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그녀
부다데바 보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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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서평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아마도 주인공 중 한 명의 시선에서 쓴 글로 보였다. 책에 열중해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녀.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렇게 나를 의식하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이 내게도 있기에, 그 글이 더 애달프게 다가왔다. 어떤 이야기를 읽었기에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글이 나올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어느 겨울 밤 기차가 연착되면서, 한 기차역에서 함께 밤을 새게 된 중년 남자 넷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건축가, 고위 관료, 의사, 작가. 각자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은 그 날 처음 보는 사이였다. 그러나 한 신혼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옛 사랑의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들은 오랜만에 아련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각자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그 서평의 화자는 바로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건축가는 첫 번째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친구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내 친구 얘긴데"하는 이야기 중 많은 이야기가 본인 이야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 남자 마칸랄은 젊은 시절, 이웃집 딸이 베란다에서 책을 읽는 모습에 매혹되어 있었다. 그녀는 교수의 딸이었다. 학자 집안과 연을 맺고 싶었던 마칸랄의 어머니는 그녀의 부모에게 혼담을 넣지만 거절당한다.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다시 끊어진 인연. 마칸랄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이야기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네 개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싱겁고 덤덤한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보다 그 이야기를 토대로 쓴 서평이 더 애절하게 느껴질 정도다. 넷 중 셋은 짝사랑 이야기고, 어쩌면 상대의 마음에 흔적 하나 남기지 못했을 사랑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배경은 1930, 40년대의 인도이다. 2000년대 후반에도 혼처를 이미 정한 부모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려는 자녀가 갈등하는 인도 영화들이 나오는데, 1930,40년대의 인도는 오죽했겠는가. 많은 인도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연인과 도망친다. 그들과 달리 이 책 속 주인공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소심해서 제 자리에 머무른다. 

  이 책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야기보다,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의 한 순간 한 순간들이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단 둘이 집으로 걸어오던 날, 집이 좀 더 멀리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 상대는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나는 두고두고 곱씹어 보는 순간들. 격정적이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 실망하겠지만, 소소한 설렘의 순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들처럼 겨울밤에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읽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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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반짝 2018-05-2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을 때 다 낯설었는데, 그 낯섦이 가져다주는 매력과 말씀하신 것처럼 소소한 설렘의 순간들이 참 좋았어요. 과거에 그렇게 마음 끓여서 누군가를 좋아했던 생각도 났고요.^^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 반가워서 댓글 남겨봅니다.^^

바스티안 2018-08-18 10:3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낯선 나라의 이야기들에 더 끌려요. 살아가면서 겪는 소소한 설렘의 순간들이 참 좋아요. 저는 설렘을 현재진행형으로 느끼고 있어서 이 책이 더 와 닿았고요. 댓글로 같이 얘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