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의 허구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던 고미숙선생님이었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남녀간의 불꽃 튀는 찰나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이상화되었는지 설명하셨는데, 사랑의 절대적 힘을 맹신하고 있던 당시에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사랑이 만들어진 것이었다니. 사랑이라는 허상에 대해 정희진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결핍이나 욕망에 대한 자기 판단, 회계(대차대조표), 자기 확신의 활동이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사실을 잊어서는 된다. 사랑받음은 내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기 혼란이다. 사랑은 내가 타인의 상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본인이 매력적이고 잘나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38)  




사랑 없는 삶이 흔하더라도 혹은 바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 없이 없다고 말한다.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하기를, 사랑 받기를 원한다. 핑크빛 기류, 강렬한 눈맞춤, 격정적인 몸짓, 뜨거운 손길, 거부할 없는……. 하지만, 모든 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사랑한다는 말하는 그의 자기 혼란에 근거하고 있다고 정희진은 말한다. 사랑한다 말하는 그도,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도, 오해하고 있는 셈이다. 사랑을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는데  『낭만적 사랑과 사회』(재클린 살스비),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울리히 , 엘리자베트 -게른스하임), 『현대 사회의 사랑 에로티시즘』(앤서니 기든스) 도움이 거라 하시니, 찾아보아도 좋겠다. (민음사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감상과 생각을 모아둔 글이라 혹시나 내가 영화가 있나 목차를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싶다. 아는 영화가 없다. 나는 영화를 모르고 산다. 영화가 하나도 없는데, 정희진의 영화평을 읽는다. 꼼꼼히 읽는다. 제일 좋아하는 문장은 19쪽에 있다. 




영화는 나의 세계를 확장할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인생 문제가 영화에서대부분해결되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타인이 필요치 않게 되었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외로움을 원한다. (19) 




정희진은 영화를 경험 너머 새로운 앎의 세계라고 말한다. 고급 도서관을 통째로 가진 기분이라 표현한다. 내게 영화는 그렇지 않은데, 화려한 영상과 웅장한 음향, 구성과 편집으로 숨겨놓은 단서를 찾아가는 작업이 내게는 무겁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면, 영화가 이렇듯 인생 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해 있다면,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타인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나를 이끌어준다면, 나는 영화를 보고 싶다. 왜냐하면 내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외로움을 원한다. 나는 외로움을 원한다. 나는, 외로움을 원한다. 



아침에는 『랩걸』을 마쳤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과학자이자 아들을 위해 호랑이로 변신하는 약을 제조하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오후에는 『제2 성』을 읽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어 깜짝 놀란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읽었다. 마칠 것을 알기에, 마무리해야 새로 시작할 것을 알기에, 차분히 , 장을 넘겼다. 


저녁에는 아침에 주문해 오후에 배송된 『혼자서 영화』를 읽었다. 내게 정희진은 언제나 ///이기에 단어를 하나씩만 따라가며 천천히 읽었다. 



충분히 외로운 날이었다. 

후회 없이, 충분히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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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2-2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이거 사서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는 참인데 단발님은 역시!!벌써!! 읽으셨군요!!!

단발머리 2018-02-23 09:4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신간 나온것 알았어요. 땡투를 그대에게^^
책이 작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8-02-23 09:52   좋아요 0 | URL
아니!! 제 페이퍼를 보고 알았는데 저보다 빨리 읽으셨다구욧??!!!!!!!!!!

단발머리 2018-02-23 10:04   좋아요 0 | URL
제가 집 근처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똬악! 신청을 해놓고요.
아, 안 되겠다 싶어 아침에 주문했는데, 저녁 먹기 전에 도착하더라구요.
부지런한 다락방님과 바지런한 알라딘 당일 배송의 협동과 조응^^

유부만두 2018-02-2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외로우셨군요.
저도 외로움이 고픕니다.
혼자 어딜 가고 싶은데... 혼자 영화 보러 갈까봐요.

단발머리 2018-02-24 11:45   좋아요 0 | URL
저는 혼자서 뭐든 잘하는데, 혼자 영화는 아직이예요.
유부만두님은 혼자 영화도 가능하시군요.
이제 며칠 안 남았어요. 곧 성수기가 끝나고, 개학이 열립니다^^

꿈꾸는섬 2018-02-2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영화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에요.^^
사랑이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해도 저는 사랑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삶의 원동력이구요.ㅎㅎ

단발머리 2018-02-26 12:33   좋아요 0 | URL
제가 아직 안 해 본게 혼자 영화보기인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영화관에 사실 자주 안 가거든요.
그런데도 이 책은 재미있게 잘 읽었네요.

저도 사랑이 좋아요. 사랑이 없으면.... 이 삭막한 삶을.... 어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