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후 내내 『페이드 포』를 읽었다. 페미니즘 짝꿍의 강추가 없었다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4페이지 읽을 때마다 한 번씩 들었다. 그 어떤 책보다 읽기 힘들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고 그 기억들을 언어로 직조하는 그 모든 과정 속, 저자의 고군분투를 생각하며 겨우겨우 따라 읽는다.
언어로 정확히 표현되지 않으면 그 일 속에 감쳐진 잔혹함과 비인간성은 끝까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성매매라 말하고, 돈을 받았으니 어떤 대우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다르게 표현했을, 때 그 속에 깃든 악마성을. 돈이 지불된 강간. 저자는 성매매란 돈이 지불된 강간이라 말한다.
아침에는 차마 그 책을 다시 펴지 못하고 고병권을 읽는다. 읽었던 책인데 새롭게 다시 읽힌다. 고병권을 읽을 때마다 경건해진다. 마음도 자세도 자꾸 그렇게 된다. 오늘은 공부 이야기가 더 솔깃하다.
내가 가진 것이 자갈과 나뭇가지뿐이어서 아직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공부를 늦추는 핑계일 수는 있어도 공부에 대한 참다운 인식은 아니다. 공부는 언제든 할 수 있고, 당연한 말이지만, 바로 시작함으로써만 시작되는 것이다. 공부란 자신이 가진 미약한 것에서 시작해서 계속해서 앎을 생산하고 더 나아가는 것이지, 어떤 방법을 알아내서 단번에 도달하게 되는 게 아니다.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따로 없고 진리가 가는 길이 진리의 방법이다. 그리고 공부란 그 길을 스스로 내면서 나아가는 일이다. (64쪽)
얼마만큼 후회해야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을까 생각한다. 며칠을 후회하면서 알게 됐는데, 후회에게는 딸린 자식이 많았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공부했더라면, 대학에 다닐 때 열심히 했더라면, 고등학교 다닐 때 더 열심히 했더라면, 중학교 다닐 때 정신차렸더라면. 그렇게 딸린 자식들을 쭉 따라 걷다 보니, 맨 끝에는 나약한 의지와 태생적 게으름, 그리고 저질체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존재에 대한 근원적 원망으로 마무리되려는 찰나, 고병권을 만난다.
내가 가진 것이 자갈과 나뭇가지뿐이어서 공부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공부를 늦추는 핑계를 더는 만들어내지 말자. 시작함으로써 시작하자. 시작은 시작함으로써만 시작되니까.
오늘부터 시작. 지금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