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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예찬 -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방법
안 뒤푸르망텔 지음, 이세진 옮김 / 사람in / 2026년 6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을 꼬박 일주일을 붙들고 있었다. 며칠간 시험공부를 하던 나는 어떤 책이든 거뜬히 읽을 수 있다는 자만을 내보였는데, 알량한 기개로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위험 예찬』 안전과 밀접한 삶을 살아온 내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제목이었다. 도대체 어떤 형태의 위험을 예찬한다는 것인가 싶어 호기가 일어서 가장 먼저 이 책을 선택했다. 안전과 위험은 수평선으로 본다면 끝과 끝에 위치해있을 것이라는 내 생각을, 과연 고수할 수 있을까.
책은 9. 생은 우리 산 자들이 감수하는 막대한 위험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난 이때 깨달았다. 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이구나. 내가 생각하던 위험은 얼마나 협소한가 싶어 실소가 터졌다. 표지에는 위험 예찬의 부제를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방법’으로 적어두었는데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면서 이 책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라 생각했다. 아마 우리는 매 순간 '생을 걸다(risquer sa vie)'라는 말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3.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의 순간은 그때부터 다른 시간을 연다.는 위험감수선을 우리는 곁에 두고서 알게 모르게 끌어안고 살거나 외면하면서 살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기 전까지는 그게 위험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글을 읽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밑줄을 많이 그었다. 이해가 될 것 같은데 쉽지 않은 문장도 있었고, 반대로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았던 문장이 몇 번을 읽어보니 어느새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된 문장들도 있었다. 아마 이후에 읽게 되면 더 많은 문장들이 내 안에 들어겠지.
그중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았던 챕터는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거나 되지 않는가>였다.
나는 내가 계획한대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정형화된 삶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나를 만나보는 일. 편안하게 나를 잃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전한 울타리에서 선을 조금 넘어보는 일. 그것은 단순하게 나의 생활 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태도도, 행동 등 전반적으로 이루어진 ‘나’에서의 모험 같은 것. 95. 때로는 자기가 되지 않는 것이, 죽지 않는 것과 정확히 마찬가지로, 어떤 외피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실존·정체성·삶의 규칙에, 우리에게 지표가 되는 영역에, 자아가 영속되는 연약하지만 고립된 영역에 갇혀 있지 않기. 내게 그럴 용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55. 우리는 위험 없는 강렬함을 원하지만 그런 건 불가능하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내가 사는 동안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구나 느꼈다. 20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 삶에서 안정감을 최고로 꼽았다. 안정감은 관계에서 나왔고, 또 내가 세워둔 반듯한 계획에서 나왔고, 때로는 고요함에서 나왔다. 하지만 살다보니 안정감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안정됐다고 느꼈을 때도, 불안정하다고 느꼈을 때도 나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불안정을 조금은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불안정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이제는 아니까.
이 책을 다 읽고 덮은 뒤에도 여전히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머릿속이 난잡하지만, 꽤 좋은 책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기사시험 실기시험이 끝난 날 이 책을 읽었는데, 80 페이지 남짓을 읽고 다음날 시행되는 기사시험 필기를 접수해버렸다. 위험을 무릅쓰기 위해서. 책을 다 덮은 지금도 챕터를 한 번씩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처음 읽을 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문장들을 다시 이해하게 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 앞에는 어떤 위험이 있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책 속 밑줄_
12. 살아 있는 동안 죽지 않는 것이 모든 위험 가운데 으뜸이고 그 위험이 탄생과 죽음에 인간이 밀착해 있을 때 굴절되어 나타난다면?
22. 때때로, 죽지 않은 위험은 눈에 띄지 않은 채, 거의 지각되지 않은 채 지나간다.
27-28. 사랑은 의존의 기술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위험을 감수할 것을 전제한다. 패배를, 부조리한 기다림을, 타자의 돌연한 거절을 대할 때의 실망을 용인해야 한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에 휩쓸려야 한다. 의존에 대한 이 동의는 체념이 아니다. (…) 사랑은 우리가 타자에게도 이동하게 해주는 사건이다. 우리 자신을 버리고 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사건.
37. 보류 상태는 숨을 죽이는 것이다. 그저 여기에 있는 것, 사람들의 현존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가능한 한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것이다.
88. 위험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다. 모든 고통·재난·애도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되, 불행의 몫은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미리부터 구제받을 수는 없다.
106. “당신 마음속에 살게 한 두려움이 당신의 유일한 피난처일지도 몰라요. (…) 두려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쁨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나와 다른 것, 미지의 것, 살아 있는 것의 침입을 받아들이는 거고요. 체념과 이별하는 건 무서워요. 두려움은 결코 진정시킬 수 없는 불행하고 불안 심한 어머니처럼 당신을 보호해요.”
111. 슬픔에는 고유한 두께나 메아리가 없다. 슬픔은 내면의 불분명하고 비이성적인 공간을 한정한다.
116 . 슬픔을 감수한다는 것은 우울에 빠지는 것과 정반대일 것이다. 슬픔이 지극한 행복의 비밀스러운 이면이요, 존재의 확장을 향한 신호를 우리에게 보낸다는 것을 이해하라. 그로써 우리는 다가오는 것에 대한 환대를 통하여 우리 자신과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기억하게 된다.
117. 자유는 아마 위험을 받아들이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일 것이다.
124. 사람들은 시간을 벌었다는 말을 즐겨 한다.
253. 믿음이란 결국 믿어지지 않는 것을 마주하는 것 아닌가?
- 스캔들은 라틴어로 scandalum 걸림돌이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
- 스캔들은 진정되지 않는 것, 화해될 수 없는 것이다.
355. 우리의 침묵이 늘 살인적이지는 않다. 살인적인 것은 우리의 비겁함이다. 우리가 침묵 탓으로 돌리는 바로 그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