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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읽은 두번째 아사다 지로 작가의 소설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왜 '아사다 지로, 아사다 지로' 하는 지 잘 몰랐다. 그런데, 지난번 '슈샨보이'를 읽고, 아 이 사람 왜 통하는지 알것 같다고 느꼈고, 이번에도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슈샨보이와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이 책 '가스미초 이야기'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할아버지, 자신이 살았던 거리, 라이카 카메라, 사진관... 아련한 그리움이 떠오르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누군가에게 빼앗겼는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버렸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고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댐 공사로 인해 물속에 가라앉은 고향과 같으리라.
빌딩의 계곡 사이를 한 알갱이, 두 알갱이 반짝거리며 흘러가는 안개에 시선을 고정하자, 마치 엄청나게 많은 스틸 사진을 흩뿌린 것처럼 흑백의 나날이 되살아났다. P.264
말 그대로 스틸 사진을 한장씩 넘겨가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다. 사실 젊은이들의 서투른 사랑, 외국인 임시교사와 학생의 사랑, 할머니의 비밀... 분명 읽으면서 익숙한듯 하지만, 혼자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 차이일지도 모를 법한 그러한 생소한 소재들도 있지만, 그러한 이야기들 역시 여전히 마음에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불러들인다.
움직이는 것은 천분의 1초씩 멈춰있는 것의 연속이예요. 그래서 인간은 한순간도 낭비해서는 안돼요. 천분의 1초의 멈춰있는 자기 자신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거니까요. P.260
청춘- 이란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나의 청춘을 돌아보면 얼마나 밋밋하고 멍청했는지 모르겠다. 취업과 경쟁에 치인 요즘 젊은 사람들은 더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만의, 그들만의 특별한 청춘이 있다고 말하면 뭐라 할말은 없다. 하지만 치열하게 열중했던 나의 대학생활이, 공부에만 시달렸던 중고등학교 시절이 이 책의 이노와 료지처럼 낭만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스미초 이야기는 왠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그 청춘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불러들인다.
가부키를 보러다니던 할머니, 끝까지 스승의 위엄을 놓지 않던 할아버지, 티격태격하지만 그런 할아버지를 끝까지 존경하고 스승으로 모시던 아버지... 술술 읽히던 책 속의 한명, 한명이 평범해보이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는데, 그들의 행동 한가지씩은 마음에 꼭 와닿는다. 그리고 책을 덮을쯤, 그들의 행동에 익숙해져버린 것인지, 마냥 태평해보이던 이노와 료지 그리고 그 친구들도, 그들과 함께 하던 여자들도 왠지 좋아보이기 시작한다.
나와 다른 세상에서 다른 시기를 이야기하는 책인데, 마음에 와서 콱 박힌다. 사람을 이야기해서 그런가보다. 모두 다르지만 또 모두 비슷한 우리, 아사다 지로 작가님의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그의 대표작들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