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의 지도자들이 모두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김구가 반탁과 관련한 포고령을 내리자, 이후 이들의 관계는 매우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국무총리 및 국무원은 대통령의 추천으로 의회에서 선출하도록 했으며, 내각은 의결기관이었다. 행정부는 의회의 신임에 좌우되며 의회는 국무총리 및 행정각부 총장에 대한 불신임을 의결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대통령이 법률안 제출권과 의회 소집 및 해산의 권한을 갖도록 했다. 이 안 역시 내각제에 가까운 혼합형 체제라고 할 수있다.

한편 1946년 5월 6일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무기 휴회에 들어가자 미군정은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좌우 합작을 추진했고이를 토대로 1946년 8월 24일 일종의 대의 입법기관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창설했다. 하지만 여운형이 탈퇴함으로써 우파와 중도파를 중심으로 선거를 통해 45명은 간접민선으로, 45명은 하지중장의 임명을 통한 관선官選의 방식으로 총 90여 명의 입법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제55조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단, 재선에 의하여 1차중임할 수 있다.

제68조 국무원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기타의 국무위원으로 조직되는 합의체로서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 중요 국책을 의결한다.

제69조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국회의원 총선거 후 신국회가 개최되었을 때에는 국무총리 임명에 대한 승인을 다시 얻어야 한다. 국무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73조 행정각부장관은 국무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승하여 행정각부장관을 통리감독하며 행정각부에 분담되지 아니한 행정사무를 담임한다.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금지에 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었기에 현직 의원이 장관이 될 수도있었다.

제39조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제44조 국무총리, 국무위원과 정부위원은 국회에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하고 질문에 응답할 수 있으며 국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출석답변하여야 한다.

제53조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써 각각 선거한다.
제66조 대통령의 국무에 관한 행위는 문서로 하여야 하며 모든 문서에는국무총리와 관계국무위원의 부서가 있어야 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같다.

미국 대통령제는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불신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세 개로나누고 서로를 견제하도록 하여 균형을 맞추도록 했다.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은 미국 대통령제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미국 대통령제가 이러한 특성을 기반으로 ‘발명‘된 것이라면 내각제는 ‘진화‘에 의해 오늘날의 특성을 갖추게 되었다. 즉 내각제는 역사적인 진화의 소산이다. 

내각제는 서구 국가에서 국왕과 의회 간의갈등과 대립 속에서 발전해왔다. 국왕의 자의적 지배에 대한 반발로의회는 세금이나 인신구속 등의 사안에 대해 자신들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회의 영향력이 증대한 것이다. 이후 점차 의회가 국왕을 대신해서 통치를 담당하게 되었고, 내각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제가 입법부와 행정부를엄격하게 분리하는 것과 달리, 내각제는 입법부를 장악해야 행정부를 장악할 수 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 대통령 직선제개헌을 위해 모든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한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백골단‘, ‘땃벌떼‘ 등 깡패 조직들을 동원해서 관제 데모하는 것을넘어, 국회 통근 버스를 헌병대를 동원해 끌고 가 야당 국회의원 10명에게 국제공산당의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씌워 구속하는 등 공포 분위기로 야당 의원들을 압박했다. 이것이 바로 1952년 5월 25일에 일어난 ‘부산정치파동‘이다.

그 결과 이뤄진 1952년 개헌은 야당이 주장해온 의원내각제 개헌안 중에서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 양원제 도입 등 일부 내용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이른바 ‘발췌 개헌‘이라 부른다.

제31조 입법권은 국회가 행한다. 국회는 민의원과 참의원으로써 구성한다.

제70조의2 민의원에서 국무원 불신임결의를 하였거나 민의원 의원 총선거 후 최초에 집회된 민의원에서 신임결의를 얻지 못한 때에는 국무원은 총사직을 하여야  한다.

제73조 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이어야 하며 국무총리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53조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투표에 의하여각각 선거한다.

그로부터 2년 뒤 또 다른 헌정 왜곡이 1954년 11월 29일에 일어난다. 이른바 ‘사사오입개헌‘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대통령의 3선 제한을 철폐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를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재선에 의해 1차 중임할 수 있도록 했는데, 부칙으로 공포 당시의 대통령의 경우는 1차 중임의 제한을 적용하지 않도록 해 사실상 이승만은 평생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제55조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단, 재선에 의하여 1차중임할 수 있다.
부칙 이 헌법 공포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제55조제1항 단서의 제한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자유당은 부결된 개헌안을 가결로 만들기 위해 억지 논리를들고 나왔다. 재적 인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 인데0.333…은 0.5보다 적은 수이기 때문에 사사오입하면 의결 정족수는 135라는 것이다. 이러한 억지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학자까지 강제로 동원되었다.

제7조의2 대한민국의 주권의 제약 또는 영토의 변경을 가져올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사항은 국회의 가결을 거친 후에 국민투표에 부하여 민의원의원선거권자 3분지 2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3분지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사사오입개헌에서 흥미로운 점은 국무총리를 없애 국무원을 대통령과 국무위원으로만 조직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국무총리가없었던 때는 이때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4월 19일에 일어난 혁명이후 이승만이 하야했을 때 이미 사직한 장면 부통령 대신 과도정부를 이끌었던 것은 외무부장관으로 임명된 허정이었다.

제68조 국무원은 대통령과 국무위원으로 조직되는 합의체로서 대통령의권한에 속한 중요 국책을 의결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뒤 네 번째 집권을 향하던 이승만은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저지른다. 그리고 이에 항의하며 일어난 4·19 혁명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승만대통령의 하야 이후 허정 내각수반이 과도 정부를 이끌며대통령제 중심의 헌법을 내각제로 고쳤다. 이후 1960년 7월 29일제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대통령 윤보선과 국무총리 장면이 이끄는 제2공화국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극심한 당내 파벌 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쿠데타에 의해 9개월만에 붕괴되고 말았다.

5·16 군사 쿠데타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비사가 많은데, 당시쿠데타 계획은 장면 총리를 비롯해서 국내 정치 인사들이나 미국도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운과 우연, 제2공화국 정권 담당자의 비겁함, 오판 등이 겹치면서 결국 성공하고 말았다.

 ‘국무회의 합의체‘라는 표현은 헌법의 조항에서 사라지고 국무회의는 의결기관이 아닌 심의기관으로남게 된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우리나라의 국무회의는 여전히 심의기관이다.

제83조 ①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

추가경정예산안 또한 정부에서 편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부의동의 없는 국회의 예산 각항의 금액 증가나 비목 변경을 금지했다.

제52조 예산성립 후에 생긴 사유로 인하여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

제53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제118조 ① 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진흥에 관련되는 중요한정책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경제·과학심의회의를 둔다.
② 경제·과학심의회의는 대통령이 주재한다.

국회의원의 수를 헌법에 규정한 것도 이때부터다.
제36조 ② 국회의원의 수는 150인이상 200인이하의 범위안에서 법률로정한다.

제84조 ①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59조 ①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수 있다.
② 전항의 건의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에 의한 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제48조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제58조 국무총리 · 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은 국회나 그 위원회에 출석하여 국정처리상황을 보고하거나 의견을 진술하고 질문에 응답할 수 있으며, 국회나 그 위원회 또는 국회의원 30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출석 · 답변하여야 한다.

제80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관계국무위원이 부서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

제75조 ①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③ 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수 있다.

대통령의 긴급 명령에 대해서도 내우, 외환, 천재 지변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의 경우를 추가했다.
제73조 ②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에 있어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가 불가능한 때에 한하여, 대통령은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제87조 ①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대외정책 · 군사정책과 국내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둔다.
②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대통령이 주재한다.

제109조 ①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②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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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이란?政治學, Politics, Political Science
정치 현상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 및 비판하는 학문이다. 주로 국가권력을 행사하거나 자원의 획득, 배분을 둘러싼 문제 또는 여러 세력들 간의 갈등과 투쟁 및 타협으로 야기되는 국가 현상을 중심으로 정치사상과 현상을 연구한다. 정치 이론, 정치철학, 정치사상, 정치사, 비교 정치, 정치과정, 국제정치, 행정학, 정책학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정치학 연구는 한국의 특수한 정치 현상을 고려하여 체계적이면서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한국 정치에 대한 관심과 분석으로 이어진다.

사사오입 개헌
1954년 11월 29일, 대통령의 3선 제한을 철폐하는 것을 핵심으로 집권당 자유당이 사사오입의 논리를 펼치며 정족수 미달의 헌법 개정안을 불법으로 통과시킨 2차 헌법 개정을 말한다. 국회 표결 결과 찬성이 1표 부족해 135표로 부결되었으나, 여당은 재적 인원 203명의 3분의 2를 반올림하면 135명이 되어 의결 정족수를 충족한다며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87년 체제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을 형성하는 데 1987년의 민주화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출현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의 복합적 특성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권위주의 체제의 종식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의미한다.

3당 합당
1990년 1월 22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가 합당하며 한국 정치 지형의 재편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야합하여 지금까지 국내 보수 세력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당 총재는 노태우 대통령, 사실상 대통령을 대신하여 당 운영을 책임지는 대표 최고위원은 김영삼, 최고위원은 김종필과 박태준이 맡았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사상 첫 여당 72퍼센트의 국회가 되면서 표면적으로 노태우 정권은 절대 다수의 의석을 확보한 여당을 갖게 되었다. 합당을 거부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만이 유일한 야당으로 남게 된다.

혼합형 선거제도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를 결합한 형태.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구 후보 단계에서 후보들 간의 경쟁에 의한 결과로 의석 배분이 이루어지면 정당명부 단계에서 지역구 선출 결과와는 별개로 정당별 득표율에 비례하여 비례의석을 배분한다.

정당정치
정당정치는 정당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실권을 가지는 정치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복수정당제를 전제한다. 각 정당은 정치 과정에서 일반 대중이나 이익집단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집약함에 더불어 결집된 의사를 정부에 전달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정당은 선거를 통하여 일반 대중의 참여를 조직화하는 한편, 의회뿐만 아니라 정부까지도 장악함으로써 정권 담당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정당정치는 의회정치와 민주정치를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
대통령의 권한이 다른 정부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막강해 제왕의 지위와 비견됨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용어는 미국의 역사학자 슐레진저 2세가 1973년 출간한 『제왕적 대통령제(The Imperial Presidency)』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닉슨 행정부의 막강한 권위를 언급하면서 "미국의 대통령은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헌법에서 제한된 범위를 넘었다"라고 지적했다.

포퓰리즘(populism)
대중을 중시하고 반엘리트적인 관점에서 정치 및 사회 체제의 변화를 주장하는 수사법, 또는 그런 변화로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 및 활동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 목적을 외면하고 대중적 인기에만 영합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 행태’, ‘인기 영합 주의’ 등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패권 정당 체제
여러 개의 정당 가운데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 지배 정당이 정치를 주도하는 정당 체제를 말한다. 지배 정당 이외의 정당은 단지 민주적 제도를 포장하는 역할에 그치며, 지배 정당을 견제하거나 지배 정당과 경쟁하는 기능은 가지지 못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한국 정치는 결코 유쾌하지 않다. 큰 기대감 속에 선출된 대통령은 얼마 지나고 나면 실망과 원망의 대상으로 바뀌고,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눈앞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집착한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도 예전의 권위주의 시대와는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생겨났다. 대통령을 욕한다고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니고 선거에 국가기관이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일도 없어졌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는 권력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되었고 여야 간 평화적 정권 교체 역시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만은 더 커졌고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정치 개혁에 대한 갈망은 강해졌다.

이런 모든 현상을 보면 건강한 민주주의를지속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며, 끊임없는 성찰과 제도 개선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도 우리 정치의 모습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 한국 정치의 드라마틱한 주인공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된 한국형 대통령제는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한국정치가 행정 위주의 질주에서 멈추기 위해서는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새로운 통치 형태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라면 헌법 제정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헌법의 제정이 처음부터 정부 형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대통령이야말로 한국 정치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다.

3ㆍ1 운동은 그렇게 상해임시정부, 한성임시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노령露領임시정부 등이 세워지면서 독립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는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규정했다.

오늘날의 헌법도 "3ㆍ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정부 형태에 진통을 겪다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처음 ‘국무총리제’를 채택하는데, 이승만이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로 선정되었다.

이승만은 대외 활동을 하면서 상해임시정부의 국무총리 대신 집정관총재를 ‘President’로 번역하여 사용했다.

결국 상해임시정부는 이승만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무총리를 정부 수반으로 하던 통치 형태로부터 9월 11일 ‘임시 대통령’을 두는 대통령제로 정체를 바꾸게 되었다.

제11조 임시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고 정무를 총감하며 법률을 공포함.

제37조 국무총리와 각부총장과 노동국총판을 국무원이라 칭하며 임시대통령을 보좌하며 법률 급(及) 명령에 의하여 주관행정사무를 집행함.

제39조 국무원은 임시대통령이 법률안을 제출하거나 법률을 공포하거나 혹은 명령을 발포할 시에 반드시 차(此)에 부서(副書)함.

정부 형태의 변화뿐만 아니라 상해임시정부, 한성임시정부, 노령임시정부가 9월 6일 하나로 통합을 했다는 점에서 당시 헌법 개정은 큰 의미를 지닌다.

현재 우리가 상해임시정부에 상당한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이때의 통합과도 관련이 있다.

이후 1925년 4월 7일 대한민국 임시헌법은 다시 개정되어 ‘국무령제’로 바뀐다.

또한 미주 지역의 독립운동 자금이 이승만의 외교 활동비로 집행되면서 송금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 임시정부 측과 갈등을 빚게 되었고, 과거 이승만이 미국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에게 한국을 위임 통치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던 것도 논란이 되었다. 이 때문에 1925년 3월 이승만에 대한 탄핵안이 임시의정원에서 통과되었다.

그 이후 4월 7일 개헌을 통해 정부 형태는 내각책임제로 바뀌게 된다.

제4조 임시정부는 국무령(國務領)과 국무원(國務員)으로 조직한 국무회의의 결정으로 행정과 사법을 통판함. 국무원은 10인 이내 5인 이상으로 함.

제5조 국무령은 국무회의를 대표하여 그 결정을 집행 우(又)는 집행케 하고 임시의정원에 대하여 책임을 부함.

제6조 국무원은 국무회의의 일원으로 일체 국무를 의정함.

제7조 법률을 공포하며 명령을 발하며 법안을 제출하며 기타 중요문건을 발할 때는 국무령과 국무원의 연서로 함.

1927년 4월 11일 시행된 대한민국 임시약헌에 의해 이제 정부 형태는 ‘국무위원회제’로 바뀐다.

제28조 임시정부는 국무위원으로 조직한 국무회의의 의결로 국무를 총판함. 국무위원은 5인 이상 11인으로 함.

제29조 국무회의는 그 결정을 집행 또는 집행케 하고 임시의정원에 대하야 책임을 짐.

제36조 국무회의는 그 주석 1인을 국무위원이 호선함.

1940년 10월 9일 개정된 대한민국 임시약헌에 의해 정부 형태는 ‘주석제’로 바뀐다.

이전의 임시약헌에서 주석은 호선했지만 1940년 개정된 임시약헌에서 주석은 임시의정원에서 3년 임기로 선출하도록 했으며, 임시정부를 대표할 뿐 아니라 국군을 통솔하는 등 주석에게 강화된 권한을 부여했다.

제 27조 국무위원회의 주석의 직권은 다음과 같다.
1. 국무위원회를 소집한다.
2. 국무위원회의 회의 시에 주석이 된다.
3. 임시정부를 대표한다.
4. 국군을 통감한다.
5. 국무위원의 부서로 법률을 공포하고 명령을 발한다.

이러한 정부 형태는 1944년 4월 22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제정을 통해 개정되었다. 전쟁 상황에 대한 고려도 있었겠지만 그 무렵 김원봉의 조선민족혁명당과 김구의 한국독립당(한독당) 간의 좌우 합작이 이뤄졌기 때문에 통치 구조의 변화도 필요했다.

제18조 임시의정원은 국무위원회 주석 부주석급 국무위원이 실직위법 또는 내란 외환 등 범죄 행위가 있거나 혹은 신임할 수 없다고 인정할 때에는 탄핵안 혹은 불신임안을 제출하여 탄핵안이 통과되면 그를 면직하고 불신임안이 통과되면 그가 자행 사직함.

제30조 국무위원회의 직권은 아래와 같다.
1. 복국과 건국의 방책을 의결함.
2. 법률 명령 급(及) 제안에 관한 사항을 의결함.
3. 예산 결산 예산 초과 급(及) 예산 외 지출을 의결함.
(이하 생략)

이처럼 임시정부 시기에는 국무총리제, 대통령제, 국무령제, 국무위원회제, 주석제 등 다양한 정부 형태가 시도되었다. 그런데 임시정부의 기본 정체는 어떤 형태를 취했다고 해도 임시의정원이 행정 권력을 견제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적 요소가 보다 강했거나 혼합형적 특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임시정부를 구성하는 제한된 인물들 중에서 입법과 행정의 영역을 나눠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목할 점은 국무회의, 국무총리, 대통령, 국무위원의 부서副書, 법률안과 예산안의 제안 등 오늘날 우리의 통치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용어나 기능을 임시정부 시기의 정부 형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임시정부에서의 논의는 해방 이후 통치 구조 논의 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해방 이후 여러 가지 헌법안이 논의되었는데, 그중 행정연구위원회의 역할에 주목할 만하다. 임시정부의 내무부장이었던 신익희를 중심으로 70여 명의 고등 문관 출신의 법률 전문가들로 조직된 행정연구위원회는 임시정부의 산하기관으로 구성되어 새로운 국가의 통치 형태와 정부 조직을 연구하는 역할을 했다.

임시정부 내무부장인 신익희의 이름으로 미군정에서 일하고 이느한국의 노동자, 경찰, 상인들은 파업하라는 포고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을 간접적으로 지배하던 소련과 달리 남한을 직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미군정 입장에서는 마치 쿠데타와 다름없는행동이었다. 미군정은 자신들 이외의 어떠한 형태의 권력기관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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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일이라면 그도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튼튼하고 잘 드는 칼을 산 것이다. 그러나 입을 열어 "죽이자!"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망설여졌다.

"약을 사용한 일시적 도핑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신체를 개조하는 연구였어. 들은 적 없어?"

"예컨대 스테로이드 아기 연구. 자세히 말하자면 임산부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해 태아 자체를 개조한다는 거야."

혈액 도핑은 시합이 있기 20일쯤 전에 선수의 몸에서 1,000cc 정도의 혈액을 빼내 냉동 보관했다가 경기 직전에 적혈구만 다시 주입하는 방법이다. 다량의 산소 섭취가 가능해진 근육은 지구력이 30퍼센트나 향상된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체육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기가 아니라 창가에 늘어선 트로피와 상장들이었다.
이런 걸 원했던 게 아닌데. 스스로에게 말했다. 봐! 이런 것들은 아무 쓸모없는 것들이야, 잡동사니일 뿐이지.

그래, 다음에는 이혼 서류를 가지고……. 거울 속 아내와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그 여자, 타란툴라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였을까. 나를 지키기 위해선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여자를 죽이고 그 죄를 우리 가운데 누군가에게 덮어씌운다.
그것도 여자가 남은 두 사람을 죽인 후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지. 결과는 기막히게 내 생각대로 됐어."

"조금 전, 센도의 권총을 어쩌다 주웠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사실은 그때부터 너희들 셋을 죽일 생각이었어. 아니, 훨씬 오래전부터 내 과거를 아는 사람은 전부 없애고 싶었어."

"그럼…… 센도도."
"맞아. 갑자기 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계산이 있었던 것 같아. 여기서 죽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미안해, 라는 소리가 또 희미하게 들렸다.
너는 미쳤어……. 유스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모든 게 약 때문이야.

"근접 거리에 적이 있는데 쏘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즉 거기에 있던 사람은 히우라에게 적이 아니라 동료가 아니었을까요?"

배신과 복수로 점철된 이 피 튀기는 혈전을 숨죽여 따라가다 보면 인간성과 모성애마저 도구화하는 비정함과, 성공 지상주의에 눈멀어 뒤엉킨 욕망의 실타래를 끝내 풀지 못하는 개인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목격하게 된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팽팽하게 가로챌 뿐 아니라 사회와 인간에 대한 묵직한 성찰까지 선사한다는 것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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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툴라. 밑에서 보니 훨씬 더 거대하게 보였다.
이제 끝이다……. 다쿠마는 속으로 읊조렸다.
다쿠마가 조금 전까지 들고 있던 총이 여자의 손에서 불을 뿜었다.

경시(警視, 한국 경찰의 경무관, 경찰서장이나 본부 과장 직책을 맡는다)

경부보(警部補, 순사부장 보다 두 직급 위로 한국 경찰의 경위에 해당, 경찰서 계장 직책을 맡는다)

그녀는 지하철 입구가 나오자 자전거를 밖에다 두고 내려갔다.
그 시간에는 이미 지하철 운행이 끊어졌는지 지하도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통로 구석에 신문지를 깔고 웅크리고 자는 남자가 곳곳에 있었다.

몇 초 만에 지하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쇼코는 막 한 발을 내디뎠다. 그때 갑자기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뺐다.

시토는 수긍했다. 도핑이라는 말은 알고 있다. 선수가 경기 성적을 높이기 위해 금지된 약물 등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서울올림픽에서 벤 존슨이 금메달을 박탈당한 일이 가장 유명한데 그와 비슷한 일이 많았고 지금도 위반 선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금지 목록에 실리지 않은 약물을 사용하면 체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금지 약물을 검출하기 어려운 약도 있습니다.
약물이 개발되는 속도를 검사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특히 당시의 소변검사는 허점이 많았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본인에게 들은 바로는 그도 원래는 가업인 병원을 계속 이어받으려고 의학도의 길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치료가 아니라 인체 개조 쪽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가 강한 관심을 가진 것이 나치가 행한 것으로 알려진 다양한 인체 실험입니다. 그는 그것에 관한 자료 입수와 관계자 취재를 위해 유럽에 갔습니다."

"벨메켄?"
시토는 가나이와 동시에 말했다.
"불가리아의 오지입니다. 그곳에 스포츠과학을 연구하는 구동독과 불가리아의 공동연구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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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손가락이 바를 잡았다.

열 번째를 넘기면서부터 그 리듬이 차츰 흐트러졌다. 하지만 여자는 끝내 같은 동작을 열두 번 반복했다.
"좋았어!"

"어둠 속 생활도 이제 곧 끝이야. 너는 빛으로 나간다. 그렇게 세상을 바꾼다. 장애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내가 어떻게든 해볼 거다. 그것만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네 애정에 답하는 거니까."

"제군들, 도둑놀이는 끝났네."

이 방에 갇혀 있는 것이 지금까지 그녀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문이 열린다. 그렇게 믿었다. 그가 죽은 지금도 그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야마나시 현경은 돌연 부산해졌다. 부검 결과로 화재사건이 갑자기 살인사건으로 다뤄지면서 관할 경찰서에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남자의 이름은 센도 고레노리였다. 나이는 56세, 본적지는 나가노 현 마쓰모토 시.

경부(警部, 한국 경찰의 경감, 경찰서 분서장이나 과장·과장대리직·본부 계장 직책을 맡는다)

순사부장(巡査部長, 한국 경찰의 경장, 경찰서 반장 직책을 맡는다)

순사(巡査, 한국 경찰의 순경)

"여기에 누군가가 갇혀 있었다는 건가요?"

"정말 그래. 하지만 저 동네 사람들은 재미있지만은 않을걸. 권총을 가진 범인이 어슬렁거린다고 생각하면 편안히 잠들 수 없을 거야.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저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어."

"그건 아마…… 센도의 비밀병기일 거야."
"비밀병기? 그게 뭔데?"

여자는 경찰관을 죽이고 ‘우리’를 빠져나온 뒤 조금 떨어진 빈 별장에 숨어들었다. 옷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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