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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푸른 벚나무
시메노 나기 지음, 김지연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5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난 벚나무에 벚꽃이 살랑살랑 매달려있는 그 찰나도 좋고 흩뿌려지는 때도 좋지만 벚나무에 초록초록한 잎이 날 때, 왜인지 생명력을 얻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초록빛을 빼꼼 내민 새순을 한참을 쳐다보게 된다. 그런데 책 제목조차도 그해 푸른 벚나무라니, 책 제목만큼 표지도 예뻐서 내용이 조금 유치하더라도 용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오래된 벚나무 옆 체리 블라썸은 히오가 운영하고 있다. 카페 블라썸은 이전에는 레스토랑, 더 이전에는 료칸이었다. 레스토랑은 히오의 어머니인 사쿠라코가, 료칸은 사쿠라코의 어머니인 야에가 운영하던 것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딸이 30세가 되는 해에 그 공간을 물려주고 있었고 운영방식은 각자의 몫이 된다. 그렇게 히오가 30세에 물려받은 귀한 재산이기도 하다.
책의 이야기는 히오가 아닌 벚나무로부터 듣게 되는데, 나는 잠깐씩 그 사실을 잊고 멈칫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읽다보면 섬세하게 묘사하는 벚나무의 이야기에 쏙 빨려 들어가게 된다. 21-22. 꽃은 피면 지기 마련이고 꽃이 져야 다음 계절이 찾아온다. 이러한 순환 덕분에 생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사람은 사라져가는 눈앞의 현실에만 관심을 보이지만 과거가 있었기에 미래도 있는 법이다. 과연 알기나 할까. 오늘이라는 하루는 면면히 이어지는 시간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삶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삶은 어느 한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지만 그 순간들이 모여 삶이 된다는 사실에는 반박할 자신이 없다. 10분이 1시간을 살게 하고, 하루가 일주일을 살게 하는 마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는 히오가 운영하는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조곤조곤하게 말해주기 때문에 한달음에 읽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 차분해진 마음으로 천천히 읽는 게 좋았다. 카페에 가면 커피와 디저트를 마시는데, 차와 화과자를 먹는 건 또 어떤 기분일까, 하면서 상상도 해보고. 그러다가 나도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어 쉬는 날에 찾아가 신록의 계절을 마음껏 음미했다.
160. “목표를 너무 높게 세워놓고 너 자신을 몰아붙이지 마.” 가스미의 중학생 딸에게도 해당되겠고, 히오에게도 해당되는 문장. 하지만 내게도 해당되는 문장이기도 했다. 한 분야에 대해서만 목표가 높은 줄 알았는데 지금의 나는 다방면에서 목표를 죽- 당겨놓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최근에 남편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 남편은 내게 위와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 나를 채찍질하여 병이 날까 노심초사하다고 한다. 좀 놓아두는 거, 정말 어떻게 하는 거지. 217.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나면 현재를 살아가라는 단순한 깨달음만 남는다.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는 안다. 가벼워진 몸으로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여기서 저들을 지켜주자고 다짐했다. 늘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은 내가 당장 실천하고 싶은 말이었다. 현재를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에도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 현재의 내가 즐거워야 비로소 과거의 나를 가여워하지 않을 수 있고 미래의 나를 희망할 수 있으니까. 뜻하지 않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책 속 밑줄긋기>
34. “아무 일도 없는 날이 얼마나 고마운지 실감하게 되죠.”
43. 사람은 지는 벚꽃을 보며 끝이 정해져 있는 인생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자기 힘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유한한 삶에 번민한다.
84. “인생은 모르는 법이에요. 내가 일본에 와서 살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212. 휴면 타파.
휴면하던 식물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깨어나 생육을 개시한다는 뜻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의 시간에도 의미가 있을까.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동박새가 봄이 오고 있다고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