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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 나뭇조각에 담겨 있는 백제인의 생활상
백제학회 한성백제연구모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0년 6월
평점 :
먼 고대의 국가인데다 다른 나라에 멸망당해서인지 백제 관련 사료는 다른 시대에 비해 유난히 적다. “토기 파편 몇 조각을 가지고 논문 수십 페이지를 쓰려니 죽겠다”는 백제사 연구자분의 한탄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날 정도다. 사료 부족으로 허덕이는 백제사 연구자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목간木簡이다. 목간은 종이가 보편화되기 이전에 사람들이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썼던 나뭇조각이다. 1999년 부여 궁남지에서 백제시대 목간이 대량으로 출토된 이후로 20여 년 동안 목간을 통한 백제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연구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연구 결과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백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중 독자들에게 목간을 통해 새롭게 해석한 백제사를 들려주려 만든 책이 『목간으로 백제를 읽다』다.
나주 복암리에서 발굴된 목간들. 백제의 지방들에서도 문서 행정이 이루어졌고, 지방 관리들이 주민들의 연령대별 인구 수, 재산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시대의 목간들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정치, 행정과 관련된 것이다. 백제 조정에서는 목간과 종이를 활용해 문서 행정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종이로 된 행정 자료는 남아 있지 않으니 백제시대의 문서 행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려면 목간을 연구할 수밖에 없다.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같은 우리나라 사서에는 없고 『주서』같은 중국 사료에만 나와 있던 ‘외경부’라는 중앙 행정 기구의 명칭이 적혀 있었다. ‘외경부의 철로 면 10냥을 대신한다’고 쓰여 있는데, 철과 면은 특산물로 바치는 세금인 조調에 해당하는 물품이다. 이를 통해 외경부가 조세 등 백제의 국가 재정을 관장하는 행정 기구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수도인 부여뿐만 아니라 나주 같은 지방에서도 목간이 발굴되어 지방에서도 목간을 활용해 문서 행정을 운영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나주 복암리에서 발굴된 호적 목간에는 해당 지역의 연령대별 인구수와 전답별 면적, 가축의 수가 적혀 있다. 여기에서 백제의 지방 관리들이 주민들의 인구수와 재산, 소득 상황까지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와 같이 백제시대 목간은 현존하는 역사서에 남아 있는 내용을 증명하고 보완할 뿐만 아니라, 백제사에 대한 새로운 내용까지 밝혀내고 있다.
부여 쌍북리에서 출토된 구구단 목간(왼쪽)과 해독본(오른쪽), 9단부터 2단까지 구구단이 적혀 있다. 이 목간 덕분에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이미 구구단이 활용되어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진 출처: 한국문화재단
백제시대 목간은 백제의 정치, 행정뿐만 아니라 백제 사람들의 학문 수준도 알려준다. 2011년 부여 쌍북리에서는 2단부터 9단까지 구구단이 기록된 목간이 발굴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구구단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구구단이 들어왔다는 설까지 있었다. 그러나 백제시대의 구구단 목간이 발견되면서 삼국시대부터 이미 구구단이 활용되어 오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도 외우는 구구단이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백제가 멸망한 지 수백 년 뒤인 중세시대의 유럽에서도 숫자를 쓸 줄 아는 것은 소수의 상류층과 지식인들뿐이었고 이들조차 덧셈과 뺄셈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구구단 목간은 백제가 복잡한 산술 체계를 이해하고 활용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목간을 통해 백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한다. 백제 왕들이 묻혀 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 옆에는 왕들의 명복을 비는 절 능사陵寺가 있다. 이 능사 터에서 ‘자기사子基寺’라는 세 글자가 적힌 목간이 발굴되었다. ‘자기사’라는 절에서 능사에 보낸 물품에 붙인 꼬리표로 추정된다. 조경철 교수는 ‘자기사’를 ‘아들의 터가 되는 절’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이 절을 부모가 아들을 위해 세운 절이라고 본다. 부여 왕흥사 터에서 출토된 사리함에 “왕흥사는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세운 절”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조경철 교수는 왕흥사가 자기사와 같은 절이라고 가정하고,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위덕왕의 슬픔을 짐작해 본다. 능사에서는 ‘오랜 세월 맺은 업으로 같은 곳에 태어났으니, 서로 옮고 그름을 물어 무엇하겠습니까. 부처님께 절 올리고 귀의합니다“라고 적힌 목간이 발견되었다. 조 교수는 이 목간에 신라군에게 죽임당한 아버지 성왕, 성왕과 함께 목숨을 잃었던 백제 병사들에 대한 위덕왕의 슬픔이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자기사와 왕흥사가 정말 같은 절인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 능사에서 발견된 목간에 대한 해석도 연구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지만, 목간을 통해 역사 이면에 담긴 백제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려는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대중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다 보니 학술서보다는 쉽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것이 느껴진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글씨 크기가 크고 행간도 넓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편집과 디자인이 세련되고 깔끔하며, 모든 사진 자료들이 컬러로 되어 있어 보기에도 좋다.
하지만 각 챕터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시대 목간들 중 중요한 몇몇 목간들을 공통적으로 다루다 보니 겹치고 반복되는 내용들이 꽤 있다. 물론 각 장을 맡은 저자에 따라 목간을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저자가 설명하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비슷하거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연구 결과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책이다 보니 대중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몇 줄의 목간에서 백제의 정치, 행정, 사회, 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유추해 내는 학자들 덕분에 우리는 백제의 숨겨진 면들을 보게 된다. 중국, 일본의 사료나 유사한 사례들까지 살펴보면서 목간에 적힌 사실의 파편들을 역사로 재구성해내는 것이 놀랍다. 수십 만 점의 목간들이 출토된 중국과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500여 점의 목간만이 출토되었고, 그 중 70퍼센트는 신라 목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목간이 꾸준히 출토되고 있다고 하니, 백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이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