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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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이란 뒤돌아보면 '시작'이라는 말이 될 수 있다.땅끝마을에 가족나들이를 가서 여기가 끝인가 했는데 뒤돌아보니 다시 시작을 해야할것만 같은 아니 우린 다시 시작을 하고 있었다.두 딸이 혹독한 사춘기를 치루던 대입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부모의 욕심을 내세운 공부의 길을 강요할 것인지 딸들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해야할 것인지 옆지기와 의견차이가 있었다.딸들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살아 왔기 때문에 미래가 안정적이라 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할 수 있는 길로 가길 원하는 것이 부모의 생각이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자신안에 있는 '꿈'을 향한 선택을 하고 싶다고 했다.갈등이 무엇이 필요할까? 본인들이 이미 선택을 했다고 하는데.어쩌면 자신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보다 어쩌면 나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꿈을 향해서 갈 수 있는 길로 가라고 했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보라고 했는데 처음엔 자존심의 문제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저희들이 선택을 잘했다고 한다.한참 친구들이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부모가 등 떠민 곳으로 가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한다.그만큼 성장을 했다는 증거일테고 그만큼의 나름 꿈을 찾아가는 길을 찾았다고 본다.늘 내게도 그렇지만 딸들에게도 '가슴 뛰는 일'을 향해 가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가 늘 의문이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길이에요. 저는 길을 좋아해요."

 

<이런 이야기>의 알레산드로 바리코는 이탈리아 작가이다. 낯설기도 하지만 이탈리아문학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읽다보니 빠져든다. '길', 꿈이라 할 수 있는 저마다 가슴에 간직한 '길'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이야기라 할 수 있고 아버지 로베로와 아들 울티모가 자동차와 자동차경주를 할 수 있는 서킷에 대한 꿈을 향하여 나아가는 인생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소설을 읽다보니 흑백영화로 보았던 안소니 홉퀸스 주연의 영화 <길>이 생각나기도 했다.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불협화음에서 잠파노의 잘못인해 젤소미나가 잠파노를 떠나게 되기도 하고 죽음에 이른 후에 그녀가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를 느끼는 영화였었나.젤소미나가 작은 북을 두드리며 걷던 그 길이 소설 속에서 울티모가 상상하는 그 길로 이어지는 느낌은 무엇인지.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아무리 자신 안에 많은 길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현실에 끄집어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리베로는 자신의 형의 힘든 현실을 보고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하여 과감하게 결정을 내린다.목장의 소를 팔아 버리고 멀리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자동차를 자신 인생안에 들여 놓은 것이다. 그것을 자신 뿐만이 아니라 아들인 울티모와 늘 함께 하지만 울티모는 아빠처럼 자동차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달리고 있는 '길'에서 자신의 인생을 본다.

 

'그 길들 가운데 하나가 내 아버지를 좌절시킨 날, 나에게서 길들이 사라져버렸어요. 그날 이후로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요. 보이는 것이라곤 그저 모호한 형상들뿐이었죠. 삶 자체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서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낱 불투명한 안개가 아닌 어떤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거기 카포레토에서 일체의 확신이 멎어버린 공회전 상태,모든 길들의 완전환 소멸을 경험했어요.

 

그들이 사는 곳은 시골이라 할 수 있는 곳이라 자동차를 구경하기 힘든 곳이지만 그래도 리베로는 목장이 있던 곳에 정비소를 차린다.그런 그들에게 백작이 찾아오고 백작은 울티모와 그의 가족을 보고 새로운 희망을 보듯 한다. 백작은 울티모가족에게도 희망과 같은 존재로 거듭나기도 하여 백작과 리베로는 함께 자동차경주에 나가게 된다. 그들이 함께 자동차경주를 나갔던 날은 울티모 엄마가 임신한것을 알게 되었던 날이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그들은 자동차경주에 나서게 된다.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백작이 사고로 죽게 되고 리베로는 살아 남았지만 불구가 된다. 아버지가 소를 팔고 정비소를 차릴 때에도 자동차경주에 나갈 때에도 무언가 희망이 보일 듯 했지만 그들의 희망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울티모는 카포레토 전투에 나가게 되고 전쟁에서 친구의 배신이며 자신의 꿈과는 점점 멀어져가는 현실을 보게 되고 미국으로 간 그는 엘리자베타와 피아노와 관계된 일을 하며 다닌다. 자동차정비가 아닌 피아노를 조율하고 팔고 꿈과는 먼 일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엘리자베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가 받아 들여지지 않아 떠나게 된다.

 

'내가 늘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부모들에게 자녀들의 꿈을 보는 눈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녀들의 꿈을 보지 못한다. 나쁜 부모라서가 아니라 그냥 보지 못하는 것이다.

 

엘리자베타,그녀는 어린시절에 짝으로 정해지듯 한 인물과 결혼을 하여 부유하게 살지만 남편이 죽고 난 후에 울티모를 찾아 나서게 된다.아니 울티모와 함께 하는 동안 그가 말해주었던 '서킷'에 대한 것을 잊을수가 없다. 그는 분명 자신이 꿈꾸고 설계한 서킷을 꼭 어딘가에 이루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아버지와 백작 그리고 자동차경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지만 울티모는 늘 '길'에 대한 생각과 그림을 늘상 그리고 있었던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꿈을 어딘가에서 이루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것이 고향 근처일까 하고 찾아가 보지만 부모님도 그곳을 떠나 살고 있고 자신들과의 꿈에서 멀어져 있지만 리베로는 자동차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울티모는 그녀와 헤어진 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어릴적 자신의 꿈과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어른이 되서 보면 그 그림의 자신과 비슷하게 닮아 있거나 근접해 있다고 한다. 과정은 어떨지 모르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는 자신이 어릴적 그렸던 그 꿈에 비슷하게 다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울티모는 항상 자신만의 '길'을 그리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 '길' 위에서 있을까?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가볼 만한 길,그녀는 그런 길들 가운데 하나였어요."

 

울티모에게는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지만 백작이 남겨준 어마어마한 유산이 있다. 그 유산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면 더 빨리 쉽게 꿈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울티모는 그 유산을 건드렸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백작의 아들을 자신의 아우로 받아 들이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서킷을 그에게도 나누어주듯 한다. 그가 서킷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백작의 죽음도 있었고 아버지의 자동차사고 엘리자베타와의 만남과 이별도 있었으며 전쟁도 있었다. 쉽게 자신의 길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에 그는 자신의 길을 분명 수정해 나갔을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남다르게 보았던 길에 대한 애착이 서킷이라는 꿈으로 자리하면서 죽음에 이를수도 있는 전쟁이나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에 대한 집념을 놓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서킷을 만들어내고는 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엘리자베타는 그가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길'을 찾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찾아내지만 흔적이 많이 지워져 있다.하지만 완벽하게 복원을 해 자신이 한번 그 길을 달려본다. 그리곤 그것은 울티모의 길이기 때문에 다시 그 서킷을 부셔버리듯 하다. 타인의 꿈이 자신의 꿈이 될 수 없기도 하지만 그녀가 원한 것은 서킷이 아니라 울티모였다는 것을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된다.

 

"그건 한낱 서킷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에요."

......

"당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들 가운데 하나를 선물하는 거에요."

 

얼마 살지 않은 삶이지만 지금도 이 길이 내가 꿈꾸던 길인지 잘알지 못한다.그런가하면 어떤 꿈을 꾸고 있었는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빛이 바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식은 부모의 삶을 보면서 닮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 알게 된다.리베로와 울티모의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이 되어 있고 어느 순간 그들의 삶은 만나는 듯 하다가 다시금 서로 다른 삶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아버지 리베로는 울티모에게 어떤 꿈을 강요하거나 서두르지도 않는다. 자신이 자동차에 심취했듯이 그가 길에 빠져 있음을 알고 있고 엘리자베타와 어긋난 삶이었지만 그들이 서로 좋아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하지만 둘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인생임을 서로는 안다.아버지와 아들의 삶은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닮아 있다고 느끼는 것은 왜일까.'인생'과 '꿈' 에 대한 이야기라 볼 수 있는 바리코의 소설은 우리네 삶을 보는 듯 하여 지루하지 않고 낯선 작가이지만 이 작품만으로도 그를 기억할 수 있을 듯 하다. 삶이란 무어라도 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자신의 가슴이 뛰는 일을 위하여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어떻게 살아도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누구나 후회를 하게 마련이다.그렇다고 모든 길을 다 가볼 수도 없기도 하지만 쉽게 오른 정상은 또 쉽게 내려오기 마련이기 때문에 한번의 성공보다는 몇 번의 실패를,결과보다 과정을 더 값지게 생각을 하기에 울티모의 길을 더 재밌게 읽지 않았을까.

 

'살아가면 어떻게 평탄한 길만 원할 수 있을까.'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고 본다.반환점에 다가온 나이가 되다보니 친구들과 가끔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늘 주머니가 가볍다고 걱정할 것이지만 그와는 조금 거리가 먼 마음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서일까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늘 무언가 이루려는 꿈은 잃지 말고 살아가자고 생각을 한다. 울티모를 힘든 전쟁 상황에서도 버티어내게 한 것은 가슴에 간직한 '꿈'일 것이다. 자식을 키워 오면서 어느 순간 나 또한 자식에게 부모의 꿈을 강요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다행히 딸들은 엄마는 늘 자신들의 편이었다고 말해주는 것이 고맙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지만 말이다. 늘 자신에게 '내편'이 있고 '내꿈'을 응원해줄 이가 있다면 더 자신감이 생긴다. 비록 울티모가 가족과 가까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자신의 꿈을 응원하고 있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부모는 자식의 꿈을 지지만 해줘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한번더 느껴본다.그리고 또 한사람 엘리자베타라는 여인이 그의 꿈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울티모에게는 대단한 응원이다.울티모의 길을 따라가며 잠시나마 내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되는 소설이었다. 지금 제대로 내 길을 가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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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정원] 실외기베란다 화분에서 수확한 딸기

 

 

울집 실외기베란다에는 작지만 텃밭처럼 도라지도 더덕도 적상추도 적겨자도 부추도 라일락도

왕고들빼기도 자라고 있다.그야말로 잡동사니 텃밭이다.거기엔 딸기도 있다. 딸기는 봄이면 줄기

가 얼마나 많이 번져 나가는지 녀석 이젠 처치 곤란이라 번져가는 줄기만 보면 이젠 싹둑 싹둑 잘

라 버린다.그렇게 하여 화분에만 겨우 그 명백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래도 늘 몇 개의 꽃이 피고

몇 개의 딸기가 익어 쥔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

 

 

실은 딸기가 익은 줄도 몰랐다.갑자기 단기 알바를 나가게 되어 집안일이 엉망이었고 초록이들

에게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딸기를 보게 되었는데 언제 이녀석이 빨갛게 익어

여기저기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얼른 따서 옆지기와 사이 좋게 나누어 먹었다. 정말 자연에서

자라듯 아무것도 안하고 물만 주었고 화분에서 직접 따서 먹는 것이라 그 맛이 더 좋다는 것.

 

 

요게 줄기를 번져 나갈 때는 밉다가도 이렇게 빨간 열매를 맺고 있으면 더없이 이쁘다는 것.

그야말로 내 땅 화단에서 자란다면 줄기가 맘껏 번져가도 좋겠지만 고층이고 쥔장의 맘과는 다르게

아래로도 옆으로도 번져가면 녀석은 정말 골치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그래서 딸기를 없앨까도

하다가 그냥 두었다.이런 잔재미라도 느끼려고 둔 것인데 그것도 올겨울에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죽은 듯 하면서 살아나고 이렇게 빨간 딸기까지 먹게 되었다.

 

2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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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파이트 - 애플과 구글, 전쟁의 내막과 혁명의 청사진
프레드 보겔스타인 지음, 김고명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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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애플과 구글 두 기업이 절친한 조력자에서 철천지원수로 돌변하는 과정, 모바일 패권을 둘러싸고 디지털 공룡들 간의 음모와 배신, 소송, 기술혁신 경쟁 등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펼쳐지는 과정을 마치 무협소설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책.IT에 관심 있다면 재밌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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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너무도 이쁘게 핀 나팔꽃이 있어 나팔꽃씨를 받아 울집 행운목 화분에 뿌려 두었다.그리곤 잊고 있었는데 싹이 트고 벤자민을 감고 올라가 꽃이 하나 둘 피더니 급기야 씨도 맺고 다른 화분에서도 나팔꽃이 자라는 것이다.그렇게 우연하게 우리집에 온 나팔꽃씨는 그해 뒤로 십여년이 넘게 울집 화분 어딘선가 잊을만 하면 하나 둘 올라와 싹을 틔우고 꽃을 보여준다.고층에 위치한 관계로 실외기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서 핀 나팔꽃이 씨를 맺어 떨어진 것인지 아파트 화단에도 가끔 울집 나팔꽃이 '날 좀 봐줘!' 하고 피기도 한다. 푸른 빛의 울집 나팔꽃,올해는 주인장의 게으름 때문인지 아직 그 싹을 못 보고 있지만 잊을만 하면 언젠가는 다시 핀다.

 

내가 알고 있는 나팔꽃은 푸른빛 아니면 보라색계열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란 나팔꽃' 이 있다면 어떨까? 노란 나팔꽃이 가진 특성을 뺀다면 색으로는 정말 이쁠 듯 하다. 울타리마다 노란 나팔꽃이 핀 것을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노란 나팔꽃' 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길래 무서운 금단의 꽃,몽환화라 불릴까? 소설은 두개의 프롤로그만으로도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켜 빨리 그 결말을 맛보고 싶게 만든다. 첫번째 프롤로그에서는 출근시간에 갑자기 일본도를 들고 뛰어 나온 남자의 칼에 평범한 시민들이 죽음을 맞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리고 두번째 프롤로그에서는 매 해 '나팔꽃 축제'를 구경가는 소타네 가족,하지만 소타는 나팔꽃에 흥미도 없고 가기도 싫다. 가기 싫은 축제 구경이라 그런지 양말도 신고 오지 않아 발에 상처가 나게 되고 그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있다가 한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짧은 첫사랑을 경험하게 된다.그런데 왜 갑자기 그녀는 연락을 끊은 것일까? 아버지의 협박이 있었을까? 아님 다른 이유에서일까?

 

"앞으로는 조심하거라. 세상에는 다른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구나.슬픈 얘기지만."

 

아키야마 리노는 거리를 걷다가 그의 사촌 '나오토'가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왜 갑자기 그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나오토의 가족도 그와 함께 한 멤버들도 그의 죽음을 둘러 싼 이유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미궁속으로 빠져든다.그리고 이어진 죽음,리노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살해를 당하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집안에 정원에서 꽃을 가꾸는 취미로 살아가고 계신 할아버지,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 할아버지를 죽게 만들었을까? 아키야마 슈지의 죽음은 아무리 조사를 해도 그 끝을 알수 없는 길로 치닫고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는다.그러다 리노가 할아버지 정원에서 화분 하나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할아버지가 '노란 꽃' 이 피었다고 좋아했지만 블로그에는 올리지 못하게 했던 화분, 노란 꽃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연구소에서 이런류의 연구를 하던 분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식물'이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란 이유가 되지만 노란 꽃의 정체 또한 오리무중이다.

 

슈지 노인의 죽음을 조사하는 하야세,그는 불륜으로 인해 아내와 아들 유카와 떨어져 홀로 지내고 있는데 슈지 노인이 아들의 억울함을 증명해준 적이 있어 그의 죽음에 대한 열쇠를 꼭 풀어야만 한다. 그의 아들은 다른이가 아닌 아빠가 살해범을 잡기를 원한다. 그리고 '노란 꽃' 의 열쇠를 찾으러 다니는 또 한사람 소타의 형 요스케,그는 소타와는 배다른 형이기도 하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형으로 이어진 가업이나 마찬가지인 경찰의 피와 무언가 집안의 비밀을 소타만은 알지 못하게 하며 그만의 조사에 나선다.모두에게 제외 된 인물과 같은 소타와 리노는 한 팀이 되어 그들만의 추리로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조사에 들어간다.정말 노란 꽃이 할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그리고 나오토가 죽은 후에 그룹에 멤버가 된 키보드 '이바 다카미' 그녀는 왜 또 사라진 것이며 살인사건에 그녀는 무슨 이유로 얽힌 것일까.

 

이 소설은 십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왔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에 대한 반감이 소타의 자신의 전공에 대한 상실감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올림픽 후보 선수로까지 나갈 정도의 월등한 수영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감을 잃어 자신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리노를 보노라면 현재의 젊은이들을 보는 듯 하여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소타의 가족의 가족의 비밀과 아픔을 소타에게만은 전해주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한다.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아픔을 감싸고 나가야 하는 그 시간 속에서 혼자 외톨이처럼 느껴야 했던 소타의 방황은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비밀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더 단단해진다.그런가하면 비밀의 여인처럼 숨겨져 있던 '다카미' 또한 가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길에 흔들림없이 잘 걸어가고 있다.

 

'생존을 계속하면 허락받은 것일까.있는 것은 있는 대로 둔다는 게 내 생각이야. 거꾸로 말하면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도록 둔다는 거지. 어떤 씨앗이 사라졌다는 것은 사라질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야.노란 나팔꽃이 사라진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야.'

 

누구나 힘들면 어디에 기대고 의지하고 싶어진다.그것이 자신을 헤치는 약물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순간의 쾌락으로 자신의 고통을 잊고 삶의 무게를 덜어내려는 이들이 점점 약물에 빠져 들고 자신까지 헤하는 이야기를 가끔 접하기도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 몽환화는 음지의 꽃이라 할 수 있다.노란 나팔꽃에 얽힌 역사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에도시대에 가게 되고 그 시간에 얽힌 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이 씨실과 날실로 얽혀 재밋는 그림을 그린다. 서로의 조사 방법은 달랐지만 노란 나팔꽃에 얽혀 있는 이들의 삶을 꿰뚫고 들어가다 만난 진실과 거짓처럼 히가시노 게이고는 또 한번 인간 내면의 그 깊은 바닥을 긇으며 삶의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각자의 무게가 다 다른 사람의 무게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고 나가며 이겨 나갈 것을 말하고 있다.버겁다고 내려 놓고 포기 하거나 멈추기엔 아깝고 살아 볼 가치가 있는 삶이다.

 

소설에서 그의 전공이나 취미가 식물학과 어우러져 멋진 그림을 그려낸다.두개의 프롤로그가 왜 필요했는지 하나 하나 장치를 풀어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약물에 의지해 자신을 해하고 타인까지 해하게 된 사회악과 같은 사건과 우연처럼 만났던 인연이 필연처럼 나팔꽃 때문에 다시 만나 지난 날 풀지 못했던 오해의 시간을 원점으로 돌리 듯 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서로의 무게만큼 다시 간격을 둔다.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의 작가라 호불호가 나뉘는데 자신의 특기와 전공을 잘 살리면서도 끈기가 있는 작가여서 작품마다 읽게 된다.이 작품 또한 홀로 사는 노인인 아키야마 슈지의 죽음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강도 살인사건으로 볼 수 있는데 노란 나팔꽃이라는 식물이 얽혀 들면서 역사적이면서 소타의 전공이 더해져 원전까지 더해지니 이야기는 더 풍성해지고 노란 꽃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하여 경찰과 요스케 그리고 소타와 리노와 비밀의 여인 다카미까지 모두가 함께 뛰고 있어 잠시도 쉴 틈 없이 읽게 된다.자살사건과 살인사건,노란 꽃의 역사와 비밀 그리고 삶의 무게와 진실이 나팔꽃 덩굴처럼 얽혀 몽환화처럼 피어난다.지금 삶의 무게가 무거워도 기꺼이 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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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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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어느 작은 틈은 검푸른 어둠에 싸여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러므로 비밀이다.' 라는 띠지의 문구가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프롤로그의 ' "소소한 풍경"의 화자는 ㄱ이다' 라는 첫 문장에 의문부호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된다.'ㄴ과 ㄷ의 이야기를 화자인 ㄱ에게서 듣는다.' 등장인물이 남자1호,그리고 집주인 ㄱ과 더플백을 메고 온 남자 ㄴ 그리고 연변에서 온 아가씨인가 했는데 탈북녀인 ㄷ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가가 화자가 되기도 하고 데스마스크의 주인인 ㄴ이 그리고 ㄱ이 이끌어 가기도 하는 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마다 선호하는 플롯이나 트릭이 있고 이번 소설은 어떻게 풀어냈을까 궁금한 것이 독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정말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선인장은 잎이 가시거든요.전 가시가 좋아요.그래서 선인장을 기르지요."

 

저자의 소설은 <은교> 이후로는 오래간만이다.<은교>라는 소설도 놀라웠는데 이 소설 또한 놀랍다고 해야하나.저자의 소설로는 <촐라체>나 <나마스테>가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다른 소설들이 조금 덜 들어 오기도 했는데 <소소한 풍경>의 먹먹함에 또 한참 그 기억속에 머물 듯 하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아니 결핍을 가진 자들의 사랑은 어떨까?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된다고 했던가. 소설속에 ㄱ,ㄴ,ㄷ은 모두 결핍을 가진 이들이다. 등장인물 ㄱ은 어린시절 오빠의 죽음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대학 첫 수업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과 동거로 이어졌지만 그야말로 동거로 끝난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부모님이 포도밭을 일구시던 소소로 돌아간다. 부모님 또한 오빠처럼 그렇게 일찍 그녀의 곁을 떠나고 그녀 곁엔 아무도 없다.그런 그의 집에 삽으로 우물을 파겠다는 ㄴ이 오고 그 뒤를 이어 ㄷ이 무거운 가방을 이끌고 들어오게 된다.모두 아픔을 간직하고 마음 한구석 가족에게 혹은 사람에게 사랑의 결핍을 가진 이들이다.그들이 소소에서 한덩이리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가 되어 그들만의 비밀을 간직하며 그야말로 소소하게 살아가는 풍경을 자아낸다.

 

그런데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가 등장하게 되고 그들이 이루어냈던 덩어리가 결코 소소하지 않음이 드러나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그들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저 평범함에 그쳤던 이들의 삶이 하나 하나 부표처럼 물 위로 떠 올라 데스마스크 속에 숨겨진 자신의 이름이,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어떻게 보면 그들의 동거는 비정상적이며 한 캔버스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재료들 같은데 왜 그들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서로의 결핍을 채웠던 것일까? 오빠의 죽음에 이은 부모님의 죽음으로 세상에 홀로 떨어지게 된 ㄱ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한 남자1호,ㄱ은 남자1호에게 어제 신다 버리는 운동화보다 못한 삶일지 모르지만 ㄴ에게는 더없이 공감을 나누고 마음을 채워줄 수 있으며 눈빛만 봐도 아니 쳐다보지 않아도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느낄 정도의 서로 거울과 같은 존재가 된다.그들 사이에 끼어 든 ㄷ이라는 존재는 그들을 밀어내기 보다는 사이에 끼어 함께 뭉쳐 덩어리로 거듭난다.정말 이상한 조합이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나르시시즘에 빠지듯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듯 하나의 덩어리 속에 위험하게 빨려 들어간다.

 

'무슨 다급한 일이 있었는지 교문 쪽을 향해 뛰다시피 걷는 남자의 뒷모습은 햇빛 속이라서,그냥 흰빛이다. 오빠의 유골처럼.'

 

ㄱ에게는 ㄴ혹은 ㄷ이 사랑의 마중물과 같은 존재라면 ㄴ에게는 ㄱ이 혹은 ㄷ이 마중물과 같은 존재이고 ㄷ에게는 ㄱ과 ㄴ이 또한 마중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 서로의 우물 속의 깊이 깊이 빠져 들게 된다. 그들의 덩어리가 위험하다고 어느 순간 터져버릴 것만 같은 풍선과 같은 느낌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점점 알 수 없는 마법의 나라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여행하게 토끼를 찾아 여행하는 것처럼 그들의 비밀의 빗장을 자꾸 풀어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속에서 허우적 거리게 된다.그렇다면 '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의 주인은 살해 된 것일까? 아님 자살일까? 아니 살아 있었을까? 왜 그의 죽음을 확인도 하지 않고 우물을 메웠어야 했을까? 소설의 시작은 장르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연신 '데스마스크'에 집중하게 되어 범인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ㄴ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이 있을까.

 

'손가락 하나가 버튼을 눌러 세탁기는 다시 돌아가고,손가락 하나가 버튼을 눌러 나 역시 우물 속 숨겨진 물길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세탁기 안으로 흘러내려갔답니다. 오랫동안 꿈꾸던 그 세례의 길로요.'

 

문득 결핍의 끝은 어디일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처참하도록 인내해야 했던 그들의 결핍이 한순간 소소에서 사랑이라는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존재로 거듭나면서 순간 어둠속에 있을 것만 같은 '비밀의 길'을 찾아 떠나야 했던 슬픈 나르시스 같은 삶 그리고 죽음,그가 남긴 마지막 자신의 존재는 모두의 삶을 다시금 재조명 해보게 만든다.풍경 속에는 아름다운 삶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도 사랑도 죽음도 존재한다는 것을,그것이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인것을 보여주는 듯 하여 허망하면서 먹먹하다.유독 내 자신에게만 닥친 것과 같은 깊은 슬픔,그러나 어느 삶에나 다 존재한다는 것을.ㄱ의 인생에도 ㄴ의 삶에도 그리고 ㄷ의 아름답고 청아한 웃음 속에도 존재한다.끄집어내지 못하고 우물 속에 갇혀 있는 슬픔일 뿐이지 누구에게나 한줄기 결핍과 슬픔의 우물은 존재한다.그것을 퍼 내거나 메우는 것은 자신의 문제이다.과거의 아픔으로 얼룩진 상흔을 꾹꾹 밟고 일어나 훌훌 털고 전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다. 지금 우물 속 자신의 모습을 향해 뛰어 들지 못하는 것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을 만드는 것과 같은 아직 퍼내지 않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ㄴ의 죽음을 논하기 보다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ㄱ의 행보에 우물안을 벗어나 파란 하늘아래 놓인 것과 같은 개운함으로 소설을 놓을 수 있음이 다행이다.

 

소설 <은교>도 파켝이었다면 파격인데 <소소한 풍경> 또한 파격이라 할 수 있을 듯 한 삶과 죽음이다.읽고 잊어버리면 그만인데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처럼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좀더 깊게 빠져들면 선인장의 가시에 찔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소설 <나마스테>에서는 '세상이 화안해져요'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데 이 소설에서는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많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에요!" '고독은 정적의 알집이다.' '방문하기엔 좋지만 체재하기엔 불편한 장소가 정적이다.''그해 겨울, 플롯에서 비어져 나온 또 다른 풍경이다.' '육체란 본래 멍청해서 그 어떤 영광도 알아보지 못한다.' 우물에는 비밀이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그만의 한문장이 따로 떨어져 나와 좀더 깊이 있는 느낌을 준다.그리고 감성의 골을 후벼판다.그의 소설에 좀더 독하게 달려들라는 말처럼 그의 언어는 긴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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