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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사치 - 가족을 이루는 삶이 특별해진 시대의 가족
진미정 지음 / 김영사 / 2026년 3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3월, 4월에는 가족에 대한 헌신과 책임, 양보와 배려, 그리고 묵직한 부담은 가족에서 떨어져나오고 싶게끔 만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형성된’ 가족이라는 집단의 부담감에서 허우적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이 책을 손에 들었는데 예상 밖의 흐름에 조금 당황했다. 책은 가족의 형태부터 시작하여 저출산, 다문화, 고령화까지 여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줘서 잠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가족을 생각할 때 어떤 형태를 생각하는가? 부모와 아이, 혹은 아이‘들’이 있는 ‘단란한’ 가족을 생각한다. 실제로 아이를 낳음으로써 가족이 완성되었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의 형태가 바뀌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했다면, 지금은 가족을 유지하는 것이 비용과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이다보니 누구도 함부로 가족계획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이 사치가 되어버린 지금.
나부터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살기로 고민하고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의 오지랖들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지라 오지랖을 덜 듣는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랄까. 또 무엇보다도 내 주변 직업 특성상 결혼 적령기를 놓쳐 결혼을 하지 못한 혹은 않은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은 나보다 연배가 더 있는지라 더 이전부터 어떤 얘기를 들어왔을지 빤히 보이지만 부러 얘기하진 않는 게 내가 그들을 존중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이렇듯 이제는 가족의 다양성을 본인의 기준에 따라 맞다 틀리다로 규정하지 않고 개별의 가족단위를 존중해 줘야 한다. 이게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숙제가 하나 생긴다. 출산율. 인구 절벽, 인구 소멸. 책에서는 많은 것들을 얘기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출산율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의 알고 모르는 노인들을 부양하며 살고 있는데, 지금의 아이들이 우리를 부양한다는 생각을 할 때면 괜스레 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의 존재로 최대한 사회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망에서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임신/출산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서 존중되어야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피할 수 없다.
전에는 노키즈존에 대해 찬성했던 나는, 지금은 약간 생각이 달라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노키즈존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매우, 아주, 대단히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전히 노키즈존이라는 공간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유가 양육자의 태도로부터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인데, 성숙한 양육자가 많아진다면 노키즈존은 자연스레 사회에서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것 중 하나는 아이를 낳은 일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아이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부모들의 양육방식이 쉬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아서 안타깝다.
97-98. 앞으로 각자 삶의 경로를 선택할 때 꼭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것이 있다. 취향과 가치를 구분하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 선택, 혹은 비혼 선택은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취향이 아니라 가치의 문제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결혼을 선택하든 비혼을 선택하든 아동, 가족, 돌봄, 공동체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서 존중되어야 한다. 나 자신은 가족과 돌봄을 선택하지 않았어도 이러한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바로 위에 얘기한 노키즈존과도 맥락을 같이 하지만, 최근에 아버지를 간병해본 나는 ‘돌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돌봄에는 시간과 품이 정말 많이 드는구나를 체감하며 일명 간병 지옥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한 달을 꼬박 간병인을 쓴다면 최소 500만 원을 소비해야 하는 높은 간병비의 벽에 머리를 찧고 너덜너덜한 상태로 간병을 자처한 보호자의 경계를 절실히 느꼈달까. 하지만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모 아니면 도였으니까.
그 외에 흥미로웠던 건 ‘한부모가구’와 ‘한부모가족’의 개념을 바로잡아주는 일이었다. 한부모가구는 부모 중 한 명과 자녀로 구성된 모든 가구를 말하고, 한부모가족은 부모 중 한 명과 미성년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말한다. 그러니까 엄마와 성인 자녀는 한부모가족이 아닌 한부모가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부모가족은 법적으로 인정된 보호 대상이라면 한부모가구는 지원 대상 여부와 무관한 단순한 가족 형태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별이나 이혼으로 인한 부부의 해체와 미혼 또는 비혼인 자녀의 결합이 한부모가구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뉴스나 기사에서 보는 한부모가족과 한부모가구의 어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회적 기준과 평균은 현재에 와서는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에 정상가족, 비정상가족을 나눌 필요 없이 우리는 공생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더 이상 정형화된 삶만이 정답은 아니니까. 하지만, 개인의 삶은 각자의 선택에 맡겨졌지만 그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내는 결과는 결국 사회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가야하는지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