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을 한 접 깐다고 할 때 마늘은 몇 알캥이나 될까.
국물용 멸치를 한 박스 깐다고 할 때 멸치는 몇 마리나 될까.

그게 왜 궁금하냐고,
그거 알아서 뭐 하겠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는 친구 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친구 하고 싶을 때도 있어서,
대답을 생각해 본다.

마늘이 좋아서 그럴까?
멸치가 좋아서 그럴까?

하나, 둘, 셋, 넷, 수를 세다 보면 다리 저리지, 허리 아프지. 그래도 다섯, 여섯, 참고 일곱, 여덟, 계속하지.

우와 백 개 넘어가.
우와 이백, 삼백!

아직도 남았네.
아이구 허리야.

다 깠다!

아!

알았다!

마늘 육백 아흔 아홉 개 다 까고 너랑 친구하려고 그래.
멸치 한 박스 다 까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한 박스에 몇 마리나 들었는지 너랑 같이 알아보고 싶어서 그랬어.
너랑 친하고 싶어서 그랬어.

끝까지 수를 세는 사이.
끝까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
끝까지 같이.
끝까지.

한 올 한 올,
한 올 한 올,
한 올 한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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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12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이버 2020-12-1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밀화 그리는 분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마늘 한 접, 멸치 한 박스 모두 다듬은 잘잘라님께서도 대단하십니다!

잘잘라 2020-12-13 08:17   좋아요 1 | URL
마늘 한 접, 멸치 한 박스를 다듬을 수 있는 체력과 인내심을 확인해서 저도 무척 뿌듯해요. 😉
 
경이로운 동물들 아트사이언스
벤 로더리 지음, 이한음 옮김 / 보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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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몸에 갇힌 좌절한 자연사학자'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벤 로더리가 그린 동물 그림이다. 이게 참 희안한 것이, 이게 만약 사진이라면 이렇게 오래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몇날 며칠씩 이렇게 계속 생각나지도 않을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은 모두 한 사람이 그렸고, 이런 책을 한 권도 아니고 몇 권씩이나 낸 벤 로더리(로더리 로더리 하니까 처음엔 로더린지 로타린지 그러다가 로더리 오더리 오드리? 하면서 오드리햅번 생각나고 막 그런다)라는 사람이 글쎄 할아버지가 아니고 아저씨도 아니고 글쎄 30대 청년이라는 것이 놀랍다. 와 이 부분에서 나는 참, 동물들은 물론 경이롭지만, 벤 로더리 씨도 장난 아니네요, 하는 심정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그럴라고 리뷰 쓰는 거임)

 

우선 크기에 대해서 말하자. 

요즘 알라딘에서 거금 5만 8천 원을 주고 산 본투리드 코듀라 백팩을 메고 다니는데 아침에 이 책을 가방에 넣을라고 하니까 굳이 넣을라면 넣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자니 자크 열고 닫을 때 찡길까봐 신경이 쓰여서 빼놓고 왔을 정도로 그렇게 크다.


그 큰 책을 왜 굳이 가게에 들고 올라 그랬냐면,

이번주 내내 울산에도 확진자가 많이 나온 까닭에, 가게 문을 열기는 열었지만 하다못해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드물 만큼 인적이 뜸하여 하루 종일 지키고 있어봐야 담배 몇 갑만 팔면 되는 정도로 한가한 이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맘놓고 가게에서 눈에 띄게 커다란 그림책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책은 들고 나오지 못했지만 급한대로 사진은 몇 장 찍어왔다.

조명이나 각도나 좀 더 신경써서 찍었드라면 그만큼 더 보기 좋은 사진이 되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실물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니, 어떤 부분에서라도 조금이라도 구미가 당기신다면은 가차없이 바로 책을 주문하여 이토록 경이로운 동물들과 함께 즐거운 연말 분위기를 돋구어 보는 것도 상당히 뜻깊은 행사가 아니겠나 뭐 그런 혼자 생각을 하면서,


* 이것은 순전히 한 땀 한 땀, 한 올 한 올, 그야말로 사람 손으로 그린 수작업 결과물이라는 증거로서 제출하는 사진임을 알아주신다면 더할나위 없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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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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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이 확, 아주 화끈하게 확- 올라왔다. 이 책을 읽기 전에 50% 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하던 수치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90%까지 올라왔으니 그야말로 획기적, 기록쩍, 역사적인 일이다.


무슨 확률이냐고? 책 제목이 '책 한번 써봅시다'니 보나마나 책 쓸 확률이 아니겠냐고? 그렇다. 맞다. 왜 아니겠나. 무슨 근거로 그런 확률을 들이미냐고? 나, 나 자신, 내 마음이 그렇다고 하니 이보다 더 확실한 근거가 없다. 


이 책을 읽고도 책을 쓰지 않는다면 그건 책을 쓰고 싶지도 않으면서 가짜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가짜 욕망, 자기 기만, 거짓말일 뿐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책의 탈을 쓴 거짓말 탐지기다.


무서운 책이다.

별 생각 없이 집어들었다가,

끄덕끄덕 하며 초반부 읽다가,

자세 고쳐 잡고 중반부 읽다가,

벌벌 떨면서 끝까지 읽었다.


책을 쓰지 않을 생각이면서 책을 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핑계댈 수가 없을 테니까.


아, 지금 이 순간 떠오른 카피 한 줄.

'식당업계에 백종원이 있다면, 출판업계에는 장강명이 있다!'

줄여서 짧게 말하자면,

'장강명은 출판업계의 백종원'


있는 비법 없는 비법 다 알려줘도 결국 장사를 할 사람만 하는 이치.

이렇게나 다 알려주고 퍼줘도 결국 책을 쓸 사람만 쓰는 이치.


그나저나 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인가.

책 쓴 자가 될 것인가.


후덜덜.

가차없는 결말만이 나와 함께 하리.

하리라, 랄라라라~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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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2-0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률이 확, 아주 화끈하게 확- 올라왔다 ˝
궁금해지는 책이네요.

잘잘라 2020-12-08 23:11   좋아요 0 | URL
아싸아~ 페크님의 궁금증을 유발하였다니, 오늘 리뷰 대성공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여덟 가지
박준석 지음, 이지후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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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어하는 계절이 바로바로 지금이다!'(p.84)

*

나도 봄이 싫다.

봄에는 꽃이 피기 때문이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해가 져도 봄바람이 살랑거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봄비도 내린다.

 

견딜 수 없는 계절이 바로바로 지금이다!

 

그래도 살아간다.

 

이사한다고 전세자금대출도 받았고

장사한다고 소상공인지원대출도 받았다.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지.

꿈은 잃어버렸지만,

책임은 잊지 않아.

쪽팔리기 싫어서 살으리라.

오래오래 살으리라.

봄을 좋아하도록 살으리라.

봄을 좋아하도록

오래,

오래,

오래.

 

 

[내가 좋아하는 계절]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과일과 밤, 잣, 도토리, 쌀이 나와서다. 게다가 단풍잎도 떨어진다.

덤으로 내가 싫어하는 계절은 봄이다. 왜냐하면 봄에는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꽃가루가 많이 날려서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폐 질환 때문에 호흡기가 약해서고 꽃가루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다.

내가 싫어하는 계절이 바로바로 지금이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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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 MAYBE - 너와 나의 암호말
양준일.아이스크림 지음 / 모비딕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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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고들 하지만 경험 역시 내게는 쓰레기다.

경험이란 내가 겪고, 내 눈으로 본 것일 뿐 진실이 아니다. 과거가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못하도록 나는 오늘도 머릿속 쓰레기를 비우며 그 속에 숨은 보석을 찾는다.(110쪽)

 

'경험 역시 내게는 쓰레기다'라는 문장을 읽고 깜짝 놀라 뒤로 물러 앉았다. 그야말로 놀라 자빠질 뻔 하였다. 처음 들어보는 얘기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생각이다. 좋은 경험이든 안 좋은 경험이든, 많이 경험해 보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으아, 정말이지 머리 전체가 띵-해지는 순간이다. 나에게 경험은 '쌓는 것', '쌓아두면 좋은 것', '쌓아두면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는 것'이었더란 말이다. 아아, 그동안 쓰레기를 쌓아왔더란 말인가. 으아으아으아아.

 

게다가 '경험이란 내가 겪고 내 눈으로 본 것일 뿐'이라니. 그럴 뿐, 진실이 아니라니.

내가 겪고, 내 눈으로 본 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진실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디에 있는 건 둘째 치더라도 대체 어떻게 찾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렵구만. 하아.. 어렵다.

 

쓰레기 치우느라 잠도 오지 않는다.

끝없이 나온다.

아.. 저 문장을 읽지 말았어야 해.

아.. 저 페이지를 찢어버릴까.

아.. 이거 참. 야단났네.

 

 

 

 

 

 

[경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고들 하지만 경험 역시 내게는 쓰레기다. 경험이란 내가 겪고, 내 눈으로 본 것일 뿐 진실이 아니다. 과거가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못하도록 나는 오늘도 머릿속 쓰레기를 비우며 그 속에 숨은 보석을 찾는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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