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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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님.



책을 소개를 중간까지만 읽고 덜컥 구매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야 책을 펼쳐들었어요. 서평을 쓰려고 하얀 창을 바라보며 편지를 쓰는 대상을 제누에서 작가님으로 변경했어요. 책에 관한한 여러 서평이 있고, 그 서평들을 다 읽어보진 않으실 테니 이 편지가 닿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겠지만요. 거창한 이유랄 것은 없고, 그저 감사의 표현의 일종입니다. 회사 점심시간마다 책을 들고 산책을 나가서 책을 대여섯 장씩 읽고 오곤 하며 점심시간을 보냈지요. 그 점심시간이 작가님 덕분에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눈이 시큰해지고 마음이 뻐근해져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눈을 껌뻑껌뻑거리기도 했어요. 책을 다 읽은 날에 배우자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하기도 했어요. 저희 부부는 이제까지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해왔으니 아마 무리가 없다면 거의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게 될 것도 같지만, 저희가 이제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부모를 선택한다.

아이를 선택한다.


선택을 받는다.

선택을 받지 못한다.

선택을 하지 않는다.



살다 보니 여러 선택지가 있더라고요. 여러 선택지 중에서도 하나의 선택지를 제 것으로 선택하고 삶을 살았어요. 선택을 하지 않는다.가 제 선택이었지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족한테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잖아.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거야. 내가 나도 모르게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하나와의 생각과 같았지요. 나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인간일 뿐인데, 그런 내가 어떤 한 인간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내 가치관 대로 길러내어 그것이 성격이 된다는 게, 그러니까 동물을 사람으로 길러내는 과정이 무섭고 두려웠어요. 그 때문에 이미 성격과 가치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갈 ‘초등학생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 아이라면, 내가 방향을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 두려움을 타인에게 말했을 때 제대로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손에 온기가 피어올랐어요.



결국 내가 나를 이룬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들이잖아. ……그럼 기억이 형성되기 전의 나는 어떻게 키워졌을까? 내가 누군가를 만든다고만 생각해 봤지,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며 살지는 못했는데, 덕분에 아주 어릴 때의 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답니다. 나를 만든 것은 결국, 특정한 어떤 것이 아니라 나를 감싸고 있던 세상의 전부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을 냈어요. 모자라고 부족한 것들이 더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이, 내 단점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 까닭이겠죠.




사랑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마음씨 예쁜 아키가 좋은 양부모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너는 네 삶을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던 가디에게 “저만큼 제 삶에 신중한 사람은 없어요.”라고 대답하던 제누가 자꾸만 떠올라요. 저는 제누가 ‘에드거(Edgar)’였으면 해요. 제누라면 가능할 것 같거든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새끼 원숭이.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요.

세상에는 부모 같지 않은 부모들이 참 많아요. 지금 현 상황은 더욱 그렇네요. 하지만 ‘부모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애매해요. 그들의 ‘부모 자격’이나 ‘부모다움’을 감히 어느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예단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요. 다른 분들이 아이가 건강할까, 성별은 무엇일까, 자연분만을 하고 싶은데, 산후조리원은 어디로 하지, 같은 걱정이나 선택에서 조금 벗어나 ‘아이게에 어떤 부모가 되어줄 수 있는지,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아주 깊이 몇 번이고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부모 자격은 그때 부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세상에 슬픈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저는 종종 생각해요. 그 어떤 것보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지난날들을. 그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질문이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지켜주지 못할 상황이 필연적으로 생길 것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니면 제가 생각보다 너무 엉망인 인간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고, 아니면, 아니면, 어떤 우스운 핑계를 대고, 가설을 만들며 합리화를 하기도 하지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갑니다. 어떤 날은 진흙 구덩이를 피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부러 들어가서 발을 쾅쾅 구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저도 모르게 빠져있기도 하고요.


이후에 전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요. 말로는 어떤 방향이든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로 우리 부부가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저는 제가 사는 지금을 또다시 깨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들지가 않아요. 이미 결정은 잠정적으로 도출되었지만, 그 결정을 결정하는 것을 유예시키고 있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겠네요. 나는 “기다릴게, 친구.”라고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 그럼에도,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면 물어보고 싶어요. “너는 내가 마음에 드니?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니?”


부모에 대해 또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며 삶을 정돈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해주어서,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며 보이지 않는 손의 온기를 나눠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 책 속의 글



13. “NC 출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말도 안 되는 부모 밑에서 살아가는 게 더 어렵죠.”



29. 아이를 잘 낳지 않고, 낳아도 키우지 않으려는 사회였다. 정부는 사람들이 NC의 아이들을 입양하도록 독려했다.



76. “아이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존재들 같아요.”



91. “세상의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그건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111.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113. 원칙과 규율을 칼같이 지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었다.



146.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160. 가족이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먼발치’라는 말의 뜻은 시야에는 들어오지만 서로 대화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거리,라고 한다.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마음속 거리가 아닐까. 서로를 바라보지만 대화는 할 수 없는 거리 말이다.



167. 재능은 얼마나 잘하는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재능 같았다. 싸우고 다투고 매일같이 상처를 입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는 가족처럼 말이다. 아니, 그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무엇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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