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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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님.



책을 소개를 중간까지만 읽고 덜컥 구매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야 책을 펼쳐들었어요. 서평을 쓰려고 하얀 창을 바라보며 편지를 쓰는 대상을 제누에서 작가님으로 변경했어요. 책에 관한한 여러 서평이 있고, 그 서평들을 다 읽어보진 않으실 테니 이 편지가 닿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겠지만요. 거창한 이유랄 것은 없고, 그저 감사의 표현의 일종입니다. 회사 점심시간마다 책을 들고 산책을 나가서 책을 대여섯 장씩 읽고 오곤 하며 점심시간을 보냈지요. 그 점심시간이 작가님 덕분에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눈이 시큰해지고 마음이 뻐근해져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눈을 껌뻑껌뻑거리기도 했어요. 책을 다 읽은 날에 배우자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하기도 했어요. 저희 부부는 이제까지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해왔으니 아마 무리가 없다면 거의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게 될 것도 같지만, 저희가 이제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부모를 선택한다.

아이를 선택한다.


선택을 받는다.

선택을 받지 못한다.

선택을 하지 않는다.



살다 보니 여러 선택지가 있더라고요. 여러 선택지 중에서도 하나의 선택지를 제 것으로 선택하고 삶을 살았어요. 선택을 하지 않는다.가 제 선택이었지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거야. 내가 나도 모르게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하나와의 생각과 같았지요. 나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인간일 뿐인데, 그런 내가 어떤 한 인간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내 가치관 대로 길러내어 그것이 성격이 된다는 게, 그러니까 동물을 사람으로 길러내는 과정이 무섭고 두려웠어요. 그 때문에 이미 성격과 가치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갈 ‘초등학생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 아이라면, 내가 방향을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 두려움을 타인에게 말했을 때 제대로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손에 온기가 피어올랐어요.



결국 내가 나를 이룬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그럼 기억이 형성되기 전의 나는 어떻게 키워졌을까? 내가 누군가를 만든다고만 생각해 봤지,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며 살지는 못했는데, 덕분에 아주 어릴 때의 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답니다. 나를 만든 것은 결국, 특정한 어떤 것이 아니라 나를 감싸고 있던 세상의 전부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을 냈어요. 모자라고 부족한 것들이 더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이, 내 단점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 까닭이겠죠.




사랑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마음씨 예쁜 아키가 좋은 양부모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너는 네 삶을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던 가디에게 “저만큼 제 삶에 신중한 사람은 없어요.”라고 대답하던 제누가 자꾸만 떠올라요. 저는 제누가 ‘에드거(Edgar)’였으면 해요. 제누라면 가능할 것 같거든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새끼 원숭이.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요.

세상에는 부모 같지 않은 부모들이 참 많아요. 지금 현 상황은 더욱 그렇네요. 하지만 ‘부모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애매해요. 그들의 ‘부모 자격’이나 ‘부모다움’을 감히 어느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예단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요. 다른 분들이 아이가 건강할까, 성별은 무엇일까, 자연분만을 하고 싶은데, 산후조리원은 어디로 하지, 같은 걱정이나 선택에서 조금 벗어나 ‘아이게에 어떤 부모가 되어줄 수 있는지,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아주 깊이 몇 번이고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부모 자격은 그때 부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세상에 슬픈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저는 종종 생각해요. 그 어떤 것보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지난날들을. 그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질문이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지켜주지 못할 상황이 필연적으로 생길 것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니면 제가 생각보다 너무 엉망인 인간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고, 아니면, 아니면, 어떤 우스운 핑계를 대고, 가설을 만들며 합리화를 하기도 하지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갑니다. 어떤 날은 진흙 구덩이를 피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부러 들어가서 발을 쾅쾅 구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저도 모르게 빠져있기도 하고요.


이후에 전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요. 말로는 어떤 방향이든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로 우리 부부가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저는 제가 사는 지금을 또다시 깨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들지가 않아요. 이미 결정은 잠정적으로 도출되었지만, 그 결정을 결정하는 것을 유예시키고 있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겠네요. 나는 “기다릴게, 친구.”라고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 그럼에도,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면 물어보고 싶어요. “너는 내가 마음에 드니?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니?”


부모에 대해 또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며 삶을 정돈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해주어서,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며 보이지 않는 손의 온기를 나눠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 책 속의 글



13. “NC 출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말도 안 되는 부모 밑에서 살아가는 게 더 어렵죠.”



29. 아이를 잘 낳지 않고, 낳아도 키우지 않으려는 사회였다. 정부는 사람들이 NC의 아이들을 입양하도록 독려했다.



76. “아이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존재들 같아요.”



91. “세상의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그건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111.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113. 원칙과 규율을 칼같이 지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었다.



146.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160. 가족이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먼발치’라는 말의 뜻은 시야에는 들어오지만 서로 대화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거리,라고 한다.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마음속 거리가 아닐까. 서로를 바라보지만 대화는 할 수 없는 거리 말이다.



167. 재능은 얼마나 잘하는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재능 같았다. 싸우고 다투고 매일같이 상처를 입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는 가족처럼 말이다. 아니, 그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무엇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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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절대 바닥에 두지 않는다 - ‘하기’보다 ‘하지 않는’ 심플한 정리 규칙 46 스타일리시 리빙 Stylish Living 22
스도 마사코 지음, 백운숙 옮김 / 싸이프레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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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계속해서 느끼는 것이 “집에 뭐가 너무 많아.”이다.


그래서 나는 해가 바뀌기 전부터 하루 1개의 물건을 버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며 그것들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있는데, 그에 따른 장점 및 단점은 압박감 같은 게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버릴 것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얼마 안 남은 화장품을 꾹꾹 끝까지 눌러쓰며 버리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있는 것들을 낭비하며 쓰는 것이 아니라 안 쓰던 것들을 그렇게나마 쓰는 것들도 생기니, 버려지는 입장에서도 쓸모를 다하고 버려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 구석에 박혀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에 하나씩 버릴 것이 꾸준히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이상하기도 했다. 버리기 시작하면서 물건을 사는 것에 한층 더 신중해지는 내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먹어서 없애는 것뿐만이 아니라, 물건으로 남는 것은 특히나.


그러면서 올해는 두 주제에 관한 책을 꾸준히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중 하나가 미니멀리즘에 관한 것이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품고 있는 내용 역시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겠지만, 읽을 때만큼이라도 좀 더 열정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실질적인 바람이었다.


난 미니멀리즘은 아니지만 간결하고 정돈된 삶을 지향한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지만 나는 어지름의 대명사에 가깝다. 내가 앉아 있고, 내가 누워 있는 곳에는 특정한 것들이 난잡하게 있는데,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을 때도 책 2권, 이면지, 볼펜 세 자루, 가계부, 각종 영수증, 일기장, 핸드폰과 충전기가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으니, 그 정도면 말 다 했지. 여담으로, 나의 배우자는 책 제목만 보고 “이건 너랑 반대네.”하고 웃었다. 우쉬이...


책을 손에 들고 한번 휘리릭 빠르게 넘겨보았는데, 책의 주제만큼이나 책의 구성이 정갈하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편안하다는 느낌은, 아마 거기서 왔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덤이고.


책의 첫 장에서는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흐트러지고 어지러워진다’는 엔트로피 법칙을 말하며, 중요한 것은 ‘하기’ 규칙이 아니라 ‘하지 않기’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을 바닥에 두지 않는 것’이다. 37. 바닥에 물건이 없으면 정리와 청소가 눈에 띄게 편해지기 때문,이라는데 문장만 읽어도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닥에 물건만 없어도 청소하기 전에 어질러진 것들을 청소하지 않을 시간이 확보되니까.


48. 충동적으로 정리를 시작하면 한 번으로 끝날 일에 두 번, 세 번 손이 간다. 또 어느 선까지 정리할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정리하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시간이 모자라면 어중간한 상태로 정리를 마무리하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딱 그렇다. 다른 곳들은 그렇지 않고 끝까지 정리를 하는 편인데, 내 공간인 화장대 정리가 가장 안 된다. 아마 책에서 말하는 ‘정리수납’이 실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수납’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고 편히 사용할 수 있게끔 물건을 수납하는 일’인데, 나는 버리기는 하나 애매한 것들은 또다시 화장대에 놔두기 때문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물건을 꽤 잘 버린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나? 하며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재발견하는 순간들이 그렇게 왔다.


아무래도 매일 집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청소를 매일매일 하진 못하고 혹은 않고, 평소엔 대충대충 하다가 쉬는 날 하루를 잡아놓고 청소를 할 때가 더 많다. 평소에 조금씩 한다고 주말에 할 일이 덜한 것도 아닌데, 책에서는 매일의 청소와 특별 청소로 구분해서 하라고 한다. 특히 화장실이나 주방의 경우는 물때가 끼기 쉽기 때문에 한 번에 하려면 더 힘드니까. 맞는 말이다. 화장실 청소를 한 번 하고 나면 얼마나 진이 빠지는지, 잠시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니까. 그런데 이번에 안 사실은, 156. 화장실은 건강운과 관련 있는 것이어서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왜 하필 화장실이지... 나는 화장실 청소가 제일 싫어... 하지만 나는 그 부분을 읽자마자 책을 덮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왔다... 원래 화장실 청소는 한 달에 한 번만 하면 충분(?)한데(??) 한 달에 두세 번 하게 생겼네. 크흡.


139.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심플하고 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157. 청소가 싫다면 오히려 매일 청소를 해보자. 매일 잠깐씩 청소를 하면서 어떤 식으로 더러워지는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때가 찌들기 전에 손을 쓸 수 있다.

집안일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하루에 매일매일 해야 하는 청소들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결국 내 화장대(...)로 옮겨갔다. 화장품을 쓰고 화장대 바로 옆에 있는 서랍장 위에 두지 않기만 실천해도 질이 향상될 것 같으니까 그걸 실천해봐야겠다고, 또 작심삼일식의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책에 나와있는 것처럼, 세면대를 매일 닦...는 것도... 해봐야...(휴)


163. 물건은 적을수록 좋다. 최소한의 물건 소중히 쓰기.

165. 집과 공간의 크기를 고려해 물건을 고르고 최소한의 물건들로 만족감을 느낀다면 가진 물건을 충분히 활용하며 알뜰한 매일을 보낼 수 있다.

책에서 저자의 자녀(딸)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 있다. 본인이 아니라 물건을 실제로 사용하는 이의 입장에서 수납 장소를 선택해야 하기에 아이의 생활 패턴을 유심히 봐두었다가 “여기에 이거 두면 어때? 편할 것 같아?”라고 묻는다. 본인의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딸이 자기 생활을 잘 챙길 수 있는 환경을 우선시하기로 했다며 그 기간은 ‘특별 기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신발장의 두 칸 정도는 딸의 학용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기도 하고, 거실에서 공부를 하는 딸을 위해 거실에도 딸의 학용품을 보관할 수납공간을 마련했으며, 거실에서 옷을 벗는 습관이 있는 아이를 위해 거실과 가까운 세면대에 옷을 벗어두는 수납공간을 만들어두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정리와 수납에 관해 본인만의 고집이나 욕심이 있을 텐데, 함께 사는 배우자와 아직 어린 자녀의 기호에 맞게 욕심을 무를 줄도 아는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여서 슬몃 웃음이 났다.


난 책을 읽는 중간에 책을 덮어서,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몸을 일으켜 싱크대 서랍을 정리하고, 가스레인지를 닦아내고, 안 쓰는 볼펜들과 포스트잇, 문구류를 한곳에 모아두고, 화장대를 정리했으며, 화장실 청소도 했다. 한번 청소를 할 때 완벽하게 하려는 성향 때문에 금세 피곤해지기도 했지만, 청소할 거리를 쌓아두는 대신 손쉬운 청소와 품이 드는 청소를 나누어 적당히 밸런스를 맞추라고 하는 이 부분을 기억하려고 한다. 이런 건 평소에도 머리로는 아는 부분이지만 실천이 어렵지.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던 부분이다. 아, 물론 다른 곳은 몰라도 내 화장대는 드라마틱하게 깔끔하거나 반짝반짝 빛이 나지는 않지만, 전보다는 여유가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성격상 깔끔하지 않은 인간이, 깔끔해지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이렇게나 험난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난 깔끔한 사람으로 사는 일을 노력으로라도 얻고 싶으니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또, 하나씩 버림으로써 간결해지는 내 삶과 조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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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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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을 느낄 때 무작정 마시는 물이 해갈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진즉에 깨달았지만, 여전히 나는 그것만이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다며 꿀꺽꿀꺽 마시다가 급체를 하고 만다. 몸이 고장 나고 먹지도 못하고 앓아누워야 아, 내가 미련했구나 새삼 깨달으며, 정신을 차릴 즈음에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목구멍으로 음식을 넣기 시작한다. 음식물이 통과되는 지점들을 톡톡, 느낀다. 나, 이제 괜찮겠구나. 안도의 숨이 폐에서부터 깊숙이 자연히 나온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박완서 선생이 남긴 660여 편의 산문집 중 35편을 엄선하여 엮은 책으로, 그의 산문집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 나도 책이 나오기 전부터 달뜬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어느 여성의, 어느 자식의, 어느 엄마의, 어느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잔잔한 호수에 떠 있다. 그 호수에 내 손이 작게라도 동그란 파장을 일으킬까 여간 조심조심한 것이 아니다.



 


 

13.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145. 매일 봐도 즐거운 것은 매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생기지는 않지만, 곁에 있는 매일의 즐거움을 알아차리려 노력하는 삶을 산다. 그 즐거움으로 인해 하루가 반짝거린다. 그게 사소하고 시시한 일일지라도. 한동안은 이 책을 읽으며 순간의 정갈한 행복을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평화로운 시간, 평온한 시간, 나의 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은 지독하게 매섭던 추위에 마음을 녹이고 데우는데 충분했다. 온기로 가득 찬 마음은 어떤 추위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의 글들을, 정확히는 그의 마음의 생각의 선하고 고운 것들을 손으로 꾹꾹 짚어가며 곁에 두고 싶었다. 타인이 바라본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소박한 웃음을 짓게 하는 낯설지만 낯익은 그리움을 자아냈다.


 


 


 

24. 우리가 믿음에 대해 쉬 잊고 배신을 오래 기억하며 타인에게 풍기지 못해 하는 것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바탕이 결코 불신이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움으로 점철되었지만 믿음이 일상의 바탕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내가 미워한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다가 힘들게, 애써, 그들의 안녕을 바랐다. 정말로 그들의 안녕을 바라서라기보다는 나의 안녕을 바라는 일의 첫걸음이라고 생각되었으니까. 미워했던 마음을 철회하거나 반성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 미움을 종결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으므로. 그들을 믿었기에 그 믿음만큼 미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히 생각해 보기도 하며.


 


 


 

128.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왜 나한테 그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마음을 내내 품고 살았는데, 이 문장을 보고 조금은 욱했다가 수그러졌다.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의 일일뿐이라던 모 씨의 말도 이제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좋은 일에 축하해 줄 수 있는 인간이 되기보다 내가 알 수 없는 타인의 아픔과 슬픔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지, 오늘도 생각한다.


 


 


 

256.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일몰 무렵이었으면 참 좋겠다.

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산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어쩐지, 마음속 깊은 골짜기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환청에 마음을 빼앗겨 한 문장만을 읽고 시간을 보낸 날이 있었다. 주위의 자잘한 소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의 이유가 당시 내가 하고 있던 귀마개가 두꺼워서가 아니라 얼어서 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 언젠가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가고 있는가 보다, 했던 때가 있었다.


 


 


 

221.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그렇다, 그랬지. 이전에 그의 글들을 읽고 참 소녀 같다, 생각했었지.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 찾아봤더니 당시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었네. 집에 있는 다른 책들을 뒤적여봐야지.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그의 글을 자주 찾고 싶다.

...아니, 그래서 남영역에서 지인분을 만났는지, 아니면 댁에 가셨는지, 댁으로 가셨다면 어떻게 가셨는지(p123), 나는 그게 궁금하단 말이지

이야기를 그렇게 끝내버리면 나는 궁금해서 어쩌지요, 선생님.


 


 


 

27. 올겨울도 많이 추웠지만 가끔 따스했고, 자주 우울했지만 어쩌다 행복하기도 했다. 올겨울의 희망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올겨울은 지난겨울보다는 더 추울 것 같다. 따듯한 봄이 올 거라고 기대했으나, 기대처럼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따듯하지 않은 봄이 오더라도 우리는 그 계절을 살아갈 테고, 우리는 그 안에서 그 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계절을 담뿍 느꼈으면 한다. 또다시 오는 계절일지라도, 우리가 통과하는 계절은 지금 이 순간뿐이기에.


 


 


 


 


 


 


 

책 속 밑줄


 

26.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32. 나이를 먹고 세상인심 따라 영악하게 살다 보니 이런 소박한 인간성은 말짱하게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문득 생각하니 잃어버린 청춘보다 더 아깝고 서글프다. 자신이 무참하게 헐벗은 것처럼 느껴진다.


 

92. ‘넉넉하다’는 후덕한 우리말이 사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음의 부자가 늘어나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


 

110. 새벽의 잔디를 깎고 있으면 기막히게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건 향기가 아니다. 대기에 인간의 숨결이 섞이기 전, 아니면 미처 미치지 못한 그 오지의 순결한 냄새다.


 

139. 현재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은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 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 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닙니다.


 

247.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 아닐까.


 

264. 오늘 살 줄만 알고 내일 죽을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성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만약 인간이 안 죽게 창조됐다고 가정하면 생명의 존엄성은 물론 인간으로 하여금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모든 창조적인 노력도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자식을 창조할 필요도 없다면 사랑의 기쁨인들 있었으랴. 추醜가 없으면 미美도 없듯이, 슬픔이 있으니까 기쁨이 있듯이,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

때로는 나에게 죽음도 희망이 되는 것은 희망이 없이는 살아 있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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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정치 - 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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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참정권을 가지게 된 나이가 된 날,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투표를 하러 같이 가자는 내 말에, “그놈이 그놈이여.”라는 말씀 이후 요지부동이었던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각종 사건들을 보면서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결국 잇속 챙기기 바쁜 정치인들에게 실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어려웠다.

 

 

 

한 번도 현정권을 지지한 적이 없었다. 옹호도 없었다. 더더군다나 정치에 깊숙한 관심을 가져본 일 역시 없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나는 꼬박꼬박 참정권을 남용한다. (남용이라는 단어 말고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투표를 누구에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일까를 생각하는 것보다 돈을 찢어 공중으로 뿌리는 게 더 쉬운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할 일이 없나?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내가 강제로 빼앗기는 게 생기고, 자꾸만 내가 잃는 게 부피가 커져서’인 까닭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에는 보수와 진보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있다고 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현재 한국은 舊보수와 新보수만으로 나누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는 남을 탓하는 인간 부류를 굉장히 싫어한다. 남을 탓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 고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싫어한다. 싫어한다는 표현을 넘어 경멸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언제까지 “너 때문에, 이거 때문에, 저거 때문에, 그거 때문에”를 남발하며 한심하고 멍청한 태도로 일관할 텐가. 이건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기사의 댓글은 거의 안 보는 편인데, 최근에 실시간 검색으로 누군가가 쓴 댓글을 보게 되었다. 전정권이 싸놓은 똥을 치워놓느라 그렇다, 고. 이제까지 전정권이 똥을 싸놓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전정권이라는 것은 현정권의 눈을 가리는 최고의 핑계 아닌가. 그만 좀 하자. 그건 명백히 책임감 결여다.

멍청한 것들이 자리 차지하고 앉아 시시덕거리며 시간만 때우고 앉아있는 뉴스를 보기 싫어 한동안 멀리하기도 했었다. 그들이 떠드는 말들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지껄이는 말인지도 모르겠고 별것도, 아무것도 아닌 그들이 가장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국민의 위에 군림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역겹게만 느껴졌다. 그들은 그저, 국민들의 하인이자 대리인일 뿐이다. 그것도 계약직으로.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 박근혜에게 패배한 2012년 대선 결과를 성찰한 문재인의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

 

책의 저자인 강준만 교수는 진보의 입장에서,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며, 진보가 될 수 없다고 일축한다. 은밀히 말하면 이 책은, 보수에게 환호를 ‘받을 지도’ 모르는 책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자의 글들은 보수 지면의 기사에 실리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책의 곳곳에서 진정한 진보다워지기를 희망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쓴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단지 ‘~니까 ~이다’라는 사실적 근거 혹은 판단 혹은 주장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총 20장의 목차에 ‘왜’를 붙여 의문을 제기한 후에 그에 따른 이유들을 분석하고 대안까지 친절하게 내어주고 있는 까닭이다.

 

 

이건 단지 “나 너 싫어. 너랑 안 놀아.”의 유치한 논리가 될 수 없다. 이건 학급이 아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체육대회 때 ‘우리가 함께 속한 반’이 이길 수 있게 ‘다른 반’과의 줄다리기에서 더 세게 잡아당겨야 하고, 바통을 잘 주고받아 뛰어야 하기도 한다. 최종 목표는 의기투합하여 ‘우리 반’의 승리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반’을 보수와 진보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우리 반’은 ‘대한민국’이니까.

 

 

 

323.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자세를 잠시 유보하고, “우리도 틀릴 수 있고 너희도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 주기만 하면 된다.

 

작은 땅덩어리인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의 편가르기는 없어야만 한다.

어쩔 수 없이 가치관이 상충하더라도 우리는 같은 대한민국에서 상생해야 한다. 무엇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국민을 살게 하는 것인지, 국민의 하인이자 대리인들은 자기의 잇속보다 더 고심하고 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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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은퇴 가짜 은퇴 - 부자아빠가 알려주지 않는
김동석 지음 / 더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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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퇴를 소망한다.

은퇴의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내가 소망하는 은퇴는 일을 하지 않을 자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예기치 못한 기회에 직업을 얻는다고 하지만, 나는 대학 때 선택한 전공이 지금의 직업이 되었다. 전공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직업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으나, 결국은 여기 찔끔, 저기 찔끔하다가 회귀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걸 보면 가끔 난 재미없게 산 인생이 아닌가 하고 자문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소소하지만 분명하게 희로애락이 있었으니 그거로 만족하려고 한다.

 

은퇴를 생각하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어렴풋하지만 명확한 시기를 스스로 규정해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내가 아니라, 배우자의 직업 특성상 여러 지역을 다닐 수밖에 없어 나는 정규직보다 계약직(지역마다 인건비가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런 회사에 나를 값싸게 팔리는 것이 싫었기에)을 전전했다. 계약직이라는 것은 나름대로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리프레쉬가 되어 크게 아쉬운 점은 없었으나, 대체로 만족하는 회사를 다닐 때에는 그게 아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 것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니.

 

anyway, 어느 순간이 되면 내가 잘 팔리지 않는 시기가 올 거라고, 슬프지만 분명하게 알고 있다. 나는 그 지점이 오기 전에 나를 더 어필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등의 다른 노력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다. 해야 하는 업무량에 비해 임금이 값싸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회사는 경력직보다 더 적은 임금을 주고 부려먹을 수 있는 신입을 원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팔리지 않는 시기가 왔을 때 내가 받을 자존심의 상처, 자존감의 하락, 좌절감 등을 경험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이는 내가 한 회사에 오래 머물러있다면 모를까, 계약직으로 이직을 계속하게 되면 그 시기가 더 빨라질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렇기에 나한테 은퇴라 함은, 첫 번째로 현재의 직업에서의 은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다른 직업으로의 전향이다. 내가 잘 하는 일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로의 전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돈을 얼마를 벌든 돈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 단 얼마를 번다 하더라도 돈 생각하지 않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 정도. 지금으로써는 하고 싶은 것은 명확하기는 하지만, 꼭 할 거야!라고 생각하기에는 부족함도 많고 갖춰진 게 없기도 하다. 아직은 시간이 좀 더 있으니 그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잘 준비해보고 싶다.

 

 

 

그동안 우리 부모님 세대는 노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하고 사신 분들이 많다. 자식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바빴고, 자식들이 좀 더 나은 옷을 입기를 바랐으며, 좀 더 좋은 학벌, 좀 더 좋은 조건의 노동인구로 커가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자식을 길러냈는데 부모인 자신을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대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로 귀결되는 것을 봐왔으니까. 그러므로 부모가 빈곤한 노후를 살게 되었다면 장성한 자식이 적정의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더 살기가 팍팍해지고 있고,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자식한테 나까지 짐이 된다니, 하며 이르게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은퇴 준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책에서 저자는 은퇴의 조건을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1. 경제적 자산

2. 건강 자산

3. 심리적 자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은퇴 및 조기 은퇴를 ‘자신의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계속해서 말을 비슷하게 바꿔가며 강조하고 있다.

경제적 독립, 건강한 취미활동, 가족 간의 추억 만들기.

 

 

36. “직장 생활 동안 잘 나가고 못 나가고는 중요하지 않아. 결국 퇴직 이후 누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느냐 이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자산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은퇴를 한 이후에도 생계를 꾸리기 위해 또 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도 있고, 경제적 자산은 충족되었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심지어 연금을 1년도 채 받지 못했는데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경제적 자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 첫 번째로 가계 흐름(고정지출의 흐름)을 파악하고 고정지출을 줄여야 하고, 두 번째로 자녀들을 독립시켜야 하며, 세 번째로 연금이든 다른 수입이든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이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책을 읽으며 세 가지의 은퇴 조건을 우리는 얼마나 충족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전긍긍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편과의 관계는 더 바랄 것이 없고 지금이면 충분히 차고 넘친다. (요즘은 너무 달라붙어서 좀 덜 달라붙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걱정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건강이다. 나는 내가 건강하지 않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느 순간 몸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 몸이 전과 같지 않음을 느꼈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를 한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너무 많이 떠벌려놨는데 사실 5kg에서 더 이상 빠지지 않는(것이 아니고 그만큼 내가 먹는)다. 나의 목적은 다이어트라기보다는, 신체 리듬 챙기기에 있다. 앞으로도 과하지 않게 먹는 것을 즐기면서 꾸준하게 내 몸을 잘 돌보고 싶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읽었던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에서처럼 친구, 이웃과의 교류 (공동체 생활) 역시 강조하고 있다. 나는 세상은 혼자서 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다고 살았었는데, 그게 몇 년 전에 무참하게 깨어져 버렸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었다. 가치관이 꼭 맞지는 않더라도, 함께 있을 때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다.

 

 

 

 

덧) 저자가 조금 피곤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224. 내 아들이 주방에 있는 것은 싫지만, 사위가 주방을 지키면 최고의 사위가 된다.라는 점과

233. 아들이 결혼한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규칙을 정했다. 무조건 1년에 2번 가족여행을 함께 한다.라는 점이다.

나는 며느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며느리는 무슨 죄...)

 

특히 2번의 경우는 ‘나는 이제까지 너희를 먹여살리느라 일을 하다가 은퇴를 했고, 그러므로 나는 시간이 생겼으니 자식인 너희는 부모를 위해 같이 여행을 다녀야 해.’라고 강요하는 느낌이어서 마치 보상심리로 보이기까지 했다. 자식은 부모의 노후를 위해 독립을 시켜야 한다면서 ‘무조건 1년에 2번 가족여행’(물론 부모 자식과의 관계가 좋은 경우라면 기꺼이 하겠지만)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어감은 그다지 좋지는 않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은퇴 계획에 대해서 구체화를 시키며 J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워낙 나를 믿기도 하고 내가 뭘 해도 참견하거나 반대를 한 적이 없기에 당장 실행해도 된다고 하여 좀 당황했다. 아니, 무슨 말이야. 나는 지금 은퇴하고 싶지 않아... 은퇴를 하기에 앞서 이 책을 읽으며 은퇴를 준비하기에 좋은 것 같아서 곁에 두고 나중에 남편한테도 읽어보라고 권할 생각이다.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해 주고 싶지만... 아, 근데 오탈자가 너무 많아서 읽기 불편했다. 책 내기 전에 편집자들은 교정 좀 제대로 해줬으면...

 

 

 

 

오탈자 47. 그건 말 그대로 업무 당당자였기 때문에 환대해 주었을 뿐이다. ▶ 업무 담당자

오탈자 54. 전직으로 시작한 일은 급여는 작지만 스스로 택한 일이기에 ▶ 급여는 적지만 (급여는 크고 작음이 아닌 많고 적음이다)

띄어쓰기 72.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수 있다. ▶ 않을 수 있다.

오탈자 204. 고백하건데고백하건대

띄어쓰기 237. 아이들 정서 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정서에도

부호오류 238. ?그 모습이 신기해서 아이들은 자꾸 먹이를 주곤 했다. ▶ 물음표 삭제

오탈자 256. 당연히 은퇴자들에게도 인가가 높다. ▶ 인기가

부호오류 265. 나의 은퇴 꿈 목록을 무엇인가/ ▶ 나의 은퇴 꿈 목록을 무엇인가?

띄어쓰기 267. 순간을 떠 올려보자. ▶ 떠올려보자

부호오류 269. 따옴표 “““”

띄어쓰기 284. 3 가지 방법 ▶ 3가지

오탈자 및 띄어쓰기 298. 노후에 진짜 행복은 돈보다 건강을 유지하며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인간관계에 달려있다. ▶ (문맥상) 노후의 진짜 행복은

(이외에 가끔 띄어쓰기에 space가 두 번이 있을 때도 간혹 보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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