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절판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韋編三絶[위편삼절],晝耕夜讀[주경야독],汗牛充棟[한우충동]...
우리에게는 유독 책에 관련한 성어들이 많다. 시험기간이 되면 혹여나 시험에 나올까 무서워 머리를 싸매고 외워야 했던 성어들, 그 안에 유독 책에 관한 것들이 많았던 것은 왜일까? 아마도 책 속에서 지혜를 찾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스스로 배워가길 바라는 책의 중요성을 그렇게 조금씩 깨달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세월을 따라잡는 가장 좋은 가르침은 바로 책 속에 있으니 말이다.

책으로 상징되는 남자. 단 한 권의 책에 사로잡히다.
어느 날, 비를리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벼룩시장의 노점을 돌아다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맞딱드린다. 그저 어느 노점 앞에서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한 한 사람. 그리고 그 죽음이 벌어진 그 자리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한 권의 책이 남아있다. 비블리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주인 없이 남겨진 책을 보고 겉잡을 수 없는 욕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왜 아니겠는가,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책. 게다가 비블리는 책을 읽고 모으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애서가로 유명한데 말이다. 그는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책을 가져올 길이 모호해지자 급기야 자신의 욕심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책을 훔치기까지 한다. 그저 그 신비하게만 보이는 책을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단 한 권의 책, 그리고 다른 모든 책
비블리는 그 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자 바로 그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한 그의 집착이 시작된다. 오로지 단 한 권 그 책이면 되는 것이다. 책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인들에게 기억되는 비블리가 책에 빠진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정말 놀라운 일은 이제부터이다. 단 한 권의 바로 그 책에 빠진 비블리는 이제 다른 책들을 혐오하기 싫어한다. 그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모아왔던 수 많은 장서들을 보이만해도 짜증이 나는 대상으로 느끼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자신이 모아온 책들을 헐값에 팔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자신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악몽으로도 모자라 몸의 이상을 느끼기를 반복하고 병원을 들낙거리던 비블리. 그는 그렇게 고통에 신음하다 어느날 비명과 함께 책이 되어버린다.

책이 되어 버린 남자. 책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다.
비블리는 그렇게 책이 된다. 그리고 그는 책으로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책에 관련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책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책을 잘라내는 도서관장부터, 수 많은 책에게 사형을 집행한 비평가, 그리고 책 수집가까지.. 그는 책이 되어버린채로 다른 책들처럼, 책이기에 거쳐야할 책으로서의 운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책을 하나의 사물로 보고 책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예전의 비블리가 아닌, 자신이 모으고 사랑했던 책의 입장에서 책을 다루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 비블리. 그는 책이 된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책에게 정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혹은 책의 가치를 바르게 알아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가를 말하려하는 것이다.

책의 진정한 가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안에는 나도 포함되리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책을 대하는 태도에는 조금씩의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그저 책을 모으는 것이 좋아 사서 모으는 사람도 있고, 단 한번의 인상으로 책을 판단하고 다시는 꺼내보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책 한 권에 수 많은 생각을 담아 자신만의 책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물론 책을 아예 읽지 않은 사람도 있고 말이다. 책에 대한 개인의 태도는, 사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일테다. 어떤 방식으로 책을 대하든지,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 해악을 키치거나, 이득을 주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책이 되어버린 남자는 책을 대하는 옳은 방법을 혹은 그른 방법을 지적하려 하는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책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 그리고 그 책에 부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추억들이 존재할때, 그 가치가 그렇지 않은 가치보다는 더 높지 않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여, 책이 되어버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책과 함께 잠시 공감을 이룰 필요는 있지 않을까? 책이 되어버리기 전에 책의 가치를 알아보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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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니스트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안문영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7월
절판


시대를 초월해 한 분야의 장인이나 천재로 기억되는 사람들. 그들의 인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저 그들이 기억되는 그대로 그들에게는 단지 그들의 재능만 존재했던 것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천재나 위인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면, 하늘은 그들이 천재나 위인으로 기억되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남들과 다른 재능 이외에 또 무엇을 허락했던 것일까? 축복받은 재능, 단지 그것만으로는 기억될 수 없는 이름, 천재, 그리고 시대의 위인. 그들이 가졌던 재능이외의 축복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모두가 외면하는 아이, 부모의 눈마저도 그 아이를 외면하다.
<오르가니스트>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남들과는 달랐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엘리아스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에도 다른 아이들처럼 울지 않았고, 마침내 그 목소리를 찾았을때는 끔찍한 소리를 내었으며 눈빛은 흉측한 누런빛이 되어버린다. 누구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 없을만큼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아이. 그 아이는 모두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축복인 부모의 사랑에게도 외면당하고, 그의 부모는 그 아이를 숨기기에 급급한다. 그저 숨겨두고 남들에게 보이면 창피한, 고개 돌려 바라보는 것으로도 모욕당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그들의 보기흉한 흠집으로 여긴 것이다. 아이는 그래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외로움에 방치된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외로움에 던져진 아이. 그래서 엘리아스는 무엇도 자신있게 할 수 없고, 어떤것도 시도할 수 없는 무기력과 공포에 남게 된다.

천재성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원치 않던 재능
<오르가니스트>의 엘리아스에 대해 책은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재능을 말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듣지 못한 것들을 듣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소리를 내는 아이. 그리고 운명적인 오르간과의 만남을 말이다. 비극적 천재의 모습을 그린 많은 이야기들에서는 한번쯤 천재들이 천재로서 재능을 드러내는 순간을 그린다. 그의 인생이 비극으로 끝을 맺을 지언정, 그가 천재임을 세상의 모든 이가 아는 단 한순을 통해, 그런 천재가 존재했음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오르가니스트>의 엘리아스는 재능이 그려지는 순간부터 그의 본격적인 비극이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외로움으로 시작된 그의 인생은 그가 재능을 발하려는 그 순간에도 철저한 외로움과 시지 그리고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주변의 사람들로 철저하게 고립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도 할 수 없었던 불쌍한 한 사람.
엘리아스는 다른 비극적 최후의 천재들이 그랬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죽음은 다른 비극적 천재들의 이야기와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뒤틀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외로움으로 시작한 그의 인생에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었던 누군가의 사랑. 그 사랑은 그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고 때문에 그 사랑에 대한 그의 집착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천재도, 재능도, 모두가 사랑을 앞서지는 못한다.
<오르가니스트>는 여러모로 이미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해진 작품 <향수>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조금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버려지다시피 한 유년시절.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남다른 재능, 그 재능으로도 마지막에는 구제받지 못한 한 사람의 인생. 그리고 죽음이라는 구조 말이다. 하지만 향수가 주인공인 그루누이의 재능에 초점을 맞춰 그의 마지막을 재능을 펼치고자한 욕망의 결과로 결부시킨것과는 다르게 <오르가니스트>의 엘리아스는 그 죽음을 사랑이라는 그의 전 인생을 걸쳐 한번도 가지지 못한 인간을 향한 마음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사랑받지 못했음에 사랑을 받기 위해 혹은 사랑을 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도 목숨도 모두 내던진 것이다. <오르가니스트>는 재능을 펼치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에 가까운 본능이 외면당한 자는 재능도 능력도 의미가 없음을, 그리고 그래서 그가 사람임을 그리고자 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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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모어 이모탈 시리즈 1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2월
절판


누군가는 지겹고 지루하다 이야기 할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버리지 못한는 무엇인가가 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무엇인가는, 많은 것들이 빠르게 바뀌고 사라지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아 사람들을 위로하고 혹은 그들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사라지지 않는 힘을 발휘한다. 수 많은 영화와 음악이 그것들을 기리고, 원하고, 꿈꾸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지루하고 지겹더라도 그것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사랑말이다.

그 무엇도 신기하지 않은 한 소녀의 이야기.
<에버모어>의 주인공은 한 소녀이다. 사고로 모든 가족들을 잃었으나 자신만이 살아남은,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는 말조차 하지 못할 희안한 능력을 얻어버린, 그리고 그 능력으로 인해 자꾸만 숨어들어가게 되는 그런 소녀말이다. <에버모어>의 주인공 에버는 가족을 잃고 혼수상태를 헤매이다 깨어난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녀의 삶은 전과는 달라지게 된다. 물론 가족을 잃은 사고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삶에 일어난 변화가 설명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 현재의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그녀가 사고 이후 얻은 이상한 능력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운을 보여주는 오라를 선명히 보고 죽은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 그래서 그녀는 그 누구와도 100%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를 대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녀는 너무도 많은 것들을 알게 되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점점 자신을 바깥과 격리시키고 온전한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어간다.

누구나 한번쯤 그리는 상상속의 남자.
그런 에버의 주변에 어느날 대단히 눈길을 끄는 남자가 나타난다. 데이먼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 아이는 모두가 바라볼만큼의 뛰어난 외모를 가진 이른바 킹카. 학교의 많은 여학생들이 그를 바라보며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고, 심지어는 에버의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데이먼을 찜했다는 아이가 있을만큼 그는 학교의 스타가 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데이먼은 처음부터 에버에게 눈에 띄는 친밀감을 표시하기 시작한다. 그저 눈길이 가는 남자아이인줄 알았던 데이먼이 에버에게 접근할 수록 에버는 무엇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이고 데이먼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에버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타인의 모든것을 손쉽게 알 수 있는 에버에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데이먼은 처음부터 강력하고 신비한 매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트와일라잇을 닮은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
<에버모어>는 여러모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트와일라잇을 연상시킨다.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가 에드워드라는 남자 뱀파이어이고, 그럼에도 에드워드가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을 가진 여자가 벨라라는 남녀의 설정만이 살짝 바뀌었을 뿐이니 말이다. <에버모어>에서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은 여자인 에버에게 있고 그 능력 바깥의 신비로운 존재는 남자인 데이먼에게 있다는 설정. 어딘지 너무 낯이 익지 않은가..그 외에도 뱀파이어인 에드워드 대신 불사의 존재인 데이먼이라는 설정 역시 어딘지 모르게 트와일라잇과 너무나 유사한 구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들 간의 헌신적인 사랑이라든지 무엇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등의 이야기 구조 역시 지극히 소녀적이고 감성이 풍부했던 트와일라잇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있음을 읽어본 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소녀의 사랑이야기.
물론 이런 이유로 <에버모어>의 소재에 참신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게 된다면 사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트와일라잇과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섞여 있음도 분명히 해야하지 않을까? 트와일라잇이 에드워드와 벨라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에버모어는 조금 더 주변을 돌아본다. 그녀의 죽은 여동생 라일라의 영혼이 그녀를 돌보고, 그녀가 구석으로 자신을 몰아갈때 자신과 같은 공간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조카를 돌보고 있는 이모의 모습도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이먼이라는 존재를 통해 에버라는 상처받은 어린 소녀가 점점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모습은 그저 두 사람만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집중시켜 이야기 하는 트와일라잇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 에버모어라는 이야기만의 매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하겠다. <에버모어>는 미국 드라마 판권이 체결되었다고도 하니 조만간 미드 열풍이 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에버모어>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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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구판절판


누군가가 나에게 살아가며 겪는 일 중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것 같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아마 누군가를 잃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 아니겠냐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을 잃는 일은 때로는 다툼으로, 때로는 오해로, 때로는 실연으로, 때로는 죽음으로 언제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평범한 공포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맞딱드리는 그 순간마다 숨을 멎게 하고 생각을 멈추게 하는 가장 어렵고도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어느날 갑자기 닥치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그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며 애태우는 마음을 간직한채로, 시간도 공간도 아닌 저너머의 어딘가로 사라져 영원히 이별을 해야하는 상실. 그것보다 더한 힘겨움이 과연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남자의 하루
<싱글맨>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어느날 갑자기 잃게 된 한 남자의 하루를 그린 이야기이다. 58세의 대학교수 조지, 그는 사랑하는 연인 짐을 예고되지 않은 불시의 교통사고로 인해 잃은 상실감에 젖은 남자이다. 조지와 짐은 동성의 연인이었고 사고가 있기 얼마전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과 미래를 꿈꾸며 아름다운 계획을 세우던 행복한 연인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에게 예기치 않은 사고가 가져다 준 이별은 한 남자를 무기력의 구석으로 몰고간다. 매일 스스로의 존재조차 인식하고 싶지 않을만큼 생의 의지가 사라진 노년을 향하는 한 남자.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따라 죽을 수는 없기에 그의 생을 연장해야만 하는 그 남자의 하루에는 그래서 세상을 향한 분노와 그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신을 향한 냉소가 담겨있다.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소외받은 자의 냉소
조니는 아침에 일어나 이웃인 스트렁크 가족을 바라보고, 출근길 차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끝없이 세상을 향한 비아냥을 멈추지 않는다. 나와 너를 구분짓고 나와 같지 않은 너에게는 절대로 곁을 내어주지 않은 세상. 그래서 조지는 퀴어라는 단어로 규정된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해 세상에서 외면당한 소외감에 절망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상실감이 더해져 세상을 향한 분노와 비난으로 변화한다.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하는 순간에도 젊음 속에 홀로남은 자신의 노쇠한 몸을 절망하고 친구인 샬롯을 만나서도 이성의 유혹에 무감각할 수 있는 자신에 절망한다. 결국 그는 어떠한 곳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그들과 다른 자신을 절감하며 홀로 방황한다.

나를 보아 달라는 절규.
그리고 그는 그날의 마지막에 자신의 제자인 케니를 술집에서 만난다. 케니는 말한다. "선생님이랑 제가 전혀 다르지 않다면, 서로 뭘 줄 수 있겠어요?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어요?"라고 말이다. 조지는 그날의 마지막에 케니의 한마디로 뭔지 모를 속삭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쏟아내지 못하던 자신을 젊고 어린 제자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이해해줄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낸 것 처럼 말이다.

<싱글맨>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늙어가는 한 교수의 하루를 참으로 차갑고 낮게 읊조린다. 조지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듯한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비난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난 다음의 그 하루에도 그 세상속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 그래서 짐이 없는 하루하루는 조지에게 있어 그저 늙어가는 시간이며 외로움이 사무치는 힘겨움일 뿐이다. 그 누구와도 다시는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스스로를 몰아가는 조지의 모습은 그래서 아프고 힘에 겹다. <싱글맨>은 조지를 퀴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또 하나의 다른 부류로 구분한다. 그리고 그 선 바깥의 조지는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걸어가던 짐을 잃음으로써 처절한 외로움과 극단적인 상실감을 맛보게 한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자의 외로움.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고통인가를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꼭 퀴어라는 특이한 단어로 구분되어진 외면당한 존재가 아닐지라도 세상은 누구에게나 곁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은 어짜피 혼자 사는 것이다"식의 진부한 표현이 존재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잃고 누군가와 함께 하지 못한느 상실과 외로움은 우리들 누구나 겪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몫이기도 하니까.. <싱글맨>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그 외로움의 끝에 그래도 작은 탈출구가 있더라는, 바로 그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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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배케이션
김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9월
품절


일년에 단 몇 일, 자유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휴가 기간에 대부분이 하는 일들은 아마도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닐까? 휴가라는 단어가 주는 단어의 느낌은 어쩐지 가방하나 덜렁 매고 훌쩍 떠나는 여행을 연상시키고, 사람들은 대부분 그 느낌에 따라 휴가를 여행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절차를 밟는 것으로 보내곤 한다. 일 년에 한 번, 단 몇 일의 자유를 만끽하기엔 여행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막상 여름철이 되고 휴가기간이 다가와 여행가방을 챙기면 올해도 사람가득한 바닷가나 계곡 어딘가로 향하는 조금 지루한 휴가가 되겠구나싶은 생각도 없진 않다. 그 귀중한 시간, 나만이 기억할 수 있고,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될만한 특별하 휴가 방법은 없을까?


당신 홀로 만나는 당신만의 특별한 세상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왕국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의 지적수준향상을 위해 3년에 한번 특별히 마련해주었던 1년간의 유급휴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자~ 3년간 영국을 위해 일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1년간은 그간의 피로함을 덜고 스스로의 지적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책과 함께 하는 휴가를 다녀오세요~! 참, 월급도 드립니다."라는 의미랄까? 최근 대학에 재직중인 교수들에게 제공되는 안식년과 비슷한 개념으로 공직자들을 위해 배려되었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은 그래서 틀에 박히다시피해 그 특별함을 잃어가는 우리네 휴가와는 다른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저 휴식이라는 단어와 자유라는 단어에 매여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반강압적인 휴가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정한 자유, 그리고 자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라는 바로 그 점에서 말이다.


열심히 일한 그녀, 떠났다.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의 저자 김경은 서른넷의 직장여성이다. 10여년간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피로한, 그리고 휴식을 필요로하는 지쳐있는 바로 그 직장여성 말이다. 어느 날 운명처럼 읽게 된 <몰타의 매>라는 이야기를 기점으로 그저 문득 이제 나에게도 떠날때가 온것이라고 느낀 그녀는 다분히 충동적으로 그러나 충분히 강렬한 힘에 이끌려 자신만의 휴가를 떠날것을 결정한다. 스스로에게 충실할 수 있는 진정한 여행, 바로 김경만을 위한 맞춤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회사를 그만두고라도 떠나겠다는 결심을 읽은 너무도 자애로운 상사에게 1년간의 휴직을 배려받고 말이다. 물론 빅토리아 여왕이 공직자들에게 주었다던 1년간의 유급휴가는 아니지만 어쨋든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도 그녀는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목과는 조금 다른 그녀만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처음 책을 접했을 당시에는 사실 약간의 오해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제목이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니만큼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고전들에 얽힌 그녀만의 테마 여행을 소개하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더랬는데, 사실 책의 내용은 나의 예상과는 완전히 빗나갔다. 그녀는 그저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자신을 찾는 진정한 자유의 시간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은 셰익스피어와는 관계가 없다. 그저 그녀 자신의 기억와 그녀의 이야기들로 때로는 아련하게 때로는 선명히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기억들, 혹은 자신에게만 뭔가 의미를 가지게 했던 한장의 사진이나 책 한권에 얽힌 기억들을 가지고 그녀는 그녀만의 여행을 만든다. 남들이 보면 별로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아름다운 기억의 연장선이 될 김경만의 테마여행을 만든 셈이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선택한 여행지는 사실 조금 생소한 곳들이 많다.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작은 나라 몰타에서부터 이탈리아 여행이라면 마땅히 가야할 것 같은 나폴리가 아닌 카프리를 선택한다. 남들도 한번쯤 가보았을 것 같은 리스본을 선택할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한번 가보고 싶었다는 이유 대신 자신만의 특별한 사연을 들어 그곳을 선택한다. 어디를 가든 자신의 기억이 있고, 어디를 선택했던 자신만이 가진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곳을 선택한 김경만의 테마여행은 그래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을 남은 여한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의 진정한 의미에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마냥 부러운 그녀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을 읽으며 내내 그녀가 부러웠다. 세계 어디든 자신에게 의미를 주었던 책 한권의 기억을 더듬고, 뭔지 모를 신비함을 주었던 사진의 느낌을 받기 위해 발걸음을 하기 위해선 여러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는 그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금전적인 여유가 필요할 것이고, 그 다음엔 그 것들을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나의 발목을 자꾸 잡아챌 의무나 구속도 물론 잠시 미뤄두어야 하고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김경이라는 작가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처럼 자유로운 1년을 꿈꾸지만 대부분 그저 꿈으로 남겨두고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데에는 아마 그런 현실적 제약이 가장 큰 이유가 될테고,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녀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 진정 부러웠던 이유는 이런 현실적인 제약들을 모두 감수하고라도 그녀만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그 결단력과 용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녀 역시 회사를 정리할 각오까지 하고 계획한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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