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서 가을을 만나다
가을바람이 산들산들,아니 우리집은 쌩쌩 불어 들어와 보조주방 문을 닫고 있어야만 그나마 견딜만 하다. 나이탓인지 추운듯 하여 며칠 저녁에 잠깐 보일러도 돌리고 활짝 열어 놓던 문들도 닫고 겨우 조금 열어 놓고 그 사이로 불어 들오는 바람으로 가을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아침 하늘도 좋지만 바람이 정말 선선하니 좋은 듯 하여 딸들 베란다 창에 매달려 뒷산을 몇 번 바라보다 모든 일 뒤로 미루고 물 한 병 챙겨들고 디카에 MP챙겨 들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여시가 난리났다. 저도 데리고 가라고 하는데 녀석,집안에서도 덜덜 떨고 있는데 밖에 나가면 장난아닐 듯 하고 산에는 아직 모기가 극성이라 '안돼..엄마 혼자 다녀올께 집에서 기다려..' 했지만 지지배 '끙끙~~~~' 현관까지 따라 나와 포기할 줄 모르고 따라붙더니 중문을 닫아 버리자 포기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저 하염없이 바라만 보다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나 혼자 고고씽,뒷산으로.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근처 사무실이나 그외 분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산을 오르는 분들이 더러 있다. 울아파트 사람들도 있고 다른 분들도 있고 울 아래층 아저씨도 있고...산을 오르는 길 얖 옆으로 분홍 코스모스가 가득이다. 오직 한가지 색으로 산들산들 바람에 흔들흔들 나부끼는 코스모스, 아 가을인가 멀리 언덕에 누가 심어 놓았는지 해바라기 또한 노랗게 꽃을 활짝 피었다.이곳에서 가을을 뭉턱 만나는 기분, 혼자 신나서 코스모스에 앉아 있는 나비를 따라 디카를 요리조리 움직여 보기도 하고 남들 가지 않는 길로 해바라기도 만나러 가고... 그런데 뭔가 자꾸 다리에 '척..' 와서 달라 붙는다. 메뚜기 녀석들 정말 많다. 여기저기 '폴짝 폴짝..' 메뚜기 때문에 깜짝깜짝..그래도 용감하게 여기저기 오르고 내리고 그렇게 남들 가지 않는 길로 가다보니 나보다 늦게 올라 오셨던 분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뒷세상은 내 것이라 여기며 천천히 오르며 가을을 만나는데 가을냄새 너무 좋다.
요즘 부증이 조금 가라앉아서인지 몸이 무겁지 않으니 이상하게 숨도 차지 않고 가뿐하게 산을 오른다. 이런 내 모습이 신기해 하면서 쓰러지 나무들 구경하고 참나무의 냄새도 맡아보고 버섯도 찾아 보고 도토리도 찾아보고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오르다보니 중간에 의자에 있는 곳에 금방 도착,그리고 바로 정상을 향하여 고고, 가을바람과 함께 오르다보니 금방 올랐다. 풀이 아직은 무성하지만 그래도 뻣뻣한 기운이 많이 죽었다.이제 금방 풀들이 '푸그르..' 사그라들고 산행하기에 좋을 듯 하다. 나무를 보러 버섯을 보러 숲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시커먼 산모기가 손으로 달라 들어 '윙..' 하고는 독침을 발사,아니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삐뚫어 진다는데 이녀석들은 도대체 처서가 지난것을 모르는지 아푸다. 물린 곳이 간질간질,침을 바르고 또 숲을 헤매이다 밤송이를 만났다. 하지만 알맹이는 없고 빈 밤송이 그리고 푸른 밤송이, 가을임을 알려준다.
메뚜기도 많고 나비도 많고 산새들도 바쁘고 그야말로 자연박물관에 온 것같은 이 속에서 바람과 소리 그리고 냄새에 취해 혼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내리막길, 너무 빨리 산을 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며 내리막길에 아카시나무에 있는 아카시재목버섯을 보려고 가다가 영지버섯도 만났다. 지난번에 내가 처음 영지버섯을 발견하고 딴 곳인데 또 있다. 아카시나무에는 재목버섯들이 여기저기 큼직큼직한것들이 탐스럽게 달려 있다. 누군가 따서 버린것도 있고 그래도 녀석들 마지막 열정을 쏟아 붓듯 몸을 키우고 있다. 내리막길을 지나 오솔길로 접어 들어 다시 나뉜 산으로 들어가니 소나무향이 좋다. 혼자서 호젓하게 숲길을 걸으며 흥얼흥얼 그러다 커다란 버섯도 만나고 시원한 바람도 만나고... 아 정말 시원하다. 집에서는 추울줄 알고 도톰한 조끼도 입고 왔는데 덥다. 이런...
사람들이 지나간 곳은 여지없이 길임 만들어져 있다. 길은 여기저기 그야말로 중구난방으로 어디를 가도 길이다. 산의 많은 부분이 헐리고 산을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아파트도 들어서고 한참 공사중인 곳도 있고 물류센터도 들어선다고 하고 나더니 길은 여러곳에서 생겨나고 나무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 주고 있고 올 여름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 나무도 있고 생을 마감한 나무들도 많고... 가끔 와도 정말 좋은 곳인데 왜 바로 아파트 곁에 있으면서 너무도 멀게만 느끼며 사는지. 산을 한번 오른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임을 늘 느끼지만 오면 정말 좋다. 처음엔 이 산도 정말 힘들었는데 이젠 정말 뒷산이다. 내가 맘대로 누비고 다니는...이 산에서 계절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오늘도 가을을 가득 담아본다. 일회성이 아니라 정말 자주,아니 날마다 올라야 하는 산인데 그렇게 될까...산에 오니 정말 좋다. 내려가는 길엔 엠피의 윤밴 노래를 크게 틀어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혼자서 신나게 어깨를 흔들어가며 내려오는데 정말 좋다. 가을바람도 선선하니 좋고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도 이쁘고 그 옆에 뚱딴지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곧 바고 노란꽃을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곤 오는 길에 아파트 화단에서 누군가 내다 버린 '알로카시에' 를 주워 들고 왔다. 울집에 새로운 초록이 식구가 생기게 된 것이다.
2011.9.20
뚱딴지와 코스모스...이 길에 코스모스가 없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코스모스 길이 되었는지.
아카시나무는 뿌리가 깊지 않아 산사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단다.
아파트 바로 옆 중학교에서 이런 꼬리표 만들어 나무마다 달아 놓았다..
멀리까지 내다보이는 가을날...
아직 영글지 않은 듯 보이는 밤송이..
누가 가져갔을까...알맹이
날 경계하는 녀석...넌 누구냐~~?
아카시재목버섯과 영지버섯
20여cm가 되는 버섯과 손가락 하나 길이의 버섯..
엄청 큰 녀석이 스삭...아고 깜짝이야~~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