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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진다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5
미야모토 테루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절판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빛나게 하는 시간들, 모든것이 싱그럽고 어떤 도전도 힘에 겹지 않을 것 같은 그 시기를 일러 사람들은 청춘이라고 부른다. 살아가면서 모두에게 한번은 찾아오지만 정작 찾아왔음을 느끼기에는 그 발걸음이 너무도 가볍고 조용하여 알아차리기 힘들고, 비로소 그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 때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날 수 있었던 청춘이라 이름지어진 바로 그 시기였음을 깨닫게 되는 조금은 야속하고 무정한 인생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혹은 그 시간을 흘려보내버린 사람들에게 모두 아름답고 진한 그리움과 각성을 불러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빛나는 시절의 아름답고도 아련한 기억들
<파랑이 진다>는 바로 그 청춘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존재만으로 빛이 나지만 그 순간의 빛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아련한 흘러간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찬란한 청춘의 시간들을 기록한 이야기임에도 희망적이고 아름답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는 상실감과 아픔을 담고 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푸르름을 담은 파랑이 서서히 잦아드는 시기. 그래서 그 푸르름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던 그 파랑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이 바로 <파랑이 진다>이다.
아름답지만 잃어가야 하는 것들이 많았던 그 시절
<파랑이 진다>의 주인공 료헤이는 집안의 사정으로 재수를 하던 중에 우연히 사정이 풀리며 새로 생긴 신생 대학에 입학을 하는 것으로 그 파랑의 시절을 시작하는 대학생이다. 특별히 원한 것도, 그렇다고 원하지 않은 것도 아닌 대학의 입학, 시작부터 거의 충동적으로 입학을 결정했을만큼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었던 료헤이에게 대학시절은 그저 잠시 주어진 얼마간의 유예기간일 뿐이고, 때문에 그는 대학생활을 통해 자신이 어떤 것들을 이루어나갈지, 혹은 무엇을 얻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어찌보면 대단히 우유부단하고 주체성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연처럼 들어간 대학에서 목적없는 시간을 보내는 료헤이, 그는 또다시 우연처럼 테니스클럽에 들어가고, 그 모임을 통해 우연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테니스라는 하나의 매게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삶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배워간다. 다른 파랑의 시절을 보내는 청춘들처럼 같은 시간을 보내며 특별한 의미를 찾지 못하지만, 그 시간을 지내내는 것 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파랑의 청춘들, 료헤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시간들을 통해 세상에 나가기 전의 유예기간을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상실하는 시간으로 채워간다. 가끔은 열렬히 무언가에 빠져들고, 가끔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그리고 그 노력에도, 혹은 의도치 않았던 상황으로 다치고, 넘어지고, 잃어버리는 과정. 그것들을 그 파랑의 시절에 겪어내는 것이다.
모든것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그래서 아프고도 아름다운 파랑의 계절.
잠시 잠깐 모습을 드러내고 져버리는 꽃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그 꽃이 피어있는 시기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잠깐의 아름다움이기에 더욱 절실하고, 아름다운 꽃. 그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에 오랜 시간 그 아름다움을 기다리고 추억하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같은 시기인 청춘이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것은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그리움과 안타까움 말이다. 정작 그 시기를 지내고 있는 파랑의 젊은이들에게는 모질고 아픈 상처를 깨달아가고 한없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움츠려드는 시기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그 시기가 지나면 그 때가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파랑의 시절. <파랑이 진다>는 그 파랑의 시기를 우리처럼, 그리고 바로 당신처럼 지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아름답지만 안타까운, 그리서 그 파랑이 지는 모습이 더욱 안쓰러운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