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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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겹다.

내가 책을 중간 즈음 읽었을 때부터 책의 서평을 쓸 때는 이 단어를 첫 마디에 써야지, 생각하고 있던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말을 쓰기 위해 나는 서평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박범신 작가는 작가의 말에 구태여 썼다. 단순히 부도덕한 러브스토리로만 읽지 말라고.

나는 단순하게 부도덕한 러브스토리로만 읽지 않았다.

김진영이 천예린에게 마음이 기울었을 때, 그럴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의 꿈틀거리는 욕망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역겹다고 말하는 것은, 숭고한 것을 너무 추잡하고 추악한 방식으로 더럽혔기 때문이다.


이 책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다가 김진영, 그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기로 한다.

48. 50대의 나이는 변수가 적다.

그러나 삶이란 끝이 없다.

삶이 계속되는 한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 뒷덜미를 사정없이 잡아채어 수렁 속으로 내던지고 마는, 악마의 손길 같은 삶의 어두운 변수는 결코 끝나는 법이 없는 것이다.

정말 50대가 되면 변수가 적을까. 생각하다가,

J를 보면서 치열하게 사는, 또 살아야 하는 20대, 30대, 40대보다는 더 많이 내려놓게 되겠지, 한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떠들어대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어쨌든 사람은 노화가 진행되어가는데 백세시대면 무얼 할 텐가.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여성은 50대가 되면 자연스레 폐경을 겪을 테고, 갱년기도 올 텐데.

백세시대라고 하더라도 폐경이나 갱년기가 80세에 올 수는 없을 거다.

오히려 폐경은 더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의학 기술이 발달한다고 하지만 얻는 게 있는 만큼, 우리는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소맷부리 단추, 그 하나가 불러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새삼스럽게 모든 것이 짜증스러운 날, 맹렬한 적개심이 일었다.

그러면서 중심 어딘가가 비어있다고 느낀다.

그것을 그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60. 나는 도대체 여태껏 뭘 해왔을까.

스스로를 자조하며 지내던 어느 날, 노란 우비에 이끌려 미술 학원을 들어가게 된다.

천예린, 그녀의 이미지

1. 소녀, 노란색

2. 눈빛의 광채

3. 스케치북에 그린 옛 꿈이 이미지

김진영 씨가 그녀에게 이끌렸던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쩌면 자신을 인정해주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반면에 그림을 그릴 거라는 그의 말에 질린 표정을 한 아내에게서, 뻔한 일상에 사로잡힌 평범한 아줌마의 모습을 본다.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 황폐한 간격 / 너무나도 뻔한, 기계로 찍어낸 싸구려 공산품 같은, 황폐하고 부식된 삶. 이라고 표현하는 모습에서 나는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가족에게서 로봇 취급은 물론이거니와 희로애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삶을 보냈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겠지만 많이 슬픈 부분이었다.

103. 확실히 예감하진 못했으나, 그때 이미 나는 내 앞에 은밀히 놓인 덫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삶이란 때론 그렇다, 평온하고 안정된 삶일수록 은밀히 매설된 덫을 그 누구든 한순간 밝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생의 심연이 지닌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일는지도 모르겠다. 생이라고 이름 붙인 여정에서 길은 그러므로 두 가지다. 멸망하거나 지속적으로 권태롭거나.

아들 선우에게 "고향 집 어귀에 있던 미루나무들이 싹 베어지고 없더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가족을 등진 김진영 씨. 심지어 그는 회사 자금을 횡령하여 갔기 때문에 가족은 그가 떠난 후에 완벽하게 파멸을 할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인해 실어증과 기억상실이 같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선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진영 씨라고 아십니까?"

그는 아버지를 만나러 동시베리아에 이르쿠츠크 지역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아버지는, 천예린의 주검을 지키고 있다.

33. 주름살 투성이의 거무튀튀한 얼굴, 푹 꺼진 눈, 바짝 말라 함몰된 볼, 그리고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눈빛. 불과 2년 만에.


 

나는 김진영 씨에게 갱년기가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성의 갱년기는 더욱 황폐하다고 들었으므로 그것이 김진영 씨에게 닥칠 위험천만의 순간들을 오롯하게 함께 겪을 수 있겠구나.

언젠가 J에게 갱년기가 찾아온다면, 이라는 기대를 가지며 읽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결국 이것인가?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텅 빈…… 자유가 거기 있네. 침묵의 방이…….

라는 것 같았지만,

나는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천예린이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헌신적이던 김진영씨는,

왜 자신의 아내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김진영,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 적도 없다.

설령 그렇게 묘사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진심일 리 없다.

매우 이기적인 인간의 한 전형을 보았다.


 

책의 묘사에 대해서는 읽는 독자의 고유한 권리라고 본인이 쓰셨으니 욕 좀 해야겠다.

책에는 성관계가 묘사되어 있다.

아주 상세하게.

그런데 이보다 더러울 수가 없다.

참 더럽게도 쓰였다.

왜 이런 부분이 쓰여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나의 관할은 아니었기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을 보자 싶어서 끝까지 읽어나가기는 했지만,

읽으면서 외설스러운 묘사들의 행진에 나도 모르게 낮게 욕을 내뱉기도 했다.

이 책을 썼을 당시,

작가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여있었나? 하고 생각할 만큼,

-하지만 결코 이해하고 싶지는 않은- 격정적이다.

그에게 성행위란, 성관계란, 섹스란, 이런 것일 수밖에 없나?

급기야 책을 읽으며 작가에 대한 인간성까지 의심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그는 사랑이 밑바탕이 되어 있는 섹스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지에 대해서까지 다다르게 된다.

<은교>를 읽으면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기에 나는 더 이상 그의 책을 읽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50대 아버지'라는 부분에서 또 멈칫했던 거다. 또 다른 <소금>일 줄 알았겠지.

/

아,

사람이 산다는 게 무어냐.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그게 행복인 줄을 모르고 산다.

그렇게 찾고 싶었던 자신의 생 앞에서,

결국 그는 무엇을 찾았나 말이다.

그는 단 한순간도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고,

그저 한 여자의 그림자만 밟으며 쫓아다니는 꼭두각시였을 뿐이었다.

자신을 찾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도대체 어느 부분이 자신을 찾았다고 말하는가.

텅 빈 자유가 거기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결국 자신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천예린이 남긴 부분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닌가.

그는 애초에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었던 거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가.

참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다.

ps. 50대 여자에게 천예린이라는 이름은 가명이었을까?

50대 여자에게 천예린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편견이겠으나, 읽는 내내 몰입이 안 돼서 혼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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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6-1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금 한권만 읽었는데요, 하늘보리님의 리뷰를 보니 박범신은 이제 안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