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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2 - 7부 ㅣ 마스터스 오브 로마 7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평점 :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린다고 하면 제일 먼저 이 사진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누구의 인생인들 리즈 시절 없겠는냐마는 사진 속 엘리자베스 테일러 리즈 시절은 정말 너무 예쁘다.
이 책의 삽화는 누가 그렸는지 모르겠다. 원서와 같은 사진일 거라 추측할 뿐이지만,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작가의 적의가 너무 적나라해서 삽화 본 눈을 나도 모르게 내리깔게 된다.
클레오파트라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챕터의 제목은 ‘짐승들의 여왕’. 옥타비아누스는 살아있는 신, 이집트의 왕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로마인들의 불만을 고조시키기 위해 그녀를 이렇게 불렀다. ‘짐승들의 여왕’. 짐승과 짐승신을 섬기는 나라의 왕인것은 분명하지만 자신들도 분명 다양한 형태의 신들을 섬기고 있으면서, 클레오파트라에게만 이렇게 야무지게 냉정하다. 짐승들의 여왕이라니. 짐승들의 여왕,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의 심기가 괴롭다.
“난 행운을 잃었소! 나한테 행운이란 게 있었다면 말이지만, 그래, 내게도 행운이 있었소 – 필리피에서. 하지만 그때뿐이었소, 지금 보니 그런 것 같아. 그 이전과 그후론 전혀 운이 없었지.” … 클레오파트라는 생각했다. 또 그 얘기야. 잃어버린 행운과 필리피에서의 승리에 관한 케케묵은 얘기를 하고 또 해. 했던 얘기를 또 하는 건 주정쟁이의 특징이지.(251쪽)
로마의 실력자이며 카이사르의 가장 강력한 후계자였던 안토니우스는 내리막길로 내닫는다. 풍부한 군대 경험과 강철 체력, 700명이 넘는 원로원 의원들의 단합된 지지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실수, 또 한 번의 실수를 극복해 내지 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실패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자신에게는 운이 없다는 생각, 옥타비아누스에게는 행운이 따른다는 ‘잘못된 믿음’에 있다. 내게 있던 운이 이제 다했다. 내 행운은 끝났다. 이제 나는 끝이다.
옥타비아누스는 다르다. 전쟁터에만 나가면 발병하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 도처에 깔린 정적들, 잠재적 위험요소인 카이사르의 친자 카이사리온까지 그 역시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옥타비아누스는 냉정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죽을 뻔한 위기를 여러 번 넘기고, 사재를 모두 털어 로마의 밀값을 조정하고, 바다의 해적 섹스투스와 한 판을 벌인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과거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다. 현재의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고, 바로 지금 현재에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를 비교하면 그렇다. 안토니우스의 운은 다했고, 옥타비아누스의 운은 이제 막 시작이다. 안토니우스에게는 불운이, 옥타비아누스에게는 행운이 따랐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옥타비아누스의 가장 큰 행운이라면, 그건 바로 아그리파라는 친구의 존재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는 이탈리아 지방 평민이라는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군사적인 재능이 부족한 옥타비나우스를 위해 어린 나이에 카이사르에 발탁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아그리파가 없었으면 옥타비아누스는 황제가 되지도 못했다”고 평했을 정도로 그는 옥타비아누스 권력의 핵심이었다.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는 평생 동안 한결같은 친구였다. 옥타비아누스는 아그리파를 명실공히 로마의 2인자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외동딸 율리아와 결혼시킴으로써 자신의 사위가 되게 했다. 옥타비아누스가 아그리파에게서 얻은 결정적인 도움들은 어디까지나 카이사르의 선견지명에 의한 것이다. 옥타비아누스는 운이 좋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이였다는 것은 치열한 권력 암투의 복판에 서 있었던 옥타비아누스에게는 물론 좋은 일이다. 역시 운이 좋았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에게 진정한 행운이라면, 자신에게 없는 특장점을 지닌 사람을 그렇게 가까이에 두고도 그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그리파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신분이 미천하나 수없이 많은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아그리파는 옥타비아누스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그리파는 옥타비아누스를 황제로 인정했고 평생동안 한결같이 그에게 충성했다.
마르쿠스 아그리파는 진정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실 진정한 사랑을 할 능력과 의지를 갖춘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 경쟁자가 생길까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 특별히 대우받기를 갈망하지 않는 사랑. (90쪽)
제목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였지만, 내게 이 이야기는 네 사람의 이야기로 읽힌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 카이사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안토니우스를 이용하려는 클레오파트라와 그녀 앞에 자신의 운 없음을 쏟아내는 안토니우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신뢰와 격려를 통해 자신들 앞의 난관을 하나하나 제거해가는 쌍둥이같은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 싸움의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행운은 그들에게, 바로 그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