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북구립 조문자전 x 성곡미술 석난희전 x 예술전당 오세영전
공통점은 무엇인가?
옛날 작품도 최근 작품도 다 있는데 헤진 옛 작품의 맛이 훨씬 좋다는 것.
2000년 부근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의 맛이 다르다.
작품에서 60년 이전 출생 옛날 선생님들 특유의 말씨와 어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편안하고 익숙하다. 성북 주택가에 있는 최만린 조각미술관 2층에는 영상에서 들려오는 나이든 최만린 선생님의 나지막한 육성음성처럼 자근자근하다. "조각 한 가지만 보고 달려왔어요. 나는 여러 생각하는 사람이 못 돼요"
낡고 헤진 캔버스에서 묻어나오는 풍화된 결은 새것의 매끈함보다 울림이 깊고 짙고 단단하다. 낡은 캔버스의 오래된 붓자국엔 시간이 스며 있고 그 시간은 삶을, 상처를, 사랑을 기억한다. 세월에 깎인 빛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조문자 선생님의 캔버스에 유화작품은 02, 03, 04, 06 2점, 07 3점, 10년해서 9점 있었는데 이 모두 98년 광야에서한 작품과 비교불가다

3층에는 24년작 214x500 대형작품이 있는데 분명 같은 분이 같은 스타일로 더 좋은 재료로 크게 만들었는데 65, 77, 79, 85, 89, 95년 작품이 훨씬 좋다
오세영 선생님도 2001년 이전 작품의 갈라진 물감자국이 코스믹해진 2020년 부근보다 더 좋다. 석난희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그림에서 세월에 빛 바랜 상처와 아픔이 묻어난다. 붓질 하나에 꾹 눌러 참아온 시련들의 숨결이 피어난다. 숨기려해도 숨길 수 없다. 삶으로 세월이 증거된다. 말없이 버틴 고난은 곪은 상처가 피부에 자국을 남기듯, 생의 아픔조차 아름다운 작품의 일부가 된다.
신선한 이미지보다 바랜 색감이 더 길게 눈에 남는다. 익숙한 화면의 균열은 오래 본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다. 그게 세월의 장독대에서 발효되고 숙성된 그림의 진심이다. 그리하여 오래된 미래. 새로움 속에서조차 낡은 것을 찾는 것이니, 찾는 자는 산삼을 캐는 마음으로 저 벌판을 저 산악을 헤집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