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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철원 ㅣ 창비청소년문학 44
이현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평점 :
철원 그곳의 해방 전 후의 표정을 청소년들의 눈을 통하여 참 잘 그려낸 역동적인 역사소설인 듯 하다. 땅에만 '분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38선'이 존재하듯 공산주의를 따르는 사람들과 조선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대립이 결국에는 서로의 불행으로 엮인 아픔의 땅 철원,그곳에서 아이들은 어떤 '해방'을 맞았을까.그들이 꿈꾸던 '해방'은 그들이 꿈꾸던 '희망'은 무엇이었길래 날개가 꺾인 채로 제대로 한번 날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 앉거나 삶과는 다른 길을 가야만 했을까?
친일파 아버지,그리고 본부인이 아닌 첩을 데리고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자신만 살겠다고 경성으로 간 아버지와는 다른 이념을 가졌던 막내 아들 기수,그는 아버지가 거느렸던 모든 땅과 곡식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다. 공평한 분배로 자신은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갑자기 닥친 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별채 디 사당에서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이땅에서 어쩔 수 없이 '혼자' 힘으로 이겨내야만 했던 기수, 그는 자신의 집에서 부모를 잃고 종살이를 하며 산 경애에게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한다. 이제 공평해 진 것이다. 어린시절 함께 어울려 놓았듯이 이제 다시 친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상하 관계가 아닌 평등의 관계로.도둑처럼 찾아 온 해방은 해방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그들을 찾아 왔다.
주종의 관계를 벗어나 평등의 관계로 그리고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공산주의에 물들어 살아가야만 하는,자의에 의한 선택이 아니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되어 살아야 하는 땅 철원에서 주종과 양반과 평민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뼈 속까지 깊숙히 박힌 양반의 피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38선만 넘으면 양반의 딸인 공주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할아버지 때문에 그리고 그런 삶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종교에 더 빠져드는 어머니 때문에 한집안의 가장이 되듯 하여 모두를 책임져야 했던 은혜,그녀는 38선을 넘어 그녀가 원하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누구는 경성의 삶을 버리고 철원 땅에 와서 정착과 진실된 삶을 살려고 하는데 누군 이 땅을 버리고 경성으로 목숨을 걸고 가려고 한다. 배롱나무집에서 종살이를 하던,주인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겨지게 된 경애의 꿈은 소박했다.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에서 언니들과 모두 함께 사는 것,꿈이 너무 거창했던가 큰언니는 남조선에 뜻을 두고 둘째 언니는 공산당에 적을 두었다. 그녀는 단지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는 것뿐이었는데 서로가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면 서로에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어야만 했다.왜, 누구때문에.
해방은 모두의 삶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아니 뒤바꾸어 놓았다. 누구를 위한 해방이고 누구를 위한 38선인지 38선 하나로 모두의 삶과 희망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공산주의가 물들어 있는 이땅에 어느 누구의 소행인지 반대세력들이 등장하고 그 힘에 함께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쫒아 가며 살기 위하여 서로의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며 내일을 맞아야 하는 사람들,그들에게 내일이란 희망이 오긴 오는 것인가.철원의 해방 전 후의 모습을 청소년들의 눈을 통하여 너무도 실감나게 잘 그려냈다. 기수도 경애도 제영도 은혜도 분명 그 시대에 존재했을 법한 인물들인데 왜 하나같이 모두의 삶이 가슴 아프기만 한지.그들의 행복과 평화와 꿈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괜히 미안해지고 씁쓸하기만 한 역사,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아픔일 듯 하다.
해방과 분단으로 인해 가정이 깨지고 가족이 흩어지고 친구가 적이 되고 이웃이 적이 되어 살아야만 했던 삶이 고난해 보인다. 그들이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인 청소년들이라 더 아프고 지켜주고 싶은데 왜 역사는 그들을 빗겨가지 못하고 급류에 휩쓸려가게 만든 것인지.기수가 은혜를 그냥 놓아 주었다면 기수도 살고 다른 이들도 살아 남았을까. 해방 전까지는 이웃이고 친구였던 그들의 등에 가슴에 총을 겨누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거침없이 죽음에 휩쓸려 버린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비단 그들 뿐이겠는가? 역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이름들을 저자는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그때의 철원을 되살려 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그곳에 누가 살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이 이어지고 있었는지.타인의 아픔은 쉽게 잊기 마련이다. 그 상흔이 아무리 깊고 크다고 해도 내것이 아니면 지워 버린다. 하지만 이젠 기수와 경애의 삶을 통해 은혜와 제영의 삶을 통해 그 시간 그 땅의 역사와 시간을 기억하게 되었다.앞으로 더 많은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역사와 숙제가 우리에게 남겨졌다. 그가 복원해 낸 그들의 꿈이 다시 날갯짓 하는 그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