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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이름이자 단어이며, 강한 힘을 지닌다.
마법사가 되는 어떤 주문보다도혹은 영혼이 응하는 어떤 주술보다도 강하다.
찰스 디킨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중매쟁이는 갈수록 가난해지는 나라에서도 살림이 넉넉한 하숙집의 형편에 흡족했고, 훈이도 건강한 색시를 맞을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제대로 일을 진척시켰다.

시어머니가 약방에가서 한약을 지어 와 달여주었다. 양진은 갈색약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신후큰돈을 쓰게 해서 죄송하다고말했다. 양진이 출산하고 나면 훈이는 산모의 몸조리에 좋은 미역국을 끓여주기 위해장에 가서 질 좋은 미역을 사 왔다. 아이가 죽은후 매번 훈이는 따뜻하고 달달한 떡을 사 와 양진에게 주었다. "먹어야 된데이. 힘을 내야 할 거 아이가."

마침내 양진은 네 번째 아이이자 유일한 딸인 선자를 낳았다. 선자는 살아남았다. 선자가 세 살이 되고서야 선자의 부모는 옆에 누워 있는 작은 형체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지 거듭 들여다보지 않고도 잘 수 있었다.

선자가 열세 살이 되던 해 겨울에 훈이가 결핵으로 조용히 죽었다. 양진과 선자는 장례를 치르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다음 날아침, 젊은 과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그라제, 고 잡놈들이 한 입씩 야금야금 먹을지는 몰라도 중국을통째로 집어삼키지는 못할 것이여. 안 된당께!" 정씨 형제 중 둘째가외쳤다.

"싹수없는 난쟁이들이 고 큰 나라를 손에 쥐지는 못하지라. 중국은 우리 형님이잖여! 일본은 그냥 썩을 종자고." 막내인 뚱보가 물잔을 상에 내리치며 소리쳤다. "중국이 고개새끼들을 가만 안 둘 것이여! 두고 보소!"

가난한 사내들은 하숙집 허름한 담장 안에서 일본 순사들에게 잡힐 걱정 없이 강력한 일제 식민통치자를 조롱했다.

"나라를 잃은 거야 다우리 잘못이지예. 나도 그건 압니더."전 씨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망할 양반들이 우릴 팔아넘겼다 아닙니꺼. 배짱 있는 양반이 한 놈도 없심더."

이 젊은 남자는 바깥세상을 보고 싶어 한 자신에게, 결코 건강해질 수 없는 병약한 몸이란 걸 알면서도 오사카까지 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인 자신에게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접촉한 사람들 중 누구라도 감염된다면 그사람의 죽음은 순전히 자기 탓이었다. 이삭은자신이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빨리 죽기를 바랐다.

믿을 거는 자신뿐인 기라.

고한수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았다. 선자가 장에 갈 때마다 불쑥나타나서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선자는 한수의 눈길을 모른 척하며 제 볼일을 보려고 했지만, 한수가 나타나면 얼굴이 붉어지곤했다.

"네 얼굴은 참 선해." 한수가 말했다. "정직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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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결코 대중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마더 테레사

테레사 수녀
Teresa, Anjeze Gonxhe Bojaxhiu

출생 1910. 8. 26. 유고슬라비아
사망 1997. 9. 5.
수상 1979년 노벨 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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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그것은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이다.

인간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그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시도해서, 더러 성공도 하고, 많이는 실패하면서 또 새롭게 모색하고 시도하고……. 그 끝없는 되풀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

그 고단한 반복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 그것이 인간 특유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그 ‘큰 연습’ 한 가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 오다가 이 작품을 엮어냈다.

"진정한 작가란 어느 시대,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 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진보성을 띤 정치 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

남다르게 질곡 많은 삶에 그만큼 회한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 시대의 짐을 지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일생을 살다 갔다.

"모르겠소, 처자식들한테 배척당하는 서글프고 한심한 신세에 쏘련마저 저 지경이 됐으니 이젠 어디다가 마음을 기대고 살겠소. 아무 가망이 없어요. 세상이 이 꼴로 변해갈 줄 알았더라면 그때 차라리 떡공이들한테 맞아 죽었어야 하는 건데, 괜히 목숨은 질겨가지고……. "

윤혁은 진저리를 쳤다. ‘떡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찬 기운이 오싹 등줄기로 뻗쳤던 것이다. 떡공이란 강제 전향을 시키기 위해 동원된 폭력배들이었다. 조폭, 살인범, 강도강간범 등 흉악범들로 짜인 그들은 교도소 안에서 저희들 맘껏 폭력을 휘둘러댔다.

교도관들이 부채질을 해대고 있으니 그들의 기세는 거칠 것이 없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신성한반공투사야. 그들에게 주어진 명분이었고, 그들이 내세우는  자랑이었다.

"윤 동지는 아직까지도 혁명적 낙관주의를보지하고 있군요. 난 성품이나 품성이 모자라서 그런지 어쩐지 그냥 막막하고 암담할 뿐이오. 빌어먹을 팔자....... 조심해 가시오."

혁명적 낙관주의를 보지하고......, 열기 뜨거웠던 옛 시절의 어투를 듣자 윤혁은 콧등이시큰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금세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런 증상은 육십 고개를 넘기면서부터 생긴 것이었다.

인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조차 있다니……. 그건 그다지도 믿고 자랑스러워했던 사회주의 조국의 종말 현상이었다. 그는 가슴속에 드높이 쌓아올렸던 의지의 성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굉음을 듣고 있었다.

종교란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하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일체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내세우는 예수교인들로서는 신을 부정해 버리는 공산주의 무리들은 사탄일 수밖에 없었다. 그 용납할 수 없는 충돌이 박동건 부부가 끝끝내 화합하지 못한 뿌리였다.

무너진 건 쏘련이지 주체조국은 난공불락, 승승장구, 영구불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 설득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북쪽 땅을 떠날 때만 해도 당원들은 인민을 위해 얼마나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었던가. 전후복구를 하는 건설현장에서도 당원들은 인민들보다 돌 하나라도 더날랐고, 밥을 먹을 때도 인민들을 다 먹인 다음에 먹지 않았던가. 인민들 또한 몸 사리지 않고 얼마나 열성적으로 일했던가. 당원의 타락이나 인민의 나태란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소련이라고 달랐을리 없다.

북쪽의 그런 아름다운 협동과 조화는 사상의 형제국인 소련과 중공으로부터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요 귀여운 것들이 없었더라면 내 세상살이가 얼마나 팍팍 했을 것인가....... 이 생각과 함께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박동건도 이런 아이들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가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자신은 이 애들 남매를 사흘거리로 만나며 삶의 새로운 활기를 얻었던 것이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그래, 그걸 어쩌겠나. 실패한 이념이고, 망한 체제가 되었으니 역사의 비판을 받게 되는건 사필귀정 아닌가. 타당한 비판이라면 달게받아야지. 그게 역사의 엄정성 아니겠나."

어떤 사람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비판합니다. 그 일당독재는 부르주아 계급의 발호를 차단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제멋대로 독주하는 당에 대한 무비판과 무견제가 당의 절대권력화를 촉진하게 되고,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타락한다는 보편적 진리에 따라 몰락을 자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바르고 건강한 정치가 되었으려면 최소한 양당제는 했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을 ‘도덕적 인간’으로 개조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억지로 실천하려고 한 오류를 비판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정치적 이상에 맞추어 개조할 수 있는 존재이기 이전에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본능적 존재이며, 인간의 이기욕이란 식욕과 성욕에 뒤지지 않는 중대한 본능인데 인간을 개조하려는 정치적 욕심은 그 본능을 무시함으로써 인간의 노동 욕구를 파괴했고, 그 비극은 사회 전체의 파멸로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당이 인민들의 균등한 행복을 위한다며 당의 일방적인 계획대로 직업을 배치하고, 행동을 통제한 어리석은 자만을 비판했습니다. 인간이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모두가 제 각각 개성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성품이 다른데, 인간을 마치 기계나 기계 부속품처럼 취급해서 자율성을 박탈하고 창조성을 파괴함으로써 성취욕을 꺾음과 동시에 노동의 질적 저하, 게으른 타성을 만연시켜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권은 평등하되 능력은 평등할 수 없는데, 그 간단명료한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란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당은 무오류’라고 한 오류를 저질렀다고 비판했습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은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서 이미 확실하게 입증된 사실인데, 아무리 두뇌 명석하고 이론 탁월한 사람들이 모여 공산당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당은 무오류’라고 선언한 그 당당함이 바로 인간의 불완전함을 극적으로 입증한 오만이 아닐 수 없고, 그 오만이 저지른 결정적 오류가 ‘당은 무오류’라고 한 단언이고, 그런 당의 절대 신성시 위에서 당은 봉건권력화했으며, 당원들은 그 우산 아래서 반인민적 관료주의에 취해가며 부패와 타락의 길로 치달아갔으니 몰락은 필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문제 많고 모순 많은 천민성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30년 이상 지탱되어 온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는 절대로 뿌리내릴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그 주장을 아주 잘 실증하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이기 이전에 본능적 존재야. 그래, 본능적 존재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이성의 힘이 큰 존재로 보려고 한 것이 착각이고……, 큰 오해를 저지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북쪽에서 한때 개인적으로 텃밭 농사를 허락한 일이 있었다. 전후 복구와 사회조직의 편성·강화가 겹쳐진 시급한 상황 속에서 식품난을 해소하려는 방책이었다. 그러나 당에서는 한 계절이 지나기 무섭게 텃밭 농사를 폐지시켰다. 왜냐하면 집단농장의 배추보다 개개인의 텃밭에 있는 배추가 훨씬 더 컸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만 주면 어떤 종교 행사든 참가하는 수인들을 ‘떡신자’라고 불렀다.

사회주의의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나라마다 그 지경이 되는 것일까. 사회주의는 애당초 인간 사회를 이끌 수 없는 이념이고 체제였을까. 그 체제가 건재할 수 없는 것은 사회주의의 결함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의 결함 때문일까. 사회주의의 결함 때문이라면, 그 결함은 도대체 무엇일까.

마르크스주의란 기본적으로 밥 먹는 철학인데도 그것을 실현시키지 못해 결국은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다.

일찍이 혁명 투쟁을 전개하면서 마오쩌둥이 갈파한 말이 있었다. 인민은 물이요, 당원은 물고기다. 그 유명한 말은 북쪽의 전후 복구 상황 속에서 당원들에게 거듭거듭 되풀이해서 강조된 말이었다. 인민 우선, 인민 중시를 각인시키는 그 말은 바로 당원들이 갖춰야 할 기본자세를 뜻했고, 당원들이 곧바르게 가야 할 길을 가리킨 것이었다.

우리의 진보를 이끌어온 어느 학자가 최근에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글을 썼습니다. 바로 그 문제를 다룬 글인데, 아주 설득력이 있고 감동적입니다.

"예,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건전한 보수와 생산적 진보를 조화시켜 좌우의 날개로 균형을 잡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구상입니다."

냉전시대를 통해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한테 안 먹히려고 사회복지제도를 얼마나 강화시켜 왔어. 만약 그런 노력 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기로 자본가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더라면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더 먼저 무너져버렸을 거다 그거야.

제가 아이들과 오래 살아보니까 아이들은 인간의 꽃입니다. 그러니 저희 보육원은 인간의 꽃밭입니다. 여생을 웃음꽃 속에서 살고 싶으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이 꽃밭으로 오십시오.

그동안 끄떡없이 잘 버텨오신 까닭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어때서 그래. 이게 좀 좋아. 내가 청소를 말끔히 해서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깨끗한 변소를 쓰게 되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나. 자네 모르지? 예쁜 아이들 똥에서는 쿠린내가 아니라 단내가 나는 거."

‘SL-17’은 브루스 커밍스가 미국의 정보공개법에 따라 비밀이 해제된 문서들을 10년 동안 찾아 헤맨 끝에 입수한 것이다. 이 문서는 미국이 이미 북의 침공을 조종하면서 부산 방어선으로의 후퇴와 인천 상륙작전까지 계획했음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고, 전쟁의 과정과 결과는 이 계획이 별다른 오차 없이 그대로 진행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남북한과 유엔군을 동원하여 한반도의 분단과 그것의 장기화 또는 영속화를 위해 한판의 전쟁놀이를 벌인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하여 분단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현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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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 원, 동녕부 설치
1274 세자(충렬왕), 제국대장공주와 혼인, 원종 훙거,  충렬왕 즉위1차 일본 원정
1278 김방경 유배
1280 정동행성 설치
1281 2차 일본 원정
1283 원, 일본 정벌 전면 중지
1290 합단의 침입, 원, 동녕부 반환
1291 설도간, 합단 토벌, 홍다구 사망
1300 김방경 사망

몽고정
경남 창원시 마산 합포구에 있는 고려 시대 우물로,  1281년 일본 원정을 앞둔 몽골군이 합포에 진을 치고 군사와 군마의 식수 확보를 위하여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96 세자(충선왕), 계국대장공주와 혼인
1297 제국대장공주 훙서
1298 충선왕에게 전위, 충렬왕 복위
1301 탐라총관부 폐지
1307 충선왕, 원 무종 즉위를 도움
1308 충렬왕 흥거 충선왕 복위
1310 충선왕, 세자 감 제거
1313 충숙왕 즉위, 연안군 고 세자 책봉
1314 충선왕, 연경에 만권당 건립
1316 충선왕 왕 자리를 세자 고에게 이양, 충숙왕 복국장공주와 혼인
1320 원 영종, 충선왕 토번으로 유배
1323 충선왕 복권
1325 충선왕 훙거

만권당
충선왕이 연경에 머물며 학문을 탐구했던 만권당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중국 베이징시 위위안탄(玉淵潭) 공원의 모습이다. 충선왕이 토번으로 유배되면서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자기 나라로부터 버림받고 각자도생의 처지에 몰린 이들이 부대를 이뤄 몽골군을 무찌르거나 이역만리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는 데서 고려의 강함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것은 결국 민초들 개개인의 강함이 아닐는지.

제주 남부 해안에서 최근 큰 피해가 되는 현상으로는 갯녹음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바다 밑이 녹아내린다는 뜻으로 붙은 이름인데, 몇몇 산호에서 관찰되는 석회조류라고 하는 생물들이 갑자기 번창하면서 다른 생물들은 점점 살기 어렵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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