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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정치 - 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12월
평점 :
처음으로 참정권을 가지게 된 나이가 된 날,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투표를 하러 같이 가자는 내 말에, “그놈이 그놈이여.”라는 말씀 이후 요지부동이었던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각종 사건들을 보면서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결국 잇속 챙기기 바쁜 정치인들에게 실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어려웠다.
한 번도 현정권을 지지한 적이 없었다. 옹호도 없었다. 더더군다나 정치에 깊숙한 관심을 가져본 일 역시 없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나는 꼬박꼬박 참정권을 남용한다. (남용이라는 단어 말고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투표를 누구에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일까를 생각하는 것보다 돈을 찢어 공중으로 뿌리는 게 더 쉬운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할 일이 없나?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내가 강제로 빼앗기는 게 생기고, 자꾸만 내가 잃는 게 부피가 커져서’인 까닭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에는 보수와 진보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있다고 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현재 한국은 舊보수와 新보수만으로 나누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는 남을 탓하는 인간 부류를 굉장히 싫어한다. 남을 탓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 고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싫어한다. 싫어한다는 표현을 넘어 경멸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언제까지 “너 때문에, 이거 때문에, 저거 때문에, 그거 때문에”를 남발하며 한심하고 멍청한 태도로 일관할 텐가. 이건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기사의 댓글은 거의 안 보는 편인데, 최근에 실시간 검색으로 누군가가 쓴 댓글을 보게 되었다. 전정권이 싸놓은 똥을 치워놓느라 그렇다, 고. 이제까지 전정권이 똥을 싸놓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전정권이라는 것은 현정권의 눈을 가리는 최고의 핑계 아닌가. 그만 좀 하자. 그건 명백히 책임감 결여다.
멍청한 것들이 자리 차지하고 앉아 시시덕거리며 시간만 때우고 앉아있는 뉴스를 보기 싫어 한동안 멀리하기도 했었다. 그들이 떠드는 말들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지껄이는 말인지도 모르겠고 별것도, 아무것도 아닌 그들이 가장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국민의 위에 군림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 역겹게만 느껴졌다. 그들은 그저, 국민들의 하인이자 대리인일 뿐이다. 그것도 계약직으로.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 박근혜에게 패배한 2012년 대선 결과를 성찰한 문재인의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
책의 저자인 강준만 교수는 진보의 입장에서,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며, 진보가 될 수 없다고 일축한다. 은밀히 말하면 이 책은, 보수에게 환호를 ‘받을 지도’ 모르는 책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자의 글들은 보수 지면의 기사에 실리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책의 곳곳에서 진정한 진보다워지기를 희망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쓴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단지 ‘~니까 ~이다’라는 사실적 근거 혹은 판단 혹은 주장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총 20장의 목차에 ‘왜’를 붙여 의문을 제기한 후에 그에 따른 이유들을 분석하고 대안까지 친절하게 내어주고 있는 까닭이다.
이건 단지 “나 너 싫어. 너랑 안 놀아.”의 유치한 논리가 될 수 없다. 이건 학급이 아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체육대회 때 ‘우리가 함께 속한 반’이 이길 수 있게 ‘다른 반’과의 줄다리기에서 더 세게 잡아당겨야 하고, 바통을 잘 주고받아 뛰어야 하기도 한다. 최종 목표는 의기투합하여 ‘우리 반’의 승리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반’을 보수와 진보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우리 반’은 ‘대한민국’이니까.
323.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자세를 잠시 유보하고, “우리도 틀릴 수 있고 너희도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 주기만 하면 된다.
작은 땅덩어리인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의 편가르기는 없어야만 한다.
어쩔 수 없이 가치관이 상충하더라도 우리는 같은 대한민국에서 상생해야 한다. 무엇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국민을 살게 하는 것인지, 국민의 하인이자 대리인들은 자기의 잇속보다 더 고심하고 숙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