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위계적 세계관은 기술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에서 하위의 것은 항상 상위의 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102)이고, 이에 따르면 길들여진 동물이나 남성 노예, 그리고 여성은 2의 자연이 되어 1의 자연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107), 이것이야말로 이들의 존재 이유이다. 지배와 착취가 제도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107) 분명하게 설명되는 지점이다. 노동의 전유와 노동자의 노예화가 노예제의 실행과 여성의 예속화로 확정될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108)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복합체의 지배하고 지배받는 요소들을 타인에게 두는 자연의 경향이 가져온 결과라고 설명하고, 아렌트는 인간이 필요를 지배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면 언제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놀랄 만한 주장을 편다. (111

 


육체와 육체적 필요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폭력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렌트의 주장은 이러한데, 이는 결론적으로 오이코스에서 일어나는 지배와 폭력을 자연화’(112)하고 이 지배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 속에 '가정 내 폭력'에 반대하던 제2 페미니즘 운동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이고 아렌트의 해석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형상이 훼손된 남성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악명 높은 여성 묘사는 우발적인 여성 혐오 이상의 의미가 있다. (131)  

 


그리스인에게 자연에 대한 전투와 여성 혐오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132)

 


여성 혐오의 발명을,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그리스인들은 남성 자신을 자연에 대항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는 인간인 자신과의 대척점에 동물(야생의/길들여진)을 두었다. 자연을 정복하고, 동물을 다스리며, 질서를 회복하고, 비합리에 맞서 싸우는 합리적이고 덕스러운 존재(132)로 자신을 상정했다. 그들에게 여성은 불가해한 존재였다. 여성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피를 흘렸고, 어느 순간 배가 부풀어 올라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스스로, 혼자 만들어냈다’. 그 일들은 남성이 흉내 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 생명에 대한 경이감, 그리고 여성에 대한 불가해함은 남성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조건이 되었으며, 이는 죽음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력한 환기 장치가 되었다. 여성에 대한 사랑보다 더 강력하게 남성을 지배했던 건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더 정확하게는 여성과의 성적 접촉이었다. 생명력이라는 강력한 힘을 자연에 속한 것으로 강제 배속했을 때, 여성은 남성보다 더 육체에 구속된존재가 되었다. 여성은 생리적 조건 때문에 남성보다 더 동물적인 존재가 되었고, 무능한존재가 되었다. 동물, 자연, 여성이 하나의 카테고리를 형성하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비하와 억압이 강화되었고, 여성에게는 인간의 지위가 부여되지 않았다(131). 여자니까, 여자라는 이유로, 어떻게 여자가, 감히 여자가. 이런 모든 언설, 여성에 대한 억압을 자연화하는 언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아테네의 남성됨 문화에서 불멸의 문제(143)에 대해서는 마사 누스바움의타인에 대한 연민』의 속 4, <혐오와 배제의 정치학>의 논의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육체에 대한 거부와 육체를 유지하고 만족시키는 데 개입하는 활동에 대한 거부는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이런 사안들이 강등되어 밀려간 영역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다. 나는 이 문제에 고전 그리스 시대 이래 서구 남성의 정치 기획에서 주요 부분을 구성하기에 충분한 위상과 복잡성이 담겨 있다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 그리스 시민들이 자연과의 굳건한 관계에서 풀려날 방법을 모색할 때 그리고 그 방법이 인간 종의 삶에 필수적인 생산과 재생산 작업에서 벗어나거나 그 일들을 헐뜯는 것일 때,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존재 및 정체성의 새로운 기반을 어떻게든 찾아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아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의 물질적 요구를 들어주는 이들을 제도적으로 착취할 방법을 정당화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목적이 있는 존재로서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심을 불식할 사상과 활동을 고안해 내야 했다. (80-1)

 


자연스레 윤석열의 일주일 120시간발언과 아프리카 손발 노동발언이 떠오른다.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손발로 노동을 하는 것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 (출처 : 서울신문, 2021-09-16)

 


일단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지 말라고, 생존 한계선까지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자본의 힘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52시간제의 사회적 합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육체노동에 대한 심각한 비하 발언 역시 문제적이다. 기사 표현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정말 경악할 일이다. 이후에도 차곡차곡 쌓아둔 포인트는 한없이 올라가고 있음에도 견고한 윤석열 지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 정말 모르겠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표창장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임용/취업을 위해 제출한 대부분의 이력서에서 학력과 경력을 위조한 대통령 후보의 아내가, (범법) 행위는 돋보이기 위한 욕심이었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 행위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있는 것인지 그게 궁금하다. 바로 그 대통령 후보의 아내가 우리 남편은 바보이고, 내가 정권을 잡으면(우리가 아니고 내가라고 말했다)이라고 말하고, 내가 청와대 들어가면 특정 언론사(기자)를 다 처넣을 거라고 말하는 육성 파일이 공개됐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윤석열을 지지한다고 말할 때,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그 세상인가 하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정의당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기표소 안)에 민주당 쪽으로 돌아섰던 내 과거를 매섭게 비난하던 어떤 사람은, 며칠 전 여론 조사 결과를 보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아니, . 아니, 진짜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이대로 가면 윤석열이, 진짜 안 되겠네. 왜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그래? 그래서 내가 기표소만 들어가면 정의당에 미안해!를 외쳤던 거야. (니가 심상정 찍으면 윤석열이 대통령 되는 거야. 그래, 너 때문은 아니지. 너 때문은 아니야. 그런데 대통령은 윤석열이 되는 거야) 마지막 문단은 괄호로, 속마음 토크로 처리했다. 그래야 한다는 걸 안다. 어제도 윤석열이 이재명을 9퍼센트 앞선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진보 측에 비해 보수 측은 김건희의 녹취 파일 공개 이후 더 결집했다고들 하던데, 그런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는데도 보수는 이렇게 야무지게 움직이나 하는 생각에 역시나 이명박근혜의 대한민국이구나 싶다.

 

윤석열이든 이재명이든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그런 사람에게는 윤석열이 대통령인 나라가 찾아오겠지. 이재명과 윤석열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될 테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새 아침이 밝아온다면, 나는 윤석열의 공정을 확신하는 사람들보다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원망하게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정치에 과몰입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일은 부조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직 남성만이 정치에 적합하다고 주장했고, 아렌트는 (자신이 여성인 것을 잊어버리고) 그 말이 옳다고 믿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나의 이런 생각 역시 부조리하다는 걸 안다. 나도 알고 있다.

 



잠 못 드는 밤에는 책이 최고다. 일단 이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오늘이 26일이라고, 아침에 친구가 알려줬다. 2022 126일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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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26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많이 마셔 잠 못 드는 건가? 싶었더니..아!! 잠 못 드는 이유가 있었군요!!ㅜㅜ
어떻게 될런지? 걱정입니다!!!!!
저는 그냥 뉴스 안보고 삽니다. 마음이 계속 언짢아져서 말이죠!!

단발머리 2022-01-27 10:15   좋아요 1 | URL
저도 걱정입니다. 책으로 도망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지요.
그래도 완전히 모른 척 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라서... 저는 오늘도 뉴스를 강제청취하고 있어요 ㅠㅠ

난티나무 2022-01-27 0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2-01-27 10:15   좋아요 0 | URL
진짜 큰일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휴우

수이 2022-01-27 0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하는 페이퍼입니다. 명쾌하다!

단발머리 2022-01-27 10:15   좋아요 0 | URL
원하는 페이퍼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수연님..... 흐미ㅠㅠㅠ

바람돌이 2022-01-27 0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고 하면 이명박과 박근혜시절을 합친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이 사태를 만든데는 그렇게 국민이 권력을 몰아줬음에도 제대로 된 개혁 하나 이뤄내지 못한, 심지어 도덕성과 공정성에서도 치명타를 날린 지금의 민주당이 제1책임이 있겠지요. 지금의 선거 분위기를 보면 진짜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단발머리 2022-01-27 10:19   좋아요 1 | URL
이명박근혜 시대보다 더할거라는 생각에 좀 암울하고 그렇습니다. 지난주부터 더 걱정이 많아지고 있어서요. 나라 걱정 다 쓸데없다고 하던데 전 이렇게 나라를 걱정하고 있네요.

민주당 제대로 못한 거를 쓰자하면 위의 글보다 훨씬 더 길게 쓸 자신이 있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못했구요. 정말 문대통령님 개인기로 이나마 버틴 거라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국민의힘을 선택하는데로 이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제 걱정의 주요한 맥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