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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나
스티브 헬리 지음, 황소연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옮긴이의 말
문학의 진정성에 관한 유머러스하고도 진지한 성찰
진실에 물음표를 던지다
작가(作家, artist)는 ‘문학 작품이나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총칭한다.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창작의 대상을 문학 작품에 국한시켜 생각해보자. 책을 저술하는 ‘저술가’ 혹은 책을 쓴 지은이인 ‘저자’란 어떤 사람들일까?
저술가나 저자는 영어로 ‘Author’라 할 수 있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author의 어원은 ‘무언가를 발명하거나 유발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대 프랑스어 ‘autor’와 라틴어 ‘auctor’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15세기 무렵 본원의 뜻에 ‘진짜’ 혹은 ‘진품’이라는 뜻을 가진 ‘authentic’의 영향을 받아 현재의 모양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술가, 즉 글을 쓰는 작가들은 가짜나 허위보다는 진짜,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어떤 당위성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정말 그럴까? 이 책의 저자는 이런 통념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과연 대중의 사랑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들은 정말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서투른 글을 다듬어주고 비용을 받는 일종의 대필 회사에서 일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우리의 주인공 피트 타슬로는 냉소적인 이 시대의 젊은이다. 그는 인기 소설가들을 대중에 영합하는 소설가 나부랭이, 사기꾼이라 비웃으며 자신도 베스트셀러 한 편을 보란 듯이 써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예와 부를 거머쥐어 남은 평생을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꿈에 부푼다.
그가 이렇게 건방진(?) 꿈을 감히 꿀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뭐 대단한 진리가 존재하겠느냐는 일종의 회의론과 인간은 진실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진실을 싫어한다. 온 우주를 통틀어 사람들이 가장 치를 떠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사람들은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대면하느니 차라리 3박 4일 동안 수천 가지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중략) 누구든 붙잡고 인생에 대한 진실에 대해 한 마디라도 해보아라. 당신이 빗속에서 쫄쫄 굶어 죽어가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틀거나 넷플릭스의 예약을 조정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점으로 달려가서 24달러 95센트를 지불하는 이유는 진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59쪽)
의견이 분분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 문제를 풀자면, 우선 인간에 대한 성찰이 다각도로 필요한 듯하다. 많은 학문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다양한 해석과 설명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우리의 주인공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론은 아마도 세간에 잘 알려진 ‘생존편의(survivorship bias)’와 ‘블랙 스완(black swan)’ 이론이 아닐까 싶다.
주로 금융공학 쪽에서 통계의 오류를 지적할 때 쓰이는 생존편의는 생존에서 살아남은 것을 과신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 개념은 부지 불식간에 우리의 생활 전반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우리는 생존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지나치게 집중함으로써 성공의 가능성을 과대 평가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직장인들이 1등에 당첨된 자들의 소문을 듣고 복권을 사서 일주일 동안 지갑 안에 고이 넣어 다닌다거나, 청소년들이 스타덤에 오른 연예인들의 성공 신화를 보고 연예인의 꿈을 키우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휴지 조각이 된 수많은 복권과 빈곤에 시달리는 무명 연예인들은 우리의 의식 바깥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이솝(Aesop)도 인간의 이런 속성을 간파했다. 우유를 한 양동이 얻은 시골 처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우유를 팔아 병아리를 사고, 병아리가 커서 닭이 되고, 닭이 또 병아리를 낳고....... 하는 식으로 미리 김칫국을 마시다가 그만 우유를 쏟아, 일을 그르치고 마는 우화도 넓게 보면 생존편의가 초래한 비극이다.
그렇다고 복권을 사고 연예인이 되는 꿈을 키우는 것이 꼭 잘못이기만 할까?
영국의 위대한 현자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희망은 경험을 압도하고 승리를 거둔다”고 말했다. 그리고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면서 희망이 없는데 어찌 노력하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생활 속에 존재하는 생존편의적 측면은 비록 허황된 희망일지라도 삶을 지속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는 우리의 주인공 피트 타슬로의 야심찬 꿈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것이었지만, 그 헛된 꿈이 결국은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도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행운의 여신
미국의 철학자 나심 탈레브가 주창한 블랙 스완 이론은,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1697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가 처음 발견되면서 백조는 흰색이라는 기존의 개념이 송두리째 뒤집어졌다. 그때부터 검은 백조는, 진귀한 것 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된다.
블랙 스완이란 말하자면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존재나 개연성을 따지기 어려운 것, 즉 운을 의미한다. 인간의 실력이나 능력은 행운이나 불운 앞에 속수무책이지 않은가. 속된 말로, 노력하는 자와 즐기는 자는 이 운이 좋은 자를 당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한데 버무려 소설 ‘회오리 바람 장례 클럽’을 탄생시킨다. 그가 그럭저럭 봐줄만한 글 솜씨를 밑천으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지자, 웬걸, 행운의 여신이 그의 손을 덥석 잡아준다. 책의 출간을 결정짓는 자리에서, 주인공이 자기 소설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의 친구 루시는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뭐?”
“말 못해. 좋은지 나쁜지 나는 모른다고.”
(중략)
“그들도 몰라. 내 상사는 절대 모르고. 상사의 상사는 더더욱 모르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 앞에 고생길이 훤한 거야.”
“잠깐.......”
“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원고를 받는지 짐작이 가? 수천, 수만건이야!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어떤 사람들은 책상은 없어도 원고 더미는 쌓여 있어. 원고를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는 일만 하는 사람도 있어. 어마어마하게 큰 쓰레기통에! 삽으로 퍼서! 그래도 원고는 끊임없이 들어와.”(156쪽)
정말 허무하고 황당한 장면이지만,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만큼 현실적으로 대중이 기호와 훌륭한 작품을 판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남대서양주식회사에 투자해 큰 손실을 입고 나서 “나는 천체의 운동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해서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복수하겠다는 불순한 동기와 약간의 글발(?)로 탄생한 주인공의 소설은 운이 좋아 출간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출판사의 벽이라는 첫 번째 난관을 넘고 나서, 다시 이 운이란 놈이 작용하는 덕분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우연히 어느 목사에 의해 광고가 되고, 우연히 미국의 서평 문화에 불만을 품은 어느 독자가 평론가에게 호되게 물어뜯긴 주인공의 소설을 예로 거론하는 바람에 세간의 이목을 끌어 재판을 찍고, 우연히 어느 유명한 여배우의 스캔들 사진에 등장하는 엄청난 행운을 잡는 덕분에 판매에 가속도가 붙더니, 우연히 인기 드라마에서 살인마가 읽고 있었다는 이유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고, 친구 루시의 인맥으로 인기 시사 프로그램에서 그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그의 소설은 일약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그만큼 실력과 재능이 빼어난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에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힘들다는 뜻도 되겠다.
그래도 진실이 승리한다? 아니, 진실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행운의 여신의 간택을 받아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 주인공은 정상에서 계속 버티지 못하고 역시나 운명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주인공이 사기꾼이라 그토록 비웃던 거물 작가 프레스턴 브룩스와의 맞대결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데다(대중은 냉소적인 주인공보다 진실과 희망을 노래하는 프레스턴 브룩스를 선택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뒤통수를 맞고(과거에 다니던 회사 사장의 부탁으로 어떤 펀드의 소개문을 써준 일 때문에) 뮤추얼펀드 사기꾼으로 낙인 찍힌 것이다.
역시 행운의 여신이 뒤에서 밀어주면 성공의 고지에 오를 수는 있어도, 진실(적어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그런 신념이 없이는, 정상에서 버티기는 힘든 모양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고작 3,400부 팔린 ‘베이징’이라는 소설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리를 담은 그 작품의 문학적인 가치를 칭송함으로써, 그동안 줄곧 문학에 퍼붓던 냉소와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고 희망을 노래한다.
이 이야기는 얼핏 말도 안 되는 코미디 같기는 해도 아주 그럴싸하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거나 언급된 소설가들은 거의 모두 허구의 인물들임에도 실존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며 생생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소설과 같은 일이 진짜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흥망성쇠가 사실 본인의 잘잘못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또는 운에 좌우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못난 자의 비겁한 변명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니까.
옛말에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은 듯하다.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훨씬 더 겸손해진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이 사기꾼 취급했던 프레스턴 브룩스는 정말 사기꾼일까? 그는 거짓으로 희망을 노래하며 단지 대중에게 사탕발림을 한 것에 불과했을까? 이것을 가리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로 믿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즉, 그가 진실로 희망을 품고 있었다면, 그래서 진실로 그 희망을 믿고 대중에게 설파한 것이라면, 그는 진실한 작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