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땅
김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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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으음, 염소 한 마리!”

“한 마리요? 난 염소를 세 마리나 버리고 왔어요. 어쨌든 아주머니가 나보다 덜 억울하겠어요.”

“덜요?”

“아주머니는 염소를 한 마리만 버렸지만 나는 세 마리나 버렸으니까요.”

“내 염소가 얼마나 포동포동 살이 쪘는데요.”

“내 염소들은 부지깽이처럼 말랐을까봐서요?”

(…)

한 마리 버린 사람도, 세 마리 버린 사람도, 자신이 가진 염소를 전부 버렸으니 누가 더 억울한지 따지는 건 우습고 부질없어……

누군가가 나를 위로한답시고 “넌 그래도 누구보다 낫네. 누구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반발심만 올라왔을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었는데 그 표현을 이곳에서 찾았던 기억이 난다. 슬픔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에 이 책을 읽다 눈물이 자꾸만 나는 유약한 마음에 금세 덮어버리고 수개월 동안 엄두가 나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다시 처음부터 읽어갔다.

12. 오줌 지린내, 눅눅해진 건초가 썩는 냄새, 구릿한 살냄새, 케케묵은 목화솜 냄새, 땀과 때에 찌든 옷 냄새, 보드카 냄새, 담뱃잎 타는 냄새, 염장 청어 냄새가 뒤섞여 열차 공기 중에 떠돈다.

1937년 소련에 의해 조선인 17만 명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던, 정체성이 없는 상태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이 책을 통해 감히 다 알 수는 없지만 내 집을, 내 고향을, 내 나라에서 강제 이주를 당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설움이 만년설처럼 마음에서 녹지 않고 점점 쌓여만 갔다. 아마 여러 지역을 부유하며 정체성 없이 떠도는 나를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열차 가장 먼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들이 내뱉는 말의 발자국이 마음 구석구석에 아로새겨진다. 그들이 내뱉는 언어는, 행동은 억지스럽지 않고 담담하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아내의 심정과 자신을 따라 열차에 탑승한 러시아인 아내를 보는 남편의 심정도, 아이를 열차로 버려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도.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삶을 사는 걸까, 살아내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살 수밖에 없는 걸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끝내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삶을 살기도 하고 살아내어야 하기도 하며 살 수밖에 없기도 하여 애달프다.

어쩌면 삶은 용변의 자유로움과 허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에서도 안락함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낀다.

136. “얘야, 참새들은 자신이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참새들은 늘 그렇게 신이 나 있는 거란다.”

참새와 인간은 다르니까요,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253. “우린 살아야 해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데요?”

“왜요?”

“네, 왜요?”

“살아 있으니까요.”

“살고 싶잖아요.”

우선 살고 봐야 하니까.

그저 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인 사람들이기에.

117. “제비들은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갔겠지요.”

“봄이 오면 또 날아오겠지요.”

“네, 사랑을 하려고요.”

“우리가 떠난 것도 모르고요.”

우리는 어디엔가 씨를 다시 뿌린다. 씨를 뿌리고 그 작물을 수확하며 그것을 먹고산다. 그것이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유보하기로 한다. 살아야 하는, 살아내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삶이라고 다 같은 삶이 아니니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의 삶.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엾음을 알기에 마음이 혼란하다.

108. “여보, 지난 일이야.”

“지난 일이요? 가슴에 남아 있으면 지난 일이 아니에요.”

한국사를 단편적으로 공부를 했던 지난겨울의 한 달이 있었다.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함보다 나의 얄팍한 지식에 한탄을 하며 공부를 했었는데, 공부를 하면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주 들여다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모르는,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혹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곰곰이 따져보면 나는 한국사를 다시 단편적으로나마 들추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시간만이라도 몸과 마음 모두 멀리에 있는 그들을 생각하게 되니까.

다시 앞장으로 돌아온다. 내 새끼들, 먹을 복이 있어서 평생 배불리 먹고살아라. 울컥, 고요해졌던 마음이 이내 다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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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PASSCODE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집 800제 16회분 심화(1ㆍ2ㆍ3급) + 무료 동영상 강의 - 최신 기출 800제 16회분(제56~41회) 최다 수록!(별책 부록 PASSCODE 빅데이터 50가지 테마 미니북 제공)
한국사수험연구소 지음 / 시대고시기획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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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동안 한국사를 단편적으로 공부를 했었다. 점점 더 흥미가 생겼지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같이 보자는 J의 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내가 하는 공부가 단순히 암기하는 공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J는 한국사 시험을 봐야 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본인이 너무 나태해지는 것 같다고 뭔가 성과를 내고 싶어했기에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집을 시대고시기획에서 2022 특별 기획판으로 냈다고 하여 관심이 갔고 그 책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재작년에 식물보호기사를 준비할 때 시대고시로 준비했었는데 별 무리 없이 1차에 합격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빅데이터 테마 미니북이라고 하여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게끔 얇게 정리되어 있는 미니북이 있다. 심심할 때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어 옆에서 나도 끼어들어 눈을 굴리기도 한다. 그런 내게 J는 너 안 한다며~~~라고 말하면서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고. (흥) 어쨌든 잘 정리가 되어있어 나도 종종 눈 요깃거리로 보고 있다.



다른 문제집도 그렇듯, 문제집과 해설을 별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찢는 방식은 아니어서 더 깔끔하다.

또 신기한 건, 기출문제보다 해설이 더 두껍다는 점이었는데,

정답 분석(정답이 보이는 핵심 키워드, 길잡이, 해설), 선택지 풀이, 암기 key 등이 있어 좀 더 이해를 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무엇보다 컬러풀한 이미지로 좀 더 눈이 덜 피곤하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이제까지 공부를 하면서 그림을 본 게 좀 오랜만이라 신선하기도 하고... 나는 너무 글자만 있는 딱딱한 공부만 했나... 암튼 신선하다. 문제뿐만 아니라 해설도 올컬러라서 산뜻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료 동영상 강의가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무료 동영상 강의유튜브 시대에듀 채널시대플러스 홈페이지(sdedu.co.kr/plus)에 있고,

문제집 기출문제 회차별은 회차 옆에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면 강의는 건너뛰고 기출문제만 풀면 되겠지만,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짚고 넘어가는 게 좋으니까 동영상 강의를 찾아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J의 공부를 응원한다!

이왕 할 거면 1급을 목표로 하지그래? (공부도 안 하는 난데 왈가왈부 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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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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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기 이전에 J가 먼저 이 책을 읽었다. 쓰고 보니 먼저라는 말은 좀 이상하다. J와 함께 독립서점을 찾았을 때 J는 이 책을 읽고 싶다고 하며 뽑아 들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리고 다 읽지 못했기에 그 책을 사서 나왔다. 그는 그 책을 읽으며 내게 자주 물었다. 삿보도가 뭔지 알아? 오함마가 뭔지 알아? 반생이가 뭔지 알아?... 아니 여보 내가 동바리라고 알려줬는데 그걸 삿보도라니... 그 책 뭐야 싶어서 뒤따라 읽게 된 것이었다.

전직 기자가 형틀 목수로 전향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노가다를 언젠가부터 고단하다, 노곤하다로 읽게 되었다. 고단한 삶을 끝마친 뒤에 찾아오는 노곤함이랄까. 하지만 그들의 삶을 나는 알 수 없다. 함께 현장에서 얼굴 보고 인사해도 우리는 각자의 일을 할 뿐이니까. 나는 그들의 삶에 깊숙이 관련되지 않으려 하니까. 하지만 나 역시 노가다판에서 일을 했었고, 앞으로도 향후 몇 년간은 할 것 같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점은 분명하다.

2020년 어느 날의 일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데 앞서가던 두 사람을 보며 한 여성이 아이에게 “공부 안 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뒤에 따라가던 우리는 듣지 못했다. 차장님은 그 말을 이미 진물 나도록 들었다고 하셨지만, 이후로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나가서 점심을 먹을 때면 가깝더라도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원청 소속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것과 관계없이 더럽고 어렵고 힘든 일이었겠지.

그런데 불현듯, 건축과를 지원하겠다는 내 말에 아빠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니가, 더울 땐 시원한 데서 일하고 추울 땐 따뜻한 데서 일했으면 좋겠어.” 건축에는 여러 세부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말씀하셨겠지만, 건축이라는 것은 그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역시 듣는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않음을 넘어 속이 쓰린 이야기다.

그렇지만, 나 역시 그들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다. 갈팡질팡하다가 중간에 섰다가 결국 다시 기울어버리다가 다시 곧게 허리를 편다.

저 목공이에요, 저 철근공이에요, 저 타일공이에요, 저 석공이에요, 저 미장공이에요.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반응은 고작 아~ 노가다~? 하는 반응이다. 왜 노가다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가 힘들까.

나는 현장에서 있으면서 자주 어지러웠다. 노상방뇨는 기본이요, 마루를 깔아놨는데 내 공종이 아니라고 해서 마루에 침을 찍찍 뱉질 않나, 싱크대나 마루에 똥을 갈겨놓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많다.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것을 알면서도 보고 들을 때마다 알록달록한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일부를 전체라고 일반화시켜서는 안 되겠지만, 전체의 일부라는 점은 틀린 것이 아니니까.

다른 부분들은 그렇게 읽어나갔다. 아는 부분은 아는 대로,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대로.

그러다가 변호하고 싶은, 변명하고 싶은, 화를 내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또 길게 써봐야 할 것 같다.

260. 노가다 판엔 ‘시어머니’ 같은 사람이 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사사건건 쫓아와서 잔소리하는 귀찮은 사람. 바로, 안전관리자다. 안전관리자는 원청에 속한 직원이다. 현장의 모든 안전을 책임진다. 현장 규모에 다라 다르긴 할 텐데, 보통 열 명 정도가 수시로 돌아다닌다.

1. 안전관리자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당신의 안전을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다.

2. 안전관리자는 원도급과 하도급의 기준이 좀 다르지만 공통으로 120억 이상이면 선임 대상 현장이다.

3. 현장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아파트 현장의 경우 원도급에서만 2-3명이면 적당하다.

10명이 돌아다니는 경우라면 발주처에서 내린 안전감시단이 포함되었을 경우다.

263. 이 모든 게 정말 눈 가리고 아웅이다. 나는, 내가 안전난간대 설치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다고 떨어질 사람이 아 떨어질까? 말하자면 이런 안전 대책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까 싶었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 원인 분석과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매번 절절히 느끼곤 했다. 좀 건방지게 얘기하자면 노가다 판 현실은 X도 모르는 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내놓은 대책 같은 느낌이랄까.

(…) 빠릿빠릿 안 하면, 하나씩 들고 다니면, 오야지한테 일 못한단 소리를 들을 테고 그러다 보면 잘릴 수도 있다. 그런데 뛰지 말란다고 안 뛸 수 있겠냐는 말이다. 생계가 달린 문젠데.

(…) 오야지 입장에선 안전관리자가 잔소리한다고 한 묶음씩만 뜰 수 없다. 자재를 빨리 떠줘야 인부들이 일을 빨리 할 수 있고, 그래야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그러니 눈치 봐가며 두 묶음씩 뜬다.

(…) 어쨌거나 이 ‘불법 다단계 하청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인부들은 뛰어다닐 수밖에 없고 안전사고는 언제든 터질 수밖에 없다. 안전관리자 20명 배치할 거 30명 배치한다고 해서 터질 사고가 안 터지지 않는다.

(…) 10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은 변할 세월이고, 기술이 발전했어도 한참을 발전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안전 대책이 아무 의미 없었단 얘기다.

(…) 책상에 앉아 고민할 게 아니라 현장에 와서 보고 듣고 느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아니냐고. 그렇게 했는데도 10년째 사망자 수가 줄지 않았다면 진짜 무능한 거고, 그렇게 안 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현장에 와 보시라고.

저자를 응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화가 많이 났던 부분들이다. 그냥 안전에 관한 그 페이지 전체가 화가 났다. 단지 각자의 위치가 달라 서로의 위치에서 화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당신의 건강과 안녕을 누구보다 바란다.

나는 대전에 본적을 두고 있지만, 태생적으로 말이 빠르고(충청도는 돌 굴러와유우yyy 라고 말할 만큼 느리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니까) 거침이 없다. 거침이 없다는 말은 겸손하지 않다거나 거만하다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다 하는 편이라는 것과 동일하다. 특히 직장에 있을 때 그렇다. 그래서 자주 오해를 샀다.

2015년에 함께 일하던 새끼 반장으로부터 싸가지가 없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말투가 그게 뭐냐고. 이 대리처럼, “반장님 이것 좀 해주이소~”라고 말을 해야 자기들이 하기 싫던 마음이 풀어져서 할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살고 있던 지역의 사투리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고향의 말씨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핀잔을 종종 들어야만 했다. 그러면 내가 그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장님 안전모 좀 써주세요 제발~ 질질질 해야한다는 의미인가. (이 미친)

고용노동부에서 오래전부터 안전모를 쓰지 않거나 안전지침을 어기는 근로자에게는 과태료를 문다고 하고 이와 별개로 안전규정을 세 차례 위반하면 퇴출도 당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용노동부의 권한인 거고.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현장 점검을 나온다는 것은 달갑지 않음을 넘어 비상사태 중 하나다. 그냥 참 잘했어요 찍어주는 것은커녕, 과태료 하나라도 물지 않고 그냥 가는 법이 없다. 오죽하면 “다 잘했는데 우리가 그냥 가면 안 돼서요. 과태료 이거 두어 개만 합시다.”라고 말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요식행위가 따로 없다.

중대재해처벌법만 보더라도 사고가 나면 우선적으로 사용자의 안전 관리 책임을 묻는다. 형사처벌까지 가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근로자를 제재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근로자가 안전화를 안 신고 발에 못이 박혔다거나 안전모를 안 쓴 상태에서 비래되었을 경우에도 사용자의 책임이다. 안전대책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자기의 생명을 지키려면 최소한의 안전보호구는 다들 하셨으면 좋겠다. 이건 근로자든 관리자든 현장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실천해야 하는 문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안전관리자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의 건강을,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다. 하루의 무사한 안녕을 기원하는 사람이다.

H차장님이 지금 아내분과 결혼한 스토리를 말씀하신 적이 있다. 소개팅을 하는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콘크리트 타설 시간이 늦어져서 늦게 퇴근을 하게 되었다고. 그러다 보니 작업복도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서 그대로 가셨다고 했다. 자신의 행색이 부끄러웠던 차장님은 “미안해요.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서...”라고 얼버무렸는데, 그분이 그러시더란다. “일하고 온 건데 뭐 어때요.” _ 듣는 내가 다 감동이었다. 감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의 속뜻은,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저자는 일이 끝난 뒤에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불유쾌한 시선을 거두어야 한다.

“뭐 어때요. 일하고 온 건데.”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비계공에 대해 생각했다. 결과물이 없는 비계공.

하지만 꼭 있어야하는 비계다. 비계 없이는 모든 공종도 무사할 수 없고 원만할 수 없다.

+) 책에는 직영을 하도급에서 둔다고 설명했는데, 때에 따라서는 원도급에도 직영을 두는 곳도 있다.

원도급의 공사팀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으로 여러가지 일을 도맡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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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 회사 밖에서 다시 시작
곽새미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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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년 8월까지 근무 후 퇴사를 했다. 이전 같았다면 이직할 회사와 날짜를 결정한 후에 퇴사를 했을 텐데, 수술을 앞두고 있어 당분간 쉬기로 결정한 상태이기도 했다. 한동안 내 월급이 없을 예정인데도 불구하고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계약만료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컸고, 또 회사라는 조직에, 당분간 밥벌이를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질려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려서 수술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을 때, 망설임 없이 “그땐 제일 바쁠 땐데.”라는 말과 이후 급기야, “수술 날짜를 미루면 안 되냐"라는 말에 나는 정이 떨어져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책임감과 기타 다른 이유로 수술 전 한두 달은 쉬고 싶었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수술 일주일 전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J는 21년에 근무지 변경을 신청하기에 앞서 자문을 구하면서 그는 근무지 변경이 변경한 시점이었고 또한 ‘가족이 다녀야 하는 병원의 근접성’을 제일 먼저 이야기했음에도 그건 회사와 상관없는 일이니까,라는 태도로 근무지 변경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유는 타직원들이 근무지 변경을 하면 믿고 맡길, 그러니까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 참담한 심정까지는 아니었지만 잇새로 실소가 터지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나는 수술을 무사히 잘 받을 수 있었고, 당분간의 휴식을 누릴 겸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했다. 도예, 프랑스자수, 음악회 가기, 평일에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기, 평일 카페 탐방, 한낮에 산책하기_ (하고 싶던 우드 카빙은 끝끝내 기회가 닿지 않아 하지 못했지만 마음에 품고 있어야지) 나는 하기 전까지도 할까 말까 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도예와 프랑스자수를 시작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프랑스자수를 하면서, 또 도예를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그림을 하나 그리려고 해도 지우개 먼저 다 쓰고 결국 지우개로 해진 스케치북을 노려보며 울던 나였다. 당연히 도예도 하다가 망치면 다시 시작할 줄 알았고 완성본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우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었으니까. 그런데 선생님께서 그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말씀하신다. “지금 잘 안되고 있는 것 같죠? 그런데 신기하게 그게 되고 있는 거예요. 잘 하고 있어요.” 그 말에 힘입어 나는 한 번도, 하던 도중에 갈아엎은 적이 없다. 선생님 덕분이었다. 흙을 만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예를 하면서 처음이 망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도 망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매만지면 매만질수록 더 매끈해진다는 것을, 내가 만족하기 전까지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손으로 하는 것들은 재주가 없다고 생각해온 삼십몇 년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자수를 하며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흙을 만지는 그 모든 순간들은 할까 말까 할 땐 해보고 안 맞으면 멈추면 되지,라는 마음을 새로 만들어냈다.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를 읽게 되었다. 부부가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었으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그에 따른 생각들, 세계여행을 하는 도중에 든 생각과 세계여행을 다녀와서의 생각, 그리고 지금의 삶을 써 내려갔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생각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J의 동기가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한 때가 가장 충격적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게 되었달까. 또 여행을 좋아하지만 세계일주에 대한 로망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에 응원한다, 많이.



그런데 나는 이 책이 좀 불편했다. 왜 자꾸 뭐가 불편하지? 싶었는데, 잘 쓰인 합리화를 보는 기분이라는 것을 중후반을 읽을 때에야 알았다. 사람마다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옳고 그름이 없는 부분이라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읽으려고 했는데 불쑥불쑥 나오는 불편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2년 전, 만우절 특가로 나온 35만 원으로 페루로 가는 항공권을 반신반의로 구매하며 “남편, 혹시나 이 표가 진자라면 이만큼이나 휴가를 낼 수 있어?” “안되면 퇴사하지 뭐. 질러버려!”라는 말을 하고, 출발일이 되어도 표가 취소되지 않자 뭐라 하면 어차피 그만둘 거니까 알 게 뭐냐며 호기로웠지만 조심스러웠다는 말에 책임감 결여가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또 주식은 어떻게 하며, 지금 어디가 집값이 올랐다더라. 쉽게 끓는 냄비근성이 재테크로 갈아탄 느낌이다.(186) 자꾸 재테크 광풍에 반감이 생긴다. 돈 많은 투기 세력과 몇 채씩 보유하는 집주인과 건물주들이 밉다.(188) 라며 몇 페이지를 꼬박 써놓고 그의 남편은 현재 주식으로 유튜브를 하며 소득을 내고 있다고 하는 걸 보면서, 남편의 관심사를 알았더라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장 핫한 주제를 관심사로 올림으로써 역시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 건가 싶기도 했으니까.




퇴사를 고민할 때 우리는 우리를 찾아온 많은 불안을 수시로, 새로운 다른 일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혹은 퇴사를 한 이후에도 마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그 불안을 잘 배웅하는 것은 플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더 재미있는 것이겠지만 (여기서 재미는 fun이 아니라 various에 더 가깝다) 여러 플랜이 있을 때 마음에 여유가 더 생기는 건 사실이니까.

저자의 경우엔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 1년 동안 부모님 슬하에서 안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크고 작게 누군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돈이라는 것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돈은 굉장히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의 가치관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이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읽는다면 그뿐이기는 하지만)





몇몇 부분이 불편함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곳곳에 공감을 표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역시 한 회사의 직장인이었고 앞으로 직장인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쉽게 질리는 내 성격 탓에 내가 지금 아무리 좋아서 못 놓을 것 같은 것들도 짧기에 좋다는 것도 알아버렸고, 일이 아니기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며, 언젠가 그것들이 일상이 되어버릴 것도 안다. 내게 어떤 것이 일상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새삼스럽지 않고 설레지 않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새삼스러웠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잘 가던 길을 탈선할 계획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일 대로 꾸준히 하면서 불로소득을 얻고, 잘 하는 일을 주수입원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끊임없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가치관에 맞게, 풍요롭고 아늑하고 여유로운 삶을 위하여, cheers!






오탈자 34. 잘 모르는 지인들의 수근거림수군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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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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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그 새로운 비움과 채움의 끝에 구분과 분류로 나뉘는 우리와 저들이 아닌, 각각 다른 나(I)들이 가깝게 뒤엉켜 살아갈 미래를 얘기한다.

 

나무, 새, 호랑이, 돌, 이야기, 돼지, 원숭이, 사자, 청각, 풍경화, 아파트, 시, 사물, 나무

나무에서 손을 잡아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나무에서 손을 잡았다. 상관관계가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들은 관계에 쉼표를 찍으며 공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름이 없는, 이름이 있지만 부르지 않던, 결국 우리가 잊고 있었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고, 또 그렇지 못한 것들에 대해 박보나 작가는 썼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이 책을 다 읽은 직후에 했던, 최초의 생각이었다. 인류가 언어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고 보는 입장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몇 구절을 읽어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인간이 원하는 대로 했지만, 인간은 결국 행복하지 않다.의 결론으로 너무도 분명하게 매듭이 지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우리는 행복한가, 행복해졌는가, 행복해질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어 회피하고 만다.

 

 

 

 

조용한 미술관에서 귓속에 큐레이터의 음성이 파고드는 듯했다. 34. 다른 생명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은 파괴와 멸망의 나락 반대편에 선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외로울 리 없다.는 말을 지반에 두고 나는 천천히 내가 아닌, 내가 될 수 없는, 내가 되지 못한 생명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많은 것이 변하기도 했지만 또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다. 그것에 대한 근거는 내가 산 세월은 삼십 년 남짓뿐이지만 내가 살던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조차 생소한 내가, 내 생김새와 내 피부의 변화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가, 주변 환경의 변화라고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모가, 나의 조부가, 나의 증조부가, 누군가로부터 귀로 전달받고 사진을 통해 눈으로 본 나의 조상들이 증인이 되어주었다. 그 역시도 명료하지 않기에 어렴풋 짐작해 볼 뿐이다. 67. 과거를 더듬으며 현재를 걷는 심정으로 잘 마련된 전시관의 사진들을 바라본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미래 도서관>이었다. 노르웨이 숲에 천 그루의 묘목을 심고, 그 나무가 다 자라면 그것으로 책을 인쇄하여 출판하는 프로젝트. 기획자인 케이티 패터슨은 해마다 한 명의 작가를 초청해 원고를 받지만 그 원고를 지금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볼 수 없다. 나무가 다 자라는 시기에 맞춰 출판일을 내놓기 때문이라는데, 100년 뒤인 2114년이라고 하니까. 한 세기 동안 패터슨은 천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숲을 키우고, 백 명의 문필가들은 글을 쓴다니.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매력 있고 아름다운 프로젝트다.

 

 

 

처음에는 이 책이 단순하게 환경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환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고 예술이라는 비단 한 필로 감싼 책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환경에 관한 책이라고 규정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태도를 바로 보는 것에서 공존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이 책을 끝낸다. (물론 읽는 이마다 이 책을 정의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덧1) 134. 지낼 때는 미처 몰랐는데 정다운 집이었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은 것 중 하나지만, 기억은 미화되는 것이었다. 나 역시 7년 전에 살던, 쥐가 파이프를 갉아먹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밤마다 쥐가 찍찍거리며 천장을 뛰어다니는 것을 감내해야 했던, 그 이후로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를 볼 때면 우당탕탕거리던 그 쥐들을 생각하게 된, 네모네모 시트지가 마지막까지 적응되지 않던 그 15평의 집이 추억이 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날들을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습다. (물론 단연코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불안정했던 과거가 미화라도 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현재의 즐거움에 기꺼이 눈을 크게 뜨자-가 여전한 모토다. 미화라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 현재의 불만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에 대해 깊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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