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비 내리는 그 속으로 여름이 잉태되고 있는 뒷산
지칭개
두시가 다 되어서 뒷산으로 나가는데 덥다. 여름이다. 여름이라고 해야 맞을 듯 한데
감기로 오한이 나기도 하고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침마다 베란다 창을 열고 실외기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에 물을 주면서 뒷산을 보년
당장 달려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처럼 무언가 설레임이 불뚝 불뚝 솟아 오르지만
그렇다고 날마다 가는 것은 아니다.게으름이 먼저 나의 발목을 잡는 날이 더 많다.
올해는 책을 덜 읽고 뒷산에 산행을 다닌다고 해 놓고,저질체력을 보강하다고 해 놓고
늘 뒷전이다. 그래도 철마다 피는 꽃들이 보고 싶어,얼마 있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하여
아니 계절의 변화와 자연에 대한 내 설레임을 잠재우기 위하여 뒷산으로 향한다.천천히..
아카시아 꽃이 피었네... 했는데 아카시아가 지고 있다.그것도 우수수 우수수수수...
꽃비가 하얗게 떨어져 정말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서소..' 의 싯귀절처럼 사뿐히 밟고
가야만 하는 길이다. 바람이 한차례 불어 오기라도 하면 눈처럼 초록 숲에 하얗게 떨어져 내리는
아카시아 하얀꽃...그렇게 꼭은 떨어져 또 다시 낙화로 땅을 수 놓는다
내가 걷는 걸음 걸음마다....
아카시아 지는 그 밑에는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찔레꽃 잎 위에는 떨어져 누운 아카시아 꽃들이 있다. 정말 대단하다...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너무 서둘러 오르지 않고 찔레꽃 향기도 맡아가며 숲의 냄새도 맡아가며 나무 냄새도 맡아가며
천천히 오르는데 땀이 줄줄 흘러 내린다.숲의 냄새가 바뀌었다.
지난번에는 아카시아향이 진했는데 이젠 떡갈나무와 참나무등 나무냄새와 나뭇잎냄새가 진하다.
참 좋다. 난 이런 냄새를 참 좋아한다. 특특하면서도 뭔가 흙냄새가 섞어나는 냄새...
그 속에서 꽃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아카시아 하얀 꽃들을 본다.
화무십일홍이라 하더니 정말 아카시아의 화려한 날은 너무도 짧다.
날이 덥고 가물어서일까 더 빨리 꽃이 지는 듯 하다. 황매화도 보면 꽃이 피고는
타죽듯이 그냥 시들어 버렸다. 애기똥풀은 여기저기 씨앗을 매달고 있고 산딸기도 꽃이 진자리에
열매가 잉태되고 있다. 숲의 생명이 무언가 바뀌어 가고 있다.
땅싸리와 노루발풀
노루발풀
은난초와 은방울꽃
지난번 산행에서 '은방울꽃'을 보고 갔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오늘은 은난초와 은방울꽃을 찾아 보았더니 지난번 활짝 피고 있던 은난초도 이젠 지고 있고
은방울꽃도 서서히 지고 있다. 아쉽다... 아까비...
이 산에 은방울꽃 군락지가 있었는데 개발되면서 모두 없어졌다. 이젠 여기 저기
조금씩 나고 있는 것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군란지에서는 누군가 정원에 심기 위하여
무더기로 캐가기도 했었는데..사람들은 은방울꽃 잎이 둥굴레인줄 알고 많이 뽑아 놓는다.
약간 비슷하지만 다르다. 뭐 산에 가면 비슷비슷한 잎들이 많지만 말이다.
노루발풀도 하나 둘 이젠 탱글탱글하게 꽃몽오리가 보인다.
하루 이틀이면 필 듯 한데 저녀석 보러 또 와야 할텐데 날마다 올 수 있으려는지..
아니 이젠 아침 일찍 와야 하는데 늘 잠을 새벽에 자기 때문에 아침엔 힘들다.
아니 일어나는데 산에 오기가 싫다.그러다 망설이다 급하게 오는게 태반이다.
이 게으름..남들은 아침에 일찍 일찍 오는데..더울 때 올게 뭐람...
조금 있으면 밤꽃 피겠다
복숭아
오디
산딸기
무엇이든 처음 시작이 정말 힘들다. 하지만 시작만 하면 탄력을 받아 쉽다.
산에 오는 것이 힘들었는데 집을 벗어나 나오고 오르다보니 금방 정상이다.
이건 뭐 산도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높이다.하지만 그래도 힘들다. 땀은 줄줄 볼 것은 다봐야하고..
남들은 뛰듯 올라가도 난 여기에 뭐가 있을까 하고 들어가 찾아보고 기웃거리고 하다보면
다른 사람보다 배는 더 힘들게 산을 오른다.
정상에 아카시아 나무가 빙 둘러 있는데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아니 그곳에 서 있으니 눈이 내리듯 아카시아 꽃이 떨어져 내린다. 향은 이제 많이 달아났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일까 시계가 참 좋다.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맑은 공기를 한번 들이 마시고
주위를 들러보니 밤나무에는 밤꽃이 피려고 하고 복숭아 나무엔 열매가 올망종말 커가고 있다.
뽕나무에도 오디가 점점 단단해져 가고 있고 꽃이 진 산딸기에도 탱탱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고
있다. 꽃이 진다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인데 이렇게 또 행복한 결실이 기다리고 있다.
인생도 오르막은 힘들다. 하지만 내리막은 쉽다.산행 또한 오르막은 땀을 줄줄 흘렸는데
내리막길은 금방이다. 숲이 이젠 우거져서 무서움이 더하다. 이곳에서 노루를 몇 번 보았기에
경계를 하며 내려가는데 그러지 않아도 지난번 노루를 만났던 비슷한 곳에서
'바사사사삭...부시시시식..' 하는 노루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가던 길을 멈추어 가만히 서서 소리를 들어 보았다.내가 멈추며 멈추고 내가 걸으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엔 스틱을 가지고 와야할 듯 하다.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이젠 우겨져서 보이지 않는다. 꿩 또한 근처에 있는지
'꿩꿩...꿩꿩 꿩꿩..' 하며 계속 소리낸다. 초록의 숲에 녀석이 빗금을 긋는 듯 하다.
고사리
누구냐 너....? 이녀석 지난번 읽은 <기상천외한 곤충 학교>에 나온 녀석이다.ㅋㅋ
오솔길을 지나 소나무 숲에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했는데 들어갔다.
숲은 우거지고 날은 더우니 헉헉 숨이 막힌다. 물이 급하지만 참는다.
소나무 숲길에는 때죽나무가 있다. 그런데 지나며 보니 때죽나무에 꽃이 하나도 없다.
왜 일까... 지난해에도 보고 몇 번 보았는데 올해는 꽃망울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개발에 의한 변화일까..
그렇게 들어간 소나무숲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 숲의 입구로 오는데
오솔길에서 아카시아 꽃비가 내린다. 서서 바라본다. 혼자서...
바람이 지나고 있나보다. 나뭇잎도 떨어지고 나뭇가지도 떨어지고 아카시아 꽃도 눈처럼 떨어져
내린다. 아카시아 꽃잔해가 융단처럼 깔린 길을 걸어 숲 입구에 도착하여
메밀차를 맘껏 마셨다. 가슴속이 다 시원하다. 초록이 물들은 것만 같다.
그렇게 메밀차로 시원함을 충전하고 나오는데 딱정벌레과 한마리가 바쁘게 가고 있다.
주저 앉아서 또 지켜본다.내가 멈추니 녀석도 나뭇잎 뒤에 숨어서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이녀석 교란작전을 쓰나보다. 나뭇잎을 살짝 치우니 얼른 움직이다 바로 멈춘다...
그렇게 녀석과 잠깐의 데이트를 마치고 보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그 길을 따라 숲을 벗어났다.
때죽나무 꽃
매실
뒷산을 벗어나 아파트에 들어서서 그냥 집으로 향하지 않고
아파트 화단 산책길을 따라 한바퀴 돌았다.아니 산에서 보지 못한 때죽나무꽃을 보기
위하여 때죽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때죽나무꽃이 하얗게 피었다. 활짝..
그리고 매화나무에는 매실이 영글어 가고 있다.
그렇게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몸도 마음도 가볍다. 내일도 가야 하는데 갈까...
2012.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