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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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학생 시절부터 익숙한 명작 소설들이 이렇게 좀비물로 변주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게 본 작품은 김성희의 <관동행>. 고등학생들을 괴롭히는 <관동별곡>으로 유쾌한 사극 좀비물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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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 나뭇조각에 담겨 있는 백제인의 생활상
백제학회 한성백제연구모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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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고대의 국가인데다 다른 나라에 멸망당해서인지 백제 관련 사료는 다른 시대에 비해 유난히 적다. “토기 파편 몇 조각을 가지고 논문 수십 페이지를 쓰려니 죽겠다”는 백제사 연구자분의 한탄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날 정도다. 사료 부족으로 허덕이는 백제사 연구자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목간木簡이다. 목간은 종이가 보편화되기 이전에 사람들이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썼던 나뭇조각이다. 1999년 부여 궁남지에서 백제시대 목간이 대량으로 출토된 이후로 20여 년 동안 목간을 통한 백제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연구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연구 결과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백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중 독자들에게 목간을 통해 새롭게 해석한 백제사를 들려주려 만든 책이 『목간으로 백제를 읽다』다.

나주 복암리에서 발굴된 목간들. 백제의 지방들에서도 문서 행정이 이루어졌고, 지방 관리들이 주민들의 연령대별 인구 수, 재산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시대의 목간들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정치, 행정과 관련된 것이다. 백제 조정에서는 목간과 종이를 활용해 문서 행정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종이로 된 행정 자료는 남아 있지 않으니 백제시대의 문서 행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려면 목간을 연구할 수밖에 없다.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같은 우리나라 사서에는 없고 『주서』같은 중국 사료에만 나와 있던 ‘외경부’라는 중앙 행정 기구의 명칭이 적혀 있었다. ‘외경부의 철로 면 10냥을 대신한다’고 쓰여 있는데, 철과 면은 특산물로 바치는 세금인 조調에 해당하는 물품이다. 이를 통해 외경부가 조세 등 백제의 국가 재정을 관장하는 행정 기구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수도인 부여뿐만 아니라 나주 같은 지방에서도 목간이 발굴되어 지방에서도 목간을 활용해 문서 행정을 운영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주 복암리에서 발굴된 호적 목간에는 해당 지역의 연령대별 인구수와 전답별 면적, 가축의 수가 적혀 있다. 여기에서 백제의 지방 관리들이 주민들의 인구수와 재산, 소득 상황까지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와 같이 백제시대 목간은 현존하는 역사서에 남아 있는 내용을 증명하고 보완할 뿐만 아니라, 백제사에 대한 새로운 내용까지 밝혀내고 있다.


부여 쌍북리에서 출토된 구구단 목간(왼쪽)과 해독본(오른쪽), 9단부터 2단까지 구구단이 적혀 있다. 이 목간 덕분에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이미 구구단이 활용되어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진 출처: 한국문화재단


  백제시대 목간은 백제의 정치, 행정뿐만 아니라 백제 사람들의 학문 수준도 알려준다. 2011년 부여 쌍북리에서는 2단부터 9단까지 구구단이 기록된 목간이 발굴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구구단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구구단이 들어왔다는 설까지 있었다. 그러나 백제시대의 구구단 목간이 발견되면서 삼국시대부터 이미 구구단이 활용되어 오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외우는 구구단이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백제가 멸망한 지 수백 년 뒤인 중세시대의 유럽에서도 숫자를 쓸 줄 아는 것은 소수의 상류층과 지식인들뿐이었고 이들조차 덧셈과 뺄셈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구구단 목간은 백제가 복잡한 산술 체계를 이해하고 활용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목간을 통해 백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 백제 왕들이 묻혀 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 옆에는 왕들의 명복을 비는 절 능사陵寺가 있다. 이 능사 터에서 ‘자기사子基寺’라는 세 글자가 적힌 목간이 발굴되었다. ‘자기사’라는 절에서 능사에 보낸 물품에 붙인 꼬리표로 추정된다. 조경철 교수는 ‘자기사’를 ‘아들의 터가 되는 절’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이 절을 부모가 아들을 위해 세운 절이라고 본다. 부여 왕흥사 터에서 출토된 사리함에 “왕흥사는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세운 절”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조경철 교수는 왕흥사가 자기사와 같은 절이라고 가정하고,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위덕왕의 슬픔을 짐작해 본다. 능사에서는 ‘오랜 세월 맺은 업으로 같은 곳에 태어났으니, 서로 옮고 그름을 물어 무엇하겠습니까. 부처님께 절 올리고 귀의합니다“라고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 조 교수는 이 목간에 신라군에게 죽임당한 아버지 성왕, 성왕과 함께 목숨을 잃었던 백제 병사들에 대한 위덕왕의 슬픔이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자기사와 왕흥사가 정말 같은 절인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 능사에서 발견된 목간에 대한 해석도 연구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지만, 목간을 통해 역사 이면에 담긴 백제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려는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대중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보니 학술서보다는 쉽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것이 느껴진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글씨 크기가 크고 행간도 넓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편집과 디자인이 세련되고 깔끔하며, 모든 사진 자료들이 컬러로 되어 있어 보기에도 좋다. 

 

  하지만 각 챕터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시대 목간들 중 중요한 몇몇 목간들을 공통적으로 다루다 보니 겹치고 반복되는 내용들이 꽤 있다. 물론 각 장을 맡은 저자에 따라 목간을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저자가 설명하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비슷하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연구 결과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보니 대중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몇 줄의 목간에서 백제의 정치, 행정, 사회, 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유추해 내는 학자들 덕분에 우리는 백제의 숨겨진 면들을 보게 된다. 중국, 일본의 사료나 유사한 사례들까지 살펴보면서 목간에 적힌 사실의 파편들을 역사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놀랍다. 수십 만 점의 목간들이 출토된 중국과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500여 점의 목간만이 출토되었고, 그 중 70퍼센트는 신라 목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목간이 꾸준히 출토되고 있다고 하니, 백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이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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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 나뭇조각에 담겨 있는 백제인의 생활상
백제학회 한성백제연구모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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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독자가 읽기에 조금 딱딱한 면이 있다. 하지만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면, 작은 나뭇조각 위의 몇 글자를 통해 백제의 숨겨진 면을 드러내는 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깔끔한 편집과 디자인, 컬러 사진들 덕분에 만듦새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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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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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에서 미술사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미술사에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있었던가?” 내가 프리다 칼로를 이야기하자 교수님이 말했다.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 아류잖아? 또 다른 사람은 없어?” 나도 다른 학생들도 위대한 여성 미술가를 한 명도 더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틀렸다. 프리다 칼로는 결코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아류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했어야 했다. “왜 미술사에는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없을까?”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 이것은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klin이 던진 질문이다. 렘브란트, 루벤스, 마네, 모네, 반 고흐, 피카소까지 수많은 남성 거장들이 미술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런데 이들에 필적하는 여성 거장은 미술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노클린은 미술사에서 여성 거장이 나타나지 않은 원인으로 남성 중심 사회의 성차별을 지목했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술 교육을 받는 데도 작품 활동을 하는 데도 제약을 받았고,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육아와 가사 노동을 떠맡았기 때문에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그렇게 자신을 옭아매는 가부장적 사회의 성차별과 싸우며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여성 미술가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 실린 21명의 여성 미술가들 중 대다수가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여성 미술가의 작품은 남성 미술가의 작품보다 열등한 것, 아류로 여겨지거나, 심지어 동시대의 다른 남성 미술가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리에타 로부스티, <자화상>, 1580년.

마리에타 로부스티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의 딸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수백 년 동안 아버지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다.


  그렇게 지워진 여성 미술가 중 한 사람이 마리에타 로부스티Marietta Robusti다. 우리는 마리에타 로부스티가 누군지 잘 모르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잘 알고 있다. 본명인 자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보다 별명인 ‘틴토레토Tintoretto’로 잘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화가. 마리에타는 틴토레토의 자녀들 중 예술적 재능이 가장 뛰어났고, 틴토레토는 평생 동안 딸과 공동 작업을 했다. 딸이 서른이 될 때까지 결혼조차 허락하지 않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한 집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데릴사위를 들였을 정도로 틴토레토는 딸에게 집착했다.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의 군주들이 마리에타를 궁정화가로 채용하려 했지만, 틴토레토는 마리에타를 자기 작업장에서만 일하도록 했다.


<소년과 함께 있는 노인의 초상>, 1585년.

틴토레토가 아닌 마리에타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지만, 아직까지 소장처인 빈 미술사박물관에서는 틴토레토의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마리에타가 아이를 낳다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난 후, 틴토레토의 창작 능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페미니스트 미술가 그룹인 게릴라 걸스Guerilla Girls는 사실상 틴토레토 작업장의 핵심이 그녀였기 때문에 그녀가 죽은 뒤로는 틴토레토가 예전만큼의 창작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마리에타가 자신의 서명을 남긴 작품은 단 한 개였기에 그녀가 죽은 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아버지나 다른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전해져 왔다. 최근 르네상스 시기 여성 미술가들의 작업을 재조명하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아버지의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들이 그녀의 그림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녀를 떠나지 않았던 아버지의 그늘이 이제야 조금씩 걷히고 있는 셈이다.


  마리에타가 겪었던 가부장제의 억압 외에 여성들이 미술사의 거장으로 자리 잡지 못하게 했던 원인이 또 있다. 회화와 조각은 미술 분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야로 여겨졌는데, 여성들은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가족이 아닌 남성 미술가의 수업을 사적으로 들을 수 없었고, 회화 기술을 익히는 데 필요한 누드 데생 수업도 받을 수 없었다. 또한 여성은 육체적인 힘도 지적 능력도 부족해 조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이 할 수 있었던 예술 작업은 공예와 자수였고, 이것들은 남성들에게만 허락된 회화, 조각, 건축보다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다.




(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골로 뒀던 패션 디자이너 로즈 베르탱이 디자인한 드레스

(가운데) 요아나 쿠르턴, <사냥 장면>, 1700. 종이 공예 작품이다. 

(아래) 영국의 정원 디자이너 거트루드 지킬이 디자인한 헤스터콤 하우스의 정원.


  그래서 저자가 선택한 전략은 미술사의 범주를 회화, 조각뿐만 아니라 패션, 공예, 디자인 분야까지 확장해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난한 시골 소녀에서 세계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가 된 로즈 베르탱, 종이 오리기 공예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던 요아나 쿠르턴, 시력 손상 때문에 화가의 길을 포기했지만 캔버스 대신 정원 조경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거트루드 지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예술을 펼쳤던 여성들의 삶이 드러난다. 미술사의 주류에 속하지 않는 장르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미술사의 거장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그녀들은 분명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많지 않은 분량 안에 21명이나 되는 미술가들을 다루다 보니 한 명당 내용이 그렇게 깊지 않다는 것이다. 요아나 쿠르턴의 경우 도판을 제외한 텍스트 설명이 4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막 재조명되기 시작한 미술가들이 대부분이라 관련 연구 자료가 부족해서였겠지만, 좀 더 깊이 있게 여성 미술가들을 알고 싶었던 독자로서는 맛보기만 한 기분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21명의 여성 미술가 모두가 유럽 출신이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메리카 지역의 여성 미술가들은 한 명도 다루어지지 않아, 서양미술사 책이라 하더라도 유럽 쪽에 치우쳐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근현대에 들어선 이후로 서양 미술 분야에서 활약한 아시아, 아메리카 지역의 여성 미술가들도 많을 텐데. 화질이 낮은 도판들이 종종 눈에 띄고 크기를 너무 작게 해 놓은 도판들이 많은 것도 미술사 책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판면 구성을 수정해서라도 도판을 더 크게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아쉽지만,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 가려져 있던 여성 미술가 21명을 만날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각자 처한 상황과 한계 속에서도 자신이 갈 길을 모색하고 개척해 갔던 그녀들의 삶이, 아직도 남아 있는 성차별이라는 벽을 허물려고 하는 우리에게 영감과 힘을 준다. 아직도 전 세계에서 남성 미술가 대 여성 미술가의 전시회 비율이 70 대 30일 정도로 미술계의 성차별은 심각하다. 그러나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라는 17세기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선언을 마음속에 품고 계속 정진하는 여성 미술가들이 있기에,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의 이름을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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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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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여성 미술가들을 알려준 것만으로 의미 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시대의 한계를 뚫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분투해 왔는지를 깨닫게 한다. 다만 자료가 부족해서인지 한 명 한 명을 자세히 다루지 못한 점, 화질이 좋지 않은 도판들이 여러 개 눈에 띈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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