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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정말 별 5개짜리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표지 그림은 실제로 있는 명화로, 특별히 표지에서는 아름다운 주인공이 아니라 시녀 중 한 명에게 포커스를 맞추었고, 이 명화를 모티브로 한 동명의 음악에서 작가는 제목을 따왔다.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표지와, 아름답고 군더더기 없는 소설 속 문장들, 그리고 가슴이 저릿해 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나는 감탄한 게 어떻게 남자인 작가가, 이렇게나 여성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외모지상주의가 심하다는 것은 머리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테고, 심각할 정도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라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20대 여성으로서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작가적인 상상력과, 어쨌거나 제 3자로서 여성들을 지켜보는 관찰자로서 이렇게나 촘촘한 심리 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나는 감탄했다.
여태까지 남자 작가가 쓴 소설의 여성에 대하여 공감하지 않았던 적이 훨씬 많았다. 마치, 여자 작가들의 소설 속 남자들의 묘사에 여성들은 열광하나 정작 남성들은 코웃음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박민규는 본인이 여성으로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작가의 마지막 말에 이 소설을 쓰게 된 경위가 나온다. 아내와의 대화, 그 부분도 참 아름답다. 수많은 커피 믹스 알갱이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했고, 아내는 하얀 셔츠처럼 눈부셨다...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자신의 얼굴이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해 줄 것이라는 아내의 질문에 대한 이 책은 답이라는 말. 놀라울 정도의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그리고 마지막, 작가의 컷까지 다 읽고 난 후 내 생각은, 결국 작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고, 남자이구나. 그 생각에 한편으로는 어떤 면에서는 실망스러웠고 어떤 면에서는 마음 아팠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진실된 면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로구나. 시각적인 것은 눈에 쉽게 띄고, 거기에 이끌리는 것이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면 작가는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 나약함으로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최상의 결말을 썼구나 하는 생각에 또 감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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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부끄럽지 않았다는 말은 네가 부끄럽지 않다는 말, 너만 부끄럽지 않다는 말일 수도 있어. 수긍이 가. 하지만 그것이 극복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단지 열등감이 없다는 얘기니까. 이를테면 모두가 열망하는 파티에 집에서 입던 카디건을 걸치고 불쑥 갈 수 있는 인간은 진짜 부자거나, 모두가 존경하는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야.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을 아예 가지 않아. 자신을 받쳐줄 만한 옷이 없다면 말이야. 파티가 끝나고 누구는 옷이 좀 그랬다는 둥, 그 화장을 보고 토가 쏠렸다는 둥 서로를 까는 것도 결국 비슷한 무리들의 몫이지.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을 하는 거라구.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말이야. 보잘것없는 여자일수록 가난한 남자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더더욱 불안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 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혹은 여자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자신을 설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처럼 행동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아예 망가진 모습으로 코미디를 자청하는 친구도 보았습니다. 특이한 여자, 웃기는 여자... 설령 여자의 일부를 포기한다 해도 못생긴 여자보다는 낫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야근을 마치고 미쓰 리 이렇게 늦었는데 괜찮겠어? 건성으로 묻는 말에 그럼요, 전 얼굴이 무기잖아요! 대답이라도 해야 환영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대와 나의 영원한 사랑... 이런 노래를 불러봐야 웃음거리만 된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것이고, 결국 앗싸를 외치거나 웃기는 춤이라도 춰야 박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여자야... 끊임없이 스스로를 마취한 채 말입니다. 얼굴이 무기인 그녀들에게도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막춤을 추는 그녀들에게도 영원한 사랑의 발라드가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결코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샤워를 하다 문득,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었다.
미녀를 바라보는 세상의 남자들은
마치 킹콩과 같은 존재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시키지 않아도 엠파이어스테이트를 오르고, 가질 수 없어도 자신의 전부를 바친다. 자신의 동공에 새겨진 한 사람의 미녀를 찾아 쿵쾅대며 온 도시를 뛰어다닌다. 어떤 악의(惡意)도 없지만 그 발길에 무수한, 평범한 여자들이 상처를 입거나 밟혀 죽는다. 실제의 삶도 다를 바 없다. 빌딩을 오르고 떨어져 죽는다 한들, 미녀가 어깨를 기대는 남자는 따로 정해져 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든 세상이다.
왜 일을 안 하지?누구도 그 아이의 등을 떠밀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 안 가 여직원들의 구심점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수다를 떠는 중심에도, 어울려 몰려다니는 무리의 중심에도... 언제나 군만두가 빛을 발하며 서 있었다. 요한이 말한 <빛>이었다. 주변의 부러움이 모이고 모인, 실은 주변 각자의, 조금씩의 빛.
결코 낯설지 않은 구도라고 나는 생각했다. 남자들의 세계와 비슷하구나, 힘이 센 놈을 중심으로 질서가 편성되는 남자아이들의 세계를 나는 떠올렸었다. 우열을 가리고 굴복하는... 또 곁에 붙어 다니면 자신의 힘도 강해지는 듯한 그 착각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몇몇이 모이면 더 대담해지는 효과도 닮아 있었다. 심심찮게 그 무리의 쇼핑담을 들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월급의 대부분을... 혹은 더 많은 돈을 쇼핑에 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볼 땐 그래, 그래서 경제력이 좋은 남자를 만난다거나 그런 일들... 그러니까 일단은 그래서 눈에 들어온다는 얘기지. 직업을 본다거나 집안을 따진다거나... 말하자면 그런 배경이 있어야 오우, 케이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에 맞는 결혼을 한다거나 그에 따른 윤택한 출발을 하는 일은 사랑이 아니라 영리활동(營利活動)이란 얘기지. 그것이 좋고 나쁘고의 얘기가 아니라... 뭐랄까, 그런 활동을 통해 어쨌거나 그만큼의 이익을 얻은 거잖아. 그럼 된 거 아닌가? 사랑해 주지 않는다거나, 생일인데도 그냥 넘어갔다거나... 말했듯이 그 언니가 몸이 아픈데도 바쁘다며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거나... 그런 일들 말이야. 그런 건 그야말로 욕심인 셈이지. 즉 이윤을 추구해 놓고
자기최면이라도 하듯 이건 연애야, 그래서 우린 결혼한 거야 라고 다들 믿는 게 아닐까 싶어. 그러고는 사랑이 식었다는 둥, 환상이 깨졌다는 둥... 애당초 동기가 된 영리활동에 대해선 끝까지 부정하면서 말이야. 즉 세월이 흐를수록 남자 입장에선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거잖아, 난 돈 버는 기계인가... 의 자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런 당연한 일을 왜 서운하게 생각하냐는 거지. 즉 매우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착각이나 포장을 버리지 않는 습성이 인간에겐 있다는 생각이야. 즉 투명하게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결혼생활에 사랑이 없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착각하고 포장을 일삼는 이유도 마찬가지지. 실은 인간은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거야. 사랑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거라구.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영리활동을 하면서도 사랑을 하는 기분, 사랑을 받는 기분... 같은 걸 느끼고도 싶은 거야. 인간의 딜레마지.
이건 마치 요한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놀라는 스스로를 발견하던 가을이었다. 돌이켜보면 좀더 그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어도 좋았을 가을이고, 좀더 밝게 세상을 보았어도 좋았을 가을이었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지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고, 어떤 면으로든 나 역시 외로웠거나 지쳐 있었으며
올드 팝과 치킨과 맥주가 있던 그날 밤을 그러나 잊을 수 없다. 잠깐 실례, 하고 요한이 자리를 드자 다시금 넓어지던 둘 사이의 공간도 떠오른다. 아까의 드넓었던 야구장이 그래도 어느새 소프트 볼... 경기장 정도로 줄어든 느낌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살짝 웃었고, 아까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 문 앞이었어요. 하긴... 방으로 가는 길이기도 해요. 저기 시장골목을 지나야 하거든요. 실은 몇 번 두 분을 보기도 했어요. 늘 여기 이 자리에 계셔서... 라고, 했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볼링장으로, 또 농구장으로 줄어드는 거리감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점점 탁구대만큼이나 줄어들었고, 결국 사실적인... 직육면체의 테이블이 되었다.
그랬군요,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우린 늘 이 자리에 앉아요. 여기서 저 <희망>을 보며 술 마시는 걸 좋아하죠. 그리고 <희망>이 꺼질 때쯤, 이 집을 나서곤 해요. 예전엔 저 간판에서 곰도 볼 수 있엇는데 지금은 사라졌죠. 아, 하고 곰의 정체를 안다는 듯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아침에 많이 놀라셨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 했고 곧이어 네, 라고 대답했다. 스스로가 빠뜨린... 테이블 위를 굴러오는 공 하나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죄송해요, 라고 내가 말하자 아니, 아니에요 라며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제 짐을 들어주셨잖아요, 라며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말 그대로의 그냥 여자 말이에요. 굳이 분류를 당한다 해도 저는 이제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독신의 동양인 여자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물론 속으로야 어떤 생각을 한다 해도 자신의 시각으로 남을 비하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인 사회란 거죠. 사회의 가치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동등한 기회를 얻고, 그 대가를 바랄 수 있는... 그리고 노력할 수 있는... 그런 점에서 저는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어떤 생각을 하실진 몰라도.
그런 면에서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어요. 야만이죠. 아름답지 않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선 외출하기가 두려운 사회란 건요...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면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사회란 거예요. 적어도 여자에겐 그래요, 지극히 야만적인 사회였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아무튼 말이죠. 그래서 저...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적어도 직장에서만은 별한 차별 없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클럽을 만들고, 토론을 하고... 전시회를 관람하고 공연을 즐기고... 이 삶이 좋은 거예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점점 평범한 얼굴에 속해가고 있다... 서서히 그런 느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사이 제가 예뻐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여자들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 함께 늙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니지 그래서 서로가 비슷해져 간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 세월이 흐르고... 노인이 된다면 세상의 모든 얼굴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네, 이렇게 저도 서서히 늙어가고 있습니다. 늙어가는 만큼...
또 그만큼, 당신과 저의 거리도 점점 좁혀져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그래서 이 삶이 제게는 하나의 길처럼 느껴질 따름입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는 점점 비슷해지고, 또 결국엔 같아질 거란 생각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비행기는 오사카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 하루 그곳에서 요한의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는 다시 북해도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곧 한국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길고 긴 세월을 지나... 그래서 겨우 저는 당신의 안부를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당신이 들을 수 없다 해도, 또 서서히 우리는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세월이 흐를수록 그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것이고, 결국 언젠가는 저도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
그날은 비가 왔고, 아내와 저는 이런저런 집안일을 끝내고 말 그대로 흰, 와이셔츠 같은 마룻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계절은 초봄이었고 아내가 임신을 하기도 훨씬 전이었으며, 그러니까 십여 년 전의 일요일 오후였고 저는 폴 데스몬드의 판을 골라 <Circles>에 막, 턴테이블의 바늘을 올려놓던 중이었습니다. 우리는 신혼이었고 아내는 잘 다려진 셔츠의 깃보다도 훨씬 더 눈부셨으며, 저는 매일... 커피믹스 속의 커피 알갱이 수만큼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쏟아 붓는 남자였습니다(가진 게 없어서 그랬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어쨌거나 그때
그래도 절... 사랑해 줄 건가요?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저기... 미안한데 음악 때문에 앞의 말을 못 들었어, 라고는 했지만 실은 아내의 말을 저는 전부 들었습니다(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면 말이죠. 띄엄띄엄, 그러나 또렷하게 아내는 다시 한번 질문을 되풀이 했습니다. 폴 데스몬드의 곡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저는 아무 말없이 턴테이블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질문은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저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한다해도 잔인한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미남과 부자가 좋은 당신이라면 그런 저 자신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슬프게도 나이를 먹고, 슬프게도 저는 이 소설을 계속 미루고 미뤄 왔습니다. 글을 쓸 용기를 얻은 것은 슬프게도 달이 기울던 지난 여름의 새벽이었습니다. 그날은 무더웠고, 저는 혼자 맥주를 들이켰으며, 음악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은 지루하고 끈적한 밤이었습니다. 지쳐 잠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 저는 문득 십여년 전의 그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소설은 가장 못생긴 작가가 쓰는 가장 못생긴 여자를 위한 선물일 것입니다.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