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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달리기 ㅣ 푸른숲 역사 동화 7
김해원 지음, 홍정선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5월
평점 :
요즘 열심히 챙겨보고 있는 드라마 <오월의 청춘>의 원작이라고 해서 관심을 갖게 된 책이다.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원작 소설의 두 주인공 캐릭터를 바탕으로 해서 가족, 친구, 지인 등 조연 캐릭터들을 새로 만들어낸 반면, <오월의 청춘>은 원작의 주인공 캐릭터들을 조연으로 삼고 그들을 바탕으로 주인공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 원작의 주인공 명수의 두 여동생 명옥과 명신을 지우고 그 자리에 광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누나 명희를 여주인공으로 만들어 넣었다. 명수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정태에게는 사이가 껄끄러운 형이 있는데, 이 인물은 희태라는 남주인공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드라마는 명희와 희태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원작의 주인공인 명수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원작을 읽으면서 드라마가 원작에서 이런 부분을 가져왔다는 것이 조금씩 보여 흥미롭게 읽었다.
드라마 <오월의 청춘> 속 정태(최승훈)과 명수(조이현)의 모습
드라마가 1980년 5월을 살아갔던 광주의 청춘들을 다루고 있는 반면, 소설은 소년체전을 준비하기 위해 그때 광주에 모였던 아이들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전남 대표 1000미터 달리기 선수로 뽑힌 명수와 정태, 둘과 합숙소에서 같은 방을 쓰게 된 친구 진규와 성일, 네 명의 소년들이다. 명수와 정태, 진규는 열세 살이고 성일은 열두 살. 고된 훈련에 지치고 좀처럼 넘기 힘든 자신의 한계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아이들은 같이 울고 웃으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1980년 5월 18일, 코치와 감독 몰래 광주 시내로 놀러나간 아이들은 뜻밖의 참혹한 광경과 마주치게 된다. 5 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소설 속 주요 장소들. 광주천을 중심으로 가까이 모여 있다.
소설에 나오는 지명들을 지도 앱에서 찾아가며 주인공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은 지도 속 하늘색 띠, 광주천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명수의 아버지는 명수를 합숙소에 데려다주는 길에 양동시장에 들러 새 운동화를 사준다. 아이들의 합숙소로 쓰인 여인숙은 사직공원 담장 앞에 있다. 아이들이 휴일을 제외하면 매일 가서 훈련했던 무등경기장은 사직공원에서 걸어서 한 시간쯤 되는 거리. 아이들은 매일 아침 뛰어서 무등경기장까지 갔으니 그보다는 시간이 약간 덜 걸렸을 거다. 아이들은 18일 오후 광주공원으로 놀러갔다 시위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진압하는 공수부대와 마주친다. 광주천 건너편, 지금은 철거된 옛 적십자병원에서는 시위 중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했고, 옛 전남도청에는 사망한 시민들의 시신을 모셔두었다. 전남도청과 지금의 광주 지하철 금남로4가역, 금남로5가역을 가로지르는 금남로는 5 18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다. 이렇게 주인공들이 훈련하고 먹고 자고 노는 공간 중 대부분은 실제 광주 시내에 있는 장소들이다. 작가가 장소에 대해 고증과 설정을 꼼꼼히 한 덕분에, 주인공들과 함께 광주 곳곳을 오가는 느낌이 들었다.
5 18의 진행 상황도 사건 전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5 18이 일어나기 전부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시위가 일어나니 돌아다니지 말고 몸 조심 하라고 주의를 준다. 휴일인 일요일이라 광주 시내로 놀러나왔던 아이들은 광주 시내에서 시위하던 사람들과 진압하러 온 공수부대와 맞닥뜨린다. 아이들은 온갖 험한 일들을 목격한 뒤 간신히 합숙소로 돌아오고, 감독과 코치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합숙소에서만 지내게 한다. 그러나 합숙소 밖의 끔찍한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온다. 이튿날인 19일, 비 내리는 밤에 아이들은 방에서 조잘조잘 속마음을 털어놓고, 21일에는 시외 전화가 끊겨 광주 밖이 집인 아이들은 가족들과 연락하지 못하게 된다. 그날 오후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계엄사령관의 담화문을 듣고 코치는 분개한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5 18 민주화운동의 진행 상황과 그때 날씨까지 정확히 고증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의 잔혹한 폭력과 욕설, 전남도청에 줄을 지어 누워 있는 시신들과 그 시신들 앞에서 통곡하는 가족들까지 이 소설은 숨김 없이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주인공 아이들에게나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나. 참혹해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이기 때문이다. 멋있게만 보였던 군인 아저씨들이 사람들을 해칠 리 없다고, 김일성이 보낸 북한군일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그들이 정말 우리 군인이라는 진실에 당혹스러워한다. 게다가 생각지 못한 비극과 위험이 아이들에게 닥쳐온다. 그래도 아이들은 성일의 말대로 "어두운 밤을 밝히는" 우정을 나누면서 함께 씩씩하게 이 비극을 헤쳐나간다.
평범한 사람들이 거대한 폭력을 힘으로 이기기는 힘들다. 하지만 살아남고 연대하고 기억할 수는 있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무기이다. 5 18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 5 18을 학교에서 배웠지만 실감하지는 못하는 아이, 또는 어른에게 이 책은 살아남고 연대하고 기억하는 것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이 책 자체로 5 18에 대해 배우고 느낄 수 있고, 드라마를 본다면 드라마에서 덧붙인 서사와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는 원작만의 서사를 모두 돌아보며 더 풍성하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5 18 당시의 상황이 다음 주부터 나온다. 주인공들 위주로 사건이 전개되니 이 책 속 아이들의 애틋한 이야기가 모두 나오지는 않겠지만,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더욱 빛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와 사랑, 우정이라는 메시지가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