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사>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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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사 (양장)
존 키건 지음, 조행복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처음 손에 쥐고 약간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잠시 책장을 넘겼는데, 빼곡한 글들과 거기에 작은 (숫자 모양의) 별처럼 박힌 각주들은 마치 검은 글자들로 이루어진 전쟁터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1차세계대전이라는 그 거대한 사건, 이걸 한 사람이 자료를 수집, 조사하고 정리해서 한 권으로 묶었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읽어가면서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처음에 받은 그 놀라운 인상은 훅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에 전쟁사에 관심이 많지 않다면, 시간의 순서로 전쟁을 되짚는 이 두꺼운 책을 용케 읽어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 전투에 대한 전투방식에 대한 설명은 뭔가 입체적인 영상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아울러 이와 관련된 영화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색다른 재미도 건질 수 있다.
우선 책으로도 유명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서부전선 이상없다>, 그리고 영국의 연락 장교 로렌스가 나오는 대작 <아라비아 로렌스>가 있다. 젊은 시절의 멜 깁슨을 볼 수 있는 <갈리폴리>도 이 책에서 역시 다루고 있다. 그런 부분이 나오면, 전에 본 영화들이 어렴픗이 생각나고,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보고싶게 만든다. 텍스트로 배경을 좀 더 잘 인지한 상태에서 본다면, 전에 미처 보지 못한 것들도 보일테니까.
흔히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가 어떤 뜨거운 씨앗마냥 이 책에서도 후끈한 열기로 심어져있다. 이렇게 1차세계대전은 발칸의 위험한 자극 지점을 둘러 싼, 자국의 이익을 위한 관성적인 참여로도 보여지는데, 그렇다고 이것이 그렇게 큰 전쟁을 치루고서도 해결되진 않앗다. 더군다나 1차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봤다고 여기는 독일은, 그 원한과 복수로 2차세계대전으로 회귀하는 집요함을 보여준다. 그 히틀러의 등장으로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존 키건은 이렇게 크고 끔찍한 전쟁의 발생은 특정한 사건의 매개가 아니더라도, (언제라도 터질 듯) 잠재된 상태로 그 당시 유럽에 긴장된 기운으로 감돌고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과 비교하는 장면에서(저자는 거시적으로 2차세계대전은 1차세계대전의 연속으로 본다), 오히려 1차세계대전이 2차세계대전보다 더 문영화된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여러 예를 드는데, 특힌 민간인에 대한 피해(사살, 폭격) 부분에서 더욱 그러하다.
1차세계대전에는 전쟁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그러한 전쟁으로 인해 벌어진 다른 미세한 이야기들도 함께 나온다. 눈에 띄는 곳이 있었는데, 전쟁 부상자 중에서 너무 끔찍하게 얼굴을 다친 환자들은 도시와 떨어진 시골에 격리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배제'라는 국가적 처사는 지금의 시각에선 먼 시대성이 느껴진다.
나중으로 갈수록 미국의 역할은 커진다. 그런데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처음에 미국은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독일 등에 의해 여러 (모욕적인) 일들을 겪고 나서, 결국 이 전쟁에 손을 담그게 된 과정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흑인 문제도 나오는데, 그 당시의 사회상이 군대라는 특정 상황에서도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그 미묘함을 읽게 만든다. 지금이야 흑인 병사들은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지만, 그 시기엔 흑인이 전쟁을 잘 수행하리란 기대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한 미심쩍음이 지금은 오히려 흑인들을 지나치게 군인으로 세우는 모습으로 변했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전쟁이 남긴 어두운 모습은 일차적으로, 바로 젊은이들의 죽음이다. 독일에선 그뤼네발트와 홀바인의 그리스도 이미지를 이렇게 사망한 병사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물에 표현햇다고 한다. 전쟁의 당사자든 피해자든, 권력의 충동질에 희생당하는 건 국민들이다. 사상자 수만큼 그 텅 빈 자리는 사회도 어쩔 수 없이 엄숙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 회색빛 황량함이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지건, 그 상처가 단지 그 시기, 그 장소의 국부적인 문제만은 아니라서 그런게 아닐까?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1차세계대전에 대해 큼직한 전쟁만이 아니라 그 배경, 특히 유럽 사회의 움직임 등도 설명한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단순한 기록의 나열이 아니라, 전쟁 상황에 대한 묘사는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전쟁을 좋아하진 않지만,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그러나 그때는 1차 세계대전이 불가사의였다. 대전의 원인도 불가사의였고 진행과정도 그러했다. 번창하던 대륙이 전 세계의 부와 권력의 원천이자 주체로서 성공의 절정에 있을 때 그리고 지적 성취와 문화적 업적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동안 얻은 모든 것과 세계에 제공했던 모든 것을 서로를 죽이는 사악한 충돌에 내맡긴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