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수박을 많이 먹는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 두 개만 고르라면, 포도랑 수박. 세 개 말해도 되나요? 그럼 자두. 포도, 수박, 자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여름이면 수박을 잘라 둥근 통에 담아 드렸다. 시어머니가 못하시는 건 아니지만, 시아버지께 뭐 해드릴게 없는데, 수박 자르는 건 나도 할 수 있으니까. 다 드신 통이 돌아오면 다시 수박을 담아 가고, 그 통에 수박을 담고 가서는 다시 빈 통이 돌아오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시어머니 드시라고 수박을 잘라 둥근 통에 담아 드렸다. 시어머니가 수박 자르는 게 힘들 정도로 연로하신 건 아니지만, 혼자서 수박 한 통 사서 먹으면 오래 걸리니깐. 그러다 보니 마음에 걸려 작년에는 한두 번 친정 부모님에게도 수박을 잘라 역시나 둥근 통에 담아 가져다드렸다.
지난주에 수박을 잘라 시댁과 친정에 반씩 담아 갔다. 자르면서 맛보니 별로여서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져갔다. 맛이 없다는 심심한 고백에, 시어머니는 그래도 맛있다고 하셨고, 아빠는 '수박을 잘 못 샀구먼.'이라고 간단히 말씀하셨다.
이번 주말에 수박 한 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 빈 통에 담아 시댁에 보냈다. 냉장고에 바로 넣지 않으시고 맛을 보시더니, 맛있다 하셨다고 남편이 전했다. 어제는 월요일이라 많이 피곤한데, 맛없는 수박으로 본때를 보여드렸으니, 이번에 맛있는 수박도 맛 보여야겠다 하고 수박을 한 통 더 사서는, 석박지보다는 작지만 대충 깍두기 모양으로 크고 반듯하게 잘라 둥근 통에 담아 친정에 갔다.
늙으신 부모님은 둘 다 주무시고 계셨는데, 내가 들어서니 두 분 다 잠에서 깨셨다. 아빠는 어느새 포크를 들고 수박 조각 두 개를 맛보셨다. "이번에는 잘 샀네." "아니, 왜. 수박을?" 이라는 엄마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빠가 그러셨다. "왜, 수박... 이렇게 딱 잘라오니 좋잖아. 딱 먹게.""아니! JH이 아빠! 애가 수박을? 수박 써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응? J야, 수박 이렇게 가져오지 말라고~~!!" 여기서 한 마디를 더하면 엄마가 폭발할 것을 잘 아시는 아빠는 더는 말이 없으시다.
그랬다. 우리 아빠. 한국에 수입되는 모든 과일을 서둘러 맛보시는 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과일을 제일 먼저 맛보시는 분. 제철 과일의 최고급 포식자. 아침과 저녁, 새벽과 오후에도 과일을 즐기시는 우리 아빠. 엄마와의 토크로 말하느라 바쁜 내 입에 부지런히 사과를 넣어주시는 분. 그런 아빠에게도 수박 썰기는 귀찮은 일이었으니, 아빠는 잘 됐다~ 싶으셨을 텐데, 엄마의 진심을 담은 블로킹에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셨던 거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아빠는 굳이 옷을 갈아입으시고, 주차장으로 따라 내려오셨다. 전 국민적 관심사 주식 토크를 잠시 나눈 뒤, 아빠와 즐거운 빠이빠이.
수박 가득한 통을 받아드시며 즐거이 통을 열어 바로 맛보시는 시어머니와 '맛이 있다', '맛이 없다'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시는 아빠. 그리고, 수박 맛이 전혀 중요치 않고, 오직 내 손목만 중요한 우리 엄마.
엄마 딸이라 다행이라고, 아빠를 똑닮은 내가 생각한다.
책을 샀다. 벌써 2주가 지났군.
정아은 작가님의 책은 『엄마의 독서』만 읽어봤는데, 작가님과의 이별이 내내 아쉽고 안타깝다. 팔딱팔딱한 작가의 문장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 샀다. 『The Daily Stoic』은 영어책 구입 시즌인데(원서 구입 강박), 구입할 만한 책이 안 보여서 샀다. 브론테 자매 집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피날레』는 수전 구바라 샀다. 수전 구바니까. 책 살 이유로 완벽하게 충분하다.
역시나 주인공은, 브론테 자매 집게. 두꺼운 책도 잘도 잡힌다.

너무 졸리다.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도 너무 졸리다. 9시에 한 잔, 11시에 한 잔.
졸리다... 아, 너무 졸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