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
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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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여름이다. 여름이 맴맴맴맴하고 울어대고 덥고 습하고 기운이 처져서 하이고 죽겠다, 죽겠다를 외치는 그런 여름. 여름이 오면 항상 소망한다. 배를 바닥에 대고 누워 선풍기 틀고 수박먹으며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것을. 매해 그렇듯, 올해도 그런 여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쉬는 휴일에 밖에 나갈 수도 없어 온전히 집에 있으니 밀린 책을 읽기에 참 좋은 계절이긴 하다. 이런 때에는 소설만 한 것도 없지. 이번 여름 소설책으로는 『생가』를 골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 오컬트 호러를 읽기엔 지금이 딱이니까!



경북 계류면에 위치한 前 대통령 이운암의 생가는 우파 국회의원들의 단골 순례지일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곳이, 방화범에 의해 일부 소실되고 만다. 생가를 지었던 도편수 지범근은 “그 집 짓지 마. 다시 지어선 안 돼. 생가…… 절대 복원하지 마라.”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사망한다. 이때 “다만 내 집은 누추하니…… 문을 두드리지 말라……”라고 하는데, 이유를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지범근의 유언을 받든 양아들 한벽종은 생가를 복원하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친아들 지재헌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여러 이유로 그 집을 복원하기로 한다.


생가에 직접 가본 재헌은 집 전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집을 복원하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지하실은 무엇이며, 숯덩이는 무엇인가. 올챙이를 토해낸다는 하마고라는 것과 부풀어 오른 배가 터져 죽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다. 과연 재헌은 끝내 생가를 복원할 수 있을까? 왜 아버지 지범근이 생가를 절대 복원하지 말라고 했는지, 그것으로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독자는 차근차근 저자가 짜놓은 판 위에서 단서를 찾아가며 진실을 추적할 수 있다.


목차는 의도한 것처럼 보이는 파가, 개기, 열초, 선목, 벌목, 입주, 상량, 생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집을 허물고 집터를 닦고 주춧돌을 놓고 나무를 고르고 나무를 베고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림으로써 완성되는, 집을 짓는 순서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촘촘하게 잘 짜여 있었고 궁금한 점들이 하나씩 맞춰가는 퍼즐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건축을 잘 몰라도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인간의 욕심이었다. 이운암을 통해 인간이 불로장생을 위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지범근과 이운암 모두 자식을 버리는 것이 반대로 지키는 일이었다. 지키는 대상이 누군지가 달랐을 뿐. 이 책이 어째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스토리 대상 수상작이 되었는지 다 읽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책 한 권이었을 뿐인데 한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길고 지루한 여름이 끝날 것 같지 않을 때, 매서운 오컬트 호러로 더위를 잠시 잊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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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쫌 아는 10대 - 플라톤 vs 칸트 : 좋아하는 일만 하면 행복할까? 철학 쫌 아는 십대 3
서정욱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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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난 좀 잡다한 곳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고등학생 때의 나는 윤리 철학자들에 관심이 많았다.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지, 잘 했다는 건 아니다. 철학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모르면서, 마음에 드는 철학자는 깊게 파고들었다. 순자가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으며 마르크스가 그랬다. 당시에 (... 컴맹이었나)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책으로 알게 되는 게 전부였는데,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은 그때만큼의 관심이 떨어져서 별도로 공부를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갑자기 시간적 여유가 생기다보니 좀 더 다양한 책을 접해봐야지 생각했고, 그때 눈에 띈 책이 『행복 쫌 아는 10대 : 플라톤 vs 칸트 좋아하는 일만 하면 행복할까?』였다.



책은 행복에 대해 얘기하며 플라톤과 칸트를 말한다. 플라톤과 칸트는 비록 동시대 철학자는 아니지만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필요한 행복, 인간다움에 대해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철학자다. 철학에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10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행복 뿐만 아니라 생활과 밀접하게 이어져있는 것들로부터 철학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런 식으로 연결을 할 수 있다고?’라며 오히려 흥미를 이끌어낸다는 점도 재미있다.  플라톤의 이데아, 영혼 삼분설, 기게스의 반지, 『이상 국가 이론』, 동굴에 대해 말하고 있고,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선의지, 도덕적 행동=도덕적 가치, 도덕적 선택,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 대해 말한다.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 없었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생각이 깊어졌다.



특히 내가 생각을 가장 오래도록 하게 만들었던 것은 동굴이었다. 동굴 벽만 볼 수 있게 팔다리가 묶인 죄수들이 볼 수 있는 건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뿐이다. 평생 그것만 보고 자란 그들은 그림자가 세상의 진짜 실체라고 믿게 된다. 그러던 중 한 죄수가 풀려나서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되고 어두움에서 밝은 곳으로 나온 죄수는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림자가 아닌 진리라고 부르는 참된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그 죄수는 동굴 속에 있는 동료들에게 “저 그림자는 가짜고 진짜 세상이 따로 있다"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이제껏 참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정말 참일까부터 시작하여 진리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현상만을 맹신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의 모든 면을 비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많은 정보 홍수 속에서 가짜와 진짜, 사실과 거짓, 그 경계를 잡는 게 아직은 너무나도 어렵기만 하다. 누구에게나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사고방식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깨부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고 믿는 것이 항상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과, 진리를 알기 위해선 기존의 믿음을 의심하고 스스로 탐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책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에 기부를 했지만, 그 기부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을 때의 허무함과 배신감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는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일을 겪었다. 대학생 때 위안부 후원을 2년 정도 했었다. 이후 언론에 났던 문제로 한동안 기부를 하지 못했었다. 내가 선의지를 행함으로써 느끼는 자기만족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인데 나는 그중에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가장 크게 보았다. 하지만 칸트는 상대방의 의도와 관계없이 지금 나는 당장 선의지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베푸는 것이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도덕적 의무를 다했다는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 기부와 관련하여 처음 배신감을 느낀 때에는 그 말조차 수용하기 힘들었지만, 세상의 모든 곳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나는 기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칸트는 ‘선한 행동은 우리가 하고 싶을 때, 즉 결과를 생각하고 이익을 따져 행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지금 그 행동을 당장 할 수밖에 없고 하고 싶을 때 실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지금은 무조건 선의만 믿고 행하기엔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인간다움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당장 실천한 것이, 기부였다. 소소한 금액이었지만 기부를 함으로써 온전한 행복이 느껴지는지 알고 싶었고 다행히 나는 행복을 가득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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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웬수 저래두 웬수
김영희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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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그 어떤 관계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되는 것도 맞으니까. 그래서 나는 부부 관계를 유연하고 부드럽게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이래도 웬수 저래두 웬수」였다. 저자는 3060시니어연구원 원장으로, 수백 명의 신중년 부부를 만나며 얻은 사례와 성찰을 바탕으로 글을 풀어낸다. 신중년이다보니 중년과 노년, 은퇴 후의 부부 모습이 많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막상 내용을 읽어보면 당장 지금부터 실천할 수 있는 내용들이 꽤 많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읽어보기에 좋을 것 같다.



부부 사이는 참 은밀하다. 누군가에게 부부 이야기를 할 때, 단편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다. 부부 사이는 부부만이 안다고, 겪어보지 않은 이상 온전히 이해받을 수도 없다. 그래서 배우자에게 서운했던 것을 타인에게 털어놓았을 때 배우자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듣게 되면 ‘그 정도는 아닌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또한 너무나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TV프로그램인 <결혼 지옥>이나 <이혼숙려캠프>를 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한 번씩 볼 때에는 ‘저럴 거면 왜 같이 살지... 차라리 혼자 살고 말지.’라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책에서는 오래 사는 부부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사이에 남들은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그 이야기를 그냥 끝내기가 아까웠어요.”라고 말하는데, 마찬가지로 그들만의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도 결혼한 지 어느덧 13년이 되었고, 때때로 다툰다. 부부는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싸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여전히 충격으로 다가온다. 살면서 얼마나 더 다투게 될까. 생각만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우리 부부는 대체로 사이가 좋지만, 어려움이 하나 있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 과연 이 책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6.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의 차이는 싸우느냐 싸우지 않느냐가 아니라 싸운 뒤 어떻게 다시 손을 잡느냐에 있다고 했다. 오래가는 부부의 비결은 갈등 없음이 아니다. 갈등 이후의 회복이다. (오래전에 블로그에 적었던 것 같은데) 나는 싸우지 않는 부부보다 화해를 잘 하는 부부가 부러웠다. 여전히 우리는 13년째, 화해를 잘 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게 이 책을 읽는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잘 싸우고, 잘 화해하고, 함께 잘 사는 것.



책에는 그 방법 중 하나로 배우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주 물어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준다. 상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고 더 넓게는 내 옆의 배우자를 인정해주면서 살릴 수 있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말들이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출근 잘 했어? 일은 어때? 컨디션은 어때? 점심은 먹었어? 뭐 먹었어? 오늘은 말썽 부리는 사람은 없었어? 피곤한 건 어때? 오늘은 어땠어? 오늘도 고생 많았어.” 이건 내 남편이 매일 하는 말이다. 지겹지도 않은지 매번 세심하게 물어봐준다. 이 사람은 이런 걸 어디에서 배웠을까, 내 남편이지만 정말 존경하는 부분이다. 가끔은 남편으로부터 이런 다정함을 받으라고 결핍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낸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같은 배를 탔지만 우리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로 다투고 서로에게서 등을 돌릴 때가 있다. 대부분은 서운함과 섭섭함, 아쉬움, 불만이 뒤섞인 결과로 나타났다.


154. 기대를 낮추는 행위는 포기가 아니다. 현실적인 눈으로 배우자를 보기 시작하는 과정이다.

이 문장에 나는 오래도록 머물렀다. 평생 다른 두 사람이 사는데 어찌 다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결국 조율되지 않은 상태의 것들이 난잡하게 놓여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껏 기대를 낮추는 것은 결국 ‘일정 부분에 대한 포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문장을 읽고 다투는 지점을 살펴보니 배우자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 보였다. 그전까지는 내 마음만 들여다보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나는 아마 인정과 포기, 그 경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이 대화로 해결될 거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소통의 부재 혹은 회피에서 나오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내가 도달하는 곳에 닿지 못하는, 끝없는 미로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일까?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작년에 처음 느끼게 되었고 그게 이번에 클라이맥스처럼 터져버렸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말했을 때에도 내가 말한 것들을 전부 이해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남편 본인이 이해한 게 맞는지 중간중간 되묻고 정리하는 것이 (사실 그때마다 그 정리라는 게 아니, 아니, 아니를 불러와서 화를 부추겼지만) 이해해보려고 노력한 흔적이고 결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 것이다. 가장 처음 발단이 되었을 때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어쨌든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우린 또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그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지만, 그땐 또 다른 해결책이 생기겠지.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204. 부부 갈등의 69%가 영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래가는 부부와 헤어지는 부부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헤어지는 부부는 반드시 해결하려고 싸운다. 오래가는 부부는 해결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그 문제를 껴안고 산다.

이 페이지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끝끝내 사과를 받고 싶은 일도 있다.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꼬인 매듭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뿐일 때가 분명 있으니까. 모든 문제에 대해 어떻게든 끝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됐다면, 그에 대한 인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함께 노를 저을 것이다. 노를 젓다가 폭풍을 만나고 배가 흔들릴 때도 있고 몇 번이고 노를 집어던져버리고 싶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노를 놓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은 마침 노 젓는 일을 게을리하던 우리가 노를 좀 더 꽉 쥘 수 있게 도와주었다. 우리의 항해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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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기술, 말의 모양 - 위험의 세모, 질서의 네모, 안전의 동그라미로 빚어내는
다이애나 김 지음 / 아라크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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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어디 가서 말을 똑 부러지게 잘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대부분 그것들은 내 입장에서만 하는 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입장에서 하는 말들은 잘 하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결점이었다. 그래서 나의 말의 모양을 들여다보고 유연한 관계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관계의 기술, 말의 모양』을 읽어보게 되었다.



17. 말에는 모양이 있으며, 그 모양은 현실이 된다.

책의 극초반에 쓰여있던 말이다. 말의 모양은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나는 적절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책을 보니 내가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본래 세모에 치중되어 있는 사람이었는데 결혼을 함과 동시에 동그라미와 세모 사이에 걸쳐있었고 직장의 연차가 쌓이면서 네모가 더해졌다. 상대에 따라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쓰는 게 달라진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초반에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생각에서 그쳤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23. 말의 모양을 의식하는 것은 단순히 표현을 매만지는 것을 넘어 삶을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다. 내가 말의 모양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나는 본래 진취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모든 순간에 ‘동그라미를 써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방금 내뱉는 말이 세모였는지 네모였는지 동그라미인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없던 행동이다.



업무적으로의 나는 네모를 자주 쓴다. 업무적으로는 내 일을 내가 쳐내는 것도 버겁기 때문에 타인의 업무를 제대로 봐줄 여유가 남아있지 않다. 일을 못하는 건 죄가 아니라는 생각은, 어느 날 보니 뒤집혀있다는 걸 깨달았다. 1인분의 몫을 해내지 못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결국 일을 못하는 것이고, 결국 일을 못하는 것은 죄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그때마다 네모를 써왔다. 세모와 네모가 걸쳐있는 모양이 아니라 정확한 네모를. 하지만 책에서는 모서리가 둥근 네모를 써볼 것을 권유한다. 모서리가 둥근 네모는 과연 무엇인가?

지시형 대신 청유형을 쓰라는 건데... 하... 너무 어렵다. 왜냐하면 지금의 내 직장동료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실수를 보고 “이 부분 확인하시고 수정해 주세요.”라는 말 대신에 “이 부분 확인하시고 수정해주시면 더 완벽할 것 같은데요~?”라는 말은 정말 못하겠다는 말이다. 바로 어제는, 작업계획서를 스무 번을 수정시켰다. 울고 싶은 건 그가 아니라 나였다. 둥근 네모, 나 정말 실천할 수 있을까... 그냥 한숨만 나오는데... 책에서 말한 강력한 해독제라는 ‘측은지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둥근 네모를 쓰려면 얼마만큼의 인내심과 온화함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또 하나는 그 동료는 자기방어적 본능으로 ‘안 그래도’라는 말을 자주 쓴다. 무언가 지시를 하면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안 그래도 하려고 했다 혹은 알고 있었다 혹은 이미 진행형이다. 등의 말을 했는데, 이제 그게 습관이라는 걸 안다. 146. “그 사람도 살기 위해 그랬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포용하기에 내 그릇은 작디작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 직장생활이 녹록지 않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과연 이것들을 실천할 수 있을까에 대해 괴리감을 느꼈는데, 읽다보니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걸 찾았다. 단정하지 않고 여지를 남기는 것.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아, 난 그 생각은 못했어.” 물론 그렇게 말을 하더라도 속으로는 단정하게 되는 때도 있지만, 굳이 어떤 문제를 두고 싸우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할 때가 종종 있었다.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에 대한 결과는 언제나 좋았다. 그 직장동료에게도 이 문장을 대입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지만, 한번 해보기로 한다.



62. 말을 쏟아낼수록 소통은 왜 더 빨리 시들까.

나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건 나의 배우자다. 왜인지 이 문장은 배우자를 떠올리며 계속해서 곱씹게 되었다. 나는 소통을 하면 분명히 접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아니었다. 나는 기분이 좋으면 동그라미, 다툴 땐 세모가 너무나도 확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문제로 대두되었다. 결국 중요한 건 말의 양이 아니라 방식이라는 사실이었다. 관계의 온기를 지키는 힘은 세심하게 다듬어진 말의 모양에서 나온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133. 관계의 유효기간을 정하는 것은 함께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말의 모양이다.내가 느낀 바로는 소통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입장에서의 소통’은 시들 수밖에 없고 결국 허공으로 유영하는 말들이 되어버림을 자주 느꼈다. 소통을 할 때에는 상대를 향한 말의 모양을 좀 더 세심하게 만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기도 했고.


64. 애매모호한 말은 불필요한 추측을 부르고, 날카로운 표현은 소통의 문을 닫는다. 오해가 반복되면 대화는 줄어들고 관계는 고립된다. 결국 말의 모양을 신중히 다듬는 것은 오해를 줄이고 진심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말의 모양을 바로 알고 사용하는 것, 그것이 소통의 시작이자 끝이다.

특히나 이 문장은 현재 남편과 나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남편과 나의 언어 체계는 분명 다르다. 17년간 알고 지내면서도 언어 체계에 대해 다름을 느끼고 말을 닫게 될 때가 많다. 이 문장은 마음에 담아두고 때때로 꺼내어 서로의 언어를 품어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내 말이 그에게 동그라미로 닿았는지, 대화를 나눠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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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예찬 -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방법
안 뒤푸르망텔 지음, 이세진 옮김 / 사람in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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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꼬박 일주일을 붙들고 있었다. 며칠간 시험공부를 하던 나는 어떤 책이든 거뜬히 읽을 수 있다는 자만을 내보였는데, 알량한 기개로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위험 예찬』 안전과 밀접한 삶을 살아온 내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제목이었다. 도대체 어떤 형태의 위험을 예찬한다는 것인가 싶어 호기가 일어서 가장 먼저 이 책을 선택했다. 안전과 위험은 수평선으로 본다면 끝과 끝에 위치해있을 것이라는 내 생각을, 과연 고수할 수 있을까.



책은 9. 생은 우리 산 자들이 감수하는 막대한 위험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난 이때 깨달았다. 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향이구나. 내가 생각하던 위험은 얼마나 협소한가 싶어 실소가 터졌다. 표지에는 위험 예찬의 부제를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방법’으로 적어두었는데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면서 이 책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라 생각했다. 아마 우리는 매 순간 '생을 걸다(risquer sa vie)'라는 말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3.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의 순간은 그때부터 다른 시간을 연다.는 위험감수선을 우리는 곁에 두고서 알게 모르게 끌어안고 살거나 외면하면서 살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기 전까지는 그게 위험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글을 읽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밑줄을 많이 그었다. 이해가 될 것 같은데 쉽지 않은 문장도 있었고, 반대로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았던 문장이 몇 번을 읽어보니 어느새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된 문장들도 있었다. 아마 이후에 읽게 되면 더 많은 문장들이 내 안에 들어겠지.



그중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았던 챕터는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거나 되지 않는가>였다.



나는 내가 계획한대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정형화된 삶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나를 만나보는 일. 편안하게 나를 잃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전한 울타리에서 선을 조금 넘어보는 일. 그것은 단순하게 나의 생활 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태도도, 행동 등 전반적으로 이루어진 ‘나’에서의 모험 같은 것. 95. 때로는 자기가 되지 않는 것이, 죽지 않는 것과 정확히 마찬가지로, 어떤 외피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실존·정체성·삶의 규칙에, 우리에게 지표가 되는 영역에, 자아가 영속되는 연약하지만 고립된 영역에 갇혀 있지 않기. 내게 그럴 용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55. 우리는 위험 없는 강렬함을 원하지만 그런 건 불가능하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내가 사는 동안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구나 느꼈다. 20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 삶에서 안정감을 최고로 꼽았다. 안정감은 관계에서 나왔고, 또 내가 세워둔 반듯한 계획에서 나왔고, 때로는 고요함에서 나왔다. 하지만 살다보니 안정감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안정됐다고 느꼈을 때도, 불안정하다고 느꼈을 때도 나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불안정을 조금은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불안정의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이제는 아니까.



이 책을 다 읽고 덮은 뒤에도 여전히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머릿속이 난잡하지만, 꽤 좋은 책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기사시험 실기시험이 끝난 날 이 책을 읽었는데, 80 페이지 남짓을 읽고 다음날 시행되는 기사시험 필기를 접수해버렸다. 위험을 무릅쓰기 위해서. 책을 다 덮은 지금도 챕터를 한 번씩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처음 읽을 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문장들을 다시 이해하게 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 앞에는 어떤 위험이 있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책 속 밑줄_


12. 살아 있는 동안 죽지 않는 것이 모든 위험 가운데 으뜸이고 그 위험이 탄생과 죽음에 인간이 밀착해 있을 때 굴절되어 나타난다면?


22. 때때로, 죽지 않은 위험은 눈에 띄지 않은 채, 거의 지각되지 않은 채 지나간다.


27-28. 사랑은 의존의 기술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위험을 감수할 것을 전제한다. 패배를, 부조리한 기다림을, 타자의 돌연한 거절을 대할 때의 실망을 용인해야 한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에 휩쓸려야 한다. 의존에 대한 이 동의는 체념이 아니다. (…) 사랑은 우리가 타자에게도 이동하게 해주는 사건이다. 우리 자신을 버리고 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사건.


37. 보류 상태는 숨을 죽이는 것이다. 그저 여기에 있는 것, 사람들의 현존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가능한 한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것이다.


88. 위험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용기다. 모든 고통·재난·애도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되, 불행의 몫은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미리부터 구제받을 수는 없다.


106. “당신 마음속에 살게 한 두려움이 당신의 유일한 피난처일지도 몰라요. (…) 두려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쁨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나와 다른 것, 미지의 것, 살아 있는 것의 침입을 받아들이는 거고요. 체념과 이별하는 건 무서워요. 두려움은 결코 진정시킬 수 없는 불행하고 불안 심한 어머니처럼 당신을 보호해요.”


111. 슬픔에는 고유한 두께나 메아리가 없다. 슬픔은 내면의 불분명하고 비이성적인 공간을 한정한다.


116 . 슬픔을 감수한다는 것은 우울에 빠지는 것과 정반대일 것이다. 슬픔이 지극한 행복의 비밀스러운 이면이요, 존재의 확장을 향한 신호를 우리에게 보낸다는 것을 이해하라. 그로써 우리는 다가오는 것에 대한 환대를 통하여 우리 자신과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기억하게 된다.


117. 자유는 아마 위험을 받아들이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일 것이다.


124. 사람들은 시간을 벌었다는 말을 즐겨 한다.


253. 믿음이란 결국 믿어지지 않는 것을 마주하는 것 아닌가?


- 스캔들은 라틴어로 scandalum 걸림돌이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

- 스캔들은 진정되지 않는 것, 화해될 수 없는 것이다.


355. 우리의 침묵이 늘 살인적이지는 않다. 살인적인 것은 우리의 비겁함이다. 우리가 침묵 탓으로 돌리는 바로 그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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