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이 숨긴 비밀 - 미궁에 빠진 보물을 둘러싼 45편의 기록
송옌 지음, 이현아 옮김 / 애플북스 / 2009년 10월
절판


보물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많기도 하다. 어쩌면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비밀을 간직한채 숨겨진 보물들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각 문화권마다, 혹은 각 대륙마다, 그것도 아니라면 한때 엄청난 발전을 이루던 하나의 왕조나 시대마다 모두들 한가지 이상의 숨겨진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그 보물들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보물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그 보물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혹은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세상의 어딘가에 은밀히 주인을 기다리며 숨어있다던 그 보물들은 실재가 아닌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수 많은 이야깃거리와 환상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고,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그러할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세상에 남아있다던 그 많은 보물에 대한 여러 이야기.

<보물이 숨긴 비밀>은 세상 어딘가에서 은밀히 숨어 주인이 될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던 그 보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보물들을 황실귀족과 전쟁, 사라진 고성, 해적, 그리고 침몰선이라는 몇 개의 공통된 이야기들로 묶어 소개한다.이 이야기들 속에는 우리가 영화나 소설 혹은 어린 시절 보거나 읽었던 엘도라도에 대한 전설부터 이제는 어느정도 밝혀진 이야기가 많은 투탕카멘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 다빈치 코드를 통해 유명해진 렌르 샤토의 보물,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처음 접했던 해저공동묘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꽤 다양하고 고르게 그리고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보물만을 이야기하기보다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 책.

하지만 단지 <보물이 숨긴 비밀>이라는 이 한 권의 책이 사람들의 말과 말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이야기 모음집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보물이 숨긴 비밀>은 보물이라는 환상의 존재에 대해 비교적 사실적이고 실증가능한 여러 가설들을 덧붙여 설명하고 있끼 때문이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보물이라는 환상을 쫓아 그것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탐험들을 진행했는지 그 결과는 어땟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물론 그 마지막은 대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쫓고 있는 보물에 대한 환상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 많은 보물에 대한 미스테리로 마무리하고 있지만 말이다.


모든 보물에는 시대가 있다.

<보물이 숨긴 비밀>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저 단순히 '옛날에는 이런이런 보물이 있었다는 전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식의 이야기라기엔 비교적 많은 역사적 사실과 배경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말이다.(물론 짧막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보물이 존재했던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황실의 보물 뒤에 그들의 부정과 전쟁의 보물뒤에 숨겨진 국가라는 이름의 힘, 해적의 보물뒤에 가려진 당시의 상황들 같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한 때는 누군가의 소유였을 그 막대한 부가 어느날 사라지고 그것들이 보물이라는 존재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내려오기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감수했던 희생이 왜 존재했는가에 대한 의문, 그 의문이 <보물이 숨긴 비밀>라는 한권의 책에 살짝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것이다.


재미있는 세계 각국의 보물전설

<보물이 숨긴 비밀>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재미있는 책이다. 사람들이 언제나 갈망하는 부라는 존재를 보물이라는 환상적인 이야깃거리를 통해 이야기함으로서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거기에 더해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보물의 존재들을 언급함으로써 그 환상을 더욱 가중시키니 말이다. 책 속에 담겨 있는 45가지의 보물이야기는 아마도 그래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때로는 영화로, 때로는 소설로, 때로는 용감무쌍한 누군가의 보물탐사로 말이다. 물론 누군가가 그 보물을 찾아낸다고 하여 그 보물에 대한 비밀들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은 아닐것이다. 보물이 발견되는 순간 그저 몇일 누군가의 어떤 보물이 전설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발견되었다더라 식의 뉴스토픽이 몇일동안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후세에 그 보물은 누가 어느날 어디에서 발견했다더라는 한줄의 멘트가 덧붙여질 따름일지도 모른다. 결국 보물은 실재로 존재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보물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얼마나 자극하고 얼마나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에 지금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많은 세상의 보물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이유, 그 비밀은 아마도 바로 보물에 가려진 사람들의 환상, 그리고 욕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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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장으로의 초대 을유세계문학전집 23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박혜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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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생소한 이름의 작가,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책을 만나게 되면 가끔은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비교적 익숙한 문화권의 책이거나 혹은 잘 알려진 작가의 책이라면 느끼지 않아도 될법한 이런 무게감들은 뭔가 책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이 아닌 그 이외의 것들이 책의 내용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을 것 같은 소위말해 배경지식이 딸리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물론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의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온전히 그 안의 내용만으로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아마도 이런 공포는 잘 모르는 어떤 것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두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사형장으로의 초대>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원인 모를 두려움을 한껏 업고 다가온 책 중 한 권이었다고 기억될 것이다.


생소한 러시아의 문학, 그러나 그 안의 내용만으로 충분한 이야기를 전하는 소설.

<사형장으로의 초대>는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조금 어렵게 생각되는 러시아의 역사나 사회적 분위기를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요소로 포함하지 않는 소설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러시아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조금은 몽환적이고 조금은 어리둥절한 그 느낌을 한껏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전혀 러시아스럽지 않지만 완벽하게 러시아스러운(물론 전적으로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이야기 <사형장으로의 초대>. 나보코프라는 작가의 가장 환상적인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는 <사형장으로의 초대>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 사형장이라는 사뭇 공포스럽고 두렵기만한 소재를 가지고 말이다.

불투명한 죄인 친친나트

<사형장으로의 초대>는 친친나트라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사형을 선고받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친친나트가 사형을 선고 받은 이유는 다소 당황스럽다. 현재의 법체계에서는 있을법하지 않은 죄. 바로 불투명한 존재라는 것이 이유가 된다. 불투명한 존재라니.. 도대체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닌 죄란 말인가? 친친나트가 살아가고 있는 곳은 모두가 투명한 존재로 규정되어진다. 모든것이 속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 유리관처럼 뻔하디 뻔한 것. 그래서 사람들의 생활과 사람들의 사고, 그리고 그들의 태도와 행동하나가 모두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같은 것을 투명하다고 규정하고 이러한 투명한 사람의 규정에 벗어나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소위 창의적이거나 독창적이라 말하는 그들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들을 하는 친친나트를 상대적으로 불투명하다고 규정해버린 것이다. 모두가 투명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에서 친친나트의 불투명함은 참아줄 수 없는 죄악이 되고, 이 죄가 친친나트를 참수형이라는 벌과 함께 죄수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완벽하게 비극적인 배경을 완벽하게 희극적으로 표현해낸 이야기.

<사형장으로의 초대>의 가장 주요한 무대는 사형을 언도 받은 친친나트가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는 감옥이다. 그가 불투명함의 죄목으로 투옥되고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며 감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인 모습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보여지는데 여기서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과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그 입장이 바뀌어 보인다.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되는 듯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죄인이 아닌 투명한 사람들이고,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상황들을 보며 나름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은 사형집행일을 기다리는 사형수 친친나트인 것이다. 독창성이 결여된 투명한 사람들은 이제 곧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친친나트를 향해 조롱과 비난을 멈추지 않고 친친나트는 자신의 사형집행일을 알려달라는 마지막 부탁까지도 외면당한채 환상과 현실, 거짓과 진실 그리고 투명함과 불투명함이 뒤섞인 어지러운 나날들을 유지한다.


자유로운 인생을 그리는 친친나트의 마지막 탈출구.

<사형장으로의 초대>의 마지막은 친친나트의 사형집행으로 끝을 맺는다. 시종일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을만큼 어지러운 상황을 연출하던 이야기는 그 희극적인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정해진 시간을 따라 친친나트의 사형집행을 그려내고 친친나트는 그렇게 목숨을 잃는다. 일반적인 이야기라면 주인공의 이야기로 비극을 맞이하여야 하는 <사형장으로의 초대>은 그러나 이 비극이 친친나트 개인에게는 그만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탈출구라고 말한다. 불투명함을 죄로 치부하고 그만의 사고와 행동을 차단당한 곳에서 탈출해 불투명함을 투명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유의 그곳. 그곳으로 향하는 마지막 탈출구를 사형집행이라는 죽음의 단어로 알려주는 것이다. <사형장으로의 초대>을 읽는 동안 나는 이 독특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내 고민했던 것 같다. 눈으로 보이는 환상과 사실의 어지러운 교차 뒤에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라는 생각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장으로의 초대> 마지막 줄을 읽자마자 책의 뒤에 첨부된 책의 해설을 꼼꼼히 읽어보았더랬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마치 모의고사를 본 고등학색이 답안을 맞춰보는 심정이었달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책만이 가지는 환상적이고 다채롭지만 그래서 어지럽기까지한 복잡한 분위기로 인해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점은 <사형장으로의 초대>안에 담긴 이야기는 죽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죽음 이상의 것을 그린것이라는 사실이다. 서로 투명하다 외치는 불투명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불투명함을 투명함으로 받아들여주는 그곳. 그곳을 향하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친친나트의 물리적인 죽음이 그에게는 한편으로 새로운 탄생이 되었음을 그리는 소설. <사형장으로의 초대>는 그래서 해설의 어느 말처럼 형이상학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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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오바마 북클럽 1
조지프 오닐 지음, 임재서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09년 10월
품절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대게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 책을 읽고 난 나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소감일 경우도 있고, 그 책의 여운이 끌어당기는 개인적인 기억들인 경우도 있지만 어쨋든 거의 매번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순간 떠오르는 느낌은 분명 늘 있어왔다. 그리고 나는 그런 느낌들을 되새기며 책의 이야기와 그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그렇지 못한 한 권의 책을 만난것 같다. 무엇인가 끝없이 말하고 있지만 무엇인지 모를, 그러나 알것도 같은 아리송한 무엇인가를 한껏 뭉쳐있는 잘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얽힌 그대로 던져버리고 간 그 책의 제목은 바로 <네덜란드>이다.

희망과 위기를 동시에 준 곳, 뉴욕.

<네덜란드>에는 잘나가는 애널리스트 한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이 이루고 있는 그의 가족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스는 변호사인 아내가 미국으로 진출하기를 원하자 아내를 따라 뉴욕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직장을 얻고 석유업 관련 애널리스트로 자리를 잡아 꽤 잘나가는 성공한 애널리스트로 나름의 삶을 유지한다. 그러나 9.11이후 그의 아내 레이철은 다시 그들이 왔던 영국으로 돌아가길 원하게 되고 그렇게 한스는 레이철과 그의 아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뉴욕에 남는다. 물론 일정간격으로 가족들을 보기 위해 날아가지만 그에게 가족이 함께 하지 않는 뉴욕은 어딘지 안정감이 없고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불안한 곳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영원한 이방인.

그는 흔들리는 뉴욕에서의 시간동안 끝없이 과거를 맴돌게 된다. 뉴욕이라는 땅에서 자기 분야의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저명한 애널리스트가 되었지만 여전히 뉴욕은 임시운전면허 하나 발급하는데에도 끝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게 하는 발을 딛기엔 어렵고 난해한 땅인 것이다. 언제나 뉴욕이 멀게만 느껴지는 한스는 자연스레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위안을 얻게 되고 그 위안의 매개중 하나로 크리켓이라는 운동을 선택한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늘 동행하던 크리켓, 자신이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아주던 그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 크리켓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스에게 크리켓은 승부가 중요한 운동이 아니다. 뉴욕스타일의 크리켓을 익혀 팀을 이기게 하는것 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시절 그대로의 방식으로 그 기억으로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켓과 현실.

한스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뉴욕에서의 소외감을 외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그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미국이라는 땅에, 그리고 뉴욕이라는 도시에 적응하고 있는 혹은 그곳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네덜란드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사람, 척 렘키순이다. 트리니다드 출신의 흑인 척 렘키순은 한스와 마찬가지로 검은 피부의 이방인이지만 그가 뉴욕을 대하는 방식은 사뭇다르다. 한스가 자신만의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과거에서 현실의 위안을 찾는 소극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면 척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민자들의 운동 크리켓을 뉴욕의 중앙으로 끌어오려한다. 크리켓을 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을 건설하는 꿈을 꾸는 척은 그래서 과거의 기억으로 도망하기 보다는 현실로 자신의 과거를 이끌어오려한다. 스스로가 이민자라는 이름의 영원한 이방인임을 인정하고 그대로 현실에서 연명하려는 한스에 비해 척의 꿈은 그래서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말도 안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또 다시 만들어진 이민자들. 그들이 각자 미국이라는 땅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는 방식을 <네덜란드>는 참으로 냉정하고 차갑게, 그러나 한켠의 희망을 품은채 보여준다.


오바마가 읽었다던 그 소설.

<네덜란드>라는 이름의 이 책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미국의 첫 흑인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읽고 있다는 한줄의 소식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무엇이 한나라의 대통령. 그것도 그 존재만으로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처럼 느껴지는 그 대통령의 눈을 끌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미국이 아직도 온전히 끌어안고 있지 못하는 이민자라는 존재에 대해 사실적이고도 잔혹하게 그 현실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민자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곳처럼 보이는 미국의 거대한 땅, 그곳에서 부유하는 이민자라는 같은 이름의 새로운 이방인들은 미국이 놓인 현실이고 동시에 풀어야할 과제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물론 <네덜란드>라는 이름의 이 소설은 그저 그들의 현실과 그들의 좌절, 그리고 그들이 한 때 꿈꾸었던 꿈에 대한 것들을 그리고 있을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잔인하리만큼 사실적이고 현실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곳의 지도자인 한 사람의 눈을 끌었던 것은 아닐까? 이민자들이 꿈을 안고 어딘가를 향할때 그들은 그저 물질적인 안정이나 사회적인 지위만을 그들의 최종목표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속했떤 땅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그들이 속할 곳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더이상 이민자가 아닌 그곳의 사람이기를 바란다. <네덜란드>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들을 받아들여줄 완전한 포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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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심벌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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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을 살때나 혹은 옷을 살때 그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다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 제품을 만든 제조사의 이름부터 살펴본다. 어짜피 이리저리 보아도 구체적인 정보를 모르는 상품이라면 제품을 만든 제조사의 브랜드네임을 믿고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현명한 결정이라는 것을 눈치껏 이미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가지는 어찌보면 이러한 맹목적인 신임은 하나의 힘처럼 느껴지게 되기도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그 힘을 가르켜 브랜드 파워라고 부르기도 한다. 책이란 것도 마찬가지라서 서점가를 방황하다 한권의 책을 골라 사는 경우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바로 이 브랜드 파워가 아닌가 한다. 물론 사전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본인이 목적하고자 하는 책을 정확하게 골라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책의 제목과 표지 혹은 그 책을 만든 저자의 이름을 가장 먼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책에 있어서의 브랜드 파워는 그래서 책을 저술한 작가의 이름이 아닌가 한다.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 그리고 로스트 심벌

브랜드 파워라는 측면으로 살펴본다면 현재 소설계에 이보다 더한 파워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작가. 이름만으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분위기와 그간 했던 이야기들의 성격들이 모두 연상되는 작가. 그리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막강한 능력의 작가가 바로 댄 브라운이 아닌가? 바티칸을 둘러싼 힘의 대립을 그렸던 천사와 악마, 그리고 본격적으로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그간 사람들의 관심 바깥에서만 맴돌던 기독교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전면에 드러낸 다빈치 코드라는 작품으로 문학계는 물론 종교, 사회 전반에 거대한 바람을 몰고 왔던 그 이름 댄 브라운이 세번째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 <로스트 심벌> 어떤 대단한 신문의 평도, 어떤 평단의 평가도 모두 뒤로하고 그저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의 이름만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던 세번째 그의 작품 <로스트 심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버트 랭던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

<로스트 심벌>은 그의 유명한 두 편의 이야기들의 뒤를 이어 기호학자인 로버트 랭던 교수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간 바티칸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 속 숨겨진 기독교의 비밀이라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파헤친 로버스 랭던 교수가 맞딱드린 세번째 이야기는 바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단체 프리메이슨에 관한 것이다. 오랜 세월 메이슨이 감추어온 고대의 수수께끼와 그 수수께끼를 노리고 접근하는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랭던의 오랜 친구 피터 솔로몬이 있고, 그로 인해 랭던이 이 사건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 수수께끼를 풀 유일한 계몽된 자로서 지목된 채로 말이다. <로스트 심벌>의 랭던은 전작들과 비슷한 분위속에서 사건에 말려든다. 정작 본인은 그저 조용히 학교에서 강의나 하고 연구나 하길 바라는 평범한 교수에 지나지 않지만 그가 그동안 쌓아온 지적연구결과물로 인해 원치않게 사건에 말려들고 결국엔 그 사건을 직접 해결해나가는 열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건의 시작도 비슷하다. 다음 교황이 될 후보 신부들이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되면서 시작하는 천사와 악마,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 자크 소니에르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다빈치 코드와 비슷하게 이번에는 랭던의 오랜 친구 피터 솔로몬의 잘려진 손이 등장함으로서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상징으로 가득한 문신을 가진채 역시 상징으로 가득한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말이다.


역시 댄 브라운

댄 브라운의 소설들이 그러했듯이 <로스트 심벌> 역시 많은 사실과 추측이 뒤섞여 환상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뭔가 아직 밝혀지질 원하지 않는 비밀들과 그 비밀을 이용하여 힘을 가지려하는 또 다른 힘의 대결. 그 대결 속에 전혀 영웅스럽지 않으나 충실히 영웅의 역할을 해내는 로버트 랭던이라는 학자의 지적 능력을 지켜보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게 된다. 마치 영화의 한 씬 한 씬을 설명하는 듯 한 빠르고 간결한 댄 브라운만의 이야기 전개 방식 또한 큰 몫을 하면서 말이다. 전작인 천사와 악마와 다빈치 코드가 모두 영화화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낸다면 아마도 <로스트 심벌> 역시 곧 영화와 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덕분에 <로스트 심벌>을 읽는 내내 랭던의 얼굴에 톰 행크스를 겹쳐넣고 댄 브라운이 묘사하는 장면장면을 영화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영상으로 상상할 수 있음도 <로스트 심벌>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처럼 펼쳐지는 이야기 속 고대의 수수께끼에 대하여..

댄 브라운의 소설이 강력한 힘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실제 존재하고 있는 여러 사실들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조건 허구로 만들어진 그저 픽션이라고 생각하기에 너무도 조밀하게 짜여진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을 마치 사실처럼 확인시켜주듯 존재하는 근거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늘 소설로서의 재미 이상을 가져다 준다. 다빈치 코드라는 작품이 한동안 문학계를 넘어 종교계의 불안을 끌어당기고 사회적인 하나의 흐름을 형성시켰듯이 말이다. <로스트 심벌> 역시 이런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실재하는 조직 프리메이슨을 시작으로 하여 이어지는 <로스트 심벌>의 이야기는 그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역시나 너무 사실감있고 분명하게 메이슨이라는 조직을 설명한다. 물론 실제 메이슨의 조직원이 들으면 말도 안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직 전반부에 지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더욱 서둘러 2권을 들게 하는 책 <로스트 심벌>은 여전히 댄 브라운의 힘이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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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심벌 2 - 완결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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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알고 있는 것, 모두에게 익숙한 것, 그래서 대부분은 의심하지 않고 넘어가던 것들에 대한 당연한 사실들은,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거나 혹은 너무도 생각치 못한 것이어서 그저 재고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대상이 감추고 있을지도 모르는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고 거대한 사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단 한번도 그처럼 대단한 비밀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허무함과 더해져서 말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이 늘 화재를 몰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바로 그런 점들을 공략하기 때문이 아닐까?


본격적인 사건의 진실로 다가가다.

1편에서 랭던의 오랜 친구인 피터 솔로몬이 처한 위기와 그 위기를 시작으로 불어닥친 고대의 수수께끼에 대한 위협은 2권이 시작하면서 점점 랭던과 피터의 여동생인 캐서린을 구석으로 몰아간다. 랭던과 캐서린은 미치광이로 보일만큼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피터의 납치범와 국가안보를 위해 그들을 잡아두려고 한다는 CIA의 끝없는 추격을 받으며 그들의 소중한 사람인 피터를 구해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하는 난처한 입장이다. <로스트 심벌>은 랭던이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가는 과정을 정말이지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우리가 늘 보아왔던 혹은 알고 있던 역사적인 인물과 현존하고 있는 자료들, 그리고 여러 분야의 지식들을 동원하여 사실이라 말하는 지표로 삼음으로써 로버트 랭던이 추적하고 있는 고대의 수수께끼와 메이슨에 대한 이야기들이 마치 100% 진실이듯 느껴지고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 스스로가 그 진실에 직접 다가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들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사실과 허구의 만남이라는 팩션이라는 장르가 더욱 사실적인 묘사와 이야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모든 것은 작은 오해로부터 시작된다.

<로스트 심벌>은 캐서린 피터의 연구성과와 피터 솔로몬의 메이슨에서의 위치, 그리고 스스로를 신의 위치로 승화시키겠다는 광적인 집착을 가진 말라크의 비밀스러운 정체와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극적인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러부분에서 그의 전작인 다빈치 코드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요소와 그 가족에서 비롯되는 거대한 사건의 시작이라는 면도,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으나 한번도 의심해본적이 없는 비밀스러운 역사의 진실이라는 점도, 또한 그 결론이 너무나 포괄적이고 보편적이기에 그 가치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반문까지도 말이다. 물론 그것 역시 댄 브라운 특유의 화법이긴 하지만 말이다.

로버트 랭던이 계속해서 활약하는 이유.

<로스트 심벌>에는 전작의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이 계속해서 활약을 한다. 대단한 싸움실력을 가진것도 아니고, 무기를 해체하는 실력을 가진것도 아닌, 그저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기만을 바라는 기호학자 교수 로버트 랭던, 그가 이렇게 매번 거대한 음모와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가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기호학자라는 그의 전공이 고대의 신비와 과거의 비밀을 밝혀줄 지도 모르는 신비를 다루는 학문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역시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것들의 신비를 알려줄 안내자가 늘 필요하고 밝혀지지 않은 신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이었나 보다. 매편,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였으나 말로 꺼내기 껄끄러웠던 음모론에 대한 궁금증을 밝혀주는 랭던, 아마도 음모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 우리가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를 통해 랭던을 만나는 일은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조금은 서운한 뒷 이야기.

<로스트 심벌>은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트 심벌>을 읽은 사람이라면 어느정도는 다소 아쉬운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천사와 악마와 다빈치 코드라는 두편의 장편 소설들이 너무도 많은 인기를 끌었고,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가 너무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탓에 그의 두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은 이들이 많이 있을 텐데, <로스트 심벌>은 이 두편의 이야기들과 너무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댄 브라운표 소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더이상 불평을 달 수는 없겠지만 뭔가 좀 더 다른 느낌을 원했던 이들이라면 조금은 서운한 느낌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정 반대의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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