닿았다. 물론 그게 오히려 그들을 타자화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야 했다. 게다가 미선이는 서울대 학생들의 밴드였고, 앨범에서 풍기는 감수성이 실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애들의 흉내 내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편 재수 없엇다. 그러나 닮고 싶었다. 부러웠다. 음악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재능이 부러웠고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부러웠으며 동시에 이상한 박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게 질투였는지 동경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둘이 대충 아무렇게나 뒤섞였을 것이다.

특정 음악이나 음악가가 한 시대를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압도적인 하나'를 기필코 찾아내 그걸 신화적인 위치에 놓고 싶어 한다. 21세기의 비평가와 언론들, 음악 팬들이 펫샵보이즈를 이곳으로 불러오는 맥락도 그렇다. 하지만 언제나 이것은 오만이고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내가 1980년대를 학생운동이나 롤라장이 아니라 너덜해진 니코보코 운동화의 뒤축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80년대의 사운드는 펫샵보이즈이기도 하고 런던보이즈이기도 하고 김완선이나 어떤 날일 수도 있다. 의미는 동일하지 않고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자의적이고 경험적이다. 그래서 대표적인 언어보다는 파편화된 언어가 더 중요할 것이다.

세상이든 사람이든 홍대앞이든 변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변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난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좋았던 시절은 다 지나가지만, 누군가에겐 지금이 가장 좋은 시절일 것이다. 이걸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 무엇도 납득할 수 없게 된다. 조금 쓸쓸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장혁의 <스무살>. 책 때문에 처음 알았는데 좋다.

 

*아이유가 부른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아이유 정말 좋아하고 김창완 노래의 리메이크도 좋았지만 정말 이 노래만큼은 가을방학 원곡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아이유가 부르면서 지나치게 매끄럽고 뽀송뽀송해져서, 원곡의 투박하고 성긴, 탁한 그 맛이 없어진 느낌. 맑고 고운 목소리가 오히려 상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니.

 

*맨 마지막, 에필로그와 별도로 음악 비평과 비평가에 대한 글을 덧붙인 것도 재미있었다. 종종 음악 비평의 쓸모없음과 직면하면서 무기력해지는 자신과, 순수 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암묵적인 이분법, 거기에서도 같은 대중문화에 속했다고 생각되는 영화 평론과 비교될때 상대적으로 비평이라고 부를 만한 작업이 벌어지는 공적 공간 자체가 드물다는 현실, 음악 자체로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학적인 관점의 해석이 요구되며, 본질적으로 모호한 음악이기에, 거기에 대한 해석조차도 애매하다고 느껴지는 사실, 지금의 음악 비평가는 음악 산업 안에서 약소한 권위에 기댄 홍보 담당자가 아닌가 싶을 때도 많다는 자괴감.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저런 음반을 다 사고 들어볼 정도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느껴지는데, 사실상 현실은 그보다 너무나 팍팍해 놀랐다. 음원시장 자체가 얼어붙어 있고 상당히 치우침이 심한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은 예전부터 들렸기에, 그 음악 산업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일생이 고단할 수도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냉정하게 본다면 비평이란 어쩌면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빛이 없는 우주 공간에는 그림자가 없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가 없듯이, 비평하는 대상이 없거나, 부실하거나, 힘이 없다면, 그 분야의 평론가들은 더 무기력해질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매우 자주, 어쩌면 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이란 그 장르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고민하고, 누군가로부터 욕을 먹으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지라도 끝까지 그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슬펐고, 한편으로는 따뜻해졌다.

 

*책 뒷면을 보니 1쇄 발행 후 보름만에 2쇄를 발행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책이 작가에게는 사랑하는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음악 평론가의 길을 꿋꿋히 가게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꼭 그랬으면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가 이 다음에 쓸 책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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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완전판) -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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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서문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내 책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인 것 같다. 이 책은 나의 초기 작품으로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일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이 성공을 거둔 것은 그 중심 아이디어 덕분인 것 같다. 그것은 단 한번만 쓸 수 있는 종류의 아이디어로 독창적이고 거의 언제나 읽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저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해 볼만한 기교적 도전이었다. 몇몇 독자들은 결말을 알고는 분개해서 "이건 속임수잖아!"라고 외치기도 했다. 내가 조심스러운 단어 사용과 다양한 문장 구사를 동원해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 즐거워했다는 비난이다. 이 책은 내가 유쾌하게 써내려간 작품이다. 또한 작중 인물 중 하나인 의사의 누이 캐롤라인에게서 커다란 즐거움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알리바이」라는 제목의 희곡으로 개작되었을 때 호기심 많고 위압적인 중년의 캐롤라인은 돌연 사라져 버리고, 예쁘고 매력적이지만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젊은 여자로 바뀌고 말았다. 저자에게 이보다 더한 슬픔이 또 있으랴! 

 

애거서 크리스티

 

만약 작가들의 서문만 모아서 순위를 매긴다면, 단연코 이 책은 최고상의 최종 후보에 남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내 책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면서도 정확히 몇 번째로 출판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작품을 써낸 사람에게 나오는 자신감, 당당하게 이 책의 아이디어는 독창적이며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종류의 기교를 써낸 대담함, 자신의 소설을 바탕으로 개작한 희곡에 대한 과감한 지적과 비판, 서문만으로도 반하게 만들었다.

 

 

로저 애크로이드라는 사람이 사망했고, 그의 친구이자 이 책의 화자인 셰퍼드 의사가 최근 마을로 이사온 탐정 포와로와 함께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다 읽고 나면, 아, 하는 생각과 함께, 서문에 작가가 쓴, '한번만 쓸 수 있는 아이디어', '해 볼만한 도전', '조심스러운 단어 사용'등의 문구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고, 이 거대한 속임수를 얼마나 작가가 촘촘하게 짜 놓았으며,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 모든 단어가 사실은 작가가 굉장히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을 돌이킬 수 있다. 다시 책을 앞으로 돌려서 읽는 것을 반복하면, 더더욱 감탄하게 된다. 다만, 사건의 모든 단서들을 셰퍼드의 눈을 통해서만 알 수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약간 답답한 느낌은 있고, 등장 인물 한 명 한 명에 대한 묘사가 다 세밀하지는 않고, 몇 몇 인물에만 몰아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작가가 자신있게 서문에 밝힌 대로 의사의 누나 캐롤라인의 캐릭터는 작가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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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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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은 서울, 또는 서울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도시.

2. 펼쳐지는 이야기의 장르는 SF.

3. 공간은 구체적인데, 그 공간 속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다. 미래에는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현실이 아니다.

4. 걸을 때마다 발의 두께의 절반이 잠기고, 때로는 무릎까지 잠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씩 헤쳐 나가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 있다. 예를 들면 조정래의 몇몇 작품들. 몸이 밑으로 잠기지는 않아도 최소한 뚜벅뚜벅 발을 디디며 걸어가는 소설이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들. 그런가 하면 살짝 발끝을 들고 걸어가는 소설이 있다. 이 책의 몇몇 작품들. 아예 공중에 붕 떠 있는 소설도 있다. 이 책의 나머지 작품들.

5.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수 있다. 일단 재미있다. 작가의 상상력,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지? 감탄하고야 마는 창의적인 발상. 그리고 눈에 환히 보이는 듯한 묘사.

6. 그런가하면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할 수도 있겠다. 이야기가 더 진행될 것 같은데 끝나버리는 경우가 있으며, 여기쯤 끝내도 될 것 같은데 부연설명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고, 난 저 사람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데 왜 이 이상 설명을 해주지 않지? 하는 경우도 있으며 과하게 특정 사물에 대한 설명이 이어질 때도 있다.

7. 진한 감동, 희노애락의 절정, 울컥하는 그 느낌 등을 원한다면 이 소설을 보고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흡입력이 있어서 책장이 쉽게 넘어가며, 몇몇 작품은 영화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다. 확실히, 재미는 주는 소설. 하지만 재미 이외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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