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구판절판


누군가가 나에게 살아가며 겪는 일 중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것 같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아마 누군가를 잃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 아니겠냐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을 잃는 일은 때로는 다툼으로, 때로는 오해로, 때로는 실연으로, 때로는 죽음으로 언제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평범한 공포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맞딱드리는 그 순간마다 숨을 멎게 하고 생각을 멈추게 하는 가장 어렵고도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어느날 갑자기 닥치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그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며 애태우는 마음을 간직한채로, 시간도 공간도 아닌 저너머의 어딘가로 사라져 영원히 이별을 해야하는 상실. 그것보다 더한 힘겨움이 과연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남자의 하루
<싱글맨>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어느날 갑자기 잃게 된 한 남자의 하루를 그린 이야기이다. 58세의 대학교수 조지, 그는 사랑하는 연인 짐을 예고되지 않은 불시의 교통사고로 인해 잃은 상실감에 젖은 남자이다. 조지와 짐은 동성의 연인이었고 사고가 있기 얼마전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과 미래를 꿈꾸며 아름다운 계획을 세우던 행복한 연인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에게 예기치 않은 사고가 가져다 준 이별은 한 남자를 무기력의 구석으로 몰고간다. 매일 스스로의 존재조차 인식하고 싶지 않을만큼 생의 의지가 사라진 노년을 향하는 한 남자.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따라 죽을 수는 없기에 그의 생을 연장해야만 하는 그 남자의 하루에는 그래서 세상을 향한 분노와 그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신을 향한 냉소가 담겨있다.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소외받은 자의 냉소
조니는 아침에 일어나 이웃인 스트렁크 가족을 바라보고, 출근길 차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끝없이 세상을 향한 비아냥을 멈추지 않는다. 나와 너를 구분짓고 나와 같지 않은 너에게는 절대로 곁을 내어주지 않은 세상. 그래서 조지는 퀴어라는 단어로 규정된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해 세상에서 외면당한 소외감에 절망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상실감이 더해져 세상을 향한 분노와 비난으로 변화한다.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하는 순간에도 젊음 속에 홀로남은 자신의 노쇠한 몸을 절망하고 친구인 샬롯을 만나서도 이성의 유혹에 무감각할 수 있는 자신에 절망한다. 결국 그는 어떠한 곳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그들과 다른 자신을 절감하며 홀로 방황한다.

나를 보아 달라는 절규.
그리고 그는 그날의 마지막에 자신의 제자인 케니를 술집에서 만난다. 케니는 말한다. "선생님이랑 제가 전혀 다르지 않다면, 서로 뭘 줄 수 있겠어요?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어요?"라고 말이다. 조지는 그날의 마지막에 케니의 한마디로 뭔지 모를 속삭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쏟아내지 못하던 자신을 젊고 어린 제자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이해해줄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낸 것 처럼 말이다.

<싱글맨>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늙어가는 한 교수의 하루를 참으로 차갑고 낮게 읊조린다. 조지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듯한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비난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난 다음의 그 하루에도 그 세상속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 그래서 짐이 없는 하루하루는 조지에게 있어 그저 늙어가는 시간이며 외로움이 사무치는 힘겨움일 뿐이다. 그 누구와도 다시는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스스로를 몰아가는 조지의 모습은 그래서 아프고 힘에 겹다. <싱글맨>은 조지를 퀴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또 하나의 다른 부류로 구분한다. 그리고 그 선 바깥의 조지는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고 함께 걸어가던 짐을 잃음으로써 처절한 외로움과 극단적인 상실감을 맛보게 한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자의 외로움.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고통인가를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꼭 퀴어라는 특이한 단어로 구분되어진 외면당한 존재가 아닐지라도 세상은 누구에게나 곁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은 어짜피 혼자 사는 것이다"식의 진부한 표현이 존재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잃고 누군가와 함께 하지 못한느 상실과 외로움은 우리들 누구나 겪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몫이기도 하니까.. <싱글맨>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그 외로움의 끝에 그래도 작은 탈출구가 있더라는, 바로 그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