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일의 아프리카 - 스물둘, 처음 만난 남자와 떠난
황윤하 지음 / 예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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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물 두 살의 아가씨가 처음 만난 남자와 105일 동안 아프리카를 다녀왔단다. 이쯤 되면 여장부 혹은 소위 되바라진(?) 20대 처자가 떠오를 법도 하다만 자신이 쓴 글을 통해 등장하는 화자는 놀랄 만큼 소심한 면이 많고, 또 섬세한 면이 많다.

 

20대의 배낭여행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대학생이라면 수험생 시절부터 품었던 소망인 ‘대학에 가면 꼭 배낭여행을!’ 실천에 옮기려고 한다. 나또한 그렇다. 내 주변도 다 그렇고. 지은이 또한 처음에는 그랬다. 자신도 스스로 예상하지 못했고 이해도 잘 안 가는 행동을 옮기는 것은, 아마도 20대 초반이어서가 아닐까? 뭐든 할 수 있다는 신체적인 젊음, 실패나 아픔을 충분히 겪지 않은 까닭에 주저함이 배제된 정신적인 젊음, 이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취향, mind와 soul, 가치관과 소망 등이 아직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 살짝 경계를 넘어 저쪽에 발을 딛기만 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또 그 결과로 인한 성장이 기다리고 있다. 49대 51의 심정으로 기울지만 그 기울기가 인생 전체를 바꿀 수도 있는 게 젊음이다. 아마 저자 또한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기는 내게 여러모로 감동을 준다. 진짜 ‘젊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다 가니까, 대학생 때 배낭여행 한 번은 가줘야 하니까, 갔다 와서 미친 듯이 찍었던 디카 사진 미니홈피에 올리고 밑에 한 두 줄로 맛있었다, 멋있었다, 사진보다 못했다, 여기 오니 또 보고 싶다.... 이런 감상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이다. 비싼 돈 들여서 외국까지 갔다 왔으면, 분명히 ‘뭔가’를 가지고 와야 한다. 절실한 뭔가를, 평생의 자국으로 남을 수 있는 뭔가를...

 

그녀는 진짜 아프리카를 보고 왔다. 여행도 여행기도 좋아해 이것저것 다 읽는 나에게 이렇게 다녀온 나라의 팔딱팔딱 뛰는 모습을 보여준 여행기는 없었다. 읽다 보면 질투가 난다. 어떻게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이런 근사한 책을 펴냈지? 이런 책을 펴낼 정도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지?

 

아직도 저자는 여행 중이다. 물론 한국에는 왔지만 아직 그녀의 삶은 부정형이니까. 그녀의 다음이 또 여행이라면, 그 여행기 또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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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날들 -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시간
김신회 지음 / 웅진윙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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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은이에게 여행이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저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가장 보통의 날들’일뿐이다. 여행이 축제가 아니라 여행을 다녀옴으로써 일상이 축제가 된단다. 지은이의 여행의 하루하루는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보통의 날인 것이다.

 

여행 책은 차고 넘친다. 그것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이 쓴 여행기, 특히 책을 후루룩 넘겨보니 분위기 있는 유럽 국가들의 사진이 들어온다. 짤막짤막한 글들과 함께. 이쯤 되면 편견이 생길 만하다. 꼭 금방 여행 다녀 온 여자들의 미니홈피를 보는 것 같다.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의 편견 또한 깨졌고, 어느새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지은이는 알고 보니 내가 알만한 유명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방송작가였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짧으면서도 핵심을 찌르고 공감을 자아냈나 보다. 그녀의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는 그림은 글과 함께 이중의 찌릿함을 주고 나의 추억 또한 생각나게 한다.

 

나보다 몇 살 많은 여자인 그녀. 사회에 발을 디딘지 몇 년이 되었을 그녀. 가장 화려해 보이지만 또한 가장 경쟁이 치열할 곳에서 일하는 여성인 그녀가 일상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또 어떤 마음으로 매번 여행 가방을 쌌을 지는 대강은 짐작이 간다. 일상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그녀의 글은 공허하지 않고 사진은 겉멋이 들지 않았다.

 

생소한 나라로의 여행을 앞두고 있는 지금, 벌써 그 나라를 다녀온 후 적은 그녀의 소감 덕분에 걱정했던 마음이 줄어들고 힘이 난다. 그 곳의 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재미있단다. 나도 두려움은 떨치고 며칠 동안을 그녀처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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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 2
선현경, 이우일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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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렇게 살 수도 있을까

 

결혼은 언제 할까? 그는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게 내가 받은 프러포즈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프러포즈는 늘 근사하던데, 역시 내 삶은 좀 코미디 같은 데가 있는 모양이다. 언제나 중요한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아무튼 우린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남편은 취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몹쓸 병에 걸려 있었다. 그는 술에도 취해 있었고, 사회에도 취해 있었다. 그럭저럭 돈 벌고, 그럭저럭 쓰며, 그럭저럭 사는 데 취해 있었던 것이다.

잠시도 아니고 몇 달이 될지도 모르는 기간을 비우고 나면 분명 일감이 떨어질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의 빈자리는 금방 메워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가겠다고 했다. 당장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가 문제라며, 이렇게 취해서 사는 인생을 청산해 보겠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다녀와서 당장 어떻게 먹고살 건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걱정되는 게 사실이었다. 돌아와서 둘 다 할 일도 없이 빈둥거리면 어떻게 밥을 먹고 사느냔 말이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 무슨 부귀와 영화를 누리겠다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며 아등바등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좀 길긴 하지만 미래를 위해 일단 떠나보기로 했다. ‘뭐 인생이 장난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인생은 장난이다. 재미있게 살려면 물불 안 가리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게 인생이다. 난, 아니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책갈피에 적혀 있는 선현경의 이 말이 책 전체를 대표한다. 남들은 보기에 장난이지만 본인들은 삶 자체에 충실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죽어라 공부하고 일하는 일들 모두가 인생의 ‘재미’를 위해서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부부야말로 가장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을 인생에, 혹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것은 이제 식상할 정도인 표현이 되어버렸다. 입학을 앞둔 예비 대학생들의 이른바 ‘머스트 두 리스트’이자 ‘위시 리스트’에는 재학 중 배낭여행이 빠지지 않는다. 한비야의 오지 여행, 김남희의 여자 도보 걷기 여행, 이 외에도 도쿄 카페 여행, 유럽 치즈 여행, 미국 캠핑카 여행, 각종 여행, 여행, 여행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 여행서도 지역별, 주제별로 세분화되었고, 여행자들의 여행 목적도 다양하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신혼여행을, 평생에 단 한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한번이어야 할)인 이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 있는 간 큰 부부가 있을까?

내가 읽은 이 책은 10년 만에 복간되었다. 결혼이라는 단어에 대해 귀를 쫑긋하게 된 지 이제 얼마 안 되는 내가 무려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 때, 신혼집 얻을 돈으로 303일 동안 유럽 전역을 누빈 남녀가 있었다는 것이다. 10년 만에 복간되었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일은 아무나 못 벌린다는 것이다. 오직 이 부부만 할 수 있었기에 10년 전 여행기가 다시 나왔겠지. 몇 달만 지나도 새로운 정보가 업그레이드 되어 구식 취급 받는 것이 여행서 아닌가.

이 책으로는 최첨단 여행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여행서의 특징인 총천연의 이국적인 사진도 단 한 장 없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책을 집어든 다른 독자들도 이런 것들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신혼 부부 중 ‘아내’의 시각으로 본 ‘남편’과 ‘결혼’, 그리고 ‘세상’이다.

여행사에서 아무 문제없다고 장담하던 항공권이 말썽이 되어 신혼 첫날밤을 공항에서 지내게 된 웃지 못 할 사연, 여기서도 선현경은 인생이란 때로는 타인의 실수까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넉넉함이 자신 못지 않게 괴짜스러운(?) 남편과 별탈 없이 303일 동안 여행을 해 오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두 부부는 크게 싸우는 일이 없다. 태평함과 유머스러움을 놓고 보면 참 천생연분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는, 과연 이렇게 나와 딱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부러움이 함께 든다.

학생 시절 혼자 온 유럽의 한 여행지에서, 선현경은 ‘무슨 바람이 들었던지’ 지금의 남편에게 헤어지자는 엽서를 보냈다고 한다. 대학생 배낭여행을 다녀온 한 사람으로서 나도 그 ‘바람’에 공감하는 면이 있었다. 바로 그 장소를 그 사람과 함께 왔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만약 나도 결혼한 후 처녀 시절에 갔던 그 장소를 지나친다면 그 당시 떠올렸던 사람을 떠올리게 될까. 어떤 기분일까.

선현경의 다른 책들, 특히 ‘가족 관찰기’를 읽어보고 싶다. 완전한 유부녀가 된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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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선현경의 신혼여행기 1
선현경, 이우일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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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렇게 살 수도 있을까

 

결혼은 언제 할까? 그는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게 내가 받은 프러포즈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프러포즈는 늘 근사하던데, 역시 내 삶은 좀 코미디 같은 데가 있는 모양이다. 언제나 중요한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아무튼 우린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남편은 취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몹쓸 병에 걸려 있었다. 그는 술에도 취해 있었고, 사회에도 취해 있었다. 그럭저럭 돈 벌고, 그럭저럭 쓰며, 그럭저럭 사는 데 취해 있었던 것이다.

잠시도 아니고 몇 달이 될지도 모르는 기간을 비우고 나면 분명 일감이 떨어질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의 빈자리는 금방 메워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가겠다고 했다. 당장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가 문제라며, 이렇게 취해서 사는 인생을 청산해 보겠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다녀와서 당장 어떻게 먹고살 건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걱정되는 게 사실이었다. 돌아와서 둘 다 할 일도 없이 빈둥거리면 어떻게 밥을 먹고 사느냔 말이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 무슨 부귀와 영화를 누리겠다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며 아등바등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좀 길긴 하지만 미래를 위해 일단 떠나보기로 했다. ‘뭐 인생이 장난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인생은 장난이다. 재미있게 살려면 물불 안 가리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게 인생이다. 난, 아니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책갈피에 적혀 있는 선현경의 이 말이 책 전체를 대표한다. 남들은 보기에 장난이지만 본인들은 삶 자체에 충실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죽어라 공부하고 일하는 일들 모두가 인생의 ‘재미’를 위해서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부부야말로 가장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을 인생에, 혹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것은 이제 식상할 정도인 표현이 되어버렸다. 입학을 앞둔 예비 대학생들의 이른바 ‘머스트 두 리스트’이자 ‘위시 리스트’에는 재학 중 배낭여행이 빠지지 않는다. 한비야의 오지 여행, 김남희의 여자 도보 걷기 여행, 이 외에도 도쿄 카페 여행, 유럽 치즈 여행, 미국 캠핑카 여행, 각종 여행, 여행, 여행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 여행서도 지역별, 주제별로 세분화되었고, 여행자들의 여행 목적도 다양하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신혼여행을, 평생에 단 한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한번이어야 할)인 이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 있는 간 큰 부부가 있을까?

내가 읽은 이 책은 10년 만에 복간되었다. 결혼이라는 단어에 대해 귀를 쫑긋하게 된 지 이제 얼마 안 되는 내가 무려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 때, 신혼집 얻을 돈으로 303일 동안 유럽 전역을 누빈 남녀가 있었다는 것이다. 10년 만에 복간되었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일은 아무나 못 벌린다는 것이다. 오직 이 부부만 할 수 있었기에 10년 전 여행기가 다시 나왔겠지. 몇 달만 지나도 새로운 정보가 업그레이드 되어 구식 취급 받는 것이 여행서 아닌가.

이 책으로는 최첨단 여행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여행서의 특징인 총천연의 이국적인 사진도 단 한 장 없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책을 집어든 다른 독자들도 이런 것들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신혼 부부 중 ‘아내’의 시각으로 본 ‘남편’과 ‘결혼’, 그리고 ‘세상’이다.

여행사에서 아무 문제없다고 장담하던 항공권이 말썽이 되어 신혼 첫날밤을 공항에서 지내게 된 웃지 못 할 사연, 여기서도 선현경은 인생이란 때로는 타인의 실수까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넉넉함이 자신 못지 않게 괴짜스러운(?) 남편과 별탈 없이 303일 동안 여행을 해 오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두 부부는 크게 싸우는 일이 없다. 태평함과 유머스러움을 놓고 보면 참 천생연분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는, 과연 이렇게 나와 딱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부러움이 함께 든다.

학생 시절 혼자 온 유럽의 한 여행지에서, 선현경은 ‘무슨 바람이 들었던지’ 지금의 남편에게 헤어지자는 엽서를 보냈다고 한다. 대학생 배낭여행을 다녀온 한 사람으로서 나도 그 ‘바람’에 공감하는 면이 있었다. 바로 그 장소를 그 사람과 함께 왔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만약 나도 결혼한 후 처녀 시절에 갔던 그 장소를 지나친다면 그 당시 떠올렸던 사람을 떠올리게 될까. 어떤 기분일까.

선현경의 다른 책들, 특히 ‘가족 관찰기’를 읽어보고 싶다. 완전한 유부녀가 된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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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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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가까운 곳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학습관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다. 

On the Road... 

내가 기대했던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내가 예상했던 목적지보다 더 먼 곳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은 느낌이다. 카오산로드가 태국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방콕과 파타야에 가본 적이 있으면서도... 하긴 그 때는 패키지여행이었지. 괜히 민망해진다. 왠지 여행사의 패키지는 베낭 여행에 비하면 '상품'에 가까운 것 같아서, 특히나 나같은 대학생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베낭을 메든, 캐리어를 끌며 다니든, 내가 여행하는 동안 많이 행복했으면 된 것 아닌가? 힘든 여행 끝에 뿌듯해하는 것은 좋지만, 다른 이들의 여행 방식을 무시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여행이 아니지 않을까? 

태국이면서도 태국같지 않은 카오산로드에 대한 여행자들의 호불호는 엇갈린다. 이 책은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여행을 다니는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카오산로드는 여행자들이 늘 흘러 들어가고 흘러 나오는 곳. 여행의 시작이며, 중간 지점이며, 끝이다.  

몇 년씩 여행하는 이들이 대단해 보이면서도 정작 부럽지는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에게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며, 돌아왔을 때 일상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도 카오산로드는 가고 싶다. 나 또한 여러 번의 여행을 통해서 "여행을 하면서 느낀 자유라는 공기가 좀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4년간 꿈꾸고 준비한 세계여행을 덜컥 실천에 옮겨버린 신혼부부가 부러운 것은, 1년간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남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너무나 하고 싶은 부분이 놀랍게도 두 사람이 일치하는 것 때문이다. 

한비야는 계속 여행을 다니면서 물욕이 없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을 했는데, 이 부부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에는 몰랐던 신선한 충격이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다가 무작정 짐을 쌌다는 32살의 직장인. 내가 그 나이가 되면 어떨까. 나도 그렇게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결혼에 대한 부담감, 돌아왔을 때 내 기반이 없어지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 

여행을 하고 있는 세 아이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셋 다 나보다는 어린 나이이다. 말랑말랑한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는 자극은 얼마나 새롭고 눈부신 것일까? 

이스라엘 처녀도 있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더더욱 말 한마디한마디가 가슴에 남았던.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하던 그녀가 여행을 통해 어떻게 추진력있고 자신감 넘치는 리더가 되었는지 그녀는 말한다. "모두가 자기 안에 지식이나 성품 등 필요한 모든 소양을 갖추고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이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해봤을 때 비로소 또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여러 곳을 구경하고 다른 문화를 배운다는 차원을 떠나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를 통해 그녀는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중요한 건 햇수가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너무나 많이 말해져 닳고 닳은 느낌을 주는 말이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에도 실천하고 있는 열일곱 살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가슴에 저린다. 

그래도 나는 아직 많이 망설여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스스로 비겁하다고 느끼면서도 두려워지는 것도. 나같은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내려치듯이 저자는 여행 중인 스님과 만난 후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구나 한번쯤 막다른 길에 이르러 출가와 수행을 꿈꾼다고 생각했다. 삶이란 늘 불안한 것으로 여겼다. 수행이란 말에는 나를 숙연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고 현실과 수행은 다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행은 생활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도, 별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출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만약 출가를 한다면 가족들에게도 출가를 권할 수 있었을까? 스님은 보통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 어려운 길을 일부러 찾아나선 게 아니다. 어쩌면 단순히, 나를 제대로 알고 싶어 출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모양이었던 내가 사람들 속에서 닳고 닳아 모난 네모가 되어가는 게 참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머리를 깎는 건 무슨 결단 같은 게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출가와 여행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결국 출가나 여행에는 '나는 나이고 싶다'는 욕망이 배어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뤄내는 과정이나 힘은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것을 찾으려 한다는 면에서 같다. 사람들은 흔히 장기여행을 떠난 사람이나 출가한 사람이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단순하게 좋으니까 장기여행을, 출가를 해보라고 권한다. 이거 맛있으니까 한번 먹어보라는 식이다." 

"여행을 하면서 나쁜 경험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나쁜 일을 잊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나쁜 일을 경험하면서 그 시간을 어떻게든 보내면서, 내가 좀 컸구나, 잘 참았구나, 하는 걸 알게 된다." 어디 여행뿐일까, 인생이 다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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