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 - 리스본에서 피니스테레까지 순례길 700km
정선종 지음 / 작가와비평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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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무언가 목표를 설정해두고 걷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바람에 따라 되는대로 흐지부지 걷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작년인가 재작년 즈음에, 남편이 그런 말을 해왔다. 본인 퇴직 전에 주어지는 1년이라는 기간에서 한 달 정도를 할애하여 도보여행을 하고 싶다고. 그 말에 “나는?”이라는 말을 되묻지 않은 까닭은, 사람에게는 모름지기 혼자 하는 여행이 꼭 필요하고 그게 걷기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또 나는 (운동 부족인지) 발목이 약한 데다가, 발가락이 약간 기형이라 (생긴 건 멀쩡한데 좀 오래 걸으면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퉁퉁 부어 며칠을 고생하는 편) 장시간 오래 걷는 걸 지향하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하는 며칠이 아닌 기간 동안 걷는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남편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템포를 맞추기가 굉장히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고 혼자 가고 싶다고 말을 한 것이리라.


여전히 나는 긴 시간 동안의 도보가 목적인 여행을 '함께' 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 흥미는 생겼다. 그래서 이전부터 순례길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들어봤을 때 감흥이 없던 것과 달리 약간의 흥미를 가진 채로 <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을 읽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해서 산티아고까지의 여정, 그리고 번외로 땅끝마을 피니스테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들을 따라가고 그 끝에서 나는 한숨이 폭- 쉬어졌다. 여보 미안해, 혼자 다녀와.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신 우리는 간간이 등산이나 둘레길을 걷는 거로 대신하자.



나는 그동안 순례길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시작점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저자와 저자의 아내는 60대 중반이라는 나이로 800km의 프랑스 루트를 완주한 바 있고, 이번에는 70대의 나이로 721km의 포르투갈 루트를 완주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목표를 설정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포르투갈이 시작점인 순례길에서는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표지판이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끔 등산을 할 때나 둘레길을 걸을 때에도 표지판이 친절하지 않은 곳이 더러 있어서 난감한 적이 많았는데 순례길이니 장기전을 목표로 가는 것일 텐데 가다가 되돌아오는 수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젓게 된다. 중간마다 이벤트가 한 번씩 있어서 조마조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순례길을 무사히 완주하게 된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저자의 나이가 있다보니 더욱 응원하게 되는 것도 있기도 했고.

책의 마지막에는 순례길을 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부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순례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순례길인데도 읽는 것에 이질감 없이 술술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중간마다 실려있는 사진과 그림이 있어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아내분이 그린 그림들은 따뜻하고 예뻐서 한참을 봤다. 그런데 아내분은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으셨다고. 흐흣.



책을 읽으며 사는 게 뭘까, 생각했다. 요즘 들어 더욱 그런 생각이 깊게 든다. 정말 사는 게 뭘까. 사는 게 재미가 없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살다보니 재미도 있고 잔바람도 있고 행복도 있고 풍파도 있다. 어느 날은 웃음들에 그릇이 깨어질 것 같더니 어느 날은 눈물을 바다 삼아 배영을 할 것도 같다. 누구나 행복해보이고 누구나 불행해보여도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달라서 감히 비교조차도 할 수가 없다. 각자에 맞는 행복과 불행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들을 잘 어루만져 달래가며 살아가는 게 삶이 아닐까. 앞으로도 사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보게 될 테고 최선을 다해 살아볼 테지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렇게도 사는구나. 하는 것들을 좀 더 깊이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하지만 중간에 저자가 말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현재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굳이 이 책에 들어갈 내용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남을 평가하는 데 있어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기반이었다.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을진대 본인이 살아본 삶이 아닌 삶에 대해 그것이 아니라고, 틀렸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닌 삶도 없고 틀린 삶도 없다.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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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결정한 행복 - 하버드 행복학 교수가 찾아낸 인생의 메커니즘
아서 C. 브룩스.오프라 윈프리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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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내가 아주 잘 읽었던 책은 <우리가 결정한 행복>이다. 행복이라는 것이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최근에는 실천하지 못했다. 좋고 기쁘고 뿌듯한 것들이 있어도 그 감정을 표현하기는커녕 마음에 가책을 느껴 일부러 모른척할 때가 훨씬 많았다. 기타 다른 감정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시에는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대한 (누구도 채찍질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갖는, 또 생성되는 죄책감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평소에 교양 심리를 겉으로만 핥고 신뢰하지 못한 나였는데, 이 책을 오래도록 읽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심리 상태가 안녕했다면 나는 이 책을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최근에 내게 놓인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4. 행복이란 최종 목적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서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평소에도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는 말이다. 이거만 하면 나는 행복해질 거야, 라는 주문은 이제는 하지 않는다. 행복은 순간 반짝 차오르는 느낌이었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것도 순간의 행복을 느낄 줄 알아야 그러잡을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책에서 ‘파나스’ 척도를 통해 내가 어떤 유형인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 모두에서 높은 점수였던 미치광이 과학자였다. 내가 양극적 장애인 조울증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맞닥뜨릴 줄은 몰랐네. 그러다보니 내게는 '생각에 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메타인지가 굉장히 중요해지는데, 감정을 의식적 수준에서 경험하고,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고, 감정에 의해 휘둘리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 안되는 일이지 않은가. 난 그렇다. 난 미치광이 과학자니까...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세상을 겪는 방식을 바꿔라.라고 책에서 말을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나는 현재 상태를 고수한 채 타인을, 상황을, 세상을 바꾸려고만 한다. 내가 바뀌지 않는 것처럼 타인도, 상황도, 세상도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그렇게 고집을 피운다.

최근에 남편과 다투었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내가 힘든 게 싫다고 했다. 힘들어하는 내가 안쓰럽다고도 했다. 힘든 일들을 본인들은 하지 않으면서 인정도 해주지 않는 내 원가족에게 화가 나고, 그걸 못 본 척하지 않고 자처하는 나에게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가족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혹은 하지 않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너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모두 맞는 말이기는 했는데, 맞는 말인만큼 마음이 쓰렸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이 책의 가족 챕터를 읽게 되었는데, 원숭이 덫을 예를 들어둔 걸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말뚝에 코코넛을 매달고, 속을 파서 안에 쌀을 조금 넣어둔다. 코코넛 위족에는 원숭이가 손을 넣을 수는 있되 쌀을 움켜쥔 주먹을 뺄 수는 없을 만한 크기의 구멍을 뚫는다. 배고픈 원숭이가 코코넛에 다가갔다가 덫에 걸리게 되었다. 손에 쥔 쌀을 놓으면 자유롭게 풀려날 수 있지만, 원숭이는 쌀을 놓지 못한다. 놓을 생각이 없다. 결국은 감정이라는 쌀을 움켜쥐고 놓지 못하느라 화나고 쓰라린 마음에서 자유롭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 모습이 내 모습과 오버랩이 되었다. 안쓰러우면서도 왜 이렇게 등신같은지...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을 때리고 싶어서 불이 붙은 숯을 집어들고 (…) 스스로 화상을 입는 사람”이라고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오게 되면서 원가족 중 엄마를 더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족 챕터를 읽을 때는 마음껏 엄마를 미워하면서 읽었는데, 책의 결말이 충격이었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족이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니. 그게 결론이라니.... 머리가 띵했다. 대체 왜 위로해주는 척을 한 거야... 난 지금 누구보다 포기하고 싶은데. 아예 전처럼 모른척하고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그 마음을 가로막는 게 뭔지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인데...

요즘의 나는 모든 면에서 예민하고 민감하다. 타인의 단어 선택 하나, 행동 하나에도 왜 그딴 식으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하냐고 지나치지 못하고 따지게 되는 앵그리버드가 되었다. 109. 당신이 지닌 부정 편향의 "민감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부정적 신호들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정말 중요한 소수의 신호에만 주의를 기울이려면 민감도를 낮출 줄 알아야 한다. 지나치게 높은 부정 민감도는 인생의 좋은 것들을 알아보기 어렵게 만든다. 민감도를 낮추는 방법 하나는, 감정 수용체에 부정적 감정이 결합하지 못하게 다른 긍정적 느낌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감사다.

다투고 나서 생각을 정리할 때 내가 남편에게 아래와 같은 말을 했었다. ‘내가 천성이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인 것을 잘 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나도 싫어서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해왔고 그중 하나가 감사일기였다. 그런데 그것도 그때뿐이더라. 어떤 상황을 감사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감사를 동전의 양면처럼 한 번에 불행으로 바꿀 수 있는 구제불능 인간이기도 하다. 천성은 바꿀 수가 없는 걸까. 그런 내가 나는 자주 끔찍하다.’고.

194. 만일 당신이 불행한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당신을 돕고 싶어 한다는걸 반드시 기억해라. (…) 무엇보다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괴롭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나만큼이나 더 힘들었을 남편이다. 항상 내 기분을 살피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너무 잦다보니 남편이 불만을 토해낸 것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125. 때로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당신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당신과 가까운 사람의 감정이다. 가족의 일원, 배우자, 친구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당신과 그 사람의 관계는 상대의 괴로움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그로 인해 당신의 기분마저 가라앉기 일쑤다. 그러던 와중에 시의적절하게 책에서 위와 같은 문장을 보게 되었고 내가 내 감정에만 너무 골몰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많이 미안했다.

101. 일기장에 고통스러운 경험을 적는 칸을 마련해 그런 일을 겪으면 바로 그 칸에 적어라. 아래 두 줄은 비워두자. 한 달이 지나면 다시 일기장을 펼치고, 비워두었던 첫 줄에 그동안 나쁜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적어라. 6개월 뒤, 비워두었던 둘째 줄에 그 경험이 낳은 긍정적인 결과를 적어라. 이런 훈련을 통해 과거를 보는 관점이 놀랄 만큼 달라질 수 있다. 고개를 끄덕거리게 했던 부분이다. 한 달 뒤, 6개월 뒤에 배운 것과 긍정적인 결과를 적으라니... 고통스러운 경험을 적는 건 쉬우나, 그곳에서 얻은 것을 적기란 쉽지가 않을 것 같은데. 하다못해 최근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이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배운 게 없는 것만 같고 벗어나고만 싶고 꿈이었으면 싶은데... 깊이 생각해보지 못해서 그런 걸까. 다음에 한번 해봐야지. 생각하고 독서노트에도 써두고 형광펜을 그어두었다. 책에는 그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필요할 때마다 챕터별로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도저히 행복을 찾지 못하겠을 때 추천하는 책_ 행복의 뿌리에 자꾸 물을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물만 자꾸 주면 뿌리가 썩을 텐데, 이 책을 통해 기존에 행복을 심어두었던 흙을 걷어내고 새로운 흙으로 덮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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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더라도 책고래세계그림책 1
디파초 지음, 김서정 옮김 / 책고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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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작가가 그리고 쓴, 한국에서는 처음 출간한 그림책

휘리릭 몇 초도 되지 않아 넘길 수 있는 그림책이라 아주 짧지만 매우 강렬하다.

그래서 책을 덮고 다시 몇 번이나 돌아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최근에 무릎을 치는 문장을 보게 되었다.

연인은 안 맞으면 헤어지지만, 부부는 안 맞으면 해결하려고 한다.


전에는 그게 말도 안 되는 말이라 생각했을 거다.

서로에게 사랑이 남아있다면 당연히 노력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만약 우리가 연인이었다면 헤어졌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함정이다.


우리 부부는 좋을 땐 너무 좋고 싫을 땐 너무 싫어서 탈인데

한편으로는 이럴 바에야 무던하게 주욱 이어지는 그런 관계가 좋지 않나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의 첫 장을 열면 작은 펭귄이 우뚝 서있다.

혼자였던 내가, 서로를 찾아내기까지. 그리고 함께였던 우리가 헤어졌다가 다시 함께이기까지.

여러 펭귄에서 두 펭귄, 그러다가 다시 한 펭귄이 다시 두 펭귄이 될 때.




어떤 고난이 와도 견디면서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임을 잘 알고 있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주면 더없이 좋겠지만 분명 지칠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본인이 이미 너무 지쳐있어 상대를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것을 알았을 때, 불씨가 지펴진 것을 알고 있지만 망설이다가 끄지 못했을 때 등등 우리가 결국 나중이 되면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우리 부부가 평소에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쓸데없는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그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원하지 않는 상황을 해결하려면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결혼 11년 동안 거리를 둬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거리 두는 것이 힘들다면 싫은 것들에 대해 포커페이스를 잘 해서 상대에게 내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이 전달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야 할 텐데... 상대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일그러지니 이걸 어쩐단 말인가.



우리는 책에 나와있는 펭귄처럼 또 한 번의 벌어진 틈을 열심히 헤엄쳐서 다시 메꾸게 되었다.

살면서 틈이 생길 때마다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우리일 수 있도록.

(그렇다고 이 책을 자주 보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하는 바람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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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불안은 죄가 없다 - 걱정 많고 불안한 당신을 위한 뇌과학 처방전
웬디 스즈키 지음, 안젤라 센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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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경 쓰이는 일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소화 장애, 수면 장애, 집중력 저하로 이어져 일상이 어지럽게 난잡해지고 만다. 예민지수는 극도로 치달아 말 한마디에도 분노를 내뿜고 민감도가 높아져 앵그리버드를 자처하는 것이 나라는 인간인데, 근래에 그런 상태로 두 달을 넘게 지내오니 못해도 5년은 늙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행동양식은 불안에서 오는 것임을 명확하게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불안과 동떨어져 있느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한 달 전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불안의 크기는 이전보다 작아졌다. 하지만 이건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고 행동을 취해서라기보다는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크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비단 상황‘만’이 바뀌어서 그런 걸까? 자문하게 된다. 결국 그 상황을 만든 건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불안에 대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과 더 밀접하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63. 불안이 우리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을 기본 값으로 설정하기 때문이고 살면서 크고 작게 불안에 따른 여러 양상을 이미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영국 국립정신과의 공인 심리치료사인 저자가 쓴 책에서는 11. 불안을 대하는 자세가 잘못되면 우리는 늘 불행하다. 라고 말하며 불안은 적정한 수준과 적절한 대처가 중요하다고 꼬집고 있다.



20. ‘만약에...’로 시작되는 걱정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게 걱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만약에-로 시작되는 일의 대부분은 애석하게도 긍정적인 상상보다 부정적인 상상을 하기가 더 좋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면 불안은 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데 그 활동성이란 어마어마해서 결국 나를 집어삼키게 되는 경험을 여러 번 해보았다. 



뇌는 변하고 불안은 양면성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66. 불안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자체는 사라지지 않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최적화’할 수는 있다.를 대변하는 말로는 61. 불안은 근본적으로 뇌-신체가 활성화된 상태. 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보내고 에너지가 증폭되며 무언가를 하기 위해 준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불안을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행동이었다.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세 가지였다. 자신의 감정에 이름 붙이기,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소통하기, 운동하기 그런데 요즘 나는 타인에게 내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좀 꺼리는 경향이 있다. 타인에게 내 감정을 말할 때 내 감정에 대해 100%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 혼자 말하고 내가 들어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가끔은 내가 가진 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모를 때가 더 많아서. 문제는 주체가 나 자신이 되어버리니 좀 더 감상적이 되어버린다는 점이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세, ‘하긴, 감정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필요는 없지.’하고 생각한다. 피드백이 주요 목적이라면 감정보다는 상황에 대해 더 주력해서 말을 하게 될 테니까.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통제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게 참 어렵다. 타인은 내가 의연하다고 말하지만, 숨기는 것뿐이다. 홀로 조용히, 그리고 완전히 무너질 때가 얼마나 많은데...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답변을 도출해낸다. 가장 불안한 상황에서조차 늘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의 불안감은 극도의 상태로 몰아가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단지 불안을 잘 다루는 법이 궁금해서는 아니었다. 걱정 많고 불안한 당신을 위한 뇌과학 처방전이라는 부제가 달려있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인데,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불안이 극도로 치달을 때였던 한 달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오히려 독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가 불안을 일컫는 말로, 미치겠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적어도 지금은 미칠 것 같지는 않지만, 미칠 것 같은 날이 살면서 자주, 많이 있을 것임을 안다. 불안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처럼 평정심을 잃게 되겠지만, 내가 불안에 잠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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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이즈 스페인 This is Spain - 2024~2025년 최신판 디스 이즈 여행 가이드북
전혜진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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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페인을 여행지에 포함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올해 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에도 (비록 올해에는 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스페인은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그런데 나는 잊고 있었다. 스페인에 톨레도가 있다는 사실을. 몇 년 전 우연하게 보게 된 톨레도를 보고 마음이 빼앗겼었는데 중세의 모습을 담고 있는 포르투갈의 신트라를, 이탈리아의 시에나를 더 좋아했던 내가 스페인의 톨레도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서 언제 순번이 올지는 모르나 스페인을 여행지로 꾹 눌러 담게 되었다.



그러려면 좀 더 친해져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유럽 전문 테라 출판사의 <디스 이즈 스페인 2024>을 찾아서 보게 되었다. 책에는 스페인 여행을 하기에 앞서 스페인 여행 적기, 하루 예산, 항공권 구매, 호텔 예약, 교통편 구매, 환전, 체크카드, 가방 크기, 여행 시 주의 사항 등에 대한 팁을 알려주고 있고, 이후에는 스페인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남부지역, 남부 해안 지역, 북부지역으로 나누어서 시내 교통, 교통권, 여행정보, 여행 일정, 관광 명소, 맵북, 식당과 숙소, 쇼핑 목록까지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다. 관광 명소나 식당의 경우에는 주소, 운영시간, 휴무까지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어 여행 계획을 짜기에도 알맞다.



요즘은 정보망이 워낙 잘 되어있어서 핸드폰으로 뚝딱뚝딱 찾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지에 대한 책을 보고 있으면 좀 더 행복한 기분이 들기도 했기 때문에 조금 무겁더라도 여행책 한 권 정도는 무조건 챙겨가려고 하는 편이다. 지금 당장 떠날 게 아닌데도 여행책을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금세 그 나라에 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는 것이 그 매력일진대, 지금 내 현실은 암흑에 빠져있어 컨디션이 쉽게 끌어올려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현실에서 벗어나게 만들기도 했다. 



책을 들고 다니기에 부담스러울 땐 책의 가장 앞쪽에 있는 맵북만 뜯어서 지도를 보며 아날로그식으로 찾아다니는 방식도 꽤 좋아하는 편이라 마음에 들었는데, 전도뿐만 아니라 유용한 실용 영어 회화와 위급 상황 시 알아두면 유용한 정보도 함께 실려있다. 위급 상황 시 알아두면 유용한 정보에는 주스페인 대한민국 대사관, 주바르셀로나 총영사관,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영사콜센터, 각 카드사 분실 신고센터, 스페인 긴급 연락처, 주요 병원 응급실 연락처, 24시간 운영 약국 검색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을 찾아보지 않는 여행이 가장 좋겠지만, 위급 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생길 수 있는 일이기에 있으면 좋은 정보들이기에 꼭 챙길 것을 당부한다. 나 역시 일본에서 여권 분실로 대사관에 전화하느라 진땀을 뺀 적 있기에 그 중요성을 더 실감하게 된다. 그전까지는 대사관에 전화할 일이 없었기에 몰랐던 것인데, 나는 그럴 일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어쨌든 안전하게 귀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페인 하면 역사와 미술, 건축까지 유명한 곳이라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을 텐데, 여행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한 책으로 <디스 이즈 스페인 2024>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더욱 2024년 최신판으로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이 괴로울 때, 불안할 때 여행책을 꺼내놓고 힐링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이 책을 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약간의 리프레시를 경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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