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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의 성장이 의미하는 것
헤세가 보낸 전환기적 유럽의 시대적 상황은 『데미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데미안』은 지나간 시대와의 완전한 종결이자 현대적 세계질서의 고통스러운 탄생을 의미했던 1차 세계대전 중에 집필되었고, 1919년에 발표되었다.

싱클레어의 성장은 선과 악의 구분, 윤리, 종교, 관습에 따라 규정되는 전통적인 가치체계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삶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데미안』은 전통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 새로운 가치체계를 만들어나가야만 했던 당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충실한 대답인 것처럼 보인다.

내 스스로의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 오로지 그것만을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런데 "내 스스로의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꿈을,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우리 내면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 순수한 소망을 의미할까? "내면"에 대한 『데미안』의 다른 구절들을 살펴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 책상 위에는 니체의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나는 니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고, 그를 쉼 없이 몰아친 운명의 냄새를 맡았으며, 그와 함께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토록 가차 없이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인간 개체는 세계의 근원적 의지, 즉 세계의 근원을 이루는 거대한 욕망이 그 실현 과정에서 개별화된 존재로 분화된 것이며, 따라서 우리를 지배하는 욕망 역시 세계의지의 개별화된 발현에 불과한 것이다.

『데미안』을 읽는 동안 우리는 모두 이렇게, 비록 한순간일 뿐일지라도, 우리 내면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가 유일무이한 소중한 존재이며, 동시에 세상의 중심임을 느낀다.

바로 그것이 『데미안』을 통해 헤세가 보여준, 진정으로 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얼마나 오해를 했든 『데미안』이 우리에게 남겨준 감동과 위안은 언제나 옳다.

일반적으로 독일문학은 줄거리가 재미있기보다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가들을 놓고 보면 이러한 평가가 딱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다른 나라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독일문학도 수백 년의 역사 동안 무수히 많은 다양한 작가들을 배출한 만큼, 모든 시대, 모든 작가들을 아우르는 특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헤세는 한 인터뷰에서 『데미안』이 늙은 삼촌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싱클레어를 작가로 발표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헤세는 당시 『수레바퀴 아래서』 등을 통해 이미 이름이 많이 알려진 작가였기 때문에, 『데미안』이 ‘헤세’라는 작가에 대한 선입견 없이 읽히기를 바랐던 것이다.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인 것은 없다
-젊은 베르터의 고통

『젊은 베르터의 고통』에서 놀라운 것은 각각의 층위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서로 방해하거나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며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양파껍질을 벗기듯 한 꺼풀씩 벗겨가며 즐길 수도 있고,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감상할 수도 있다.

‘슬픔’이 아닌 ‘고통’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데미안』 못지않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소설이다. 그런데 이 제목은 조금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제목은 일본식 표기와 영어 번역의 영향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제목임에는 틀림없다.

다행히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라는 올바른 번역을 제목으로 가진 번역본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으니, 익숙하지만 잘못된 번역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베르테르 신드롬’이라는 개념이나 괴테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및 오페라의 제목 ‘베르테르’까지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나는, 물론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탓에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뒤로 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그런데 지난 밤 꿈속에서
그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더 강한 사람들이 살아남는 거야."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증오했다.
 
이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 독일의 유명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쓴 시 「나, 살아남은 자Ich, der Überlebende」이다.

나치에 저항하여 싸우던 시적 자아는 어느 날 전투에서 운 좋게 홀로 살아남았다. 뜻을 같이한 동료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이 생존은 시적 자아에게 기뻐할 만한 일이었을까? 나라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동지들이 모두 기뻐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과연 나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 있을까? 살아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처절한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브레히트는 단 세 개의 짧은 문장만으로 잘 묘사해내고 있다.

실제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과 눈물을 발판 삼아 이뤄진 이 땅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에 널리 읽혔고,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눈물이 맺히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이 시를 읽으며 자신의 친구가, 선배와 후배가 다치고 죽어가는 사이에 자신은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느꼈던 자괴감과 괴로움, 안타까움이 되살아남을 느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극복해야 할 부조리가 차고 넘치긴 하지만 어쨌든 곤봉과 방패, 최루탄과 싸우는 것이 더 이상 일상은 아닌, 오늘날의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독자들은 80년대의 젊은이들이 브레히트의 시를 읽으며 느꼈을 그 감정을 똑같이 느끼기는 어려울것이다.

괴테의 또 다른 이름, 독일 고전주의

독일어로 Klassik, 영어로는 classic인 ‘고전’은 classicus라는 라틴어에서 온 형용사로, 원래 ‘상류층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가, ‘최고 수준에 속하는, 모범적인’으로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이 단어는 이후 유럽 문명의 출발점이자 전범인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뜻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며, 근대에 와서는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전범으로 삼는 최고의 예술이 꽃을 피웠던 시기를 지칭하는 예술사조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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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답이 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독일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문학작품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일부와도 같은 작가와 작품을 분석과 치밀한 해석의 틀 안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조금은 도발적인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가 말한다.
"안 마시면?"
남자가 잠시 숨을 돌리고 대답한다. 여전히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다.
"평생 볼 일 없는 거지."

문학작품의 ‘해석’은 줄거리 이면에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단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 조각씩 찾아내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선 세심한 독서다.

『데미안』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헤세와 그가 살아간 시대의 독일에 대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데미안』을 해석해야 한다.

"신은 죽었다" 새로운 세계관의 탄생
 
작가 외에는 그 무엇도 되려 하지 않다

당시 선생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유롭고 고집이 세며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이었던 헤세는 다루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엄격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헤세는 학교 무단이탈 등의 문제를 일으키다 급기야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1906년에 마울브론 신학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가 발표된 후에는 작가로서 그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다.

헤세가 1946년에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오히려 그의 고국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것도,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헤세의 작품들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었다. 1919년 이래로 스위스에서 살았던 헤세는 지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최소한 주류에 속하는 독일인들에게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헤세는 1962년에 스위스의 작고 아름다운 도시 몬테뇰라에서 눈을 감았다.

내면으로의 길을 안내하는 『데미안』

헤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그의 삶을 관통하는 몇 개의 키워드가 눈에 띈다. 바로 방황, 저항, 방랑과 같은 것들이다. 이는 강압적인 교육에 신음하는 소년을 묘사한 초기작 『수레바퀴 아래서』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과 방랑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와 만년의 대작인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그의 소설들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발전소설, 혹은 성장소설은 독일문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괴테의 장편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1795/96)에서 처음 그 전형이 만들어진 이후 독일 소설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은 소설 형식이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 내면에 무엇이 있기에 헤세는 이렇게 집요하게 내면으로 들어갈 것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혹은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헤세가 살아간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정신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만든 인간의 형상에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을 깨웠듯이 "자연과학의 숨결이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이었다.

자연과학은 이제 ‘만물에 깃든 진리’, 즉 모든 자연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자연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학문으로 이해되었다. 이에 따라 문학, 철학 등 자연과학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인문학에서도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르노 홀츠Arno Holz는 예술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두고 "예술=자연–x"라고 주장했다.

역시 자연주의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콘라트 알베르티Konrad Alberti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소설을 지배하며,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드라마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자인 에밀 졸라Emile Zola가 「실험소설론」이라는 에세이에서 인간 행동과 운명은 물리적ㆍ유전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삶의 물리적ㆍ유전적 조건만 주어진다면 소설을 통해 사회 문제나 사회 정책을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오귀스트 콩트는 인간의 지식이 3단계에 걸쳐, 즉 "종교의 시대–철학의 시대–과학의 시대"를 거쳐 발전하며, 인간에 대한 연구 역시 자연과학적 방법론, 즉 구체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법칙에 도달하는 귀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철학사적 측면에서 실증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유럽 문화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온 인간 이해에 대한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을 자연과학적 방법에 따라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 역시 절대적인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현상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세계관 아래서 인간은 다른 자연적 존재들과는 달리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신과 자연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가 세계관과 인간관, 가치체계의 중심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너무나도 유명해진 니체의 문장 "신은 죽었다"로 요약할 수 있는 19세기 중후반의 이러한 상황은, 곧 가치체계 중심의 부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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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의 해석(interpretation)
일반적으로 높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문학작품들은 줄거리 이면에 또 다른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숨어 있는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내는 것을 해석이라고 한다. 해석은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데,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개의 경우 이 숨어 있는 이야기들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기전환기(世紀轉換期)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의 사회와 문화에서 일어난 격변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말이다. 흔히 산업혁명, 세계대전, 자연과학의 발달 등과 함께 풀이된다. 인간관과 세계관의 변화로 인해 사회 전반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양상이 나타난다.

자연주의(naturalism)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하는 사실주의적 경향을 계승하되, 변화한 사회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 및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나타난 19세기 후반의 문학 및 예술사조다. 전통적인 예술적 경향으로부터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이상주의적ㆍ형이상학적 경향에 반대하며, 인간과 사회의 그늘진 구석이라 하더라도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극단적인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유미주의(aestheticism)
세기전환기에 생겨난 다양한 문학적 경향 중 하나다. 예술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오로지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을 지향한 문학사조를 뜻한다. 비슷한 시기에 상징주의, 인상주의, 신낭만주의, 신고전주의 등의 문학적 경향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독일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서양 철학의 발전과 독일 근대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문학이 이성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계몽주의 문학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또 고전주의 작가들이 칸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점에서 칸트가 독일문학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독일의 고전문헌학자이자 철학자다. 명성을 얻은 것은 사후의 일이지만, 자연주의 이래로 유럽 문학과 예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몰락해가는 기독교와 유럽 문화를 주요 주제로 삼고 새로운 미적 가치를 내세운 세기전환기의 문학적 경향이 탄생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발전소설(Bildungsroman)
독일문학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소설 형식 중 하나로, 성장소설이라고도 한다. 방황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내용을 담은 소설을 뜻하며, 18세기 후반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에 의해 전형이 만들어진 후 독일 소설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환상문학(fantasy fiction)
자연법칙을 파괴하는 초자연적 사건을 묘사하는 소설 형식이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낭만주의 시기에 이르러 계몽주의의 이성 중심적 사고에 대한 반발로 첫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이성과 과학이 크게 발전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했으며,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특히 대중문학 쪽에서 주요 장르로 자리 잡았다.

‘고전을 올바로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숨은 이야기를찾아내는 것, 즉 우리가 ‘해석‘이라 부르는 세심한독서와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같은 책
- 호프만스탈의 672번째 밤의 동화

18, 19세기 유럽에서 명작으로 인정받았던 문학작품은 당시 유럽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흥미롭고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받았던 작품들이다. 그런데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전혀 모르는 오늘날 한국 독자에게도 그 작품들은 흥미롭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작품이 쓰인 시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상세하게 소개함으로써 작품에서 얘기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통적인 문학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고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오늘날 개인의 자유시간을 책임지는 콘텐츠로서 문학, 특히 고전문학은 분명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속도감 있는 내러티브가 지배적인 오늘날 문화산업에서 선행지식 없이 이해하기 어렵고, 두 번 세 번 읽어서야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고전문학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 책은 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 헤세 『데미안』

『데미안』은 구체적인 ‘내면’의 뜻과 무관하게, 삶의 의미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모든 이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데미안』을 읽고 감동하는 시기가 보통 사춘기이자 방황의 시기, 즉 모든 가치를 부정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상실했음에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무언가를 아직 찾지 못한 시기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데미안』이 내 삶을 영영 바꿔놓고 말았다

이러한 린덴베르크의 경험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그 시기의 기억이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지 않고 이후의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헤세의 소설들이 남긴 인상이 너무나 강렬해서일까? 아니면 헤세의 소설이 삶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어떤 계기를 제공했거나, 매우 중요한 개인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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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도 생각한다. 살아 있어 봐야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저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하루가 시작되고, 일을 하면 배가 고프니 밥도 먹는다. 그리고 또 일을 하면 지쳐서 잠이 오니 자고 만다. 그 반복, 그저 그뿐이다.

인간은 웃었을 때와 멍하니 있을 때 본성이 나온다. 오유는 ‘싫은 놈이네’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그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손님 출입이 일단락되었을 때 물어보니, 남자는 음식값이라며 금화 한 푼을 두고 갔다고 한다.

"거스름돈은 필요없다더군." 주인이 말했다.

"이건 좋지 못한 일의 시작이야. 그런 손님이 붙다니."

"심상치 않아서 그런다.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우리 가게에서 내놓는 밥에 금화 한 푼 정도의 가치가 있을 리 없어. 그 손님은 우리 가게에 있는, 무언가 파는 것이 아닌 것에 눈독을 들인 게지."

주인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겨우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

주인의 아내도 겉멋으로 얼굴에 주름을 만들어 오지는 않은 것 같다.

"가미카쿠시(알 수 없는 이유로 행방불명이 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까?"

"후리소데 화재(메이레키 3년(1657) 정월에 발생하여 다음 날까지 시내의 육 할을 태우고 죽은 사람만도 십만여 명이나 나온 에도 최대의 화재)가 있었잖아요."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야말로,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마침 야경꾼이 지나가거나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도랑에 걷어차 쓰러뜨린 순간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기도 했다. 끝까지 집요하게 괴로워하며 속세를 살아가고 싶어 하는 아버지였다.

주인의 아내가 돈계산을 할 때의 눈빛을 한 채 오유를 보았다. 오유는 처음으로 기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

오유에게도 지금의 생활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릴 때와 비교하면 혼자서 용케 노력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몸만 튼튼하다면 이대로 언제까지나 근심 걱정 없이 먹고살 수 있다.

돈계산을 할 때 주인 부부가 왜 그렇게 어두운 눈빛을 하는지, 그 이유를.

그것은 돈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하고 또 일해도 하루에 겨우 이 정도 매상밖에 나지 않는 것인가 하고, 하늘을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런 불공평한 돈의 분배를 바로잡을 기회가 눈앞에 버티고 있는데 그것을 망치려고 하고 있는 오유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에도는 돈을 벌 곳이 많은 도시다. 안주인이 아무리 엄하게 굴어도 일할 사람들은 계속해서 흘러 들어온다. 대부분은, 땅을 일구어 작물을 키워도 태반은 자신들의 손을 그냥 지나쳐 가고 마는 밑바닥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서, 에도로 나가면 조금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맨몸으로 덜렁 올라온 농민 출신의 남자들이다.

노렌
상점 이름 등을 물들여 가게 앞에 거는 천

대낮부터 놀러 다니는 남자들과 그런 남자에게 매달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조금도 즐겁지 않은 듯한 웃음소리를 등진 채, 오유는 가끔 고리짝을 추슬러 올리면서 묵묵히 걸어갔다.

"일하지 않고 매일 꿈만 꾸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극락이 아닌가요? 저는 그런 사치를 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 오마쓰 씨도 내일 먹을 밥을 위해 오늘 가능한 돈을 벌어 두어야 하는 생활을 한다면, 그런 느긋한 병 따윈 단숨에 나아 버릴 거예요."

거문고나 꽃꽂이 따위는 죽어도 배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은 오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오유는 알고 있다. 내일 밥을 먹기 위해서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열심히 바느질을 하는 처녀들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고시장지
아래쪽을 징두리 또는 맹장지로 하고, 볕이 잘 들도록 얇은 종이를 바르거나 유리를 끼운 장지

"그래. 자네는 모르나? 혼조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라는 것을. 뭐, 시시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인데 그중에 ‘꺼지지 않는 사방등’이라는 것이 있네."

어느 이팔 메밀국수밀가루와 메밀을 2대 8의 비율로 만든 국수 가게의 사방등 불은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언제나 똑같이 타오르며 꺼지는 모습을 아무도 본 적이 없다. 또 기름을 채우는 모습도 볼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오유 씨, 나는 ‘오스즈 아가씨가 살아 있다’고 믿는 것이 마님에게는 ‘꺼지지 않는 사방등’이 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살아가기 위한, 발밑을 비추기 위한 사방등이."

오스즈는 살아 있다. 거문고를 배우고 꽃꽂이를 하고, 장래에는 이 집안을 물려받을 것이다─.

마음속의 꺼지지 않는 사방등인가. 오유는 생각했다. 그것을, 어쩌면 꿈이나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와 함께 이 이상한 고용살이도 그리 괴로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유지로에게 배우는 것도 있고, 오마쓰의 곁에 있는 것이─누구에게 부탁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유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으로서─자신의 역할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유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화재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밤하늘에 비치는 불꽃은 무섭지만 아름답기도 했다. 잠시 넋을 잃은 채 보고 있었을 정도였다.

오마쓰는 결코 미친 것이 아니다. 이상해진 척하며 남편이 땀흘려 번 재산을 깎아먹고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게 하면서 즐기고 있다. 오마쓰가 미친 척을 해도 사정이 사정인 만큼 기헤에도 그녀를 내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지로의 생각과는 반대로, 이치케야 주인 부부의 꺼지지 않는 사방등은 증오의 기름으로 타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어 봐야, 정말로 좋은 일이라곤 없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어떤 가치나 사람에게 ‘네가 최고로 여기고 있던 그건 사실 하찮은 것이었다’., ‘넌 어떤지 몰라도 나에게 넌 아무 의미도 없다’. 배신당하고, 거부당한 적이 있으신지.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 같은 비참함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지.

거참, 울지도 못하게 뭐 이렇게 밝은 걸까요. 세상이 필요 이상으로 밝다는 것을, 가끔은 어둠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전 그때 깨달았답니다.

에도의 밤은, 먹처럼 새까맸습니다. "손을 대어 보면 무겁게 느껴질 것 같을 만큼 짙고, 맛을 보면 틀림없이 쓸 것"

상처를 치료하는(적어도 진정시키는) 방법은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품고 있었을 때 자신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부해졌는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마음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 상처는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더 누군가를 아끼면서 성숙하고 튼튼해진 그 마음을 쉽게 손상시킬 수는 없습니다.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에 서글퍼지고 지칠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에 ‘다음’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계속 살아갑니다. 까마득한 삶의 구원이라고 믿었던 빛이 ‘무자비하게’. 눈을 찔러도, 차라리 ‘포근한’.둠에 가라앉아 버리고 싶을 때도, 어두운 밤 조용히 등 뒤를 밝히는 불빛을 찾아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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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스코틀랜드인 토마스 블리이크 글로버가 지은 저택.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들을 미나미야마테 언덕 주변으로 이전 및 재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 다. 언덕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나가사키항과 나가사키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입구를 지나 공원으로 들어가면 서양식 주택과 예쁜 정원이 나온다.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구 링거 주택을 비롯해 구 구라바 주택, 구 올트 주택들이 예스러운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세계 3대 오페라로 손꼽히는 푸치니의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가 나가사키를 무대로 작곡되었기에 원내에는 자코모 푸치니 의 동상과 오페라에서 프리 마돈나로 출연한 미우라 다마키 三浦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공원 입구에 있는 레트로 사진관에 들르면 당시 서양 여성들이 즐겨 입던 의상을 대여해 산책을 나설 수있다.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옛날의 정취를 즐기는 것도 재미난 추억거리이다. 정원 바닥에 박혀 있는 ‘행운의 하트 스톤’을 찾아 나선 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
오우라 천주당 大浦天主堂
지도 235p-L
가는 법 노면전차 5호선 타고 오우라텐슈도시타大浦天主堂下 정류장 하차, 도보 4분
주소 長崎市南山手町5-3
전화 095-823-2628
운영시간 08:00~18:00
(입장 마감 17:45) 요금 600엔

1864년 프랑스인 선교사가 기독교 박해로 인해 순교한 26성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교회로 정식 명칭은 ‘일본 26성인 순교 성당’이다. 유럽을 연상시키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뚝 솟은 성당의 첨탑이 성스럽게 다가온다. 구라바엔으로 가는 언덕길 끝에 위치한 성당 앞에는 가파른 돌계단이 놓여 있고, 그 위로 우뚝 솟은 고딕 양식의 건물이 보인다. 성당 입구에 세워진 성모상은 성스러운 자태를 발휘한다. 성당 내부 유리창에는 예수의 일대기를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일본에서 현존하는 교회 중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으로 1933년 국보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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