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나 혼자 고백하는 추석 일성.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삶이라 오지 말래서 이번 주에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월요일에는 나 홀로 교보문고를 떠돌았는데 서울에 볼일 보러 온 대학 후배가 얼굴만 보자고 해서 만나서 폭풍 수다를 떨었고. 화요일에는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 쓰면서 놀다가 저녁에는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보러 갔다. 원래 영화관 자주 안 가는데, KT 멤버십 혜택으로 영화 무료 관람권이 있어서 갔다. 이병헌, 손예진을 보러 올라가는 길에 베일리가 있었다. 조나단 베일리. 내가 참 좋아하는 조나단 베일리랑 귀한 한 컷을 남겼다.

수요일에는 대상포진 2차 접종을 하고 커피숍에서 한잔하면서 맥파든 읽다가 전통시장 가서 추석 거리를 사지는 않고 구경만 했다. 목요일에는 종일 잤다. 한쪽 팔이 뻐근한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8.7도까지 열이 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열나는 사람이라서 먹지도 씻지도 놀지도 않고 잠만 잤다. 금요일에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남편이랑 시장 나가서 추석 선물이랑 먹거리 이것저것 사서 돌아왔다. 하루하루가 나만 두고 신나게 질주하는 느낌이다. 그 사이사이 책을 읽었다.










『The Teacher』는 맥파든 12번째 책이다. 여러 권의 맥파든 중에서도 특별한 느낌이다.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기도 하고 논쟁적이기도 한데, 허구한 날 놀라고 마지막에 '뜨악'하며 놀라는 스릴러 초보 독자인 나는 이 책의 결말 부분에서 어김없이 한 번, 아니 두 번 놀라기는 했다.

나쁜 새끼의 나쁜 짓은 전해 들어도 여전히 빡치는 이야기인지라 생략하기로 하자. 나는 나쁜 새끼의 나쁜 말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깐, 나는 『롤리타』 속 험버트의 말에는 관심이 없다, 그 말씀이다. 그 행동이 아니라 그 마음에 일면 이해 가는 구석이 있기도 하다. 몸을 가지고, 몸속에서, 몸에 갇혀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젊음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란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무엇, 미치도록 부러운 그 무엇이다. 말 잘하는 인간들을 그것을 미화하고, 신화화하고, 이상화한다. 인류 전체를 통틀어 그걸 '사랑'이라 '칭할 수 있는' 권리는 남자에게만 주어졌기에, 가해와 피해의 그림은 극도로 명확하기에 자세히 듣지 알아도 안다.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은 당연한 거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그 명암이 더 짙어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늙음에 대한 경시와 젊음에 대한 숭배는 한결같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는>에서 이상은은 노래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사랑할 때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젊었을 때는(나 아직 젊어요. 초고령 사회로 초고속으로 진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위 연령이 2023년에 46세였대요. 중위 연령에 가까워요, 솔찬히 가까워요.) 젊음을 모른다. 젊음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얼마나 눈부신 건지 모른다. 불안과, 걱정, 진동을 모르지 않지만, 그 역시 그러한 떨림 역시 젊음에게 주어진 부담스러운 선물이다.

다시 『The Teacher』로 돌아오자면, 나는 그 나쁜 놈의 범죄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그 말을 자세히 듣고 싶지가 않다. 내가 계속 궁금한 지점은 그 나쁜 놈의 꼬임에 넘어가는 그 순진한 마음의 향방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그의 말을, 그의 고백을, 그의 진심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그의 말이 모두 진심이었다고 치자. 그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고, 나를 원한다고 하자. 지금까지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나는 그걸 확신할 수 있다고 치자. 나를 알아본 그와 나는 소울메이트라고, 그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처럼, 나도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되어주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치자. 사실이라고 하자.

그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왔는데 왜 가는가. 어렵게 와서는, 힘들게 와서는. 왜 가는가. 왜 그렇게 쉽게, 왜 그렇게 허망하게.

가 버리나. 후다닥. 정신 사납게. 서둘러.

김영하의 최근 산문집을 한 권 읽었고, 사사키 아타루의 작은 책을 한 권 읽었다. 한국에는 책이 없어서 주문하면 2주 걸린다길래 중고로 사 두고서는 여태 읽지 않고 책장 깊숙이 감춰져 두었던 걸 억지로 끄집어냈다. 책은, 자고로 들고 다녀야 하니깐. 글씨가 작아서 킨들로도 샀다. 한글책은 알라딘에서 잭 리처 행사할 때, 네 권을 세트로 판매했던걸 구매해 두었다고 한다. 든든한 마음, 행복한 한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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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10-04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가 단발머리님 추석 일상을 궁금해합니다. ^^
혼자 서점도 가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이상적인 일상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삶을 구원해주리라는 환상은 결국 내 삶이 너무 힘들기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런 마음 너무 자주 많이 드는게 우리 삶이라 그 유혹을 물리치는건 여전히 쉽지 않네요.
프리다 맥파든 책은 한동안은 번역이 꽤 될거같아 즐거운 미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연휴가 긴데 전 연휴 끝이 복직이라 하루히루가 아깝네요. ㅎㅎ
명절 연휴 일은 하지 마시고 휴식과 책이 함께하는 일상을 기원해봅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5-10-05 07:06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추석 일성 궁금해하시는 귀한 분, 바람돌이님 일단 한 분 모셨습니다.
서점도 가고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아주 조용하고 단촐한 추석 시즌 1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삶을 구원해주리라는 환상은 인간이라면 끝내 떨치기 어려울 거 같아요. 눈에 보이는 대상처럼 확실한게 어디 있을까 싶고요. 그게 아니고, 그게 전부가 아니라 아무리 말해도 말이지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또래 집단 적응이 어려웠던 경우는 더 그랬을 거 같고요.

연휴 끝이 복직이라 하시니 이 연휴가 더 소중하고 귀중하실 거 같아요. 남은 기간 잘 마무리하시고요~
바람돌이님도 맛난 간식과 휴식, 그리고 책이랑 함께하는 추석 보내시길 바래요.
올해는 부추전 안 부치시는 걸로~~~~~~~

다락방 2025-10-05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페어....왜이렇게 두꺼워요?ㅠㅠ

단발머리 2025-10-08 20:48   좋아요 0 | URL
저건 매스마켓용이라 그런지 책이 작아요. 그래서 두꺼운 걸까요? ㅠㅠㅠㅠㅠㅠ

다락방 2025-10-05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글에서 대학 후배를 만나 폭풍 수다 떨었다는 부분을 참 좋아합니다. 얼마나 즐거웟을까요. 폭풍 수다는 즐겁지요.
그리고.. 베일리랑 찍은 귀한 사진은 왜 올리지 않으신거죠? 저는 그것이 무척 궁금합니다.

저는 대상포진 예방접종 했었는데 그 때 팔 완전 부어올랐더랬어요. 와 진짜 힘들었어요. 저는 두 번 맞지 않고 한 번 맞았던 것 같은데.. 이게 약마다 다른걸까요?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the teacher 은 꼭 영어책으로 읽어보고 싶어요.
아직 연휴가 많이 남은거지요, 단발머리 님? 즐기세요. 충분히 즐기세요. 책 많이 읽고 많이 쓰세요!!

단발머리 2025-10-08 20:50   좋아요 0 | URL
폭풍 수다 즐거웠습니다. 폭풍 수다 후에는 그 다음을 기약하죠. 왜냐면 할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해서요 ㅎㅎㅎ

다락방님도 대상포진하고 아프셨군요. 저의 식구들도 한 번 맞았거든요. 저는 그냥 집 앞 병원 갔는데, 두 번 맞는거더라구요. 돈도 많이 들고... 약이 달라서 그런거라고, 예방율은 더 높다고 그러더라구요.

책은 많이 못 읽었지만 즐거운 연휴입니다. 이제 3일밖에 안 남았어요. 맘이 급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10-06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상포진 주사도 열이 나기도 하고 아프군요.ㅜ.ㅜ 아직 안 맞아봐서…나이가 있어 이젠 맞아야 할 때인데 매번 까먹어요.
저는 어제 딸이랑 어쩔 수가 없다. 영화 보고 왔어요. 손예진이 본인의 역할 비중이 그닥 크지 않아 출연할지 말지 조금 망설였다고 하더니 막상 영화를 보니까 어휴..비중이 절대 약하지 않던 걸요? 딸이랑 걸어나오면서 내가 손예진이었음 이병헌 신고 했을 것 같다고 말 했더니 딸이 그래도 부부지 않냐고 되물어서 나는 저런 남편하고 살다가 나도 죽임을 당할 것 같아 무서워서 못 살 것 같다고 했죠.ㅋㅋㅋㅋ

스릴러 초보 독자 단발 님의 스릴러물 독서 모습 좀 귀여우신 것 아닌가요?ㅋㅋㅋㅋ
결말에 놀라시지만 심층분석 들어가면 또 초보가 아니신…ㅋㅋㅋ
사람이 사람의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진심을 꿰뚫어 보아 믿어버리기는 참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쉽지만 정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바라봐도 타인을 너무 잘 믿어 인생 폭망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것도 추석에 말이죠?ㅋㅋㅋ
긴 연휴…추석 일정 더 듣고 싶네요.
그러고보니 저도 어제 딸이랑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서점에 가서 책 세 권 사들고 집에 오긴 했어요. 추석 전날 일정이 조금 비슷했네요. 연휴 내내의 일정도 좀 비슷할 것 같기도 하구요.ㅋㅋㅋㅋ
암튼 긴 연휴 황금 연휴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5-10-08 21:00   좋아요 1 | URL
제 주위에는 젊은 사람들(10대 여자청소년, 30대 남성, 40대 남성, 50대 여성)을 포함, 유독 대상포진으로 고생한 분들이 많았어요. 저도 면역력이 걱정되는 사람이라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냥 맞자 싶어서 이번에 맞게 되었습니다.
저는, 내가 만약 손예진이었다면... (손예진 말고 손예진 역이겠죠^^) 그런 생각은 안 해보았는데... 지금 생각해 봤거든요. 저는 손예진처럼 했을거 같아요. 지금 생각으로서는 그래요 ㅎㅎ

프리다 맥파든이 올해 제 독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제가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스릴러가 무서운 저이지만, 그래도 순한맛 스릴러라서 많이 무서워하지 않고 읽어가는 것 같아요. 그러나, 항상 범인을 못 맞춘다는게 문제인데요. 그래도 즐거운 독서시간이 되고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ㅋㅋㅋ
저는 오늘 많이 걸었는데 볕이 너무 따가웠어요. 실내에 들어갔더니 목 아래쪽이랑 팔이 간지럽더라구요. 내일은 어디 나가지 말고 꼼짝말고 집에만 ㅋㅋㅋㅋㅋㅋ 있을 건 아니지만, 덜 걸어야겠어요.
책나무님도 책과 영화와 딸과의 데이트,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래요~~ 일상도 공유해 주시구요^^

독서괭 2025-10-10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상포진 예방접종 하면 아플 수 있군요!! 아직 맞아본 적이 없는데 대비를 하고 맞아야겠네요. 이제는 다 나으신 거죠?
알찬 한가위 보내셨군요. 어페어가 주문하면 2주 걸리는 건가요??ㅠㅠ 한글책은 도서관에 있는 거 봤는데 두껍더라구요. 영어로 고ㅏ연...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샐리 루니 읽고 나서 프리다 맥파든 펴니 그 시원한 글자크기와 줄간격에 기쁨이 차오르던데 ㅋㅋㅋ 어페어 줄간격은 어떤가요?
˝내가 계속 궁금한 지점은 그 나쁜 놈의 꼬임에 넘어가는 그 순진한 마음의 향방이다.˝
오호, 이거 저도 궁금해집니다. 하우스메이드 다 읽으면 티쳐도 읽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25-10-10 18:56   좋아요 1 | URL
이제는 괜찮아요. 왼팔이 아프고 열이 났습니다만 이제 ㅋㅋㅋㅋㅋㅋ 자유의 몸!!
영어로 같이 잭 리처 읽기로 한 거 잊지 마시구요. 그러나, 사실 저도 아직 시작 안 했다는 건 안 비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페어 줄간격은 매스마켓은 엄청나게 좁고요. 저는 킨들로 읽고 있어서 조정 가능합니다.

<The Teacher> 추천합니다. 나쁜 놈 욕할 포인트가 좀 많기는 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