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떨어뜨렸다.
그것도 애지중지 둥가둥가하던 소중한 책 『P.S. I still love you』에다가 말이다. 사건은 지난 추석에 일어났다. 매년 반복되는 추석 밥상에 지루해질 찰나, 시어머니께서 점심 외식을 제안하셨다. 제안 자체는 무척 반가웠으나, 집 근처 가까운 음식점, 백화점은 추석 당일에 모두 휴무인지라 갈길 몰라 헤맬 때, 남편의 제안으로 큰아이의 소울푸드 네팔 커리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커리는 냄새에서부터 개성만점이어서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음식이라 내심 걱정했는데, 뾰족한 대안이 없다 보니 그냥 집에서 쉬고 싶으시다는 시아버지를 뒤로 하고 나머지 가족이 추석 당일 네팔 전통 음식을 먹겠다며 집을 나섰다.
나는 평소대로 가방 속의 책을 꺼내들고 너털너털 음식점으로 향했는데, 테이블 배정이 또한 예술이라 시어머니와 남편, 도련님 내외와 막내조카가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내 옆으로는 큰아이, 맞은편에 작은 아이, 대각선으로는 큰조카가 앉게 됐다. 평소대로, 나는 음식을 기다리며 살금살금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음식이 나오고, 와아~하는 탄성과 이건 뭐야?하는 물음이 공존하는 동안에도 나는 살금살금 책을 읽어갔다. 아이들이 워낙 커리를 좋아해서 나는 비인기종목인 탄두리 치킨을 맡게 됐는데, 한 조각씩 먹어가며 손을 닦아가며 또 한 장 한 장 살금살금 책을 읽어가고 있었는데, 이런 탄두리 치킨이 그만…
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순.
탄두리 치킨은 시리즈 1권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의 일명 자쿠지 신(또는 hot tube scene)의 진실이 밝혀지는 장면에 떨어졌는데, 세상에나, 나는 그 중요한 페이지에 탄두리 치킨을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밤낮없이 책을 사랑하는 나는, 슬픔을 가누며 물티슈와 물수건, 휴지와 티슈를 이용해 탄두리 치킨의 흔적을 없애 보려 했으나, 아아… 탄두리 양념은 강력하기도 하여라. 나의 진정 아름다운 책은 붉게 물들고 말았던 것이다. 하필 그 중요한 장면에, 그 중요한 찰나에. 얼룩진 두 쪽의 일그러진 얼굴은 그 날의 참상이 현재까지 이어짐을 가차 없이 보여준다. 하여 오늘의 교훈은 ‘책을 읽을 때는 탄두리 치킨을 먹지 말자’이다. 아니면 ‘탄두리 치킨을 먹을 때는 책을 읽지 말자’ 거나.
오전에는 도서관 두 군데에 다녀왔다.
남은 인생, 남은 시간을 다 들여 공부하고 싶은 단 하나의 주제가 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죽음’의 문제라고 답할 것 같다. 죽음,은 항상 나를 매혹시키는 주제이다. 죽음,은 죽음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죽지 않고 어떻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죽음’과 관련된 그 모든 주제에 관심이 있다. 마음과 뇌, 영과 혼, 정신과 의식.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제1 관심주제다.
거듭되는 말이지만, 이 책은 반자연주의 관점을 채택한다. 즉, 모든 존재가 물질적이지는 않다는 것, 혹은 자연과학적으로 탐구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바꿔 말해, 나는 비물질적 실재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상식적 통찰이라고 본다. (18쪽)
도서관에서 2쪽을 읽고 입모양으로 ‘와우!’를 외쳤다. 일단 이 책이 1순위다. 같이 빌린 책도 흥미롭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3>에 나오는 문어인간 Davy Jones이 이 문어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문어에게 영혼이라니. 문어와 영혼. 문어의 영혼. 이 책이 2순위다.
하지만 요즘 나의 최애작가는 이름마저 반짝이는 재레드 다이아몬드다. 어젯밤에 드디어 5장 <마야의 붕괴>에 들어섰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를 좋아한다. 좋아한다, 진심.
알라딘에서 신간 알림신청이 왔다.
상품명 : 호르몬의 거짓말(정희진)
놀란 가슴으로 <상품보기>를 눌렀더니, 정희진쌤의 책이 아니라, 정희진쌤이 해제를 쓰신 책이다. 정희진쌤 해제 3-4쪽을 읽겠다고 이 책을 사서 읽겠지만은, 그래도 (정희진해제) 이렇게 해주면 더 정확한 안내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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