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 돌아오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이제 다시 도서관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필요한 책을 검색하고 상호대차를 신청하고 대출하고 반납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됐다. 하게 되었다.
친구가 미셸 푸코를 읽는다 해서 준비해 봤다. <성의 역사> 2권(1권, 2권)과 얇은 책 두 권(<자기 해석학의 기원>, <상당한 위험>) 읽어본 사람으로서 앞으로 험난한 시간이 예상되어 예습 차원으로 이것저것 빌려 보았다. 제정신이 다 돌아오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자료 1. 맨 아래, 똑같은 책(만화책)을 각각 다른 도서관에서 빌렸다. 역시나 만화책부터 시작했는데 넘나 어렵다. 그렇다. 한국의 만화책은 만화책이 아니다. 그림 많으면 만화책인가. 내용이 이렇게 어려운데. 아이들을 공부시키려는 엄마의 열심을 반영한 출판사들의 획책. 민머리의 푸코가 나온다 한들 이 어려운 내용을 도대체 어쩔 것이냐.
<젠더와 역사의 정치>에서부터 <우리들은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 다>까지는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받은 책들이다. 제정신이 다 돌아오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자료 2.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타자를 말하다>를 다른 도서관에 각각 신청했다. 처리되어 내 손으로 들어온 시기도 같아서 똑같은 책이 두 권이다. 상 도의상 한 권은 일찍 반납해 주려 한다.
일단 <레비나스, 타자를 말하다>를 펼쳤다. 서문을 읽는데, 레비나스도 궁금하지만 레비나스를 읽는 우치다 다쓰루도 궁금하다. 어떤 사람을 ‘스승’이라 부른다는 게 어떤 일일지 궁금하고, 또 한 편으로는 레비나스를 연구하는 우치다를 분석하는 번역자 박동섭님의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그렇게 하염없이 여기 저기 떠돌다가 우치다의 책을 딱 두 권 읽고,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을 읽다 포기한 이유, 내가 남겨두었던 ‘이유’를 보게 됐다. 한편으로는 이해되고 또 한 편으로는 그래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예상하는 ‘지성’이란 정확하게 무얼 의미하는지에 대해 1분 정도 생각해 본다. 현실 정치에 대한 정확한 비판인가, 양비론을 넘어서는 대안 제시인가. 나의 정치적 입장과 유사한 듯 하지만 그와는 약간 다른 그 어떤 것인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끝까지 읽지 못한 이유와 겹치는 지점이다. ‘읽지 않음’은 나에게 손해일 것이나, 그렇게 느끼는 나의 판단 역시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의 카드 뉴스를 캡처해 두고 진짜 읽기에 들어간다.
아, 주일이네. 오늘, 교회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