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예찬 -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방법
안 뒤푸르망텔 지음, 이세진 옮김 / 사람in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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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을 꼬박 일주일을 붙들고 있었다. 며칠간 시험공부를 하던 나는 어떤 책이든 거뜬히 읽을 수 있다는 자만을 내보였는데, 알량한 기개로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위험 예찬』 안전과 밀접한 삶을 살아온 내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제목이었다. 도대체 어떤 형태의 위험을 예찬한다는 것인가 싶어 호기가 일어서 가장 먼저 이 책을 선택했다. 안전과 위험은 수평선으로 본다면 끝과 끝에 위치해있을 것이라는 내 생각을, 과연 고수할 수 있을까.



책은 9. 생은 우리 산 자들이 감수하는 막대한 위험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난 이때 깨달았다. 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이구나. 내가 생각하던 위험은 얼마나 협소한가 싶어 실소가 터졌다. 표지에는 위험 예찬의 부제를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방법’으로 적어두었는데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면서 이 책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라 생각했다. 아마 우리는 매 순간 '생을 걸다(risquer sa vie)'라는 말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3.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의 순간은 그때부터 다른 시간을 연다.는 위험감수선을 우리는 곁에 두고서 알게 모르게 끌어안고 살거나 외면하면서 살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기 전까지는 그게 위험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글을 읽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밑줄을 많이 그었다. 이해가 될 것 같은데 쉽지 않은 문장도 있었고, 반대로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았던 문장이 몇 번을 읽어보니 어느새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된 문장들도 있었다. 아마 이후에 읽게 되면 더 많은 문장들이 내 안에 들어겠지.



그중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았던 챕터는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거나 되지 않는가>였다.



나는 내가 계획한대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정형화된 삶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나를 만나보는 일. 편안하게 나를 잃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전한 울타리에서 선을 조금 넘어보는 일. 그것은 단순하게 나의 생활 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태도도, 행동 등 전반적으로 이루어진 ‘나’에서의 모험 같은 것. 95. 때로는 자기가 되지 않는 것이, 죽지 않는 것과 정확히 마찬가지로, 어떤 외피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실존·정체성·삶의 규칙에, 우리에게 지표가 되는 영역에, 자아가 영속되는 연약하지만 고립된 영역에 갇혀 있지 않기. 내게 그럴 용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55. 우리는 위험 없는 강렬함을 원하지만 그런 건 불가능하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내가 사는 동안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구나 느꼈다. 20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 삶에서 안정감을 최고로 꼽았다. 안정감은 관계에서 나왔고, 또 내가 세워둔 반듯한 계획에서 나왔고, 때로는 고요함에서 나왔다. 하지만 살다보니 안정감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안정됐다고 느꼈을 때도, 불안정하다고 느꼈을 때도 나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불안정을 조금은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불안정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이제는 아니까.



이 책을 다 읽고 덮은 뒤에도 여전히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머릿속이 난잡하지만, 꽤 좋은 책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기사시험 실기시험이 끝난 날 이 책을 읽었는데, 80 페이지 남짓을 읽고 다음날 시행되는 기사시험 필기를 접수해버렸다. 위험을 무릅쓰기 위해서. 책을 다 덮은 지금도 챕터를 한 번씩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처음 읽을 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문장들을 다시 이해하게 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 앞에는 어떤 위험이 있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책 속 밑줄_


12. 살아 있는 동안 죽지 않는 것이 모든 위험 가운데 으뜸이고 그 위험이 탄생과 죽음에 인간이 밀착해 있을 때 굴절되어 나타난다면?


22. 때때로, 죽지 않은 위험은 눈에 띄지 않은 채, 거의 지각되지 않은 채 지나간다.


27-28. 사랑은 의존의 기술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위험을 감수할 것을 전제한다. 패배를, 부조리한 기다림을, 타자의 돌연한 거절을 대할 때의 실망을 용인해야 한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에 휩쓸려야 한다. 의존에 대한 이 동의는 체념이 아니다. (…) 사랑은 우리가 타자에게도 이동하게 해주는 사건이다. 우리 자신을 버리고 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사건.


37. 보류 상태는 숨을 죽이는 것이다. 그저 여기에 있는 것, 사람들의 현존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가능한 한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것이다.


88. 위험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다. 모든 고통·재난·애도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되, 불행의 몫은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미리부터 구제받을 수는 없다.


106. “당신 마음속에 살게 한 두려움이 당신의 유일한 피난처일지도 몰라요. (…) 두려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쁨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나와 다른 것, 미지의 것, 살아 있는 것의 침입을 받아들이는 거고요. 체념과 이별하는 건 무서워요. 두려움은 결코 진정시킬 수 없는 불행하고 불안 심한 어머니처럼 당신을 보호해요.”


111. 슬픔에는 고유한 두께나 메아리가 없다. 슬픔은 내면의 불분명하고 비이성적인 공간을 한정한다.


116 . 슬픔을 감수한다는 것은 우울에 빠지는 것과 정반대일 것이다. 슬픔이 지극한 행복의 비밀스러운 이면이요, 존재의 확장을 향한 신호를 우리에게 보낸다는 것을 이해하라. 그로써 우리는 다가오는 것에 대한 환대를 통하여 우리 자신과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기억하게 된다.


117. 자유는 아마 위험을 받아들이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일 것이다.


124. 사람들은 시간을 벌었다는 말을 즐겨 한다.


253. 믿음이란 결국 믿어지지 않는 것을 마주하는 것 아닌가?


- 스캔들은 라틴어로 scandalum 걸림돌이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

- 스캔들은 진정되지 않는 것, 화해될 수 없는 것이다.


355. 우리의 침묵이 늘 살인적이지는 않다. 살인적인 것은 우리의 비겁함이다. 우리가 침묵 탓으로 돌리는 바로 그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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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김영북스 답만 봐도 합격 굴착기(굴삭기)운전기능사 필기 - 핵심이론&핵심기출 + 기출복원 모의고사(7회) + 기출 CBT 모의고사(3회) + 핵심기출 무료강의 + 기출지문 OX 오답노트
안태수 외 지음 / 김영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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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어쩌다보니 철거 현장에 와서 포스팅하는 오늘 날짜로, 굴착기 여섯 대가 현장에 굴러가고 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굴착기 자격증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는데, 굴착기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건 아니었고, 굴착기로부터 기인하는 위험과 사고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본업인 안전관리자의 역량을 더 강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전관리자가 굴착기 자격증이라니! 있어 보이지 않아?”라는 게 시작이었다. 쇠뿔도 당긴 김에 빼랬다고, 지금 이 현장에 있을 때 따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시작해 본 굴착기 운전기능사는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모르는 것들은 직접 현장에 계신 굴착기 기사님들께 여쭤봐가며 열심히 배우고 있다.

『2027 김영북스 답만 봐도 합격 굴착기 운전기능사 필기』은 초보 수험생, 단기 합격 희망자, 이론이 약한 수험생, 실전 감각이 중요한 수험생 등 어떤 이들이 공부를 하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내가 굴착기에 대해 알고 있던 것보다 좀 더 면밀하고 상세하게 알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림과 도표가 한눈에 이해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 또 까다로운 문제의 경우에는 아래 보충 해설이 있어 한 번 더 짚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PART 01 굴착기의 구조와 작업

PART 02 엔진의 구조와 작동원리

PART 03 전기 및 섀시 장치

PART 04 유압장치

PART 05 건설기계관리법 및 도로교통법

PART 06 안전관리


총 여섯 개의 파트로 나눠져있는데, 나의 흥미를 유발한 건 단연 파트 6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펼쳤던 부분이기도 했다. 실무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어 특히 더 인상적이었다.



『2027 김영북스 답만 봐도 합격 굴착기 운전기능사 필기』은 2027 NCS 완벽 반영해둔 것으로 핵심이론과 핵심기출을 모두 담아두어서 군더더기 없다는 점이 좋았다. 또 기출복원 모의고사는 7회, 기출 CBT 모의고사는 3회가 실려있어서 시험보기 전 공부를 하기에도 충분했다. 그리고 『2027 김영북스 답만 봐도 합격굴착기 운전기능사 필기』의 특별한 점은 기출지문 OX 오답노트가 있어서 자주 틀리는 문제를 점검할 수 있고, 저자 직강의 핵심 기출 무료 강의를 제공하여 혼자 공부하는 수험생에게도 유용하게 작용한다는 점이었다. 책에는 이론도 함께 담아내고 있어 얇지만은 않지만 핵심만 효율적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콘텐츠들을 잘 활용하면 단기간 합격도 충분히 노려볼 만한 교재라고 느꼈다.



이번 공부를 통해 자격증 취득이라는 목표뿐 아니라, 안전관리자로서 굴착기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에서 실제 장비를 보며 책의 내용을 하나씩 연결해보는 경험은 예상보다 훨씬 의미 있었고, 앞으로도 실무와 공부를 함께 이어가며 더 많은 것을 배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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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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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기회가 좋아 모티브 세계문화전집1이었던 『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를 아주 진득하게 취해서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를 곧이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에곤 실레의 작품은 여러 번 보았었는데, 그 그림이 에곤 실레라는 것을 인지하게 해준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인 『인간 실격』(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표지였다. 당시 『인간 실격』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봤을 때 주인공이었던 오바 요조와 너무 비슷했고, 『인간 실격』이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임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내게는 ‘다자이 오사무 X 에곤 실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했었는데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라니! 프란츠 카프카와 에곤 실레의 공통점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째서 둘의 조합일까?



프란츠 카프카 1883.07.03 ~ 1924.06.03

에곤 실레 1890.06.12 ~ 1918.10.31



만나지 않은 쌍둥이라는 말이 꼭 맞을 정도로 동시대를 살았지만 만나지 않았던 둘의 공통된 속성은 아버지로부터 나온다. 프란츠 카프카에게는 ‘살아 있는 권위’로, 에곤 실레에게는 ‘죽은 공포’였던 아버지로 하여금 내 몸은 정말 내 것인가? 아니면 가족과 사회와 국가에 의해 점령당한 영토인가?라는 질문에 카프카는 문장으로 썼고, 실레는 붓으로 그렸다.



카프카가 『변신』 초고를 집필하던 같은 해에 에곤 실레는 외설 화가로 불리며 감옥에 갇혔다.



서른여섯 살의 카프카는 「아버지께 드는 편지」로 책 한 권 분량의 편지를 썼지만 끝내 부치지 못했다. 그 편지에는 어느 밤에 카프카가 물을 달라며 칭얼대자 아버지는 카프카를 침실에서 끌어내 안마당으로 통하는 발코니에 내놓고 문을 잠근 어린 시절의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심판』, 『변신』, 『성』 모두 발코니에 서 있던 아이의 또 다른 형태로 느낄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변신』을 다시 읽으니 이전에 읽을 때보다 깊이 그레고르 잠자를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 잠자는 카프카였고, 그가 느꼈을 상처가 그런 것이었겠구나, 하며.


아버지의 매독에서 퍼져나간 죽음의 행렬을 경험한 실레는 거울 앞에서 자기 몸을 평생 반복해서 그렸다. 십 대 소녀들을 모델로 쓰기도 했고 한 소녀의 아버지가 실레를 신고하면서 경찰은 작업실에서 100점이 넘는 실레의 그림을 외설물로 간주하고 압수하게 되었다. 유괴와 유혹 혐의는 모두 기각되었지만, 미성년자가 접근이 가능한 장소에 외설적 그림을 전시한 죄가 유죄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재판 당일에 판사가 실레의 압수된 그림 중 한 점인 허리 위로만 옷을 입은 어린 소녀를 그린 그림을 법정에서 촛불로 태워버렸고, 실레는 눈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이 불이 타는 모습을 또 보아야만 했다. 또 실레는 자화상을 100점을 그렸는데 스스로를 찢고 비틀고 해부하는 그림이었다. 바로 그것이 그가 본 진실,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난 카프카와 실레를 왜 같은 선상에 두었는지, 쌍둥이라고 표현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은 각자가 가진 상처를 펜으로, 붓으로 마음껏 표출했다. 발가벗기고 찢어버리고 죽여가는 자기를 쓰고 그리면서 그들은 홀가분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런 모습을 한 자신의 모습이 더 참혹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끝내는 가엾은 자신들을 안타까워하며 안아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글과 그림 속에서 자신을 죽이고 또 살렸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을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당신은 숨은 곳에서 구원을 찾았습니까, 아니면 구원을 피해 숨었습니까? 이 질문에 난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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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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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사는 지역에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레플리카展을 전시했고 다녀왔다. 페르메이르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북방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다. 그 작품은 1665년경에 그려졌고, 현재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작품을 보자마자 오래전 읽었던 트레이시 슈발리에의《진주 귀고리 소녀》를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읽고 있던 책들을 마무리한 뒤 바로 꺼내들었다.


이 책의 마지막을 덮은 후 여운이 길게 남았다. 그리고 뒤이어, 오래전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상이 궁금해져 찾아봤다. 이 책을 읽은 건 2010년으로 16년이 지난 뒤에 재독을 한 것이었는데 그때의 감상을 읽어보니 당시의 나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에 아는 것 하나 없는 상태로 읽었던 게 분명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레플리카展에서 보고 큐레이터로부터 듣고 찾아보고 이 책을 읽은 지금은, 책의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소설인지, 또 사실과 소설의 경계에 있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 알게 되어 좀 더 빠져들 수 있었다. 


​​


이야기는 그리트로부터 시작되어 그리트로 끝난다. 그리트는 가상의 인물로,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리트가 타일공인 아버지가 불운한 사고로 실직하게 되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화가 페르메이르의 저택에 하녀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녀에게 페르메이르 작업실의 청소가 주어졌고 화가의 물감을 씻고 재료를 가는 역할까지 도맡게 된다. 136. 나는 점점 그와 함께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가끔 우리는 작은 다락방에 나란히 서서, 내가 백연을 갈고 있는 동안 그는 청금석을 씻거나 황토를 불에 구웠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나 역시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창으로 쏟아지는 빛 속에서 흐르던 그 시간들은 평화로웠다. 일을 끝내면 우리는 서로의 손에 주전자로 물을 부어주며 씻었다. 이야기는 아주 천천히, 고요하게 흘러간다. 평소의 나는 상황을 반전시키거나 급박하게 흘러가는 걸 기대하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이 침묵과 고요함이 지루하거나 답답함을 느끼지 못했다.



​235-236. “네 주인은 특별한 사람이야.” 반 레이원후크는 계속 말했다. “그의 눈은 황금으로 가득 찬 방만큼이나 가치가 있지. 그러나 가끔은 그도 자기가 그랬으면 하는 세계만 보곤 해. 실제로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자기의 그런 시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초래한 결과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그는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작품만을 생각한단다. 네 생각을 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너는 조심해야……” 반 레이원후크가 말을 멈췄다. 그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무얼 조심해야 하나요?” 나는 속삭였다.

“너 자신으로 남아 있도록 해라.”

나는 턱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하녀로 남아 있으란 말씀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그의 그림 속에 있는 여자들…… 그 여자들을 그는 자기의 세계에 가둬놓고 있어. 너 역시 거기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어.”


진주 귀고리를 하기 위해 피부를 마비시키는 정향유를 이용하여 귀를 뚫는 모습은 마치, 소녀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는, 그리트를 사랑했던걸까? 그 대답은 여전히 알 수가 없고 할 수도 없다. 그에게 그리트는 그저, 그의 그림을 완성시켜줄 진주 귀고리에 불과할 뿐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후로 페르메이르에 대해 찾아보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뿐만 아니라 작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누굴 그린 것인지, 어떤 연유에서 그려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명쾌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페르메이르에 대해 알려진 게 많지 않다는 건 그만큼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작가는 오히려 더 좋은 일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가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트의 시선에서 참, 애달프게 읽었다. 그녀 손에 쥐여진 5길더는 영영 열리지 않을 것이다.




책 속의 밑줄_


​271. 결심을 했을 때, 나는 알았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임을. 별의 한 꼭지점에 주의 깊게 발을 딛고, 그 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는 어김없이 걸어갔다.


284. “그래, 인생이란 한바탕 연극과 같은 거야. 자네도 오래 살다보면 놀랄 일따위는 없을 걸세.”


292. 이제 내게는 설명할 수 없는 오 길더가 더 있는 셈이었다. 나는 동전 다섯 개를 빼내 손바닥 안에 꽉 쥐었다. 피터와 아이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숨겨두리라. 오직 나만이 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그런 장소에.

나는 이 다섯 개의 동전을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

피터는 나머지 돈을 보면 기뻐하겠지. 빚이 깨끗이 청산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피터에게 더는 치를 것이 없었다. 한 하녀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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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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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철거 현장의 한복판에 오도카니 서있다. 한 달 전쯤 벌목작업을 했다. 나무가 베어질 때에 나는 나무가 아닌 사람의 안전에 신경을 썼다. 안전하게 벌목을 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벌목 시 나무 높이의 2배 반경에 동시 작업 금지할 것, 수구 각도는 30도 이상, 수구 깊이는 뿌리 지름의 1/4~1/3에 수구 작업을 할 것. 수구 절단부보다 나무 지름의 10분의 1정도 높은 위치에 만들어 추구작업을 하고 틈 사이에 쐐기를 박을 것. 다른 작업자 유무 확인 후 신호수의 신호에 따라 나무 넘길 것.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그렇게 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무가 베어지는 걸 봤고 그루터기를 뽑아내고 뿌리가 뽑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어디에서도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는 죽어가는 나무를, 그리고 죽어버린 나무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소생을 빌었다. ‘다시 살아나.’ 하지만 나무는 살아나지 못했고 살아날 수 없었다. 임목폐기물로 분류되어 화물차에 실리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 나무들은 어디에 갈까.




45. 뿌리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어. 당신 겨드랑이처럼 습한 땅에 내려 물기를 흠씬 머금은 뿌리는 냄새가 짙고 깊어. 강요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침묵에 잠기게 하는 냄새야…… (…) 날이 밝으면 청계산으로 뿌리를 찾으러 갈 거야. 그곳에 가면 굴삭기에 뿌리가 들린 나무들이 지천으로 널렸을 거라고 하더군. 도로를 놓으려고 산을 파헤치고 있나봐. 그곳에 내가 찾는 뿌리가 있을지 모르지, 내가 그토록 그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 뿌리가……



김숨 작가의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뿌리 이야기>, <슬픈 어항>은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같은 존재론적 이야기로 연작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목격했던 나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나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또 이사를 하면서 나의 뿌리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졌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결국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는 거였구나. 죽기 전까지 영영 벗어날 수 없는. 너무나도 싫어서 그 뿌리를 다 잘라내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최근에 다시 한번 느끼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더 여실히 깨달아야만 했다. 나는 나의 뿌리를 옮기려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던가 생각해보면 허탈감에 진이 다 빠져버려서 무엇도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왜 없는 게 아니라 있는가

나무들도 스스로에게 묻고는 할까



나에게 이 책은 참 어렵게 다가왔다. 이해될듯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그어진 선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연달아 바로 읽어볼까 싶었는데 약간의 텀을 두고 다음에 다시 찾아 읽기로 하고 약간의 미련을 남긴 채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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