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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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이전에 월간 에세이에서 작가의 글을 읽었다. <감을 따면서>라는 에세이. 읽는 내내 좋아하지도 않는 감을 입안 가득 물고 달큼한 향을 마음껏 향유했다. 책이, 나오겠구나,라고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예상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간 소식이 나왔을 때 나는 우두망찰했다. 좋아했지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그 기분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만 만들었던 그 기분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으리라 가히 짐작하게 한 시간이었으니까. 그걸 생각하면 너무나도 미워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새 책을 쓰신다면 나는 그 책을 사지 않겠노라 다짐도 했었으니까.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가득 쌓아두고 바라보고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과 위로가 깃들어 있기에 그 책들만 소중히 간직하겠다, 버리지는 않겠노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신간 소식을 듣고는 미워하면서도 좋았고, 좋으면서도 미웠다. 도대체 이게 무슨 멍청한 마음인가 한다. 어쨌든 글을 쓴다. 그 글을 읽는 것은 선택이겠지만,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래, 반갑다는 말로 모든 것을 포괄할 수밖에 없겠다.

 

 

내가 좋아했던,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이기 이전에, 아버지에 관한 책인 것 같았다. (읽어보지 않았으니 같았다,고 말할 수밖에.) 그렇게나 싫어하는 박 모 씨의 소설 중 아버지가 주제여서 그 책을 오래도록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후 다른 책을 읽고 그 사람이 정말이지, 구구절절 싫어져서 그 책도 이제 내 곁에 없지만 사실이 그랬다. 엄마에 대한 책은 시중에 우후죽순 나오는데, 왜 아버지에 대한 책은 없는 것인가,에 대해 혼자 서러웠다. 그런데 다름 아닌 이 이가, 아버지에 대해 쓴 것이었다.

 

 

 

나, 헌이는 딸을 잃고 늙은 부모에게 연락을 몇 년간 하지 않다가 아버지가 울었다는 말에 J시를 찾는다. 아버지와 조우한 나는 밤마다 어딘가에서 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다녔고 아버지의 흔적들을 찾아내어 그 시절들의 아버지와 만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따금 죽은 것들을 찾았다. ‘너 본 지 오래다.’라던 앵무새 참이를 찾는 날이 있었고, 고모를 찾는 날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이미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치매 검사를 받으러 다녀왔던 아버지가 가여워 마음이 싸해졌다.

 

 

 

68.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하고 있냐?

69. 나는 니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거 보는 게 좋았고나.

아빠와 내가 처음 충돌했을 때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였다. 내가 가고 싶다는 것과 아빠가 가라는 곳은 달랐다. 아빠가 반대하는 이유는 내가 가고 싶다는 곳은 아빠의 바람처럼 ‘추울 때면 따뜻해서 일하고, 더울 때면 시원한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다’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단지 시선의 차이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식물을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고, 나중에는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어디에 취직할 수 있냐고 하기에 그 대답을 했었는데, 그것에 대한 아빠의 첫 마디는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응원을 해주었던가. 다만 기억이 나는 건 물 대신 우유를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먹다 남은) 우유를 줘본 적이 있는데 땅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다 죽더라고... 이걸 응원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조금 어리둥절해진다.

 

 

 

-매일이 죽을 것 같어두 다른 시간이 오더라.

-……

-봄에 모판에 볍씨를 뿌릴 대는 이것이 언지 자라서 심고 키워서 추수를 하나 싶어도 하루가 금세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이런 일이 왜 나한테 일어났지, 가 그래,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구나.로 인정(혹은 수긍 혹은 체념) 하는 시간들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지만, 또 아직도 길을 걷다가도 울컥울컥 눈물이 차오를 때가 있지만 그때의 시간들은 어쩔 수 없음을 아는 일은 짧아졌다. 헌이를 위로하려 아버지가 건넨 말들에, 느닷없이 내가 위로를 받는 일이 많았다. 나는 작가가 쓴 문장들에 기어들어가 몸을 옹송그리고 그렇게 우는 일이 많았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으며 그렇게 빚을 졌는데, 또 이렇게 신세를 진다. 신세를 지는 일을 미안하게 하지 않고 그저 감사하게 만든다.

 

 

323. 삶에는 기습이 있다.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 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 게 인간 아닌가.

그래, 그래도 살아내는 것이 인간이고, 312. 세상의 기준은 이처럼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소. 필요에 따라 변화하지.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러니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가. 나는 더 이상 어떤 특정한 신념에 대한 완고함이 없어지고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들을 지나왔으니,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삶이구나 한다.

 

 

 

‘바다 중심’이라는 리비아로 파견근무 간 오빠와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가 나무 궤짝에 있었다.

 

169.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나는 아버지가 되어서 너의 힘이 돼주지는 모타고 니 어깨만 무겁게 햇지마는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185. 늘 말햇드시 아비는 바라는 게 업따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것으로 되엇따

231. 다지나간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업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들을 읽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 입장 그러니까 정확히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 마음을 아주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

 

 

 

 

요즘 나의 아버지는, 아니 나의 아빠는, 사는 게 재미가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타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해진다면 대전에 가서 아빠랑 식사라도 한 끼 하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은 것이 오늘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아빠랑 통화를 한다. 화장실을 갈 때 거리가 있기에 그 사이에 전화를 하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산책할 때 전화를 하기도 한다.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하는 건 아니고, 요즘 몸은 어떠냐, 지금은 어디냐, 식사는 하셨냐, 어제는 술 또(!) 드셨냐, 주말에는 맛있는 것 좀 먹고 하셔라, 맨날 똑같은 말들 반복이다. 자꾸 전화를 그렇게 하다가 너는 회사에서 짤려도 할 말이 없다고 아빠는 나한테 말을 하면서도,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하냐고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나는 오늘 아빠에게 택배 상자에 건전지와 라면, 껌, 과자, 장갑, 커피 따위를 넣어 보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보내는 의례적인 일이기도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멀리에 사니 택배로 대신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일을 내가 꾸준히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사는 곳이 좀 더 저렴하다는 것은 둘째고, 내가 어릴 때에도, 하물며 성인이 되어서도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 아빠의 손에 아이스크림이며 과자들은 언제나 반가웠던 기억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두어 달에 한 번씩 아빠에게 택배를 보내면서 종내는 그것들을 갚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나 그때의 반가움을 아빠도 느껴보았으면 싶기도 하다고 보기 좋은 개살구를 열심히도 빚어본다.

 

그런데 오늘은 아빠한테 성질을 부렸다. 뇌경색 때문에 약을 드셔야 해서 병원에 가는 날이었는데 간 김에 안과를 들르시라 말씀드렸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럴까? 그래야겠다.라고 말을 해놓고, 다녀왔냐고 물으니 아니 안 갔어, 그거 예약해야 하는 거 아니여? 라고 말씀하시며 또 한숨을 쉬게 만들었고, 다음번에 피검사를 해야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오만 얼마를 내라고 하더라. 하기에 왜? 라고 물었더니, 몰라. 다음번에 돈 안 받으려는 모양이지.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런 아빠에게 나는, 대학병원 시스템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많이 나왔으면 왜 많이 나왔는지 물어는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안과는 초진이라 예약이 안 될지도 모르고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간 김에 가보면 좋았잖아!!!!!!! 가서 다음 진료에 맞춰서 예약하고 오든지!!!라고 성깔을 있는 대로 부렸다. 그랬더니 아빠는 말을 안 하길래, 내 쪽에서 먼저 끊어!!!!라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뚝 끊었다... (휴)...

 

 

 

 

아버지가 나직한목소리로

너는 언제 가냐? 물었다.

-가야지.

-……

-보내야 되는데 함께 있으니 좋아서.

-인자는 가보거라.

-……

 

우리 아빠 같아서, 보고 한참을 울었다.. ... 성질 드러운 못난 딸, 내일 또 전화드릴 예정이다...

 

 

 

 

 

+ 사과를 프랑스어로 뽐므라고 하는데, 주인공 이름이 뽐므이고, 어쩌다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를 읽어보아야겠다. 요즘 읽는 책에 자꾸 등장하는 사과들이 그렇게나 반갑고, 또 애절하다.

 

++ ‘~하겠는’은 ‘~할 것 같은’의 동의어인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모른 척을 하게 된다.

 

 

 

 

 

 

책 속 밑줄

 

16.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와 헤어지게 될 때 가끔 그 때의 내 목소리를 듣는다.

 

20. 어떤 물건들은 그렇게 사라진다. 버리지도 없애지도 누구에게 준 적도 부숴버린 적이 없어도 어느 시간 속에서 놓치고 나면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고 희미해진다. 그랬지, 그랬는데, 라는 여운을 남겨놓고.

 

데뷔작의 첫 문장, 어디다 뒀던가.

 

59. 그때 어렴풋이 짐작했다. 나는 불완전한 채로 어디서든 무엇인가를 쓰고 지우고 있으리란 것을. 마침표를 찍은 후에도 나는 내가 쓴 글을 끝도 없이 수정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62.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로 이루어졌다는 생각.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76.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92.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92. 벌써 육년이 흘렀구나.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면 그아도 갈길을 못 가고 헤맬 것잉게…… 언진가 소 새끼 한마리가 젖을 빨다가 미끄러져 다리가 분질러지더니 주저앉아 걷는 법을 잊어버리고는 앉은뱅이가 되더라.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먼 이 말을 안 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93. 차마 버리지 못해 저장해 놓은 깨진 것들은 바닥까지 비워내도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조차 없다는 두려움에 눈꺼풀이 떨렸다.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그 별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

 

103. 어떤 사실들은 때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라 시간이 흘러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끝내 사실일까? 싶은 의문과 회의가 든다. 어떻게 그런 일이? 싶어서 우연이나 조작에 의한 것처럼 보였고 어떤 형식에 맞추기 위해 도식을 끌어온 것처럼 여겨지며 상상에 의한 허구가 오히려 사실처럼 느껴진다.

 

213. 사람 만은 곳에는 뭐든 할 일이 있는 거니까 나 한 사람 일할데 업겟나 시픈 배짱이엇는데 막상 아는 사람 하나 업는 곳에 서게 되니 한걸음 내딛는 것도 불안하더라.

 

404. -오래 슬퍼하지는 말어라잉.

-우리도 여태 헤맸고나.

-모두들 각자 그르케 헤매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잉게.

 

416.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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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더클래식 한국문학 컬렉션 1
김승옥 지음 / 더클래식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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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은 읽어본 분들 사이에서 호평을 자주 들었기에 언젠가 읽어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다렸다. 책을 읽기 전부터 얼마나 좋을까, 하고 기대를 하며 따듯한 차를 한 잔 타두고 평소와 다르게 예의를 갖추기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도중 어쩐지 나는 자꾸만 답답해졌고 책을 덮고 싶었고 급기야 책을... 버리고 싶었다.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마다 깊은 절망과 같은 한숨을 내쉬었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도.대.체,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에 대하여 전과 다르게 책에 대한 내 마음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타인의 서평들을 게걸스럽게 핥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 한 권의 책에서, 여러 편의 이야기에서, 반감을 느꼈고 증오를 느꼈고 혐오를 느낀 직후였으니까.

 

 

 

 

마음을 가다듬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차분히 마음을 달래보고자 하였지만, 쉬이 달래지지는 않았다. 천천히, 하나씩,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무진기행> : 어둡던 자신의 청년을 상기시키는 무진, 희중은 현실에서는 능동태로 살고 있나?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무진에서의 생활에서도 문장이 죄다 수동태라는 걸 느꼈다.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라는데, 그 안개는 결국 그의 몽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가 지어내는 꿈. 왜냐하면, 무진에서는 11.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나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했었으니까.

 

<생명연습> : 두 사람의 이야기다. 유학을 가기 위해 사랑했던 여자를 강간하면서 사랑이 식어감을 느끼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학을 떠났던 남자는, 삼십 년 후 그 여성의 부고를 듣는다. 아버지가 사망 후에 아버지를 닮은 남자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하여 급기야 죽이자고 나와 누나에게 말하던 형의 종말.

 

<서울, 1964년 겨울> : 우연히 만난 세 남자. 그중 한 남자는 급성 뇌막염으로 사망한 아내의 시체를 돈을 주고 팔아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 돈을 다 써야겠다고 하지만, 돈은 남았다. 남은 돈은 불이 난 곳에 던져 버렸다. 밤새 같이 있어 달라던 남자의 부탁을 거절한 두 사람은 다음날 전날의 그 남자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야행> : 같은 은행에서 일하는 남편을 사칙에 의해 부당한 일을 겪게 될까 봐, 남편이라 부르지 못하는 여자. 그런 지리멸렬한 삶을 살던 어느 날, 한 남자에게 손목을 잡힌 채 끌려가 강간을 당한 여자는, 이후로도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낚아채주기를 기다린다. 130. 그 여자가 바라는 것은, 그렇다,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속임수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게, 해방이었을까. 세상은 다양성이 존재하기에 틀린 것이 없고 다른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지만, 그걸 다르다고 인정하게 된다면 나는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역사(力士)> : 창신동 판잣집 생활을 하다가 양옥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청년의 이야기로, 양옥집에서의 생활을 빈 껍데기의 생활, 방향이 틀린 생활, 습관적인 생활이라며 이중성을 못 견뎌 하지만, 창신동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창신동에서 만난 서씨를 생각한다. 재산이자 가보, 영광으로 내려온 그의 힘은 막노동에서 보수를 좀 더 벌게 하는 것일 뿐이지만 그는 그것을 택하지는 않는다. 동대문 성벽의 금고만 한 돌덩이를 드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 힘이 유지되고 있음을 명부의 선조에게 알리고 있는 게 전부였던 서씨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163 “내가 틀려 있었을까요?” 누구에게나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있기에 나는 그 청년의 마음을 조금은 짐작해볼 수도 있었다.

 

<차나 한 잔> : “차나 한잔 하러 가실까요.” “저어, 나가서 차나 한잔 하실까요.” 같은 말이지만, 두 문장의 어투와 심경은 다소 다르다. 차나 한 잔 하자는 것은, 일종의 추파로, 회색빛 도시의 따뜻한 비극을 여실히 그려낸다. 208. 앞으로 다가올, 아직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무서워져서 그는 울음이 터질 뻔했다. 현재 우리의 삶이 당시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미래에 대한 안개는 언제쯤 걷히는가.

 

<그와 나> : 서울행 기차칸에서 ‘감고 있는 눈꺼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양심’에 대해 언급하던 남자,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

 

<염소는 힘이 세다> : 234.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그러나 염소는 며칠 전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힘센 것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 있다. 아저씨는 우리 집의 밖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아저씨는 힘이 세다. 힘이 약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246. “너 왜 그러니?” 누나의 입에서 짜장면 냄새가 풍겨 나왔다. “더러워”하고 나는 말했다. “더러워, 저리 가!” 누나가 내 양쪽 어깨를 자기의 두 손으로 아플 만큼 눌러 쥐었다. “아무것도 아냐. 나도 취직할 수 있을 뿐인걸.” 누나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나는 힘차게 어깨를 흔들어 누나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사람들을 비켜가며 빨리빨리 걸었다.

 

<건(乾)> : 빨치산들의 습격이 있었고, 그날 빨치산 하나가 죽었다. 그 시체를 치우기 위해 아버지와 형과 형 친구들, 그리고 내가 동원되었다. 지나가는 윤희 누나를 보며, 270. “저거…… 우리…… 먹을래?” 내가 좋아하는 윤희 누나에게 형의 말을 전달해야 했던, 무서운 음모에 가담했던 날.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 그것은 이젠 내 고정관념 중의 하나이다. 혼잣말로 하는 남자의 고정관념들을 따라가 읽는다.

 

<다산성> : 벌레, 이 어둡고 두꺼운 대기층의 밑바닥에서 촉각을 허망하게 내휘두르며 몸을 꿈틀거리고 있는 두 마리의 못생긴 벌레

 

<서울의 달빛 0장> : 탤런트였던 아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점과 이후 알게 된 인공유산에 대해, ‘아내는 나에게 도깨비들이 실컷 뜯어먹다 싫증이 나서 던져준 썩은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며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증오를 지니게 된다. 445. 처녀가 아니니까 외설스럽다.던 이야기는 이 책의 전반에 깔려있다. 난생 처음 보는 음부의 추악한 모습에 나는 구토증을 느끼면서 여러 여자와의 성관계에서 아내의 음부를 잊지 못한다. 마치 아내의 음부가 고향이라도 되는 것처럼.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역사>와 <차나 한 잔>이었다. 하지만 반감으로 압도되고 그로 인해 부담스러운 단편들에 좋았던 단편들이 묻혀 부정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문장들이 담백하거나 유려하다 따위의 것들은 전연 느끼지 못했고, 나에게 이 책은 여성이라는 성이 얼마나 짓밟힐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다양하게 읽히기만 했다. 1960년대 시대상은 이따위 일들이 만연했었나 보다,에서 그치지 못하고 그에 따른 불편함에 욕지기가 낮게 흘렀다. 윤간, 강간, 겁탈, 능욕, 성매매가 아니면 그리도 쓸 이야기가 없었나 싶기도 했다. 마치, 사랑을 잘못 배운 소년에서 그치게 된 한 남성의 일대기를 읽은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욕구를 방출하고 쾌락을 느끼기 위해 이 책이 쓰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피어오르며 씁쓸하다 못해 간담이 서늘해졌다. 같은 이유로 나는 더 이상 박범신의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이유였다.

 


 

 

지금이라면 이런 내용들이 결코 쉽게 출간되지는 못했을 텐데, 단지 한국문학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것들을 당연하다 여겼던 멍청한 사고방식을 지녔던 시대에 쓴 글들이 독자들에게 아름답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 이 책을, 지금의 20대 혹은 30대의 남성이 썼다고 해도 아름답다고 말하며 읽을 수 있겠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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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 선생님만 아는 초1 교실 이야기
김도용 지음 / 생능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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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아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어른들이 써내는 아이들의 일상은 궁금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겠다. 아이가 어떤 놀이를 하셨고 저녁을 드셨고… 그런 단어들에 눈살이 꽤 자주 찌푸려지기도 하고, 어른들의 입맛에 맞게 과장된 표정, 행동, 말을 할 때는 아 이건 좀...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들에 관심이 많아서 멀리서 관찰(관음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는 걸 좋아해서, J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다가 미루고 미루었던 <어린이라는 세계>를 매우 만족스럽게 읽었기에 비슷한 주제에 기웃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맡고 있는 선생님이 쓴 1학년들의 기록’이랄까. 그런데 이 책을 손에 들고 나는 겁에 질렸다. 잘 읽을 수 있을까_ 싶어서. 그런데 이 책, 아침마다 힐링하면서 읽었다. 귀여운 친구들이네!라며. (참고로 구성은 조금 아쉬운 편이었다.)

 

학생 : 선생님, 저 같이 사는 오빠(이 표현도 이상하지만)가 몇 살이게요?

나 : 14살?

학생 : 아니요.

나 : 그럼 14살보다 많아요? 적어요?

학생 : ….

나 : ….

학생 : 12살이에요.

그래, 수의 크기 비교는 아직 어렵지.

 

 

학생1 : 뱀 어떻게 써요?

나 : 모둠 친구 중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

학생2 : 저요!

학생3 : 선생님은 ‘뱀’ 모르는 거 아니야?

 

 

나 : 편지 쓰면서 힘들었던 사람?

학생1 : 저요!

학생2 : 저요!

나 : 그러니깐 더 소중한 거예요. 편지 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부모님은 여러분을 키우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학생1 : 맞아요. 우리 엄마는 저 키우느라 힘들어 죽겠대요.

학생2 : 우리 엄마는 너무 힘들어서 안 키우려고 했대요.

 

 

학생1 : 너 왜 아침에 나랑 같이 안 갔어?

학생2 : 아침에 전화 안 했잖아?

 

 

크큭 거리며 웃어댔다. 귀여운 친구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는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1학년이라고 해도,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소위 말해 까진(?) 애들도 있을 것 같고... 그런 것들이었는데, 웬걸. 그 반대였다. 교가는 학교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고 했더니 계속 불러서 학교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짝짓기 놀이에서 한 명을 내보내야 이기는 게임에서, “한 명이 빠져야 하는데 그럼 떨어진 사람이 속상할 것 같아서 못했어요.”라며 세 명 모두 아웃당한,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우는 친구를 여럿이서 안아주는, 여자 화장실을 쓴 남학생의 이유는 고작 여자화장실이 더 깨끗해 보여서라는, 화장실에서는 얼룩이 없었는데 교실에 들어오니까 묻었고, 교실에는 OO이가 있었다는, “사물함에서 색연필이랑 종합장 가져오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선생님께 색연필과 종합장을 내밀더라는, TV 모니터의 글씨를 크게 해주었더니 “선생님, 글자가 가까워졌어요!”라는, 학교를 다니는 12년 중 가장 순수한, 초등 1년생.

하지만 역시 세대 차이는 세대 차이인 건지, 아이들이 코딩을 배우고 로봇과 같은 공간에 있기도 하고, 친구에게 왜 카톡을 안 하냐고 묻기도 하고, 교가를 유튜브로 듣기도 하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나는 마냥 신기했다.

 

 

이 책은 1학년이 학교에 적응하는 기간은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96일째, 그 기록이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사회생활 미리 보기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학교에 와서 사회생활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이들을 텍스트로 읽는 것만으로도 흐뭇했고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했다. 작지만 중요한, 어쩌면 우리 삶의 시작이며 전부일지도 모르는 일들을 배우게 되는 1학년. 이를테면 시작종이 치면 교실에 들어오기, 차례 기다리기, 친구와 대화하기, 선생님 말씀 잘 듣기, 자기 물건 정리하기, 화장실 사용하기 등. 우리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믿고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잘 전달되었다. (하지만 예쁘다와 못생겼다는 말에 대한 접근은 농담이어도 좀 자제하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가 매일 들리던 그때를 기억하고, 그때가 조속히 오기를 바라며.

 

 

띄어쓰기 134. 히에 다가 미음히에다가 미음

오탈자 137. 쓰레받기 버리고, 가방 매세요.가방 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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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 수면
마츠모토 미에 지음, 박현아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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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을 얼만큼을 잔다고 하더라도 개운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결혼 전에는 낮잠을 자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너무나도 괴로웠기 때문에 낮잠과는 담을 쌓고 살았고, 정말 피곤할 때에는 연중행사로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초저녁 6시에 자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개운함을 느끼는 건 아니고, 그만큼 잤으니 나 충전했어_라고 믿게 되는 효과가 더 컸다. 하지만 그런 내가, 낮잠은 삶에 꼭 필요한 양분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낮잠을 잘 때도 많아졌다. 하지만 낮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혼자서 조심스레 추측하건대, 아마 내가 잠을 자도 개운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내 신체 중 가장 취약한 곳이 눈(eye)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러 차례의 눈 수술과 눈의 상처와 안구건조증이 겹쳐져 눈이 쉽게 피로해지면서 몸의 개운함이 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졸린 것이 아니라면 낮잠을 자는 편도 아니니 더욱더.

 

 

 

“나 오늘 잠을 잘 못 잤어.”

“아, 피곤해.”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기도 한데,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J씨는 규칙적이지 않은 몇 년이나 교대 근무를 돌았고, 근 3년은 주간 근무를 했고, 다시 교대 근무 2년을 하다가 지금은 다시 주간 근무로 돌아와 1년 조금 넘게 근무 중이다. 하지만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조출과 야근은 너무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조출은 일상이고, 야근은 별일만 없다면 주에 3번 정도였는데, 5번을 꽉꽉 채우는 날도 있고, 주말에도 시간외근무를 해야 하는 날도 있다. 중요 일정이 있던 날을 위해 남편은 몇 주 동안 야근을 했고,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명절이었던 설에 나흘 중 사흘을 출근했다.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는 게 미안했던 찰나에 추천받아 타트체리라는 것을 샀다.

 

나도 시험 삼아 며칠 동안 마셔본 타트체리는 효과가 없다고 느껴져 중단했다. 중단한 가장 큰 이유는 타트체리를 마시고 잔 다음날 두통이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J는 괜찮았는지 꾸준히 마셔보고 싶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코를 낮게 골던 그가 타트체리를 마시는 날에는 아무 소리도 없이 아주 곤히 자더라는 것. (이건 정말 신기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역시 몸이 개운하다던가 하는 드라마틱한 효과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주말에는 낮잠으로 한 타임을 소비하고, 두 타임까지도(...)... 소비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가 잠이 많기도 하지만, 새벽에도 몇 번이나 화장실 때문에 깨기도 하고 많은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반면에 나는 잠에 한번 들면 밖에서 천둥이 쳐도 일어나지 않고, 화장실 한 번을 가지 않는다. 너무 다른 우리 둘_

 

 

그러다 보니 근래에는 잠을 잘 자는 법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마침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깨고 싶을 때 못 깨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농축 수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깊은 잠을 자는 농축 수면, 만성 피로와 시간 부족에서 벗어나는 기적의 수면법이라니! 웬만해서는 이런 문장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나보다는 J에게 좀 더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책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10. 농축 수면은 잠이 든 지 30분 이내에 제일 깊은 수면인 논렘 수면 상태에 접어들고, 일정 시간 동안 깊은 수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수면_이라고 하는데, 나는 잠을 자기 시작해서는 중간에 깨는 일이 없기 때문에 깊이 잔다고 생각했지만, 일어나서 개운하지 않은 걸 보면 또 깊이 잔 건 아닌 것 같다. 잠을 깊게 잔다,는 것의 정의는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정말 그런 수면을 한다면 숙면을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방법이 궁금해졌는데, 책에서는 3가지를 꼽았다.

 

 

 

1. 뇌 피로를 없애기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건, 뇌 피로도에 의해 머리가 커질 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저자의 말에 의하면, 뇌 피로가 쌓이면 두개골이 커지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머리가 비대해지고 무거워진진다고 한다. 머리에도 노폐물이 쌓인다니...

 

뇌 피로를 없애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뇌의 결림을 풀어주는 두개골 마사지로 뇌를 풀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뇌 운동이라는 것이, 내가 평소에 하는 운동이었다. 손으로 하기도 하지만, 폼롤러로 머리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풀어주기도 한다. 이걸 두개골 마사지라고 하는 줄은 몰랐다. 처음에 머리를 꾹꾹 누르기 시작한 것은 두통이 너무 심해서 관자놀이부터 머리 전체를 마사지해 주는 방식으로 시작했었는데 요즈음은 두통이 아니더라도 자주 눌러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잠을 잘 잘 수 있는 방법이었다니! 이 마사지가 정말 잠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시원하긴 엄~청 시원하기 때문에 나도 추천하고 싶다. (그래서 사진 첨부!) (tmi_진짜 시원하게 하려면 손으로 하는 것보다 폼롤러로 하는 게 완전 최고!) 두개골 마사지도 좋고, 머리와 연결된 목덜미나 귀 옆이나 밑의 쪽을 마사지하는 것도 무척 좋다. (J한테도 해주었더니 아프다고... 머리에 노폐물 있어서 그래...)

 

그리고 내게 가장 필요했던 눈의 피로를 푸는 것에 대한 부분도 나왔는데, 그 마사지 중 머리와 연결되는 부분을 눌러주라는 것도 있었는데, 나는 평소에 그 부분도 생각날 때마다 해주는 것도 같은데 왜... (J는 이것도 아프다고 했다. 눈에도 노폐물 있어서 그래...) 그리고 후두부의 머리카락 가장자리와 두 눈 위에 따듯한 타월을 올려놓는 것과 눈 마사지도 함께 실려있다. 눈 마사지는 그냥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 나는 예전에 다크서클 없애려고 했던 마사지였지... (J한테 눈 마사지해주다가 눈 찌를 뻔해서... 기겁하며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2. 혈액 순환을 촉진하기

 

고양이등은 잠들기 어려운 몸, 잠이 얕아지기 쉬운 몸이 되기 때문에 견갑골 주변의 결림을 풀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견갑골을 이완시키는 스트레칭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스트레칭도 좋지만 나는 폼롤러가 더 시원해서 폼롤러로 하고 있다. 폼롤러 최고_ (이쯤 되면 폼롤러 장사꾼...;) 그리고 스쿼트 하랜다. 나 요즘 스쿼트도 일주일에 3일 정도는 하루에 열 개 정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책에서 6개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나는 이미 열심히 잘 자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었네.

 

 

3. 수면 환경 정돈하기

나는 침대에서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핸드폰 검색도 하는데, 침대를 잠만 자는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이 모든 것을 침대에서 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니 어떻게 그래요?)... 이 책도 침대에서 읽고 있었는데, 약간의 민망함이 생겨 화장대로 옮겨오긴 했으나, 떨떠름했다. 그리고 침대 근처의 먼지는 호흡을 얕게 만들어서 수면을 방해한다고 하기에, 침대의 위 아래 옆의 먼지들을 닦아내었다.

 

 

우선 나는 평소에도 하던 것들이었던 것이 많아서 의아했지만 그렇다고 잠을 잘 자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나의 수면은 미미하니 J에게 해주어야겠다. 아프다고 해도 꾹꾹 누르고 잘 잤냐고 열 번 물어봐야지. 맛 좀 볼래? 어떠냐_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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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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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를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발레리나 그림뿐이었다. 나는 드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가 아닌, 전혀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어 책이 어렵게 쓰였거나 내가 이해를 잘 못하는 부분이 많아 억지로 읽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많이 고민하기도 했고 내심 걱정도 했는데, 그런 고민과 걱정을 싹 날려줄 만큼 흥미롭게 읽었다. (아, 각 인물마다 다른 작가들이 쓰는 것이 이 시리즈의 특징인데 다른 작가의 책은 읽어보지 않아 어떤지 모른다.)

13. 그는 자연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온갖 모순과 악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도시를 향했다. 사람과 현실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노동하는 여성을 그렸고, 공연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클로드 모네와 알프레드 시슬레가 햇빛을 받은 수목과 강물을 그릴 때, 드가는 인공조명을 받으며 움직이는 발레리나와 가수를 그렸다. 드가는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었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어떤 방향성이 있었다. 그는 인상주의에 속했지만, 풍경이 아니라 인물을 그렸다. 경마와 발레를 그린 그림에서는 인물의 순간적인 동작, 역동적인 모습을 묘사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해 보였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뀌는 세계의 모습을 붙잡는 것.

특정 사조로 묶을 수 없을 듯한 예술가라고 표현되는 ‘에드가 드가’는 속도에 대해, 본다는 것에 대해, 진실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맞섰던 이였다. 그렇기에 추후에 사진에 대해서도 개방적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어렴풋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귀족적, 어떤 점에서는 부르주아였기에 상승 욕구가 없었고 초연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파리의 면면을 그릴 수 있기도 했을 것이다. 돈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런 그가, 40대에 생활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1874년 2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큰 빚이 남겨져 집안 경제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는 그림을 빨리 그려서 팔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유화보다는 파스텔이 제격이라 40대에 파스텔 작품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파스텔로 그려진 그림들은 경쾌함이 강하다.

책은 드가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중 모로와 마네였는데,

드가는 모로를 ‘구태의연하고 작위적인 세계에 함몰된 자’, 모로는 드가를 ‘시간과 정열 낭비하는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오래 이어질 수는 없었다. 책의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것은 마네였다. 드가는 온갖 기법을 잘 익히고 잘 다루는 편이어서 기본적인 순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벨라스케스의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 모사하다가 “그렇게도 할 수 있군요?”라며 마네가 다가왔다. 마네는 드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이였는데, 아이러니하게 마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드가는 없었겠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드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마네는 마네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잠시 책 읽기를 멈추고 마네의 그림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가 있다. (책에도 마네의 작품이 꽤 많이 실려있기도 하다.)

그런데 둘의 사이는 깨어지고 만다. 마네의 그림에서 부인 쉬잔은 더 아름답게 그려지곤 했는데, 드가가 그린 <마네 부부>에서의 쉬잔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네가 잘라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 그림은 이미 잘라내져 애석하게도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초상화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생각하면 드가의 그림이 더 실제의 쉬잔과 닮았으리라 짐작하기도 한다고. 드가는 인상주의 전시회를 준비하며 마네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여기서 독립이라는 표현의 근원지는 마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드가는 없었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18세기에는 로코코 예술가들이 그린 누드화는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귀족들과 군주 등이 개인적으로 주문한 것이라 대부분이었다면, 19세기 살롱에서 누드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려면 신화 속의 여신이라는 명목이 필요했다. 드가의 누드화는 관음증이 연상되지만 이상적인 육체가 아니라는 것과 그림 속 여성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옷을 벗었다는 이유로 관음증에 포함될 수 없다고 하는데, 드가의 누드화의 대상이 여성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갑자기 이전에 읽었던 존 버거의 <다른 시선으로 보기>에서의 누드화에 대한 부분들이 스멀스멀 생각나 화가 나기도 했다. (나 존버거 할 거야!)

30대에는 꽉 짜인 구도에 밀도가 높은 작품이 주를 이루었고, 40대에는 생활고에 시달려 파스텔로 경쾌함이 가중되었다면, 경제적 안정을 되찾은 50대의 드가는 우울했고, 60대의 드가는 지리멸렬했다고 쓰여있다. 어느 정도 그를 텍스트로 읽어가다 보니, 그의 삶을 어렴풋 짐작할 수 있다. 또한 30대 중반에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드가는 말년에는 시력이 완전히 쇠했는지 촉각적이다. 파스텔이나 모노타이프로 작업한 것이 그 까닭이다. 그의 좌절은 상당했겠지만, 책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226. 나는 유명하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던 드가는 그저 내 무덤 앞에서 이렇게 한 마디만 해주게나. 그는 데생을 사랑했다고.라고 주문한다. 사진에 대해 개방적, 뛰어난 판화가, 탁월한 조각가였던 드가. 새로운 것은 나는 그를 생각하면 구경하는 사람을 구경하는 화가, 바라보는 사람을 바라보는 화가로서의 발레리나 그림을 떠올리게 될 테고, 서로 화해하지도, 포용하지도 못한 채 고립된 ‘가족의 초상’인 <벨렐리 가족>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의 생을 감상(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하고, 그의 작품들을 이전보다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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