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 동생을 낳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아빠, 동생과 함께 외딴곳에 살고 있는 애나는 아빠가 낸 신문의 아내 구함광고를 보고 멀리 바닷가에서 한 달 동안 그들을 방문한 사라가 새엄마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생 칼렙에게는 노래를 불러 줄 엄마가, 애나에게는 머리를 묶어줄 엄마가, 아빠에게는 아내가 필요하다.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걸 아는 건 속상한 일이다. 인간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깨닫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가진 삶의 조건은 사회의 법과 제도, 문화 속에서 가공되기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그 투명한 상자밖을 상상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최근에,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하게 만들어졌기에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다.

 


사라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오빠가 결혼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집은 오빠의 집이며, 그와 결혼한 여성, 올케의 집이 되었기에 그녀는 더 이상 그 집에 머무를 수 없다. 그녀는 바다를 사랑하고, 물개를 사랑하고, 조개에서 들려오는 바다의 소리를 사랑하지만, 그 곳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집을 소유할 만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면, 아마 그녀는 아내 구함광고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바다를 그리워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며, 오빠와 이모(고모)들을 그리워하면서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여기 살 수 있을까. 고향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에서, 이전 결혼에서 태어난 남매의 아버지와 결혼해서, 처음 보는 사람의 친구가 되어 살 수 있을까

 

 

그녀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 자신의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결국 그녀는 이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으니, 아무 말 없이 먼 곳을 바라보는 사라의 시선을 느낄 때 아이들은 불안하다. 그녀가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면 어쩔까 두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1900년대 미국에 살고 있는 사라는 자유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그렇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의 처지는 오히려 고대의 노예,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와 더 비슷하다. 그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강제로 이주되었고, 가족들과 이별했으며,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소유라 할 만한 것을 갖지 못했다. 그녀의 선택을 선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녀의 결정이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 새로운 터전에서 그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애나는 외친다. ‘아내 구함광고를 보고 이웃집 매튜 아저씨와 결혼한 매기 아줌마와 사라가 자신들의 고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외친다. 크게 말할 수 없으니 속으로만 외친다. 그리워하지 말아요. 바다를 그리워하지 말아요. 언덕을 그리워하지 말아요. 우리랑 살아요. 우리랑 여기 같이 살아요.

 


어떻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다를, 고향을,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을. 하지만,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엄마가 필요한 마음을, 엄마가 그리운 마음을. 그 쓸쓸함을. 그 사무친 외로움을. 책장을 넘기면 사라가 된다. 바다를, 고향을,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사라가 되어 이 상황의 억울함과 답답함을 마음 한쪽에 간신히 쓸어 담는다.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음 책장을 넘기고 나면 이내 애나가 된다. 엄마가 죽고 태어난 동생. 매일 엄마 이야기를 묻는 동생과 이제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아빠. 내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머리를 땋아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사라가 우리를, 우리 집을 선택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저자 스테퍼니 스탈은 어쩔 수 없는(?)의 맥락에서 파트 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만 구한다. 현관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던 아이, 발표회에 엄마가 오지 못해서 이웃 아줌마가 전해준 꽃 한 송이를 받아들었던 스테퍼니는 자신의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내주려 한다.

 


어머니는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분자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그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 내가 생후 1개월 무렵일 때 어머니는 일터로 다시 돌아갔다. 그때부터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지내는 내 삶이 시작된 셈이다. (237)

 


나는 나를 낯선 이의 손에 맡겨야 했던 부모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남의 손에 자란 내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는 말할 수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 한 분이 출장을 떠날 때마다 나는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렸다. 학교가 파한 후 빈집에 들어갈 때 귓가에 울리는 내 발자국 소리가 왠지 서글펐던 기억, 초등학교 학예회 때 꽉 찬 관중석 어디에도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주여 오소서>를 부를 때 느낀 외로움 등이 내가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나는 연극이 끝난 후 무대 뒤에서 한 이웃 아주머니가 자기 자식에게 주려고 가져온 꽃다발에서 뽑아 낸 꽃 한 송이를 건네받은 적도 있었다. (238)  

 


어쩌면 그녀는 어린 시절의 그 아이를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한히 펼쳐진 미지의 세계에 대해 언제든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 엄마! 하고 불렀을 때 옆에 있어 주는 사람. 그 사람이 필요했기에, 그 사람을 그리워했기에 스테퍼니는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 같이 있는 엄마가 되어준다.

 


스테퍼니의 책을 읽을 때 나의 고민은 그녀의 것과 똑 닮아 있어서 지금도 그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자라고, 이 코로나 시대가 얼추 지나고 나면 나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될 테지만. 이 모든 것은 내게 하나의 변명이 될 수밖에 없을 테지만. 결국 변명을 내 앞의 큰 방패로 삼아 하는 이야기일 테지만. 나는 애나가 되려고 한다. 이기적일지 몰라도 애나가 되려고 한다. 애나가 되어 말하려고 한다.


 

바다를 그리워하지 말아요. 바다를, 바다를 그리워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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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4-19 09: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글이고 어쩐지 어제 읽은 정희진쌤 책도 생각이 나고요. 맨 위에 언급하신 원서를 나도 사서 읽겠노라 장바구니에 넣었더니 2016년에 이미 구매한 책이라고 나옵니다. 그러고보니 그 때 단발님께 추천 받아 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있는 줄도 모르는채로 지내고 있......

저는 이번 정희진 쌤 책 읽으면서 빨래하는 페미니즘과 아내 가뭄을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책을 다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팔아버린 것 같은데 ㅠㅠ
지금 읽으면 그 책들 모두 또 다르게 읽힐 것 같아요. 요즘엔 정희진도 다 다시 읽고 싶고 그래요. 읽어야 할 것들도 다 못읽고 있으면서 왜이렇게 읽기 욕심은 ...

아무튼 집에 저 책 있으니 저도 읽어볼래요!

단발머리 2021-04-24 18:21   좋아요 0 | URL
저 이번에 두 번째 읽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다락방님 감상도 많이 궁금해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 그런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는것 같더라구요.

저도 정희진쌤 책 읽으면서 여러권 책 뽑아두었는데 <세상과 나 사이>의 진도가 지지부진하다고 합니다. 읽기의 욕심은 우리 모두의 오랜 고민이며 걱정이며 염려이며.....

수연 2021-04-19 09: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울...울어도 될까요 ㅠㅠ 모두 단발머리님 페이퍼에서 한 번씩 보았던 스쳐지나갔던 책들인데 이 페이퍼를 읽고 저 책들을 읽지 아니한다면 아니될 거 같습니다. 근데 태그 왜 이렇게 아련하면서도 슬프지요........

단발머리 2021-04-24 18:23   좋아요 0 | URL
울지 마세요, 수연님!!! 울지 말고 이 책 같이 읽어주세요. 수연님께는 수연님만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강추합니다^^

바람돌이 2021-04-19 10: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4살 때 어린이집 처음 보내고 아이가 자꾸 운다고 해서 일하다가 어린이집에 가봤을 때 우리 딸 얼굴이 떠올라서 울컥!! 아이를 키운다는 건 너무 큰 행복이고 축복이지만, 아이에게는 부모가 곁에 있어주는게 너무 중요하지만, 그렇게 아이 옆에 있어주기 힘든게 지금의 삶이네요. 좋은 책 소개도 좋고, 마지막 문장도 그 속에 담긴 복잡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네요.

단발머리 2021-04-24 18:28   좋아요 0 | URL
전 아롱이가 그랬어서 ㅠㅠ 유치원 생각하면 항상 그 시간들이 떠올라요. 바람돌이님 댓글 읽는데 신발장 앞에서 울던 아이들 막 기억나고 그래요. 저의 복잡한 마음이 전해진다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구요.
책을 읽고 댓글로나마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시간을 기억하는 일이 너무 소중하네요. 감사해요, 바람돌이님!

공쟝쟝 2021-04-19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끔 평행우주를 생각해요. 어느 우주의 사라는 어떤 선택을 저느 우주의 사라는 저떤 선택을. 어디서든 저기서든 다르게 살아가고 있을 다른 우주 속의 다른 나들. 그럼 쫌 덜 슬퍼요. 다른 우주 속의 다른 나는 여기 지금의 나를 한번쯤 꿈꿔 봤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으로.
바다를 그리워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지 않아도 좋겠지만요 ^^

단발머리 2021-04-24 18:34   좋아요 1 | URL
책 마지막에 사라가 아이들을 위해 색연필을 사 와요. 파랑색, 회색, 초록색. 칼렙이 사라가 바다를 가져왔다고 그러거든요.
저 우주 저편의 다른 선택을 한 제가 있다면, 사라가 있다면, 아마도 잠깐 만났던 이 아이들, 너무 예쁘고 귀여운 이 아이들을 그리워할 것 같기도 해요. 어느 선택이든 무언가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게 결국 우리 인간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

바다를 그리워해도 괜찮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후회하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으면서... 그래도 바다를 그리워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