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문자를 받았다. 필립 로스가 타계했다고, 단발머리가 생각난다고, 알라딘 친구는 썼다. 필립 로스가 노인이라는 걸, 80이 넘는 노인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나는 멍하니 있었다. 이런…

그의 어머니는 여든에 죽었고, 아버지는 아흔에 죽었다. 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저는 일흔하나예요. 당신네 아들이 일흔하나라고요.” “좋구나, 네가 살아 있구나.” 그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되돌아보고 네가 속죄할 수 있는 것은 속죄하고, 남은 인생을 최대한 활용해봐라.” (177쪽)
『포트노이의 불평』은 우리나라에 2014년에 출간되었는데, 한참 동안이나 알라딘 블로거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해 표지가 눈에 익었는데도, 좀처럼 관심이 생기지 않았더랬다. 나는 『포트노이의 불평』을 통해 필립 로스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처음 읽은 필립 로스의 책은 『미국의 목가』이다. 2014년이었는데, 기억으로는 읽었던 그의 책들 중에 제일 어려웠다. 『미국의 목가』를 출발점으로 해서 필립 로스 읽기를 시작했고, 하나 읽고 하나 더, 하나 읽고 하나를 더했다. 구할 수 없는 단편집 모음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익사체』를 제외하고는 한국에 소개된 필립 로스의 책을 전부 다 읽었다.
『포트노이의 불평』에서는 쉼없이 몰아치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사실은 그의 부모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 것도 먹지 않겠다는 주인공에게 그의 엄마가 말한다. “어느 쪽이 되고 싶니? 인간이야 쥐야?”
왜 이러니! 너처럼 잠재력 많은 아이가! 너의 소양! 너의 미래! 하느님이 너에게 아낌없이 주신 모든 선물. 아름다움, 두뇌라는 선물. 그런데도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그냥 굶어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해?
네 평생 사람들이 비썩 마른 아이로 멸시하며 내려다보기를 원하니, 아니면 당당한 어른으로 우러러보기를 원하니?
사람들이 너를 마구 밀치고 놀려대는 꼴을 당하고 싶은 거야? 다른 사람들이 재채기만 해도 자빠지는, 뼈하고 가죽만 남은 사람이 되고 싶어? 아니면 존경을 받고 싶니?
커서 어느 쪽이 되고 싶니? 약한 사람이야 강한 사람이야? 성공한 사람이야 실패한 사람이야? 인간이야 쥐야? (28쪽)
가장 최근에 읽은 필립 로스의 책은 『아버지의 유산』이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아버지, 죽도록 미워하지만 도망칠 수 없는 지독한 그의 아버지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쇠약해졌을 때, 나이 든 아버지를 향한 필립 로스의 따스한 애정에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2016년 책의 날 기념 설문 조사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필립 로스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흥분됩니다.
무엇을 알고 싶냐고요? 나는 그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그가 말한 것만 알 수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만난 그 날 아침에 뭘 드셨는지, 그걸 묻고 싶습니다.
2015년, “절필을 선언한 필립 로스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띠지와 함께 『네메시스』가 번역되었을 때만 해도 난 여유로웠다. 읽지 않은 필립 로스의 작품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고, 또 내게는 시간도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쓸 것이 없다,는 그의 말에 새로운 소설은 어렵겠지만, 『작가란 무엇인가』와 비슷한 종류의 인터뷰집 한 개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밥 딜런이 2016년에 노벨문학상을 탔을 때는 작가님은 3-4년 더 기다릴 수 있으시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유령 퇴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Exit Ghost』를 시작으로 필립 로스 컬렉션을 시작했다. 왜 읽지도 않는 원서로 필립 로스의 책을 사냐고, 왜 꽂아만 두는 책을 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가 쓴 단어, 그가 쓴 문장을 원한다고 말할 수 밖에. 왜 필립 로스를 읽느냐고, 왜 필립 로스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역시 똑같이 대답하고야 만다.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그를 원한다고.
『유령 퇴장』 속 그녀의 질문에 나는 주커먼이 되어 답한다.
그녀 제 어떤 점에 그토록 끌리시는 거예요?
그 자네의 젊음과 아름다움, 우리가 소통에 들어선 속도, 자네가 말로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 (178쪽)
당신의 말, 아름다움, 우리가 소통에 들어선 속도, 당신이 말로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당신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고마웠어요.
이제 쉬세요.
이제, 편히 쉬세요…
『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